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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녀전선]하이퍼벤틸레이션모바일에서 작성

유리의화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2.28 02: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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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정말 나갈 수 있겠어요?"

"걱정마, 몇 달 집에서 쉬면서 증상도 거의 사라졌고, 어제는 집 앞 조금까지 나가봤어."

"그래도... 괜찮겠어요?"

"괜찮을거야, 의사도 슬슬 사회적응훈련 시작해보라고 했잖아."


G36이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아쿠아마린색의 맑은 눈동자에는 걱정과 불안이 한껏 담겨있었다. 나도 아직 자신은 없긴 하다. 하지만 꽤나 오랫동안 쉬기도 했고,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휘관이라 부르지 말라 했지. 난 더이상 지휘관이 아니니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몇번을 말하는거야."

"..."

"뭐해. 다시 불러줘."

"잔...잔티안느?"

"킥킥. 너 완전 부끄러워 하는거 알아?"

"어쩔 수 없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지휘관으로 불렀는데, 어색하다고요."


얼굴에 곤란함이 가득해진 G36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보았다. 톡 튀어나온 입술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짓게한다.


"이름이 어색하면 언니도 괜찮다 했잖아. 그리고 어색하긴 뭐가 어색해. 어제 침대에서 나한테 이것저것 다 하던 인형은, G36이 아니라 다른 인형인가?"

"아니 그건..!"

"아무튼, 나가자!"


얼굴이 빨개진 G36을 뒤로 하고 문 밖을 나섰다. 따뜻한 햇볕, 포근한 바람, 그윽한 흙내음이 느껴졌다. 고작 반 년 전만 해도 이런 생활은 꿈도 못꿨을텐데.


====


나는 그리폰의 지휘관이었다. 전선의 최전방에서 수없이 전투하고, 철혈의 엘리트 인형과 몇 번이나 싸우고, 의문의 세력에게 납치당해 감금되어 고문까지 당했다. 그래도 내 정신은 튼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굳건하다고 생각했던 건물은 단지 속이 모두 썩고 부서져 형태만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위태롭게 버티던 나의 정신은 그 날,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5달 전 그 날, 철혈의 대규모 습격이 있었다. 여러 엘리트 인형을 잃은 철혈은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총공습을 해왔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어쨌든 지휘부는 점령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미리 맞춘듯이 밀려들어온 하얀세력의 습격에 결국 지휘부가 함락되었다.


많은 인형과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나강은 머리가 관통당해 기능이 정지되었고, Five-seveN은 철혈의 자폭드론에 폭사당했다. S.A.T.8은 하얀세력의 플라즈마에 마인드맵이 전부 타버렸고, 스프링필드는 기관총탄에 부품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그리고, 카리나는 수류탄 폭발에 휘말려 하반신이 너덜거리는 채로 지휘관의 잘못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내 앞에서 숨이 끊어졌다.


뒤늦게 도착한 404소대와 DEFY소대에 의해 나와 부관 G36을 비롯한 몇몇 인형만이 가까스로 구출되었으나, 부대는 괴멸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인형들은 백업된 마인드맵을 이용하여 복구할 수 있었으나, 1주일간 지속된 재밍으로 백업되지 않은 1주일간의 기억은 복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결코 돌아오지 못한다. 1주일간의 기억을 잊은 채 행동하는 인형들은 내게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는데 충분했다. 사람들을 보면 죽어가는 인형이 겹쳐보이고, 시도때도 없이 환청이 들렸다. 나는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니, 미쳐있었다.


어쩔수 없이 나는 좌반신 일부의 3도 화상, PTSD로 인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의가사제대하고 볼고그라드 근방의 작은 마을로 요양을 왔다. 부관이자, 연인사이였던 G36은 나의 간병을 자처하여 나를 따라 제대한 후 같이 살게 되었다.


첫 한 달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G36을 봐도 발작을 일으켰다.
두 달째가 되자 G36과 대화를 할 때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세 달즈음 되자 집 안에서는 갑작스러운 발작을 제외하면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네 달 째에는 원래 성격을 되찾기 시작했고, 외부인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다만, 바깥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났다.


====


"안녕하세요 G36양, 좋은 아침입니다."

"아, 좋은 아침입니다. 카를 씨."


문 밖을 나서고 골목을 막 걷기 시작할 때, 20대 초반 쯤 되어보이는 젊은 남자가 밝게 웃으며 G36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카를? 카를이라면 저번에 G36이 옆집에 산다고 말해준 그 사람이군. 하. 표정에 당신을 좋아합니다, 하고 대문짝만하게 써져있구만. 기분나빠.


"옆의 여성분은... 아 그렇다면 그쪽이 저번에 말했던?"

"네 우리 지휘ㄱ..."

"G36 애인입니다. 잔티안느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G36의 소개를 끊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카를이란 놈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건 G36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무슨 짓이에요! 우리 사귀는 건 숨기는거로 했잖아요!"


G36이 내 귀에 속닥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누가봐도 너한테 관심있는 표정이었는걸, 표정을 못 숨긴 쟤 잘못이야. 그리고 너도 저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벙찐 표정으로 굳어있는 카를을 뒤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G36은 집에 들어가면 혼내주겠다며 투덜거리며 뒤따라왔다.


마을은 조용했다. 타박, 타박, 두 사람이 걷는 소리만이 마을을 채웠다.


"조용하다. 사람이 없으니까 그나마 낫네."

"여긴 나라가 바뀌어도 조용했던 깡시골이니까요. 이 마을 사람들은 루크사트 주의가 뭔지도 모를거에요. 그래도 시장쪽으로 가면 사람이 꽤나 있을텐데, 정말로 괜찮겠어요?"

"아이, 걱정말라니까 그러네."

"걱정이 안 될 수가 있나요?  왜 굳이 장보러 갈 때 따라나온다 해가지고..."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뭔 일이 있어도, 네가 내 옆에 있잖아?"


걱정하는 G36을 안심시키며 G36의 손을 톡 건드렸다. G36은 슬며시 손을 내밀고, 나는 그 손에 살포시 깍지를 꼈다.


걷다보니 주변에서 슬슬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시장이겠지. 열려있는 상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막 문을 열기 시작하는 상점들도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장이에요.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다고. 괜찮아.."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창백해졌는걸요."


맞는 말이었다. 사람이 점점 많이 보이자 사람들의 사이로, 보일수 없는, 보여서는 안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강? 나강일리가 없지. 스프링필드. 스프링필드가 여기 있을리가. 저것들은 항상 보이던 헛것일 뿐이야.\'

헛것. 헛것. 속으로 되뇌이며 G36의 손을 잡고있는 손에 힘을 주고 계속 걸었다. 바로 앞의 땅만 보며 주위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걸었다.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점점 증상은 심해졌다. 느껴져서는 안될 익숙한 화약냄새가 느껴지고, 헛것들은 나에게 말까지 건네왔다. 견디기 힘들어질때 쯤, G36이 말했다.


"안돼요. 더이상 안되겠어요."

"괜찮... 괜찮아... 갈 수 있어..."

"지금 지휘관 얼굴이 어떤지 알아요? 창백하고 눈에 초점도 없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것같아요. 안돼요. 돌아가죠."


그때였다. 와르르 하는 굉음이 시장에 울려퍼졌다. 과일가게에 세워두었던 사과상자들이 무너지며 난 소리였다. 나에게 그 소리는 폭음으로 들렸다.


그때부터 더이상 내 주위는 시장이 아니었다. 화약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유탄들과 고폭탄들의 폭음이 들려왔다. 타자기를 치는듯한 발사음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비명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아아아아.. 아니.. 아니야..."


그리고 내 앞에는 나와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쓰러졌을 때의 모습을 하고 서있었다. 왼쪽 다리가 없는 P90. 머리가 없는 모신나강. 좌반신이 타버린 p7. 눈이 없는 네게브... 그리고 가장 앞에는, 하반신이 없는 카리나가 엎드려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있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아냐. 이건 다 헛것이야. 헛것. 그때 카리나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헛것인가요...? 아니요 지휘관... 우린 헛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단지 지휘관때문에 죽어간.."


커져가는 이명에 뒷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손과 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시야가 점점 좁아져갔다.


물 속에 있는것처럼 더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진다. 눈앞은 새까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의식이 흐려질 때 쯤, 따뜻한 무언가가 입술에 느껴졌다. 그것은 내 입술에 포개진 채로 공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 G36이구나. 아마 과호흡 발작으로 쓰러진 나에게 순환호흡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리라. G36과 나의 입속에서 서로의 숨이 섞였다. G36의 날숨이 나의 들숨이 되고, 나의 날숨이 G36의 들숨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이 줄어들고 눈 앞이 밝아졌다.


"..안느! 잔티안느! 지휘관! 언니! 정신이 들어요?"

"G...36..."

"정신이 든 거죠? 진짜죠? 언니... 으흑..."


눈 앞에는 G36이 눈물범벅을 하고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으허엉... 그러니까 나가지말자고... 흐윽... 나는 언니가 죽는 줄 알고..."

"그만 울어. 뚝... 안죽었잖아.."

"흐윽... 다행이야.."

"옆에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영원히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걱정되서 어떻게 혼자 냅둬요... 절대 안떨어질거야.. 흑..."


아직 근육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있는 힘껏 G36를 껴안았다. G36도 나를 꼭 품에 안았다.


"업혀요 언니. 집에 들어가자."


내 상태가 적당히 안정된 후, G36이 말했다. 나는 G36에게 내 몸을 맡겼다.


"영차. 세상에 가벼운거봐. 밥 좀 잘 먹어요. 진짜 깃털같네. 뼈만 남았겠다 이정도면."

"그러고보니까, 아까부터 계속 언니라고 불러주네? 이제 익숙해졌나보지?"


옆으로 눈을 살짝 돌려 G36의 표정을 보았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얼굴이 빨개진것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 가서 혼내줄거에요."

"사랑해."

"그런 말로 넘기려 하지마요. 오늘 나한테 미안해야 할 것만 몇갠데."

"사랑해. G36."

"...나도요 언니."


업혀있는 G36의 등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서.


============


과호흡 증후군 응급처치에 마우스-투-마우스 순환호흡이 있는거보고 회로 돌리다가 마침 지휘관 공식이 떠서 글 써봤어. 지휘관 넘 이쁜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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