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점심밥은 먹고 온거에요."
"네. 그러시군요."

패스트푸드 먹지 말라고 말한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이 환자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은 병실 안이 아니니까 입원 중이 아닌거죠."
"네. 그러시군요."

궤변. 뭐 이런 궤변이 다 있어. 환자의 얼토당토않은 변명에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뻔 하여 눈을 살짝 찌푸리며 턱을 괴어본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변명하는 모양새가 퍽이나 귀엽다.

"...선생님? 화나셨어요?"
"네."

솔직히 화는 내가 트레이를 놓고 테이블 앞에 앉자 눈을 도르륵 굴리며 계속해서 내 눈치를 보는 당신을 보는 사이에 조금씩 풀렸지만.
이대로 넘어가면 자꾸만 이런 좋지도 않은 음식을 먹으러 다닐테니 화난 척은 계속 유지해야겠다. 아까 기록을 보니 적게나마 수치가 올라가 '조심해야 한다' 말했는데도 이러니 조금 걱정이다.

"환자분. 이런거, 참기 힘드시면 가까운 곳에 패스트푸드점 없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드릴게요."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는 듯, 안그래도 동그란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작게 뜨며 입을 삐쭉거리는 모양새가 아기새 같다. 표정으로 생각이 다 드러나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싫어요."
"흠, 어째서요?"

사실, 병원을 옮기는건 웬만하면 환자의 의사가 중요하고 의료인이 강제로 옮기는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환자가 먹을 것을 못 참아서 옮겨요- 같은건 웃기지도 않은 이유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병원보다 이 환자의 병을 더 잘 케어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반협박조로 말을 해야 제 병에 이런 음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아듣겠지.

"...선생님은... 제가 병원을 옮기면 좋겠나요?"
"그렇게 해서라도 환자분의 병이 낫는다면, 그렇게 하는게 좋겠죠."

환자와 말을 나누는 사이에 점점 식어가는 내 햄버거의 처지가 딱하여 크게 한입 베어먹었다.

"선생님은 저랑 헤어지는거 아무렇지도 않..."

다 먹은 포장지를 구기며 고개를 떨구는 환자의 얼굴색이 점점 붉어진다. 포장지를 구긴 오른손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니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얼른 화를 풀어줘야 할것 같다. 안그러면 추후에 비협조적으로 나올수도 있으니.

"당연히 아무렇지 않을리가 없죠. 환자분이랑 저랑 하루이틀 본 사이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덕분에 조금 급하게 먹어치운 햄버거 포장지를 트레이 안에 고이 접어 놓곤 포장지를 아직까지 쥐고 있는 그 손을 -턱을 괴고있던-내 손으로 감싸 온기를 보태었다. 그리곤 얼굴을 살짝 들이밀며 눈을 맞추어 되도않는 윙크를 찡긋- 날려본다.
이런 작은 분노는 스킨십이 도움이 될때가 있다- 고 들은 적이 있다. 아니, 책에서 읽었던가? 아무튼,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지.

뭐가 됐든 역시 그 말은 맞는 얘기였나보다. 감싸쥔 환자의 손아귀 힘이 점점 풀리는게 느껴졌다.

"-큭"
"??"

환자가 입을 또다른 손으로 가리며 비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한 영문 모를 소리를 내어 나도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간다.

"선생님, 윙크크크큭, 다시 해주면 안돼요?"

윙크크크큭? 이건 분명 비웃는 소리다.
아- 기분 나빠. 나는 당신이 화났다고 생각해서 풀어주려고 한건데. 사실 처음부터 화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가?
이랬다저랬다 장단맞추기 정말로 너무 힘든 환자다.

네? 딱 한번만 더요- 하는 말을 되풀이 하며 콜라를 빨대로 쭈욱쭈욱 빨아먹는 나를 향해 오른손으로 검지만 세워 입술에 붙이곤 쉿- 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분명 화를 내야하는 상황임에도 그 모습이 또 그렇게 귀여워 보이니 내가 잠시 미친거 아닌가 싶다.

"환자분이 제 말 잘 들어주면 생각해 볼게요."

간신히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선 짐짓 토라진 목소리로 말해보았다.

"...패스트푸드 먹지 않기?"
"네. 잘 아시네요. 그리고,"

이제야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처음부터 봐주지 말고 이렇게 단호한 태도로 대했어야 하나 조금 후회가 된다.
그래도 내 취향의 당신과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점심을 먹는 일도생겼으니 그 덕분이라 해야할까?

"그리고요?"

내 얼굴을 진지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집중하는 그 말간 얼굴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얼른 퇴원하기요"

응. 얼른 퇴원해서 만나러 와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의사와 환자 간에 교제는 일에 집중이 안될 것 같으니까.


--------

댓글 보고서 다 타서 불살라진 회로 한번더 열심히 돌려 보았다.
나새끼 이런 관종이 또 없지.

1편보다 재미없을까봐 걱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