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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카스아리] 고등학교 3학년, 여름하늘의 별바람 -1-

카사나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4.27 17:12:07
조회 424 추천 18 댓글 5
														

카사나리 창작 #2-1.


둘만이서, 비밀스럽게 속삭이는, 그런 행복.


#1 어른의 홍조에 감싸인 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asumi&no=6402&exception_mode=recommend&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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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잠에서 깨어,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오는 여름 아침의 햇살을 느끼고, 방 안에는 핸드폰의 진동음만이 울리는 것을 느낀다. 부웅, 부웅, 하고 부드러운 떨림이 침대를 타고 몸으로 전해진다. 정신이 몽롱해서 전화를 받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누구에게 부리는 잠투정인지, 잠깐 그런 채로 있다가, 습관처럼 익숙한 장소로 눈도 뜨지 않고 손을 뻗어, 핸드폰이 닿는 감촉을 느낀다. 누구의 전화일지는 보나마나였기에, 그 상태로 손가락만 움직여 전화를 수신하고 귓가에 갖다 대었다.


"아리사, 좋은 아침!"

"으응……."

"아직 자고 있었어?"

"몇 신데."

"으응……, 일곱시 반 정도?"

"너만 아니었으면 매일 12시까지 잤어."

"에~ 그러면 안 돼 아리사, 수험생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너나 잘 하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 자식은 진짜로 잘 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하지도 못한다.


"분위기만 보면 늦잠 엄청 잘 것 같은데 매일 잘도 일어난다, 너."

"아리사 덕분이야~"

"그런 은혜 베풀 생각 없거든."

"그건 그렇고 밖에 봐봐, 오늘 날씨 엄청 좋아!"

"그래봤자 덥잖아."

"그러지 말구~"


마지못해 눈을 뜬다. 불이 꺼진 방 안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아롱아롱 반짝이는 나뭇잎의 그림자로 수놓는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여름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의 소리가, 쏴아아 하고 공기를 상쾌하게 휘젓는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매미의 소리가 바닥에 부드럽게 깔려 고요하다. 정말, 완연한 여름이었다.

카스미는 아무리 여름방학이라도 자기 없이 보내는 날이 하루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듯, 매일 아침엔 아침 인사로, 밤에는 또 밤 인사로 이렇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래서 직접 보지 못하는 날은 있어도, 목소리마저 듣지 못하는 날은 없어져 버렸다. 1, 2학년 방학 때는 그나마 '카스미 없는 날'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정말로, 조금씩 길들여져가는 기분이다. 방학 때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보통이었던 내가 착실한 수면 스케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밤에는 귀신같이 카스미가 전화할 타이밍을 알아채서 기다리게 된다. 카스미는 그렇게 착실히, 나를 카스미의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카스미가 시킨대로 시선을 창 너머로 향한다. 새파란 여름 하늘. 문득, 카스미가 밖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 좋으니까 밖에 보라는 말 같은 거, 그 녀석 평소에 잘 안 하거든. 장난 칠 생각만 가득하지.

그래서 잠에 취해 나른한 몸을, 그래 놀아준다라는 심정으로 일으켜서, 제대로 창가에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카스미는 줄곧 내 방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대충 카스미가 서 있을 자리가 어딜지 알아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바로 눈이 마주쳤다. 짧은 바지에 산뜻하고 하늘하늘한 차림으로, 녀석은 토트백을 하나 들고, 등에는 기타를 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여름 하늘은 나뭇잎을 비추어서, 카스미의 주변을 반짝이는 그림자들로 감싸안았다. 매미 소리와 바람 소리, 여름 정경의 한 가운데에서, 카스미가 나를 보고 싱그럽게 웃어보였다.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고 나도 웃어버렸다.


"어쩐지 있을 것 같더라."

"에~ 어떻게 알았어?"

"니가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지 뭐."

"흐응~ 그럼 내가 뭐하러 왔을 것 같애?"

"말로만 공부하러 왔다고 하고 기타 치다가 하룻밤 묵고 가려 그러지?"

"정답! 앗, 정답이라고 하면 안 되는구나."

"너 말야……"

"오답! 사실 진짜로 공부하러 온 거야!"


웃기고 앉아 있어. 그래도 불쾌한 기분은 영 들지 않아서,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흘리듯이 웃어버리면, 카스미도 좋다고 따라서 헤실거린다.


"됐으니까 들어와."

"와아! 아리사 고마워~"


그래도 카스미는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 바보는 적응이란 걸 할 줄 몰라서, 언제나 놀랍고, 언제나 기쁘고, 언제나 감사하고, 그래서 언제나 행복하다. 항상 카스미는 그렇게 행동 하나하나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전해온다. 그 감각에 또 나는 기분 좋게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할머니는?"

"아직 주무시고 계실걸."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인사드려야지."

"편한대로 해. ……기타부터 꺼내지 말고."

"에~? 편한대로 하라며!"

"그 얘기가 아니잖아. 가방 줘봐."


설마 공부할 것도 아예 안 가져왔나 잠깐 걱정했지만, 그래도 수학 문제집 하나는 들어 있다. 그러나 딱 봐도 그냥 형식적으로 가져온 것이, 정말로 수학 문제집 하나가 다여서, 그것 말고는 또 평소 쓰던 가사 노트가 들어 있다. 그리고 악보 이것저것.

무시하고 문제집을 꺼내서 훌훌 넘겨보면, 바보라서 첫 페이지 빼고 다 백지인 게 아니라, 오히려 거의 다 풀려 있어서 공부할 게 없다. 하루 종일 놀 작정이다. 그래도 나름 착실하게 공부하고 있구나 해서 안심되었지만, 하여간 이상한 데에서 약아 빠졌다. 옆에 서 있는 카스미는 "흐흥~" 하고 한껏 우쭐거리는 표정이 되어서, 어느새 꺼내든 기타를 둥당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또 쓸데없이 잘 친다.


"흐응, 이건 유형 이해를 잘못했네."

"에엑?!"

"오답노트 정리해야지 뭐. 하나 안 쓴 거 있으니까 그거 써."

"아, 아리사!"

"뭐."

"지, 진짜 좋은 가사가 생각나서……."

"네네 알겠습니다. 아침 먹고 방으로 갈 거니까 기타 집어 넣어."

"으앙……."


진짜로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 귀엽게 굴기는. 괴롭히는 맛이 있다. 항상 골치 아픈 쪽은 나였기 때문에,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쾌감도 있었지만, 내가 슬슬 괴롭히면 녀석은 정말 한껏 당해줘서, 당해준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달라붙어 온다. 거기에는 요만큼의 악의도 섞여 있지 않은 게 당연했으니까. 그래서 걱정 없이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고 할 수 있는 게,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심되고, 기쁜 일이었다.

뭐, 진짜로 오답노트는 정리하게 만들 생각이니까, 실없는 농은 아니다. 대학교는 나랑 같은 데로 갈 거라며. 그럼 각오하고 공부는 바짝 해둬야지. 나랑 같은 대학에 지원해놓고 나랑 노느라 낙방하는 건 내쪽에서 사절이다.


-


처음부터 주욱 제대로 채점해보면 적당히 틀린 문제가 여기저기 있어서, 생각보다 정리하는 건 오래 걸릴 듯싶었다. 그래도 난이도가 제법 있는 문제들이니까, 카스미가 못하는 건 아무래도 아니다. 오히려, 이대로라면 거뜬히 나랑 같은 대학에 붙어서, 기어이 기숙사 룸메이트가 되어 24시간을 붙어 있으려 하겠지. 뭐, 그렇다고 방심하게 두진 않을 거다.


"아, 아리사 이건 그냥 계산실순데……."

"확실히 반성해둬야 나중에 실전에서도 잘하지."

"아리사 엄격해……."


카스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뭐가 그렇게 아쉬운 건지, 점점 울상이 되어간다. 그래봤자 아침 일찍 온 탓에 오전이 지나는 데에만 3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하루가 이렇게 길다, 카스미 때문에.

그래도 시키는 걸 거부하진 않아서, 올망졸망한 그 글씨로 착실하게 오답노트를 채워나간다. 그게 또, 뭐랄까, 신뢰받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서. 다만 한눈 파는 사이에 노트 구석에 낙서를 한다든지는 한다. 지금도 잠깐 사이에, 좌하단 구석에 어느새 '아리사 바보', 하고. 기도 안 차서 그냥 멀뚱하게 보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노트를 마저 정리하다가, 슬쩍 같은 자리 아래에 작게 '좋아해'라고 적는다. 기도 안 찬다, 정말.

참,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뭐하냐 너."

"앗, 으,"

"……."

"……."

"뭘 이제 와서 지우고 있어."

"그, 공부할게."

"흐응."


지 편할 때만 공부하겠다고 하지. 막상 들키니까 부끄럽기는 한가보다, 귀까지 빨개지면서. 평소 행실을 보면 부끄러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오래 사귀고 볼 일이다.

슬슬 시간은 지나가서,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기껏해야 한 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결국 오전 시간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다만 노트를 정리하면서 카스미가 조금씩 졸기 시작해서, 반쯤 뜬 눈으로 꾸벅꾸벅 사력을 다하다가, 지금은 아예 내 어깨에 기대듯이 하고 있다. 됐으니까 얼른 끝내, 하는 식으로 몸으로 밀어 카스미를 세우면,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카스미가 에헤헤, 하고 웃는다.


"요새 너 잠 못자냐?"

"응? 아니……, 잠은 잘 챙겨 자려고 하는데……."

"혹시 몰래 밤늦게까지 무리하거나 하고 있으면 진짜 그만해라, 그런 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진짜로 그런 거 아냐! 어제 9시 반에 잤어!"

"그건 또 너무 착실해서 내가 부끄러워지는데."

"그냥, 뭐랄까……. 역시 아리사네 집은 안심 돼……."

"여기가 너네 집이냐."

"아리사한테 시집가면 되지~"


……말문이 막혔다. 돌리자.


"끝나면 낮잠이라도 잘래?"

"으응……, 싫어."

"뭐야, 왜."

"아리사랑 놀러 온 건데 아깝게."

"공부하러 온 척하는 거 아니었냐."

"그래도……, 하아암~"

"그냥 자라니까."

"싫어!"

"아, 귀찮아……."

"으, 아,"


정말로 성가셔 죽겠다는 시늉을 하면 당황해서 허둥거린다. 내가 부끄러워서 죽어도 못하겠다는 건 완전히 무시하는 주제에, 내가 정말로 귀찮아 하면 카스미는 얼른 꼬리를 내리고, 풀이 죽어버린다. 카스미 쪽에서도 내 신경 쓰느라 고생이 많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나도 참 성가시게 구는 녀석일 텐데도. 이번에는 괴롭힌 게 조금 지나친 것 같아, 뭐라도 말을 하려고 하고 있으면,


"그, 그럼, 아리사랑 같이 잘래."


역시 더 괴롭혔어야 한다.


"뭐야 그건 또……."

"아, 아리사도 일찍 일어나서 아직 조금 졸리지?!"

"그건 그렇긴 한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내 침대 쪽으로 향한다. 야, 공부 마저 안 끝내냐.


"응! 할머니 어제 이불 빨으셨네! 완전 뽀송뽀송해!"

"누가 내 침대에서 자도 된대."

"에? 안 돼?"

"……안 되지는 않지만."

"헤헤~ 아리사도 같이 자자! 분명 기분 좋을 거야! 햇빛 따끈따끈하게 받으면서!"

"……."

"둘이서 꼬옥 끌어안고 자면 말랑말랑해서 엄청 푹 잘 수 있을걸~"

"덥거든."

"엑, 그, 그럼 손만 잡고 잘게?"

"뭔 상황이야 그게!"

"아리사아~"


확실히, 카스미 때문에 나도 잠이 약간 부족하다. 굉장히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카스미가 끌어 안으면 일어날 때 즈음에는 땀으로 끈적끈적해질 것 같지만, 뭐 그렇다고 떨어져 있을 카스미도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잘 수 있고, 잠들 때까진 분명 기분 좋겠지. 뭐, 그건 됐으니까.


"……알겠으니까 노트 정리 마저 끝내."

"그, 조금밖에 안 남았으니까 내일하면 안 될까!"

"될 거라고 생각해?"

"……아니요."

"이리와, 그러면."


-


"점~프!"

"먼지 날린다. 옷부터 갈아입어."

"으응~ 아리사 옷장에서 내 잠옷 좀!"

"하아……."


이불을 끌어안고 뒹굴기 시작하는 게 일어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여서, 크게 한숨 쉬고 그냥 갖다주기로 했다. 옷장 오른쪽 구석에 카스미의 잠옷이 개어져 있다. 사실 화장실에는 카스미가 쓰는 칫솔이 놓여 있고, 부엌에는 카스미가 쓰는 컵이 하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3학년 들어 카스미가 옮겨놓은 카스미의 물건들이 보증수표처럼 놓여 있었다. 언제는 한 번 속옷까지 옮겨놓으려 한 적이 있는데, 정말로 이 집에서 사는 꼴이 되어버릴 것 같아 내가 막았다. 언제까지 카스미가 원하는 대로 받아주었다간, 정말로 언젠가는 카스미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카스미에게 잠식되는 것도, 어느 정도 선에서 그쳐야만 한다.


"제대로 일어나서 갈아입어."

"귀찮아~ 아리사가 갈아입혀 주면 안 돼?"

"……됐거든."

"부끄러워 하기는~ 에헤헤, 아리사 귀여워어."


카스미는 그렇게 차츰차츰, 이곳을 언제든지 자신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려서, 자신이 언제 찾아올지, 언제 묵고 갈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카스미의 속셈을 알려면 카스미의 기색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지만. 조금 들뜬 것 같으면 놀다 갈 작정이고, 좀 더 들뜬 것 같으면 묵고 갈 작정이고, 뭔가 바쁜 용무가 있는 것 같으면 그냥 가는 길에 들른 거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좀 더 들떠 있었다.

카스미가 훌훌 잠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릴까 생각했지만, 왠지 지는 것 같아서,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주장할 요량으로 시큰둥한 척 바라봐주기로 했다. 그러면 오히려 카스미가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되어서, 어정쩡한 방향을 향하고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옷을 벗는다. 그리고 브래지어까지 풀 때가 되어서는,


"저, 정말, 그렇게 보지 않아도……."

"부끄러워 하기는."

"우읏."


피식 웃으면서 그대로 돌려주니까 분한 듯이 볼을 부풀린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의식해서는 아예 저쪽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귀엽게 굴면서도 서두르는 카스미를 보면서, 예쁘다, 같은 생각을 멍하니 했다. 성격을 닮는 건지 비율에서 약간 애티가 나는 주제에, 나보다는 키가 약간 커서 매끄러운 곡선이 죽죽 뻗어 있다. 가늘면서도 탄탄한 구석이 있다. 예쁘다. 얘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홀릴 운명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카스미는 이제 잠옷 차림이다. 커튼 사이로 햇볕이 쨍쨍하게 들어오는데도 잠옷 차림이 된 것이 약간 미스매치였지만, 이제 와서 그래봤자 새삼스럽다. 카스미는 다시 침대로 뛰어들어서, 잠깐 뒹굴다가, 자! 하면서 내쪽으로 양팔을 뻗는다. 조금은 토라진 표정. 역으로 자기가 부끄러워진 게 분한 건지, 나도 꼭 부끄럽게 만들어주겠다는 태도였다.

여기서도 이기자고 제발로 카스미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건 역시 조금 무리여서, 대신 카스미의 팔 바깥쪽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니, 그것조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카스미에게 확 끌어당겨졌다.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는 카스미가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부비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아리사랑 단둘이 있으면 밀어내지 않으니까 좋아."

"그런 말 하면 막 밀어내고 싶어지는데."

"에~ 그럼 안 돼! 적어도 이럴 때 솔직해지지 않으면~"

"짜증나게 굴어……."

"에헤헤, 조금 더 달라붙을게?"


정말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멋대로 판단한다. 희한하게 녀석이 틀린 적은 거의 없다. 목 밑으로 팔을 깊숙히 집어넣고, 카스미가 바짝 끌어당긴다. 온몸에 닿는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말랑한 압박감. 이마께에 닿는 간지러운 숨결. 역시, 마음이 놓인다. 잔잔한 행복감에 잠겨간다.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있었다. 카스미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서, 벌써 조금은 멍해진다.

허리 너머로 카스미가 다리를 걸쳐온다. 내가 안는 베개인 것처럼 그래놓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갑자기 온몸으로 꼬옥 끌어안아서, 조금 숨막히게 되어버린다. 콩닥거리는 카스미의 박동이 피부 너머로 전해져온다. 그렇게 잠깐 있다가, 어느 순간 힘을 풀고는, 하아, 하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면서, 함께 기분 좋은 나른함에 잠긴다.


"아리사……."

"답답하거든, 바보야."

"헤헤."


귀 뒤쪽 언저리의 머리카락을 카스미의 손가락이 상냥하게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잠기운으로 약간 힘이 빠진 눈으로 지그시 나를 쳐다본다. 뭘 그렇게 쳐다보나, 하고, 왠지 모를 애틋함을 가만히 받아내고 있으면, 카스미가 어느 순간 입술을 가까이 해온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서, 손가락으로 그것을 저지한다.


"아리사."

"안 된다고 했지."

"아리사……."

"대학교 합격하고 나서라고."

"아리사, 나……."

"안 돼."

"……으으~"


그러면 카스미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되어서, 부르르 몸을 떨다가, 갑자기 가슴께에 고개를 확 묻고는, 다시금 꽈악 조여오기 시작한다.


"숨막힌다니까……."

"아리사, 나, 어떡해, 아리사아……."

"……알겠으니까 조금만 참아."

"아리사, 나아, 아리사가……."

"참아."

"으윽, 흣, 으응……."


괴로운 듯이, 카스미가 가슴팍에 볼을 비벼온다. 안타까워져서, 살며시 카스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서로에 대한 어떤 행동에도 조금의 악의조차 없다. 그걸 서로 알고 있을 텐데도, 지금만큼은 카스미가 너무나 괴로워보였다. 숨막혀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표현하지 못하면 살지 못하는 녀석이니까.

어쩌면, 나는 대학 공부를 구실로 삼아서, 이 녀석에게 최종적으로 솔직해질 날을 어영부영 미루어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카스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가슴에 닿는 녀석의 더운 숨결을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내가 이런 식으로 약해져서는 안 되지.

꼭, 같은 학교에 붙어서, 연인이 되어서, 같은 곳에서 살자. 그렇게 해서 이루어낸 꿈은, 그 어떤 결실보다도 달콤할 거니까.


"아리사,"

"응."

"계속, 계속 함께 있자."

"응."

"사랑해."

"알겠으니까."


덥다고 한 것이 언제냐는 듯, 서로에게 온몸을 바짝 밀착시킨 채로 스르륵 잠이 들어, 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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