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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츠바라 카논을 구성하는 모든 것 01

NiTR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5.08 00:29:58
조회 915 추천 38 댓글 12
														


둥실둥실, 물 속을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침대의 메트릭스가 가볍게 흔들거릴 때마다 멍하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멀미가 났다.


오늘은 5월 8일, 하늘은 맑음. 아무도 없는 병실 안에 혼자 켜져 있던 TV가 나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걸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깔깔거리며 떠들고 있는 연예인들은, 울적한 내 기분을 무시하며 끝까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있었다. 참다 못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껐다. 적막과 동시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찾아오자 다시 켜놓자고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얌전히 침대에 몸을 뉘였다.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든 건 방금 전까지 있다가 사라진 '가족'이라는 사람들 때문일까?


나와 닮은 얼굴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안개가 낀 듯 뿌연 머릿속을 헤매는 내게 '카논. 네 페이스대로 느긋히 생각하렴.'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 자신의 페이스라니, 그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슬픔을 억지로 감추는 표정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사람들과 관련된 건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의아해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떠오를 거라고 말해주셨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저 이 바닷속을 떠다니는 것 같은 부유감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가족들도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을 뿐 제대로 된 말을 건내 주질 않았다.


마츠바라 카논. 하나사키가와 3학년 A반...

착하고 얌전하지만 동생과는 가끔 다투는 평범한 딸...

학교에서는 성실하고 배려심 있는 친절한 학생...

친구들과 꾸린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용기 있는 아이...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유감만 강해져 와 억지로 눈을 감았다. 시야가 어둡게 닫히자 멀미가 약간은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새로운 방문객이 찾아온 건, 멀미로 인해 욕지기가 꼭대기까지 차오른 저녁 무렵이었다. 무척 화사해보이는 차림의 여자아이는 노란색의 유채꽃과 함께 병실을 방문했다. 초라한 병실의 형광등 아래에서도 생기 있게 반짝이는 크림색 머리카락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지만, 보석 같은 자주색 눈동자는 어딘가 차가워 보여 선뜻 인삿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가볍게 웃은 여성은 짐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간이 의자에 앉았다.


"안녕, 카논. 어머님께 자조치종은 대강 들었어."


아나운서 같은 깨끗한 발음으로 말을 늘여놓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좀 어때?"


깨끗한 미소였다. 하지만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미소였기에 선뜻 말문이 나오질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병실 안에 가득 울린 것 같아 깜짝 놀라버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직도 인사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난 당황해 손발을 허둥지둥 놀렸다.


"아, 어, 응!"

여성은 그저 말없이 미소를 유지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난 이내 정답을 알아냈다. 그녀는 아까 TV속의 사람들이 짓고 있던 피곤해 보이는 미소를 하고 있었다. 나와 친구라면 비슷한 또래일텐데, 저런 미소라니... 계속 저렇게 하고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저기... 괜찮으세요?"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온 말에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하지만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에서 그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한결 가벼운 미소에 마음이 놓인 난 '가족들'이 놓고 간 홍차 페트병을 건내주었다.


"고마워 카논."


싸구려 홍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밝게 웃었다.


"넌 항상 내게 상냥하구나."


그 말과 표정에 왠지 모르게 멀미가 한결 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녀는 자신을 '시라사기 치사토'라고 밝혔다. 아까의 미소가 또다시 보고 싶어 우아해보이는 이름이라고 칭찬해보았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맨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를 보고 당황한 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다시 화제를 꺼내려고 궁리하던 내 머리에 그제서야 기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가족이 아닌 어딘가 기묘한 방문자, 이 치사토라는 사람은 나와 어떤 관계였던걸까? 같은 반 친구? 아니면 가족이 말한 밴드 친구?


"그, 이제와서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거리는 날 그녀는 내내 상냥한 표정으로 기다려주었다.


"저희 어떤 사이였나요?"

"글쎄..."


자주색 눈이 잠시 흐려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고민까지 할 정도라니, 그녀와 난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관계였던 것 같았다. 다리를 꼰 채 턱에 손을 괸, 다소 삐딱해 보이는 자세였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우아함이 느껴졌다. 겉모습이 예쁜 사람이지만 그만큼 움직임에도 우아함이 담겨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았다는 걸 키득거리는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깨달은 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녀가 내 손을 슬며시 붙잡은 게 더 빨랐다.

부드럽고 작은 손이 뱀처럼 내 손을 훑고 지나갔다. 손등과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에 이른 섬세한 손가락은 내 약지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하는 게 설명이 빠를려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하늘빛의 반지가 반짝였다. 그리고 비슷한 모양의 반지가 그녀의 손가락에도... 어라? 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별 말 없이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 저기 저희는..."

"평소대로 편하게 말해도 되는데."

"치, 치사토씨?"
"치사토쨩이잖니?"


의미심장하게 키득거리는 그녀. 살짝 발갛게 물든 뺨을 보자 내 뺨도 뜨겁게 달아올라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시야 한구석에서 반짝이는 반지. 그녀의 연노란색 반지와 잘 어울리는 하늘색의 반지였다. 약지에 끼고 있었다는 건, 그... 그런 거겠지?


"농담이야."


그때, 그녀가 내 귀에 그렇게 속삭이며 슬며시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말과는 달리 그녀의 손은 내 손을 꼬옥 쥐고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조 의자에 사뿐히 몸을 내린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닥였다.


"우리는 친구... 아니 친구 이상의 소중한 사이였어."


달콤한, 하지만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표정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이래로 항상 같이 다녔지. 아니 내 사정으로 항상 함께 있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서로를 바라보며 곁에 있으려 노력했었어."

"사정?"
"응. 나 연예인을 하고 있거든. 배우와 아이돌을 동시에 하고 있어."
"힘들었겠네..."
"그러게 말이야. 소속사에선 날 너무 함부로 굴린다니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말한 그녀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오며 날 바라보았다.


"카논은 항상 이런 내 사정을 이해ㅎ..."


그리고 그 표정은 갑작스럽게 굳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즐겁게 재잘거리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굳어졌던 그녀는, 이내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연신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 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그런 행동에 나까지 덩달아 놀라 그녀에게 괜찮냐는 말을 건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몇 분을 마주 보고 있었을까? 어느새 다시 핏기가 돌아온 그녀는 맨 처음의 미소로 돌아가 있었다. 플라스틱같이 느껴지는, 번지르르하지만 어딘가 얄팍해 보이는 미소. 그 얼굴을 보고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한 난 시선을 내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예쁘게 반짝이던 반지도 그림자 속에선 그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역시 TV라도 틀어놓고 있을 걸 그랬네. 그렇게 생각하는 내 귀에 어딘가 애처로운 목소리가 닿은 것은, 8시를 알리는 종이 친 직후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방금 전의 그녀의 모습을 보자 차마 이유를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또다시 이어진 짧은 침묵 후, 그녀가 잔뜩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너와 나는 좋은 친구였어."

"...그래."

"......"


어째서 과거형인걸까? 되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가족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바라본 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이 많은 수간호사. 팔자 주름이 인상적인 그녀는 우리들에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치사토쨩에게 다가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면회객분은 이만 돌아가주세요."

"...그렇다네."


약간은 쓸쓸한, 하지만 그것보단 해방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부터 들던 의문을 입 밖에 내려 했지만, 그녀는 그걸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내게서 등을 돌린 채 가져왔던 짐을 어깨에 맸다.


"이만 가볼게?"

"아, 응."


멀게 느껴지는 작은 등을 향해 할 수 있는 말은 이정도 뿐이었다. 문득 들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아래를 바라보았자, 내 손아래에서 침대시트가 형편 없이 구겨져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 치사토쨩."

"그래. 너도 몸 조심하고 푹 쉬어."

그녀가 나가기 전 슬쩍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저 그것 뿐. 조용히 문이 닫혔다. 다시 병실을 감도는 적막 아래에서 '혹시 싸인 부탁해도 될까요?' 라는 수간호사의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즐겁게 말하다가 그만둔 걸까? 침대에 누운 채 혼자 궁리해보았지만 어떤 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거야 당연하지.'


우울해진 내 마음보다 울적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넌 지금 마츠바라 카논의 모습을 한 타인일 뿐이니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자 목소리가 뚝 끊겼다. 나아졌다고 생각한 멀미가 다시 심해져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396518&page=2


에서 소재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써주셨던 내용 그대로 전개가 되진 않을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ㅠㅠ


다음 화에선 미사키랑 코코로가 문병을 올 예정입니다! 축구 끝나자마자 호다닥 쓰다보니 퀄리티가 좀 떨어지네요.. 뭐 애초에 원래 필력이 별로긴 하지만 ㅋㅋㅋㅋㅋ


05/08 08:09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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