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미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 3주...
"이젠... 얼마나 남았을까......"
의사의 말로는 '길어야 두 달, 짧으면 한 달'.
"이번 주가 마지막이면......"
추운 것도 아니었건만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일찍 솔직해질걸, 더 챙겨줄걸, 더 좋아할걸.
"이럴 줄은... 몰랐다고......"
카스미한테 드디어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드디어 사귀게 됐는데, 카스미와 사귀기 시작한지 고작 1주일밖에 지났는데... 병은 더 심각해진 건지 카스미는 더 자주 쓰러지고......
꼴사납게 거리 한복판에서 눈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서 카스미한테 가야 하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게 두면 안 되는데... 카스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하는 건지, 애들은 어떻게 봐야하는 건지, 이젠 전부... 전부 모르겠어...
"어? 이치가야 씨?"
"ㅇ... 오쿠사와 씨?"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오쿠사와 씨와 마주쳐버렸다.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고민...있나보네."
"......"
"말하고 싶지 않지? 뭐, 나도 그러니까..."
"미안, 신경써줘서 고마워."
"힘내."
그렇게 말하며 오쿠사와 씨는 돌아섰다.
"...비밀로 해줄 수 있어? 지금부터 하는 얘기."
"어떤 얘기냐에 따라 다르겠지... 어려운 얘기면 어려운 거고..."
그런가... 그래도 오쿠사와 씨라면, 함부로 남의 비밀을 말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혹시... 츠루마키 씨가 불치병에 걸려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 오쿠사와 씨는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코코로가... 음......"
대충 내 고민을 파악한듯,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건 잘 모르겠네. 그냥 코코로의 뜻에 따르려고 할 것 같아.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역시... 그렇구나."
우린, 비슷하네.
"그런데 말이지,"
오쿠사와 씨는 내가 마음 속으로 단정지으려던 게 아직 이르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내가 불치병에 걸리고서... 아니, 그, 만약 걸린다면 어떻게 할 건지 코코로한테 물어본 적이 있거든?"
"반대의 상황을?"
"응... 그랬더니 코코로는 그랬어. '미사키는... 살고 싶어?' 그러길래 말했지. 살고 싶다고, 너와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다고. 그랬더니 코코로는 말했어. '나도, 미사키가 없으면...... 웃을 수 없어. 아니, 이젠 미사키가 없는 웃음은 나한테 의미가 없어.'라고."
"그거... 부럽네."
진짜 사이가 좋구나. 역시 일찍 고백을 하고 사귀는 사이가 돼서 그런가...
"그것보다도, 코코로의 결론은 '미사키... 냉동수면 해보지 않을래?'였어."
"에? 냉동수면!?"
"응, 뭐... 나도 상상도 못한 얘기였지만 그런 얘기를 해주더라고."
"근데, 지금 기술력으로 그게 가능하기는 해!?"
조금 흥분해서 말해버렸다. 카스미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방법이, 아니, 먼 미래에라도 병을 고칠 방법이 보일 것만 같아서.
"그 '츠루마키 가문'잖아. 뭐, 이 병은 못 고치지만."
"이 병......?"
뭐야, 오쿠사와 씨... 설마......
"앗..."
갑자기 오쿠사와 씨는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정말로 오쿠사와 씨도 비슷한 병이라고?
"아, 이럴 때가 아니지!"
급하게 구급차를 불러 오쿠사와 씨를 싣고 병원으로 갔다.
"미사키!!"
"츠루마키 씨?"
오쿠사와 씨를 부르는 츠루마키 씨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다급하고 초조했다. 아마 내가 그 상황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도 카스미가 쓰러지는 걸 볼 때마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으니까.
본격적으로 쓰러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츠루마키 씨도 오쿠사와 씨를 혼자 두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무리하면서까지 말리고 혼자 나온 거였겠지.
"아리사...? 미사키를 병원으로 불러준 거야?"
"아... 뭐, 그렇기는 한데......"
"고마워... 정말로."
내게 진지한 감사인사를 한 그녀는 오쿠사와 씨의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곤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아리사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엣?"
"모르는 척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이 병에 대해... 적어도 최근 10년간의 데이터는 전부 알아봤고, 계속 수집하고 있는걸."
"그럼... 카스미에 대한 것도......?"
츠루마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미는 남들이 모르는 걸 바라는 것 같아서 모르는 척 하고 있었지만."
"...오쿠사와 씨는, 냉동수면하는 거야?"
화제를 돌리면서도 츠루마키 씨를 위한 얘기를 꺼냈다.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어떤 얘기라도 그 사람의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응, 내가 조금 억지를 써서... 밀어붙이기는 했어. 미사키의 웃는 얼굴을 앞으로도 보고 싶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걸."
"그렇구나... 나도... 카스미의 웃는 얼굴...... 계속 보고 싶은데, 그래서 카스미한테 뭐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아니야. 아리사는... 아리사가 얼마나 카스미를 좋아하는지 나한테 알려줬잖아? 나도 카스미의 웃는 얼굴을 계속 보고 싶어. 하지만 그 옆에서 아리사도 같이 웃으면 좋겠어. 혹시 카스미도... 냉동수면을 하게 된다면... 혹시 하는 거에 동의한다면,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줄게."
"...나, 카스미한테 가고 싶어."
"응, 어서 가봐. 카스미도, 아리사가 보고 싶을 거야."
"츠루마키 씨... 고마워."
"응, 응, 최고의 표정이야. 아리사."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창고를 향해 뛰었다. 다른 애들이 오기 전에, 그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다! 아리사아~!"
"하아... 하아... 카스미......"
반갑게 문 앞에서 날 맞아주는 카스미에게 안겼다. 그, 이, 인사처럼 껴안는 그런 건 아니고, 힘들고 지쳐서 카스미한테 쓰러지다시피 했던 거지만...
"어머머~ 아리사, 적극적이야~"
"시, 시끄럿! 그런 거 아냐!!"
카, 카스미한테 안기는 게 좋기는 하지... 그,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내가 먼저 안긴 건 아니니까!
"애들 오기 전에 할 얘기가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자고."
카스미를 보낸 뒤, 생각을 정리하고 창고에 들어가서는 바로 얘기를 꺼냈다.
"카스미, 혹시... 냉동수면이라는 거...... 해보지 않을래?"
"응? 그게 갑자기 무슨..."
"츠루마키 씨,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오쿠사와 씨도 너와 같은 상황이어서..."
"아리사......"
카스미의 목소리가 조금 어두워졌다. 내 말이 싫었던 거겠지. 내일 죽어도 마지막까지 모두와 웃다가 가겠다고 할 카스미가 이런 제안을 좋아하지는 않겠지.
"미안ㅎ"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카스미는 날 껴안았다.
"카스미...?"
"나도 아리사가 좋아! 당연히 더 살고 싶어! 나도 더이상 아리사와 못 있게 되는 건 싫단 말이야!"
"카스미..."
"원래는 모두와 있다가 조용히 사라지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리사의 마음을 듣고 나서는 그렇게만 생각할 수가 없어서......"
나를 껴안은 팔이 더 꽉 조여왔다. 하지만 힘은 약해져서,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카스미,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아리사."
힘을 잃은 팔이 떨어졌고, 카스미는 말했다.
"모두들한테... 얘기해볼게. 만약 사라진다고 해도 말없이 떠나고 싶지 않아..."
"응... 그렇게 하자."
"그럴 필요없어."
계단 위에서 들린 목소리. 그 주인은,
"사...야?"
"카스미 짱도, 아리사 짱도... 힘들었지?"
"리미? 너희 둘 다 있었던 거야...?"
"나도, 이 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오타에도..."
"카스미, 네 마음대로 해. 우리는 네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니까. 그렇지? 오타에, 리미링."
""맞아.""
카스미를 배려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아야,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오타에와 리미에게, 카스미는 눈물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나만 생각하는 거잖아... 조금 더 살고 싶다고 모두를 내쳐버리는 거나 다를 게 없는 건데, 그런 이기적인 생각인데...... 그래도... 괜찮을까?"
"우리는, 카스미가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해주는 게 기뻐."
"카스미 짱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카스미의 두근거림을, 우리를 위해서라며 뒤로 넘기지 않으면 좋겠어."
"......고마워!"
......이 녀석들, 나랑 똑같이 생각하잖아.
뭐, 이 셋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다행이야...
"어머, 아리사~ 감동받을 역할은 카스미인데 아리사가 더 울려고 하네?"
"아리사짱도... 고민 많았지...? 카스미짱에 대한 걸 혼자서 끙끙 앓았으니까..."
"여기, 눈물 닦아."
오타에에게 받은 걸로 눈물을 닦고서 보니, 오타에의 셔츠였다.
"뭐, 뭐야! 이럴 때는 보통 손수건 아냐!?"
"옷짱이 내 손수건이 마음에 든대."
"풉, 오타에~ 그렇다구 셔츠로 눈물을 닦는 것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오타에짱... 나도 손수건은 있었으니까 다음에는 나한테 맡겨줘."
"리미링도, 오타에도, 이렇게 훈훈하게 얘기하면 장난스럽게 말한 내가 나쁜 애가 되잖아~ 나도... 너희들이 좀 웃어줬으면 해서 말했던 건데."
그런 말을 하는 사아야한테, 조용히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너, 우는 거 다 보인다?"
"그렇구나..."
"......애들한테 숨기고 싶으면 잠깐 나갔다 오기라도 하고."
"으응, 괜찮아... 이런 때 솔직하게 우는 건...... 울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니잖아?"
그 말에 다른 애들을 돌아보니 전부 울고 있었다.
"뭐, 뭐야!? 어느새 우는 분위기가 된 거야?"
"그, 그게... 아리사짱이 사아야짱한테 귓속말 시작하기 1초쯤 전부터... 갑자기 눈물이 나서...... 흐윽......"
"리미가 우는 걸 보니까 눈물이 나왔어..."
"두 사람이 나 때문에 우는 것 같아서..."
진짜...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
"나도 울게 돼버리잖아...... 진짜... 내가 죽는 것도 아닌 주제에 매일같이 울어서 지금이라도 좀 안 울어보려고 했더니만..."
각각의 이유로, 하지만 분명 하나에서 시작된 이유들로 흐르는 각자의 눈물과 함께, 시계는 조금씩 움직여 날짜를 바꿨다.
며칠 후, 꽤 많은 사람이 츠루마키 씨의 저택에 모였다.
"그럼, 이렇게 세 명인 거지?"
"응!"
"어... 어......"
오쿠사와 씨의 시선과 주변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여기서 나만 병이 없는데도 하는 거라서 그런가.
냉동수면에 대해 얘기한 날... 아니 정확하게는 그 다음날 새벽, 카스미가 가족들에게 얘기하러 먼저 집으로 가고서는 모두들한테 물어봤다.
나도, 같이 해도 괜찮냐고.
'아리사, 아리사의 마음에 솔직하게 해.'
'아리사 짱... 카스미 짱과 행복하게 살아줘.'
'카스미한테는, 아리사가 필요하잖아? 아리사도 마찬가지고.'
모두 같은 대답이었다. 내가, 카스미를 따라가고 싶어서 모두를 떠나겠다는 내 이기심이 미안해질 정도로.
'오타에, 리미, 사아야... 고마워.'
'나도 아리사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카스미한테도. 그리고 리미와 사아야한테도. 모두들 정말 고마워.'
'아리사 짱, 카스미 짱을 부탁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나서도 잘 지내야 해...'
'그것도 중요하지만, 아리사 너도 행복해야 해. 알았지? 그 부분은 카스미도 같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응...'
모두의 대답이 너무 고마워서, 이런 애들과 친구로 지냈다는 게 너무 기뻐서, 그래서였을까. 그때는 거의 이성을 잃고 한참을 울다가 잠들었는지, 기억이 끊겨있었다.
"카스미."
"응?"
"울면 안된다? 눈물이 얼어붙어서 달라붙을지도 모르니까."
"눈물은...... 그 때 다 흘렸어."
"그러냐."
"...사랑해."
"......나, 나도."
사랑해, 카스미.
여태까지 살아숨쉬던 우리의 몸이 잠시 얼어붙고,
미래를 향한 우리의 이야기가 어쩌면 꽤 길게 얼어붙고,
우리의 시간이 만약 영원히 얼어붙는다고 해도,
이 마음은, 한 순간도 식지 않아.
- BanG! Shorts, Kasumi X Arisa +4(3). 너와 나의 지금이 얼어붙을지라도
- 미사키...
듣고 싶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미사키, 들려?
아까까지 들었지만 한참동안 듣지 못했고, 그래서 더 듣고 싶었고, 너무나도 그립고 소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사키!"
"코...코로...?"
"미사키~!!"
행복한 얼굴로 내게 안긴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를 내 팔로 감쌌다.
"나 왔어, 코코로."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와~ 잘 됐다, 잘 됐어~"
"너 아까까지 불치병에 걸려있던 애 맞냐. 너도 죽을지도 모르는 거였다고?"
"에헤헤......"
실없이 웃는 카스미를 보며 내 표정도 풀어지려던 그 때,
"카스미!"
"카스미 짱!"
"카스미!"
세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오랜만이지만 그렇지 않은 듯한...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만 같은 목소리들이, 그 주인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오타에! 리미링! 사~야!"
카스미는 바로 뛰쳐나가 세 사람에게 안겼다. 셋 다 조금씩은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보니 카스미가 병에 걸리지 않고 함께 성장한 미래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미래는 과연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분명 좋은 미래였겠지.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카스미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카스미는 그렇다쳐도 지금은 세 사람의 시간보다 조금 뒤쳐져서, 아직 5년 전의 나로서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조금 아쉽다.
그래도 괜찮아. 조금 뒤쳐졌지만, 지금부터라도 따라가면 되니까.
"포피파... 다시 시작이지?"
""당연하지!""
나와 함께 대답한 카스미는 너무 당당해서, 뒤쳐졌다거나 하는 생각따윈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카스미를 보면, 이런 나라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뭐든 가능할 거라고.
다시, 포피파가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나도, 모두와의 행복한 시간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끝.
사실 이건 예전에 불치병 걸린 카스아리가 보고 싶다고 썼던 글에 있던 걸 거의 재탕한 거라서 그리 한 일이 없네...
음... 일단 읽어줘서 고마워! 솔직히 냉동->살아남->해피엔딩의 전개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난 새드로 끝을 맺는 건 새드새드한 묘사를 하는 것 이상으로 못하기도 하고, 도저히 새드엔딩을 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처음부터 냉동을 하든 죽은 자의 소생을 시키든 평행세계를 이어버리든 해서 어떻게든 해피에 가깝게나마 할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불치병이나 사고사 같은 건 안 써...
사랑하는데 죽는 슬픔은... 묘사할 자신도 없지만, 캐릭터한테 그런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아. 특히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앗, 주저리주저리가 너무 길었을까...? 추가로 적은 분량보다 내가 떠드는 게 더 많아지기 전에 그만하기로 할게.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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