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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토모히마카오치사] 마음 두드리기 27.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8.23 01:37:38
조회 464 추천 24 댓글 4
														

 이 전 편 들 모 음 


 - 


 요즘 시대에 침묵은 참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뻔한 대답 대신 긍정이나 인정의 의미도 대신할 수 있지만, 지금은 오직 본연의 뜻 그대로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조용해진 것뿐이었다. 


 체육관 무대 뒤 대기실에서 배우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이고, 서로의 눈치만을 보았다. 분명 다 같이 같은 곳에 있을진대, 가진 생각들은 제각기 다 달랐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한 이유는 모두 동일했다. 누구 하나 아니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카오루 씨, 우다가와 씨, 정말 엄청난 환호성이지 말입니다.”


 헛기침을 괜스레 여러 번 하던 마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들어온 지 몇 분이 지났는데도, 박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관객들의 마음에 제법 남는 공연이 된 걸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다행이도 연극은 그럭저럭 성공한 모양이다. 


 “정말이구나. 분에 넘치는 함성이야...”


 “환호성이, 정말 멈추지 않네요.”


 다소 힘이 빠진 듯, 무게감이 사라진 목소리와 아직도 꿈을 꾸는 것같이 멍한 목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그 목소리의 주인들인 카오루와 토모에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소리를 가슴 속에 남는 여운 삼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 상념을, 대기실의 문을 쾅하고 연 연극부원의 문소리가 깨트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이내 흥분감을 참지 못하고, 안에 있던 배우들에게 목소리를 드높였다.  


 “우다가와 씨, 세타 선배! 저희, 커튼콜을 하죠! 관객 분들의 환호성이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아요! 진짜, 진짜 굉장해요!”


 커튼콜을 하자는 부원의 목소리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야는 식겁했다. 주역인 카오루의 기운도, 토모에의 넋도 빠져있는 것 같아 커튼콜은 역시 무리인 것 같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원을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니, 그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관객 분들에게 실망만 줄 수 있으니 차라리 안 하는 게...


 “아니, 아니, 배우 분들도 지쳤을 테니 그냥 이쯤에서 적당히 해산하는 건 어떻겠슴...” 


 “그럴까...”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카오루는, 이윽고 힘을 주어 벽에서 떨어졌다. 마야가 괜찮냐는 듯, 카오루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눈은 마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프로라면, 끝까지 해내는 게 옳지 않겠나?” 


 그녀의 눈은 제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토모에를 향했다. 토모에는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려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로미오의 복식을 입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흐르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여전히 옆에 마냥 있기에는 그저 태산과 같은 사람이었다. 


 “할게요.”


 그래도 그녀는 그녀의 옆에 섰다. 이젠 그럴 수 있었다. 카오루는 토모에를 바라보다가, 이내 대기실 밖을 향해 걸어간다.


 “가자, 모두들. 청중 분들의 환호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구나.”


 카오루의 목소리를 선창으로, 배우들은 썰물처럼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토모에 또한 그 급류에 휩쓸려 빠져나가려다가, 잠시 무언가 두고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그러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파도에 휘말려 더 넓은 바다로 빠져나가버리고 만다. 


 물결이 빠져버린 곳엔, 검디검은 갯벌만이 드러난 채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시라사기 치사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스러지는 조명에 맞춘 소소한 커튼콜이 끝나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곳을 향해 걸어 나갔다. 체육관의 출구가 여러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작게 일렁이던 목소리는 멀어지고, 체육관을 꽉 들어 채웠던 사람들은 어느새 한 줌도 채 남지 않았다. 그것에 토모에는 작은 씁쓸함을 느꼈다.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의자를 치우려는 후배 연극부원들을 마야가 가벼운 손짓으로 제지했다. 뒷정리는 나중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그동안 고생한 연극부원들이 문화제의 소소한 시간을 즐겼으면 했다. 


 “연극부의 모든 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슴다!” 


 “마야 선배야 말로 고생 많으셨어요.”


 마야의 말에 토모에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토모에의 말엔, 그곳에 있던 모두가 동감했다. 이번 연극에서 가장 힘을 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야마토 마야, 그녀였으니까.


 “그렇지. 첫 연출 일이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테니...”


 “후헤헤, 저보단 부장이 더... 근데 부장은 어디 있슴까?”


 동감을 표하는 카오루의 온기 섞인 말에, 이번엔 마야가 질문으로 슬며시 화제를 넘겼다. 계속 비행기를 태워주니, 부끄러움이 덮친 모양이다.


 “조명실에서 한숨 잘 테니, 절대 깨우지 말라던데요...”


 부장과 함께 조명을 만지던 연극부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연극이 끝나자, 정신적 스트레스가 몰아서 온 모양이다. 원래 이번 연극도 몇 번이나 고사한 양반이니까. 


 “아하하...”


 그래서 마야의 입에선 후헤헤가 아닌, 조금 요상한 웃음이 튀어 나왔다. 뒷정리가 끝나면, 부장에게도 감사 인사를 꼭 드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부장답다면 부장답군.”


 덧없다는 듯, 나지막이 내뱉은 카오루의 말에 체육관에 있던 모두가 웃었다. 토모에도 힘껏 웃어보려 했지만, 어쩐지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에 입 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연극부 여러분들, 있습니까?”


 끼익, 하고 작은 문이 열리면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턱에 기른 수염이 제법 인상 깊은 드라이한 사내였다. 


 “교장 선생님?!”


 사내의 얼굴을 보고, 마야가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높였다. 이번 연극을 본 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리 직접 저희들에게 대화를 하러 모습을 드러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러분, 오늘 공연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부원 여러분들의 실력과 노력이 모든 분들에게 전해졌을 겁니다.”


 무대에 선 면면을 들여다보고는, 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라사기 씨가 없군요.”


 시라사기라는 성에, 토모에의 마음이 움찔했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다가, 이어서 그녀는 눈을 떨어트렸다. 


 “바쁜 일이 있다고 하여, 그녀는 급히 떠났습니다.”


 카오루가 대신 인원들을 대표해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그녀가 바쁜 일이 있다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카오루의 뇌피셜에 불과했지만, 연극부의 모두 카오루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쉽군요. 바쁘신 와중에도 출연해준 터라, 감사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는데.”


 “제, 제가 지, 직접!”


 갑자기 들려온 말을 더듬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의 행방을 찾아 날아 들어갔다. 시선이 몰리자, 목소리의 주인공인 토모에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말을 다시 했다. 


 “제가 직접 전해드릴게요.”


 그 말이 뭐가 어려운 말이냐고, 고작 그 말 한번 하는데 몇 번이나 더듬은 거냐고, 따져 보아도 지금 그녀의 마음은 너무나 복잡해서 그것에 답을 줄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저 그녀의 호의를 받아줄 수밖에.

   



 이젠 무대의상에서 벗어나, 다시 교복으로 갈아 입어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연극부실로 가야 했고, 가던 도중에 사람을 꽤나 많이 만났다. 


 귓가에는 포핀파티의 합주 소리가 들려왔고, 축하한다며, 아직 전해주지 못한 꽃다발을 하나 들고 있던 카논 선배나 라이브 빨리 준비하라고 내 등을 들이밀었던 란, 은방울꽃처럼 은은히 웃고 있던 모카와 아직까지도 학생회 완1장을 미처 떼지 못한 츠구미. 


 그리고 악기 세팅은 우리가 할 테니, 얼른 옷 갈아입고 오라며 웃어 보이던 히마리를 스쳐 지나왔다.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이다. 


 “자네.”


 검붉은 기운을 띄고 있던 복도의 한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토모에는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섰다.   


 “백작을 맡은 학생이군.”


 그러자 복도에 서있던 남성이 토모에를 향해 다시 한발자국 다가왔다. 사각 안경의 렌즈가 노을빛을 받아 검은 눈동자와 그대로 섞여 들어갔다. 


 “세타보단 백작을 먼저 보고 싶었지.”


 “저... 실례지만, 혹시 성함을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타 선배를 세타라고 편히 부르는 걸 보니, 혹시나 저가 알고 있는 이름일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조금 불편하게 변했다.


 “시라사기 군이 내 얘기를 해주지 않았나?”


 “저도 들은 게 없어서...”


 남자의 불만스런 목소리에, 토모에는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 이내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제 앞에 서있던 토모에를 바라보았다.


 “내 이야기를 가져다 썼으면서, 시라사기 군도 여전히 악녀로구만.”


 “아!”


 이야기란 말에 토모에는 드디어 그가 누군지를 눈치 챘다. 동시에 시나리오를 제공해준 분이 직접 보러온다고 했었던, 치사토의 말도 함께 떠올랐다. 그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인상적인 연기를 하던데.”


 “과찬이세요. 이번이 첫 무대이자 마지막 무대인 걸요.”


 “배우가 될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은 없을뿐더러, 저는 원래 연극부가 아니에요.”


 “...연극부가 아니다.”


 토모에의 말을 남자는 일부러 입에서 한번 굴렸다. 연극부도 아니고, 이번이 처음 무대인데도 그런 연기를 했다는 건가. 굉장하면서도, 이질감이 드는 재능이다.


 “내 시나리오를 많이 손봤더군.”


 “네, 뭐 이것저것...”


 찔리는 구석이 있어 토모에의 말끝이 흐려졌다. 최대한 이것저것 넣고 싶어 하는 세타 선배의 성향으로 시나리오를 대놓고 고친 구석이 많았다. 


 “이야기를 저희 멋대로 바꿔서, 죄송합니다.”


 반성을 표하는 의미에서, 토모에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나 이내 남자는 손사래를 강하게 저었다. 남자의 주름살이 조금 더 보기 좋게 깊어졌다. 


 “아냐, 아냐.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도 없어. 난 재밌었으이.”


 그냥 예의상 건네는 빈 말이 아닌, 순도 높은 진심이었다. 


 “마지막이 인상적이었어.”


 남자는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연극을 그려낸다. 그 작업은 익숙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어려움을 가뜩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을 할 때는 언제나 즐겁다. 


 “줄리엣은 백작의 칼로 자결을 했어야 하는데, 바뀐 이야기는 백작에게 조금 더 여지를 주는 결말이 되었구나.”


 백작에게 좀 더 처연한 이야기가 됐어야 했지만, 이렇게 셋 다 꼬이는 이야기도 제법 나쁘지 않다. 좋은 에너지로 이뤄낸, 새로운 방향성을 얻은 느낌이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으셨다니, 다행이네요.”


 토모에의 입술에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 나왔다. 이번 연극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바꾼 장면이라, 걱정을 제법 한 터였다. 원래대로라면 원 시나리오대로 갔겠지만, 치사토 선배 혼자서 장면 자체를 바꿔버렸으니까. 


 “그거.”


 토모에의 반응에 남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가 이런 상황에 대해 꽉 막힌 인상으로 보인 모양이다. 


 “시라사기 군의 애드리브인가?”


 그래서일까, 남자는 토모에를 조금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외마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자, 토모에는 그것 또한 멋쩍어 볼을 살짝 긁적였다. 설마하니 그것까지 눈치 챘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네.”


 여기선 조금 더 솔직히 답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토모에는 그렇게 말했다. 남자 또한 토모에의 답을 예상한 듯, 눈을 곱게 접었다. 그의 얼굴에 저물어가는 주홍 노을빛이 유리구슬처럼 굴러갔다.


 “백작.”


 남자는 토모에를 백작이라 불렀다. 순전히 이름을 몰라서 그랬겠지만, 백작이란 배역 명이 토모에에게는 유독 길게도 귓가에 남았다. 


 “백작이 시라사기 군을 줄리엣으로 만난 건, 그저 단순한 초심자의 운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의 말 또한, 깊이 더 깊이 남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부 좀 대신 전해주게. 사람 많은 곳에 계속 있었더니, 가슴이 턱 막히는군.”


 여전히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 교내를 벗어나 밖으로 걸어가려 했다.


 “세타 선배는 체육관 쪽에..”


 “또 만날 일이 있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말했다. 


 “살펴가세요.”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그녀도 다시 제 갈 길을 향했다. 아니, 제 갈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엔 조금 무리가 있으리라. 토모에는 그대로 선회해버렸다. 


 그녀는 연극부실을 지나쳐, 다시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향했다. 걸음 소리가 조금 더 빨라졌다. 뺨을 때리는 가을 저녁의 공기가 나쁘지 않다. 무대의상이 조금 거치적거리긴 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이제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마법이여, 시간을 멈춰줘.”


 바깥으로 나오자, 카스미의 목소리가 토모에를 맞이했다. 그리고 포핀파티로 인해 모인 수많은 인파들도 그녀를 맞이했다. 다시 한 번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때렸다. 


 “나쁜 사람들에게 방해받고 말아.”  


 열렬한 인파를 헤치고 그녀는 다시 체육관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쉬이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듯, 시선은 오직 무대 위로 고정된 채였다. 


 “도망치고 싶은 줄리엣.” 


 줄리엣이란 익숙한 이름에 토모에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깜짝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저 멀리 옥상위에서 어딘가 눈에 익숙한 인영이 눈에 띄었다. 긴가민가한 하나사키가와의 교복을 입은, 그러나 등까지 내려온 화려한 백색금빛을 그녀는 보았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줘.”


 토모에는 발걸음을 틀었다. 그리고는 조금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탁탁 소리가 나야 할 곳에서, 쿵쿵 하고 계속해서 소리가 났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땀방울도 한 방울,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그렇지, 맺어지는 게 맞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으니.”


 저 멀리서 합주 소리가 창을 이고 새어 들어왔다.


 “저기, 나와 함께 살아줄래?”


 그래도 꼭꼭 숨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리 허술하게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어렸을 때 숨바꼭질도 안 한 티가 확연하게 난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한 거라곤 지금까지 계속, 계속 연기밖에 없었을 테니까. 


 접근금지라고 적힌 표시 줄을 넘고, 옥상 문고리를 토모에는 손에 잡았다. 붉게 녹이 슬어버렸지만, 아직도 그럭저럭 작동하는 문고리가 요즘엔 신기하기까지 하다. 보이지 않는 반투명 유리의 먼지를 한번 닦아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검불그스름한 창만 보여줄 뿐, 그 안의 속살까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앞에 그녀가 있다. 그 생각에 토모에의 마음속에선 망설임이 일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무엇을 들어야 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 건네줄 말은 있었고, 그렇기에 우다가와 토모에란 사람은 문을 열 수밖에 없다. 


 그녀가 먼저 문을 열고 다가와준 것처럼, 그녀 또한 문을 열고 그녀에게 다가가야 했다. 



 끼익, 하고 아니면 사각, 하고. 다음 풍경인지, 다음 장인지 모를 곳으로 옥상은 그녀를 데려갔다. 


 고층 특유의 세찬 바람이 그녀를 덮쳤다. 밤이 찾아온 탓에, 서늘한 것을 넘어 싸늘하기까지 하다. 위축되지 않으려고 해도, 위축되게 하는 바람을 그녀는 정면으로 맞섰다. 옥상 위에선 더 이상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만, 옥상 저 끝에 보이는 인영 하나가 그녀의 눈에 확 들어왔다.


 “치사토 선배!”


 줄리엣이 아닌, 시라사기 치사토란 이름으로, 마침내 토모에는 그녀의 이름을 제 입에 담았다. 


 어느덧 계절은 겨울이었다. 


 - 


 30편으로 끝내기 각 보는 중.


 너무 늘어졌고, 너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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