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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강연 듣는 중 심심해서 쓴 글 1

ㅇㅇ(175.112) 2019.12.01 04:27:48
조회 336 추천 14 댓글 2
														

나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가 있다. 갓난아기 때부터, 정확히는 같은 병원에서 정말 희소한 확률로 같은 시간에 동시에 태어났다. 그 정도로 우린 오래된 사이이다. 더구나 옆집이다 보니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고, 심지어 현재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질기다 못해 질긴 인연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레쨩~!"

뒤에서 맑고 높은 목소리가 들리며 자연스레 내 발걸음이 멈췄다. 평소에 지겹도록 들은 이 목소리. 그만 듣고 싶을 정도로 지겨운 이 목소리. 항상 눈치 안 보고 남들 다 있는 데에서 크게 부르는 이 목소리. 하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은 이 목소리. '시노부야 하나', 내 소꿉친구의 목소리이다.

"정말~ 발걸음이 너무 빠르다구~!"

내게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나의 발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그다음 재빨리 내곁으로 오더니, 옆에 빨판상어가 고래에게 달라붙듯이 착 달라붙었다. 말이 착 달라붙었다지, 나란히 걷는 우리 둘 사이에는 주먹만한 조그마한 공간이 있다. 너무 붙어있는 것 같지만, 매일 이렇게 있다 보니 익숙해져서 아무 느낌이 없다.

그런 식으로 우린 평소처럼 나란히 걸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내 옆에서 나란히 걷는 하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말이 없었다. 평소의 하나였으면 오늘 머리 상태는 어땠느냐든지, 달고 온 리본을 가리키며 어떠냐는지, 옆에서 숨 쉴 틈 없이 재잘거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런 말이 없다. 마치 옆에 아무도 없듯이 조용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서 옆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하나는 양 볼을 부풀리며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며 걷기만 했다. 설마 했는데, 역시 삐졌구나. 아니, 확실히 삐졌다.

하나는 삐질 때 양 볼을 부풀리는 버릇이 있다. 처음에는 이 모습이 귀여웠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귀엽기보단 짜증이 앞섰다. 솔직히 고등학생이 아직도 어린애가 할 법한 행동을 하는데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딨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이 어린애를 어떻게 해야 기분이 풀릴까. 그것이 문제다. 아니, 혹시 내가 먼저 빨리 간 것 때문에 그런 걸까? 그렇지 않는 이상 삐진 이유를 모르겠다.

곰곰히 하나가 삐진 이유를 생각하며 슬쩍 하나를 봤다. 양 볼을 부풀린 하나의 머리 위에 나뭇잎 하나가 얹어져 있었다. 그것이 거슬렸던 나는 하나를 불러 세웠다. 내 부름에 히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전히 양 볼을 부풀린 채로.

내쪽으로 돌아보면서 아무런 말 없이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쳐다보는 모습을 보니 떼 주지 말까 싶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떼 줘야 할 것 같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하나 머리 위에 손을 가져갔다.

"에, 에엣."

반쯤 감던 하나의 눈이 보름달이 뜬 것 같이 커졌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놀란 듯이 미세하게 떨리는 하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보였다. 놀라기는.

나는 하나 머리 위에 얹어있던 나뭇잎을 으스러지지 않게 가볍게 집어들고는 허공에 살며시 던졌다.

"나뭇잎이 있길래."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하기라도 했는지, 하나의 눈썹 끝이 가라앉았다. 이것은 실망했다는 뜻이다. 실망을 했다는 것은 기대를 했다는 뜻인데, 대체 무슨 기대를 했길래 이렇게 실망하는 걸까. 아무리 소꿉친구 사이라도 이건 잘 모르겠다.

결국 하나의 볼은 조금 전보다 한층 더 부풀려졌다. 복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말 귀찮게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그와중에 하나는 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이것은 쓰다듬어 달라는 뜻이다. 하......귀찮단 말이지. 그래도 쓰다듬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에게만 삐딱하거나 건성하게 말한다든가, 볼 때마다 흥이라며 자리를 피한다든가, 이렇게 같이 등교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볼을 부풀리기만 한다든가...... 여러 모로 지금보다 더 귀찮아진다.

하......귀찮군. 그래도, 싫지가 않았다.

나는 하나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쉰 다음, 정면을 바라본 채로 손만 하나의 머리 위에 살며시 올렸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머리가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들보들한 카펫을 쓰다듬는 것 같이 부드러운 하나의 머릿결이 손바닥을 부드럽게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이 느낌, 이상하게 싫지가 않다. 막상 쓰다듬기 전까지는 귀찮은데, 막상 쓰다듬으면 부드러운 머릿결 탓에 계속 쓰다듬게 된다.

무엇보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 평온한 듯이 약간 풀어진 표정. 기분 좋은지 약간 올라간 미. 조금은 부끄러운지 조금 붉게 물든 두 볼. 이런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보는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분명 이 모습을 10년 넘게 봤는데, 이상하게 이것만큼은 질리지가 않다.

고등학생이나 돼서 이런 걸 좋아하다니, 몸만 다 컸지 머리는 아직 덜 큰 것 같다. 아, 몸도 덜컸지 참.



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교실로 이동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와 하나는 같은 반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이후로 지난 4년 동안 희소한 확률을 뚫고 쭉 같은 반이었다. 이제 슬슬 떨어질 때도 됐는데, 이제야 떨어지니 뭔가 홀가분하면서도 걱정이 밀려왔다. 그 덜렁이가 과연 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정말 귀찮다니깐, 그 녀석은.

나는 또다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마지막까지 하나가 교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겠지? 하나.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하나와 같이 밥을 먹기 위해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놓고 교실 안에서 하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하나는 오지 않았다. 보통은 기다릴 틈도 없이 점심시간 끝나자마자 하나가 우리 반까지 달려왔다. 뭔가 이상하다.

결국 마음속에 잠든 불안한 낌새에 인내심이 억눌리고 말만 나는 도시락을 들고 하나의 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의 반에 다다를 때쯤, 반 앞에서 도시락을 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보다 더 작아서 아담한 관작 안에 잘만 들어갈 것 같이 자그마한 키. 어깨선에 닿일 정도로 짧은 머리카락. 마치 순한 양을 연상하듯이 약간 쳐진 눈매가 순하게 생겼으면서도 왜인지 얍삽해 보였다. 교내에서 제일 귀엽기로 인기 많다고 소문 난, '토리야마 사키'다. 저런 애가 인기가 많다니...믿겨지지가 않다.

저런 애가, 지금 하나랑 반 앞에서 즐겁게 웃음꽃을 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 속에서 지렁이 한 마리가 꿀틀거리듯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주전자를 끓이듯이 속이 들끓고 있다.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상한 감정에 멍하니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는 내가 온 줄도 몰랐는지 계속 저녀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몇 분이 지난 후에야 하나는 나를 봤고, 봐서는 안 되는 장면을 들킨 사람처럼 입과 두 눈을 크게 뜨며 경직된 상태로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짧게 저녀석이랑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레쨩~!"이라며 내게 달려왔다.

이상하게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길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러지... 어제 너무 무리하게 공부를 한 모양이다.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오래 기다렸어?"

도시락을 들고 달려온 하나는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맑고 순수한 물처럼 비춰지는 하늘색 눈동자를 조금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상 감정이 나뭇잎을 밟듯이 사그라들었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정말 어제 너무 무리한 것 같다. 이런 감정,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것 같다.

"레...쨩...?"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는 내게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차.

"아, 미안. 어제 너무 무리했나 봐."

"정말~! 그러니까 내가 적당히 하랬지?"

또다시 양 볼을 부풀리며 눈총을 쏘는 하나. 평소 같았으면 그 모습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조금 전보다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이, 이상하다...

"미안."

나는 도시락을 잡던 한 손으로 뒷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빨리 가자, 이러다 점심 못 먹겠어~!"

하나는 뒷목을 쓰다듬던 내 손을 붙잡고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나는 "잠깐!"이라고 외칠 틈도 없이 하나에게 끌려갔다.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자연스레 고개가 그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그곳에 도시락을 든 채로 가만히 이곳을 응시하는 그 자식이 서 있었다. 하나가 나를 빠른 속도로 끌고 가면서 자세히는 보지 못 했지만, 이쪽을 쳐다보며 입고리를 올린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저 미소가 내 분노를 자아냈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하나의 온기가 그 분노를 억눌렀다.

기억해두겠어, '토리야마 사키'.

나는 점점 멀어지는 그 자식의 형태를 바라보며 각인했다.



#
제목 그대로 강연 중에 심심해서 쓴 걸 이제야 올림. 그러다 보니까 제목 생각을 못 함. 제목 뭐로 짓지...


주인공 이름 : 미사키 레이
주인공 소꿉친구 이름 : 시노부야 하나
소꿉친구랑 얘기하던 애 이름 : 토리야마 사키


뭔가 다음 화가 더 있는 것 같이 썼는데 더 있는 거 맞음.

언제 쓸진 모르겠지만 많이 부족한 똥손이 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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