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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아가씨를 위해서앱에서 작성

Rumi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15 18:16:30
조회 739 추천 17 댓글 4
														

세차게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져 얼굴을 어루만진다. 부드럽지만 차가운 손길에, 눈이 떠진다. 눈을 뜨니 하늘에서 빗줄기가 떨어지는 게 보인다. 잔해들과 같이 널브러져 있어 일어나려 몸을 세우려 힘을 주지만, 손가락만 움직이는 게 고작이다. 시간이 지나며 몸이 각성한다. 통증이 몰려온다. 몸 여기저기가 삐걱댄다. 배에는 큰 구멍 하나가 나 있다. 샷건이라도 한 대 맞은 듯싶다. 울컥거리며 나오는 피를 손으로 받으려 팔을 들어올린다. 흉터로 가득한 팔뚝이 보인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아가씨는 무사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를 미끼로, 아가씨는 무사히 피신했다고 하니, 다행이다. 부드러운 금발을 뒤로 넘기며 아름답게 웃는 그녀가, 나를 거둬준 것에 대해선 감사하다. 그 고마움을 이렇게 갚았다고 생각하니, 큰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다. 이제야 갈 수 있겠다. 조용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린다. 눈을 감자 주마등이 스쳐지나간다.

-

“자, 튼튼한 노예가 쌉니다!”

뒷골목에서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노예시장. 그 곳이 내 기억의 시작이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정신차려보니 그 곳에서 시작됐을 뿐이다. 언제나처럼 상품으로 팔리지 않아 구타를 당하고 모질게 구박받던 어느 날, 그 분은 내 앞에 나타나셨다. 아름다운 금발을 찰랑이며 나타나서는, 한 눈에 나를 고르더니, 바로 대려가 하녀로 고용됐다. 지금 생각해봐도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다. 여하튼,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실수는 잦았고, 그럴 때 마다 맞으며 자라왔던 나는 몸을 움츠리고 충격에 대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따듯한 위로였다. 처음이니,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말이 얼마나 부드럽던지. 그 날 이후로 이 자그마한 나이차 많은 꼬마 아가씨를 지키겠다고. 그 누구도 이 착한 소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 다짐하며 살았다. 허나 처음부터 누가 경호를 맡기겠는가.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가, 개인 시간이 주어졌을 때,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며 더 나은 하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 때 글도 읽지 못하는 내게 글을 가르쳐준 것은 하녀장이었다. 인자하신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게 생겼으나, 속은 누구보다 따듯한 사람이었다. 글도 쓰고 읽기를 병행,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내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10년 후, 아름답게 성장한 그녀와 함께, 하녀장이 늙어 은퇴할 때가 되어, 공석이 된 자리를 그녀의 추천으로, 최연소로 하녀장이 되었다. 우수해 모두를 통솔하고 경호 또한 완벽해 주인님의 눈에 들었고, 아가씨의 직속 경호원이 되었다. 크나큰 영광이었다. 허나 내가 팔려온 집안은 평범하다면 좋겠지만, 평범한진 않은, 약간은 더러운 뒷세계와 관련된 집안이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집안 말이다. 그리고 내가 하녀장으로 취임된 지 3년쯤 지났을까. 주인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적대세력의 암살인지, 혹은 자연사인지 모른다. 단지 그가 없어지고 나서 아가씨가 몹시 슬퍼하셨다는 것 외에는. 주인님이 돌아가시고 적대세력의 공격이 시작됐다. 처음은 약간씩 간만 보는 느낌이었다면, 점점 도를 지나치는 행위를 하며 다가왔다. 구역을 뺏고, 조직원을 해하며, 스파이를 심고, 동맹을 권유한다. 그렇게는 안 된다. 주인님과 아가씨가 얼마나 열심히 일궈놓은 사업인가. 아가씨를 도와 열심히 적대세력을 잡고, 또 밀어냈다. 아슬아슬하게 죽지 않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저택에 침입한 괴한과 싸우다, 심어놓은 폭탄의 폭발에 휘말려 비참하게 누워있는 것이다.

-

쏴아아- 아직 죽지 않았나 보다. 감았던 눈이 다시금 떠진다. 아아, 어릴 적부터 지켰던, 소중히 했던 내 자그마한 보물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이런 큰 행운을 내 손으로 만들고 유유히 사라질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일하는데 방해되어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눈을 찌른다. 하, 이렇게 갈 줄 알았다면, 한 번쯤은 아가씨의 말을 듣고 기를 법도 했을텐데. 아가씨가 환히 웃어줄 그 모습이 상상된다. 내리는 비 때문에 몸이 빠르게 식는다. 숨이 점점 쉬기 힘들어진다. 멀어져 가려는 의식 속에,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달려오다 근처에 멈추고는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 후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굴까. 만일 적대세력 놈들이라면, 아가씨를 찾으러 온 것일까. 끈질긴 놈들이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목소리는,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벨! 벨! 괜찮아? 벨! 피! 심각하게 다쳤네. 어서, 어서 병원으로 가자!”

황급히 달려와 내 곁에 무릎 꿇은 후 어찌할 줄 몰라 서두르는 그녀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려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오신 겁니까...? 안전한 곳에 계시라 하지 않았습니까...지금 여기는 위험합니다...어서...피하십시오...”
“안 가! 벨을 두고는 안 갈 거야! 가자, 가자, 벨. 어서!”

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하하, 뭐라도 된 양 기분이 좋다. 난 아가씨에게 이정도의 사람이었구나. 어깨가 으쓱해진다.

“아뇨, 아가씨...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쿨럭! 컥! 하아...그냥, 떠나십시오, 그저 일하는 사람중 하나가  죽었다고, 간단히 넘기십시오...”
“어떻게, 어떻게 그래? 난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그동안 함께 살아 왔잖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쭉! 계속! 그런데 떠나겠다고? 안 돼, 못 해!"
“하하, 어릴 적, 떼 쓰던, 그 모습, 그대로시네요. 그래도 이미 늦었습니다...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말을 마치고 머리에 얹어놨던 손을 아래로 내려 볼을 쓰다듬는다.

“후후, 작디작던 아가씨가, 이렇게 크,다니, 제가 다 기쁩,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 금발, 아름다운, 금발...황금과도 같은...”

아, 힘이 빠진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들리던 빗소리도 희미하게 들린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말을 꺼낸다.

“그동안, 아가씨를...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 습, 니다...”

이 말을 꺼내고, 눈을 조용히 감는다. 몸에 힘이 빠진다. 볼을 쓰다듬던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아가씨의 표정은 너무나 슬퍼 보였다. 아아,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마세요, 아가씨. 제가 쉽사리 가지 못하게 만드시렵니까. 아아, 아가씨. 다음 생에도 그대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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