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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크리스마스) 러브 픽션 어드벤처 - 5

모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3 19: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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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픽션 어드벤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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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6)


릴리가 모처럼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일의 점심은 그녀가 출근하고 난 후 수진 혼자 먹거나 아니면 두 사람 다 밖에서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그녀가 주방에 서있다는 것은 즉,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릴리는 카페를 그만두었다.


원치않게 시한부 비슷한 몸이 된 그녀는 남은 시간을 수진과 함께 있는데 쓰기로 했다. 뭐 원해서 시한부가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어떻게 세계 이동까지 했으면 더한 기적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빵 같은 걸로 괜찮은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수진은 된장찌개로 숟가락을 움직였다. 릴리는 세상에서 제일 거짓말을 못하는 거짓말쟁이를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바라볼 뿐이었다.


"안 먹어요?"


수진이 어정쩡하게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걸요."


본다고 배가 차지는 않는데요. 수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다가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늘 저녁엔 포옹하는 연습을 하죠."


"예?"


딱 둘 밖에 없는 조용한 집안에서 수진은 꼭 못 들은 사람처럼 되물었다.


"침대에선 잘했으면서."


쿨럭쿨럭. 수진은 헤엄치다 물이라도 마신 것처럼 콜록거렸다. 당연히 얼굴은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릴리! 제발-"


거기까지 말하다 수진은 릴리와 눈이 마주치곤 목소리를 낮췄다.


"-제발 오해 살만한 발언은 하지 말죠... 옆집에서 들을까봐 겁나네요."


사실일 뿐인 걸요. 릴리는 웃으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다녀올게요."


현관 앞에 서있는 수진을 보면서 릴리는 낯선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면 출근하는 그녀를 수진이 배웅하는 일은 있었지만 자신이 수진을 배웅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릴리는 괜히 손을 뻗어 수진의 옷깃을 매만졌다.


"잘 듣고 오세요, 졸지 말고. 뭐 빠뜨리신 건 없는 거죠?"


"릴리."


수진의 낮은 목소리가 릴리의 귀를 울렸다. 신발까지 더해져 훌쩍 커버린 수진의 키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올려야 했다.


"엄마 같아요."


이 사람이 진짜. 릴리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화사한 미소를 날리며 수진의 정강이를 찼다. 아프지 않을 만큼만.


"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출발하세요. 지각하겠어요."


늦긴 늦었는지 수진은 불평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잘 다녀와요."


릴리는 인사를 마치고도 문 앞까지 나와서 작아지는 수진의 등을 바라보았다.


"기다릴게요."


벌써 수 미터 앞으로 떨어진 수진의 귀에 릴리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리고 차라리 그게 나을 지도 몰랐다. 몇 시간 뒤에 그 말은 거짓이 되었으니까.



******



릴리는 또다시 보라색 시트 위에서 눈을 떴다. 이제는 놀랍지 않았다. 그저 빨리 돌아가고 싶을 뿐. 그녀는 이번엔 삼촌의 안부도 확인할 겸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릴리, 얼마만이냐."


"잘 지내셨어요?"


"그럼. 네가 없으니까 남자 손님이 반으로 줄더구나."


그가 껄껄 웃었다. 삼촌의 모습은 릴리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똑같았다. 카페도 그녀가 없는 동안 별 문제 없이 잘 돌아간 모양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올 수가 없었어요."


릴리의 말에 그는 찻잔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꼭 어린 자신을 돌봐주던 때처럼 그의 눈빛은 따뜻했다.


"무슨 일 있었니?"


까칠한 수염과 다부진 체격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그에게라면 조언을 구해봐도 되지 않을까. 릴리의 가슴은 희미한 기대를 품었다.



영업이 끝난 카페에서 릴리는 삼촌과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저는 다른 세계에 가서도 자꾸만 이곳의 꿈을 꾸고 있어요."


릴리가 말했다. 이미 그녀가 겪었던 세계 이동의 경험담을 듣고 난 후라 그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꼭두각시란다. 이곳에 묶여 있다는 말이지."


그가 실이 달린 목각인형을 움직이는 것처럼 허공에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저희들에겐 10월 이후의 삶은 없는 거예요. 슬프지 않으세요?"


그의 말이 마치 더이상 수진과 함께할 수 없다는 선고처럼 들려 릴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원형 레일을 달리는 열차는 영원히 같은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단다."


릴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삼촌에게 원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생각보다, 그의 사고 방식 자체 때문에. 그는 '만들어진'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수진을 만나기 전의 자신처럼. 릴리는 무뚝뚝한 수진의 얼굴이 그리워졌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상한 얘기만 드려 죄송해요."


"아니다, 재밌었는 걸."


릴리가 돌아갈 채비를 하자 그가 따라 일어섰다.


"그렇지만 아쉽구나. 그 수진과 만날 수 있었다면 남자들끼리 술이라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후후. 릴리는 빨갛게 볼이 물든 수진을 떠올리며 웃었다.


"삼촌, 수진은 여자예요."


그녀의 손이 유리문을 밀었다.



******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릴리는 침대 위에 올랐다. 저번과는 다르게 접속 시간이 길어져 제 집에서 밤까지 맞이한 상황. 그녀는 이전에 이곳으로 말려들어왔을 때를 떠올려 우선 잠에 들기로 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수진이 곁에 있는 것이다. 릴리는 그렇게 되길 빌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로 덮인 새까만 세계. 하지만 그것은 눈을 떠도 같았다. 릴리는 쏟아져 들어오는 그리운 냄새를 맡으며 어슴푸레한 방 안을 눈으로 훑었다. 수진은 일인용 소파에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수진..."


릴리는 손등으로 수진의 볼을 쓸었다. 습관처럼 구겨지는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그녀는 수진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릴리...어디 갔다왔어요."


수진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없었어요?"


"저 없을 때 나갔잖아요. 말도 없이 새벽까지 안 들어오면 어떡해요."


걱정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수진의 얼굴은 릴리가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기뻐할 수 없었다.


"정말 제가 없었다고요? 잠들어 있던 게 아니고요?"


"릴리, 괜찮아요?"


동요하는 릴리를 보며 수진도 불안에 젖어갔다. 그녀는 처음보는 릴리의 모습에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깨어 있었다.


"수진...나는 외출했던 게 아니에요."

"원래 세계로 돌아갔던 거예요."


릴리의 말을 끝으로 방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불을 켜지 않아 서로의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릴리에겐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울 것 같은 제 얼굴을 감쌌다.


"...돌아갈 수 있게 된 거예요?"


한참만에 수진은 말문을 열었다.


"그건 아니에요. 그냥...모르겠어요, 아마도 제 생각엔 제가 게임 속의 중요 인물이니까 자꾸 저를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되돌려놓기 위해서."


릴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마구 꺼내놓았다. 수진은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자꾸만 여기 있는 제가 불안정해 지고 있어요...저번에도-"


"아."


어두운 방에 수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 게임 구동됐을 때. 그때도 그랬어요?"


수진의 목소리엔 약간 날이 서 있었다. 릴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말 안 했어요."


성큼성큼 다가온 수진 때문에 릴리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화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릴리 앞에서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던 수진은 지금 그 릴리 때문에 분노했다.


"또 나한테 뭘 숨겼어요."


수진이 릴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욱씬대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지금 릴리가 할 것은 놔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미안해요, 수진."


"다음 달이 되면 나는 당신 곁에 없을 것 같아요."


수진은 그대로 무너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놓으면 날아갈 듯 끝까지 손목을 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비는 것 같아서 릴리는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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