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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크리스마스) 러브 픽션 어드벤처 - 6 (END)

모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4 18:49:02
조회 200 추천 14 댓글 1
														

러브 픽션 어드벤처 6


이전화 (5)

다음화 (???)


"이거 도저히 다는 못 먹겠는데요."


수진은 눈앞에 차려진 진수성찬 앞에서 살짝 주눅들어 있었다.


"괜찮아요,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요."


릴리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전부 릴리가 자신을 위해서 손수 만든 것. 수진은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수저를 들었다.


"맛있네요."


그래요? 라고 되물으며 릴리가 수줍게 웃었다.


"네, 요리사가 누군지 참..."


'릴리가 해줘서 그런가 봐요.' 수진은 도저히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목 끝까진 올라왔었는데.


"당신 애인이요."


덜컹. 수진은 튀어나가려는 심장을 붙잡았다. 어떻게 저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까. 가슴 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끼며 수진은 젓가락을 고쳐 잡았다.



릴리가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솔직한 수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놓고 버킷리스트를 들이미는 그녀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에 착실하게 어울리는 것 뿐이었다. 하다못해 릴리는 항상 자신의 기분을 표현해줬지만 수진은 그것조차 서툴렀다.


'릴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것은 수진의 소원이며 고민거리였다.



******



'크리스마스 파티 하기.'


릴리의 리스트 한구석을 차지한 문장이었다. 릴리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억만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 지도 모르지만. 간단하게라도 괜찮다면 해보자고 수진이 제안한 게 두어 시간 전이었다.


"이것 좀 보세요."


릴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어도 빨리 갈 수가 없는 데요. 수진은 쇼핑백과 장바구니로 가득 찬 양손에 힘을 주며 걸었다. 안 파는 게 뭘까 싶은 잡화점 앞에서 릴리는 머리 위에 털모자를 얹어 보고 있었다.


"어때요?"


밝은 오렌지빛 머리카락 위로 커피색 털모자를 쓰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는 흰 피부 탓일까 수진에게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예뻐요. 천사 같아요.


"괜찮은데요?"


수진이 말했다. 모자를 내려놓고 또 저만치 앞으로 걸어나가는 릴리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지만 수진의 기분은 제 손의 짐처럼 무거웠다. 자신은 안되는 걸까. 그녀처럼은.


'안되지 안 돼, 오늘은 크리스마스야.'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면서 수진은 다시 릴리를 쫓았다. 두 사람이 집으로 향한 건 릴리의 손에 작은 케이크 상자가 들리고 나서였다.



******



시즌이 아니라며 팔지를 않아서 꽤 발품을 팔아 구한 트리를 두 사람이 장식하고 있었다. 주거 공간의 문제도 있고 하니 크기는 작았지만 그래도 장식용 전구까지 연결해 놓고나니 제법 분위기가 살았다.


"예쁘네요."


"그러게요."


수진은 트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릴리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밥 먹어요."


좋죠. 주방으로 걸어가며 수진이 대답했다. 그녀는 좌식 테이블을 꺼내 트리 옆에 펼쳐놓고 케이크를 필두로 한 음식 몇 가지를 차례차례 올려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릴리는 조용히 식전 인사를 올리고는 테이블을 빙 돌아왔다. 수진이 앉아있는 곳까지.


"...뭐예요?"


"크리스마스잖아요."


대답이 안되는 이유를 내놓으면서 그녀는 수진의 옆에 앉았다. 수진은 그냥 맞은편에 있던 수저와 식기를 그녀의 앞에 옮겨줄 뿐이었다. 릴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포크를 집어 케이크 위의 딸기를 찌르며 말했다.


"수진은 상냥하네요."


수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아니니까. 상냥한 건 언제나 무뚝뚝한 자신에게 제 마음을 표현해주는 릴리니까. 그 마음을 알리고 싶어서 수진은 용기를 냈다.


"상냥한 건...릴리예요."


나를 그렇게 생각했군요, 고마워요. 릴리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나는 릴리처럼은 못 될 거예요."


"왜 나처럼 되려고 해요?"


릴리가 물었다.


"그건..."


수진은 릴리와 함께한 날들을 떠올렸다. 제 옆에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날들을.


"나처럼 행복하게 해주고 싶으니까."


숨을 내쉬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수진의 목소리는 릴리의 귀에도 가닿았다. 그녀가 바라보는 수진의 모습은 어쩐지 점점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수진의 엄지손가락이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쓸었다.


"수진에겐 수진만의 방식이 있잖아요."


눈물을 닦는 수진의 손등 위로 릴리가 제 손을 겹쳤다.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수진은 조금 더 뺨이 젖어있는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다.


"저도 당신과 있어서 행복해요."


수진은 그대로 릴리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쳤다. 젖은 뺨이 맞닿고 그녀가 제 옷깃을 그러쥐는 소음들 사이에서 수진은 언뜻 릴리의 웃음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



할로윈이라며 삼삼오오 떠들썩한 세계에서 수진과 릴리는 무인도에라도 갇힌 듯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나가지 않았다. 이것은 이른바 '찰떡 작전'으로 릴리가 이 세계에 와 단 한입을 먹고 '식감이 이상해요.' 라며 내팽개친 음식의 이름을 따온 녀석이었다. 큭큭. 수진은 그때 일이 떠올라 혼자 키득거렸다.


"왜 그래요?"


"아...예뻐서요, 릴리가..."


"후후. 얼굴 터지겠는데요?"


릴리가 수진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안 해봤는데. 하지만 이제 수진에게 뒤는 없는 것이다.


"오늘은 종일 집에 있을 거예요."


릴리가 입을 열었다.


"네, 그런 작전이었죠. 뭐 하실래요?"


"저번에 못했던 포옹하는 연습?"


릴리와 눈이 마주친 수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농담 말고요."


"농담 아닌데..."


릴리가 배시시 웃었다.


하, 참. 수진은 성큼성큼 걸어가 릴리를 꽉 끌어안았다. 꼬물꼬물 움직여 두 팔을 꺼낸 릴리도 그녀에게 화답하듯 목에 팔을 둘렀다.


"아무한테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디가서든..."


"수진이 아니면 안 해요."


릴리가 품 속에서 대답했다. 그녀는 꼭 청진기라도 대는 것처럼 수진의 가슴께에 귀를 붙였다. 생의 증거라도 찾으려는 듯이. 수진은 그런 릴리의 머리를 쓰다듬다 손을 미끄러뜨려 뒷목을 건드리며 장난쳤다. 간지러움에 릴리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그녀의 가슴에서 울렸다.


"릴리."


고동색 눈동자가 릴리의 얼굴을 한가득 담았다.


"키-"


"질문하지 마세요."


수진을 비추던 보라빛 눈이 살포시 감겼다. 릴리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는 간다. 두 사람은 그것을 몸소 체험했다. 어둑어둑한 창문을 배경으로 릴리는 꼬깃꼬깃해진 버킷리스트를 보고 있었다. 이제 더 남은 것도 없는 저 리스트 때문에 10월의 절반은 얼마나 바빴던가. 내일부터 쓸쓸해질 것을 생각하니 수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게 되었다.


"이리 와요."


릴리가 손으로 침대를 두드렸다. 이제 수진은 익숙하게 그 위로 올라가 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같이 잘 걸.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 걸. 매일매일 수진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후회는 결국 늦어서 후회였다.


죽는 것도 아니니 울지 말자던 릴리는 제 말을 착실히 지키고 있었다. 수진이 아는 그녀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어서 지켜보는 수진의 눈가가 더 쓰라렸다.


"오늘은 좀 춥네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릴리가 말했다. 수진은 이불 밑으로 팔을 넣어 그녀를 감쌌다.


"왜 내 이름을 '릴리'라고 지었어요?"


뜬금없는 질문이 수진에게 날아왔다. 하얗고 예뻤으니까. 꽃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으니까. 수진이 대답했다.


"릴리의 꽃말은 변함없는 사랑이래요."


왜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걸까. 이제 더 변할 시간도 없는데. 수진은 시린 눈을 세게 감았다. 어둠의 세계 속에서 듣는 릴리의 호흡은 점점 깊고 느리게 변해가고 있었다.


"수진..."


잠에 취한 목소리가 수진을 불렀다. 제 이름을 부르는 릴리의 목소리는 이럴 때까지 아름다워서 자신을 괴롭혔다.


"왜..말이 없어요..."


릴리는 그냥 졸린 것이다. 숨이 멎는 게 아니라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깨어나는 곳이 여기가 아닐 뿐. 수진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잘 자요."


눈을 감은 릴리는 이제 그녀의 인사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떨리는 입술을 틀어막은 수진의 손등 위로 굵은 물방울들이 떨어져 길을 만들었다. 이제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수진은 그녀의 곁에서 오열했다.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릴리."


언젠가 그녀가 원했던 말을 수진은 이제와서 입에 담았다. 또, 후회. 어째서 릴리는 언제나 자신을 앞서는 걸까. 수진은 한번만이라도 그녀를 앞질러 보고 싶었다.


"사랑해요."


수진이 말했다. 마치 열두시를 알리듯 릴리의 몸이 점점 사라져갔다.


"사랑해요, 릴리."


앞지르는 수진의 고백을 릴리는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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