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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사요츠구히나] 분위기가 묘한 두 사람을 보기 힘들다. (完)

ㅇㅇ(14.53) 2019.12.25 17:58:22
조회 2356 추천 54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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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 링크











히나는 칼로 하자와 씨의 목과 어깨 사이 부분을 힘껏 내려찍었다.

찍은 칼이 바닥으로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냈고, 히나는 등 뒤에 있는 문으로 달려갔다.

등잔불이 약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도 문이 있었던 건가.

도망간 히나도 걱정됐지만 당장 목과 가까운 곳에 칼이 찍힌 하자와 씨가 위험하다.

하자와 씨는 칼이 자신의 몸에 찍히는 순간 '히끅'하고 몸을 뒤로 젖힌 채 멈춰 있었다.

빨리 구급차, 구급차.. 손이 너무 떨려서 스마트폰의 패턴을 자꾸 잘못 입력했다.

잘못 터치해서 두 세번 틀리고 나서야 스마트폰의 잠금이 풀리고, 곧바로 숫자패드에서 119를 눌렀다.






그런데 이상하다. '땡그랑?' 그렇게 힘껏 내리찍었는데, 칼이 바닥에 떨어져있다.

빛이 희미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하자와 씨의 목과 어깨부분이 멀쩡하다.

일단 그대로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하자와 씨를 자세히 보기위해 앞으로 갔다.

다리가 떨린다, 방금 그런 상황을 겪고나니 긴장이 풀려버린건가.

다가가니 발 밑에서 '찰박'소리가 났다. 하자와 씨에게 가까이 가니 하복부 부분이 젖어있었다.

.... 계속 감금당해 있다가 목에 칼이 들이밀어지고,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칼이라고 생각되는 물체가 자신의 몸을 찍으니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칼로 내리찍히는 순간 아마 기절하면서 실금한거라고 생각한다.

하자와 씨의 몸에는 피는 커녕 눈에 보이는 외상도 없었다. 그럼 그 칼은 도대체 뭐지.

히나가 들고있었던 칼을 잡고 들어보니 빛을 받는 칼날 부분이 조잡해보였다.

설마, 그대로 손가락으로 칼날의 윗부분을 누르니 쑤욱하고 손잡이 안 쪽으로 들어가버렸다.

아, 칼날을 누르면 그대로 안쪽으로 들어가는 장난감이었구나. 안심했다.

동시에 히나가 걱정됐다. 너는 우리들을 협박했지만 결국 실제로 해칠 생각은 없었던거구나.

그렇게 이성적이었던 아이가 여기까지 몰려버린건 내 책임이겠지. 너는 어디로 간 걸까.






하자와 씨를 빨리 집으로 데려가야해. 그대로 데려갈 수 없으니 하자와 씨의 하의를 벗기고 내가 입고 온 롱코트로 하자와 씨를 감쌌다.

건물에서 나와 택시를 불렀더니 똑같은 기사님이 오셨다. 시계를 보니 1시간 남짓 지나있었다.

체감상 날을 새버린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짧은시간이었다니.

기사님은 시간이 지나면 경찰을 불러달라고해서 혹시 무슨 범죄에 휘말린건 아닌지 걱정하셨다고한다.

그래서 택시회사 어플에 여기 주소가 다시 찍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하지만 멀쩡한 줄 알았는데 이 추운날에 전화를 걸었던 처자는 외투를 벗고있고, 한 명은 기절해있고.

기사님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거냐고 물어보셨다.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일단 부정했다.






생각해보니 히나는 범죄를 저지른게 맞다, 엄밀히 말하면 납치, 감금, 협박을 한 거니까.

하지만 나는 히나를 책망할 생각이 없다. 동생의 상태도 알아차리지 못 한 내 잘못이야.

처음에는 하자와 씨를 감금했단 사실에 화가 났지만, 히나의 고백에 그 감정은 전부 죄책감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그 아이를 그렇게 몰아넣은거니까. 남은 처벌은 하자와 씨의 의사에 맡기기로 하자.

생각보다 빨리 사건이 끝났지만 그래도 늦은시간이다. 하자와 씨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지.

이미 혹시 경찰에 신고하신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어 연락을 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문자가 먼저 와있었다. 히나에게 학생회 업무때문에 우리 집에서 외박한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잘 부탁한다고.

히나는 여기까지 계산한건가. 산 속에 이런 장소까지 물색하고 얼마나 계획을 짠 걸까.

그리고 그 치밀한 계획의 끝은 장난감 칼이라니. 죄책감에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 눈물을 펑펑 흘리던 히나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히나가 어디갔는지 모르겠어. 전화도 당연히 받지않아.

자칫하다간 평생 히나를 못 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서 실종신고를 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히나가 실종됐다고 경찰에 전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기절했던 하자와 씨가 깨어났다.

하자와 씨는 깨어나자마자 반사적으로 엄청나게 버둥거리며 미친듯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감금당했던 공포감에 짓눌려서겠지. '하자와 씨, 진정하세요'.

하자와 씨는 바로 고개를 들려 내 얼굴을 보더니, 드디어 다행이라는 듯이 굳은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나는 하자와 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일단 씻고, 자고가라고 말했다.

내 옷을 건네받은 하자와 씨는 일단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들리는 샤워기 소리.





히나가 울면서 도망가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실종신고는 했지만 찾을 수 있을까.

이대로 평생 우리를 보지 않을 생각일까. 그 아이는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도중 하자와 씨가 목욕을 끝내고 내 잠옷을 입고 나왔다.

하자와 씨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히나의 처벌을 원한다면 하자와 씨가 원하는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하자와 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컨테이너 박스에 도착하기 전.

히나는 계속해서 '미안해, 언니. 미안해, 츠구미', '미안.. 아무도 다치지 않고 금방 끝날거야.'같은 내용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입이 막혀서 대답은 하지 못 했지만, 눈은 가려져 있지 않았다고.

히나는 계속 먼 곳을 쳐다보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는데, 처음에는 히나 선배가 미친 줄 알고 그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계속 히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 한 것처럼 하자와 씨도 감금된 영문을 모르고 있었지.

마지막 순간에 죽는 줄 알고 기절했지만, 그 전 까지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그제서야 나처럼 왜 히나가 자신을 감금했는지 알아버렸다고 한다.

그 이유에 너무 놀라서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것도 잊어버린채 반사적으로 히나를 바라봤다고.

하자와 씨도 나와 비슷한 성격이다. 결국 잘못 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히나 선배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 히나 선배를 몰아넣은 자신이 잘못이라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니에요, 하자와 씨. 제 잘못이에요. 언니면서 그 긴 시간동안 히나의 마음도 모르고 있었어요.'

하자와 씨는 울면서 나를 꽉 안으며 잠이 들었다. 지쳤겠지. 나도 긴장이 풀려서 함께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바로 경찰이 히나를 찾기 시작했다. 하자와 씨도 처벌을 원하지 않았으니, 그냥 가출한 것 같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히나가 사람을 감금했다가 도망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하자와 씨와의 관계도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둘이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울던 히나가 생각나서 행동에 제약이 걸려버린다.

그건 하자와 씨도 마찬가지였을까, 하자와 씨도 뭔가 생각나는듯이 머뭇거렸다.

하자와 씨는 금방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에는 칼이나 검은색 막대기만 보면 표정을 굳히며 멈칫거렸다.

심한 건 아니었지만 순간의 머뭇거림이 내 눈에는 보였다. 몸이 다치진 않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무서웠을테지.

그때마다 하자와 씨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경찰의 수색에는 진척이 없다. 히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 정신이 아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책을 봐도 책에 히나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밥을 먹다가도 히나가 웃으면서 나눠줬던 감자튀김이 생각났다.

기타를 칠 때에도 히나랑 같이 연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깐의 아른거림 후에 항상 보이는 울던 히나의 모습.

당연히 학생회 일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린코 씨, 아리사 씨. 미안합니다. 내 업무가 전적으로 그 둘에게 몰아졌다.

하지만 그 둘은 힘든 내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금방 히나를 찾을거라며 나를 위로해줬다.





연습실에서 기타를 치려고 할 때마다 히나가 생각나서 기타 줄을 튕길 수가 없었다.

유키나 씨는 '라이브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로젤리아의 기타리스트는 너 밖에 없어, 사요.

우리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연습할거야.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돌아와.' 라며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도 도중에 기분이 나빠지면 조퇴하기 일수였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나를 잡아준건 로젤리아 멤버들과 하자와 씨.

하자와 씨는 나보다 더 심한 일을 겪었는데 괜찮아질거라고 나를 지탱해줬다.

내가 이렇게도 약한 존재였던가, 하자와 씨가 너무 강해서 제 약함이 부끄러워요.




히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고 있는걸까.

아니면 설마 자책한 히나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건, 불길한 생각이 들자 구역질이 나서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로젤리아와 하자와 씨가 없었다면 내가 먼저 어떻게 돼버렸을지도 모르겠네.






의외의 인물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어딘가에서 좀 만나자고 주소를 보내왔다.

보낸 사람은 파스텔*파레트의 멤버 치사토 씨.

가끔 히나의 라이브를 보러갔을 때 명목상의 인사밖에 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왜 연락을 했을까.

히나가 나간 이후 기타 멤버를 충원하고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리밖에 듣지 못 했다.

설마, 히나의 모습이 다시 머리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바로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택시를 타고 바로 그 주소로 향했다.


주소에 찍힌 건물은 조금 외진 곳에 떨어진 한적한 카페.

여기서 꽤나 떨어진 곳이라 택시비가 조금 많이나왔다. 그래도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요금을 내고 그 카페를 향해 달렸다. 안에는 변장을 하고있는 치사토 씨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요 씨. 오랜만에 봤는데 저번보다 많이 수척해지셨네요. 잘 못 지내셨나봐요."


"히나.. 히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신거죠? 그 아이 지금 어디에 있어요!"








바보가 아닌 이상 갑자기 나를 부른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경찰의 수색은 진전이 없었다. 편린의 단서조차도 없었다.

이렇게 못 찾는 정도라면 사실 히나가 죽어버린게 아닐까. 그 가능성이 더 큰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어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인사치레도 무시한 채 히나가 어딨냐고 버럭 소리부터 지를정도로.

그런 나의 모습에 대비되어 치사토 씨는 입가에 웃음을 없애지 않고 평정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적한 카페를 고른건 내 이런 면모까지 생각했던걸까. 쳐다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죠, 바보가 아니라면 제가 왜 사요 씨를 불렀는지 아시겠죠. 그런데 지금 히나를 만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가 달라지나요?"


"뭐가 달라지냐니, 히나는 내 동생이야! 내가 히나를 찾는데 이유가 필요해?"


"언니와 동생관계, 그런거 말고. 히나를 만나면 그 이후의 관계를 어떻게 할 지를 묻고있는거에요. 그걸 몰라서 히나가 도망친게 아닌가요?"







치사토 씨는 히나가 나한테서 도망간 것을 알고있다. 히나의 소재를 알고있다, 확실해.

히나를 이대로 만나면 어떻게 되는거냐고? 고민해봤지만 나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히나를 연인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 히나가 정말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히나가 생각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자와 씨와 헤어질 수도 없다. 나는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강하고 사려깊은 그녀는 나를 지금까지 지탱해왔으니까.

히나가 그런 일을 벌였지만 나는 히나를 원망하지 않아. 그 아이의 마음도 알아차리지 못 한 내 잘못이니까.

무슨 일이 있건 나는 히나를 포기할 수 없어. 히나가 내 오랜 혐오와 투정에도 나를 버리지 않았듯이.







"히나와 그런 관계가 될 수는 없어요, 하자와 씨와 헤어질 수도 없고.

하지만 설령 다시 만나지 못 하더라도 평생 너를 버리지 못 할거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저, 어렸을 때 히나를 많이 싫어했어요.

주변사람들이 계속 비교를 하는데, 그 열등감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히나는 끝까지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저를 계속 믿고 좋아해줬어요.

이제는 내 차례에요. 히나가 계속 달아나도 나는 절대로 못 놔줘.

지금 못 만나더라도 언젠가 돌아올거라고 믿고 계속 찾아다닐거고, 좋아할거야."







이게 지금 당장 내릴 수 있는 나의 진심. 이걸로 히나는 납득할 수 있을까.

치사토 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지금 미치도록 히나가 보고싶을 뿐이었다. 하나 뿐인 내 동생, 히나.







"저는 히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압박감, 불안함.

평소에 저도 많이 느꼈거든요. 물론 히나의 방식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히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요즘 괜찮아 보이지가 않아요.

사요 씨처럼 누군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몰래 연락한거에요."





당신도 히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적이 있는걸까. 히나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거구나.

치사토 씨도 치밀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니까 작정하고 걸리지 않은거였어.

히나가 살아있다. 그것만으로 나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고 몸의 힘이 쫙 풀려버렸다.

그녀는 나에게 히나가 어디있는지 알려줄까. 내 말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려나.

만나지 못 하더라도 내가 했던 말이라도 히나에게 전해줄까.

갑자기 치사토 씨가 일어나더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저기 옥탑방, 시골인데도 내부가 나쁘지 않더군요. 주인 분도 친절하시고.

여기는 외진 곳이라 건물도 별로 없어서 바깥 풍경도 삭막하지 않고. 해도 잘 들고.

가격은 싼데 짧게 살기에는 괜찮을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고서 치사토 씨는 씨익 웃었다. 설마.

나도 모르게 의자가 밀쳐질 정도로 급하게 일어났다. 히나가 여기에 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내버려두고 치사토 씨는 가볍게 일어나더니 곧 스케줄이 있다며 카페를 나가려고 했다.








"치사토 씨, 정말로 고맙습니다! 뭐든지 사례는 나중에 꼭!"


"어머, 혼잣말이었는데 뭐가 고맙다는건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풀리길 바랄게요."







유유히 치사토 씨는 사라졌다. 히나, 지금 만나러 갈게.

카페에서 볼 때는 상당히 가까워보였는데. 직접 달려보니까 조금 먼 거리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너를 만난다는 사실에 오히려 다리가 가벼워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지금 내 앞에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이 곳에 히나가 있다. 방금까지 가벼웠던 다리가 떨리더라.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지탱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라왔다.

거의 다 올라오니까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옥상에 칠해져있는 초록색 페인트와 누군가의 민트색 머리가 어울리더라.

너도 누군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는지 나를 쳐다봤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너도 굳어버렸고, 나도 계단을 다 올라오려다가 멈춰버렸다.








"언니.."







히나, 정말로 히나였다. 수 개월 동안 계속 너를 찾아다녔다.







네 생각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뭘 하든간에 네가 계속 떠올랐다.

너도 그랬던걸까. 저번에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수척해져보였다.

그래도 다소 그런 것빼고는 건강해보여서 안심했다.

너와 만나려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가려고 했다.

내가 한 걸음 내딛자, 평소와는 드물게 넋을 잃던 네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노려봤다.






"오지마!!"






히나가 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란 나머지 발걸음을 멈췄다.

두 세 계단만 더 올라오면 너와 같은 옥상에 설 수 있는데.





"누가 내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거야! 치사토 짱이지? 내가 알려주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어차피 이제 곧 여길 떠날텐데 어째서 언니에게..?


언니도 언니야! 내가 한 짓거리를 잊었어? 아무 잘못도 없는 츠구 짱을 납치했어!

장난감 칼이었던건 알았겠지, 근데 그게 진짜 칼이 됐을 수도 있었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언니가 내 마음을 받아줄거야?

아니잖아? 나는 두 사람만 보면 마음이 아픈데 왜 나를 찾은거야!

츠구 짱은 물론이고 언니도 이제 나한테 정나미가 떨어졌을거잖아.

친언니를 사랑하고 사람을 납치하는 이런 미치광이 동생 그냥 잊어버리면 되잖아!"




히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숨을 헉헉대면서 말했다.

자신의 분을 이기지도 못한 채로 말을 하니까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갑자기 웃음이 조금 나왔다. 여기서 웃어버리면 사람들이 미쳐버렸다고 생각할까?


볼 수 없을거라고도 생각했는데, 몇 개월만에 만난 네가 너무 반가웠다, 그냥 그게 좋았다.

컨테이너 박스에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던 네가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기뻤다.

너하고 이렇게 진실된 감정을 맞부딪힌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분노를 터트리는 네가 생각보다 건강한 것 같아서 안도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내가 갑자기 미소를 지으니까 너는 당황했다, 히나의 이런 모습은 굉장히 오랜만에 보네.

그렇게 멀었었는데, 천천히 걸어가도 네 앞에 금방 도착하더라. 그리고 네 앞에서 멈췄다.




"히나.. 미안했어, 언니면서도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있는지, 어느 것에 무서워하는지 눈치채지 못해서.

너는 내가 너를 버릴까봐 그게 두려운거구나. 결코 그런 일은 없을거야"





내가 진지하게 히나를 쏘아보자 히나는 언제 역정을 냈냐는 듯이 멈춰버렸다.





"나는 평생 너를 버리지 않을거야. 네가 더한 짓을 했어도 결국은 너를 찾았을거야.

네가 그랬잖아, 어렸을 때 계속 너를 피해다니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따라와줬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상황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야.

지금 네가 계속 피해다녀도 결국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고 따라갈거란다.

히나.. 미안했어. 네 감정을 받아주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너는 소중한 내 동생이야.

연인이고 뭐고간에 관계없이 너는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무서워해."




히나는 그 말을 듣고는 나에게 안겨서 울음을 터트렸다. 내 품에서 히나는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울었다.

'언니, 미안해.' , '도망쳐도 계속 언니 생각을 했어.' , '츠구 짱에게도 너무 미안해.' ,

'아무것도 없는 방에 계속 있어도 언니가 보고싶었어.' ,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등등..

히나는 끅끅 울면서 하고싶었던 말을 두서없이 다 말해줬다.

나는 히나의 말을 들으면서 꼭 안으며 알겠다고 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히나의 울음은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한참 울자 히나는 우는 것을 멈췄다. 히나가 고개를 드니까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빨간 눈이 보였다.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니, 먼저 치사토 씨에게 모든걸 고백했다고 한다.

아야를 사랑하면서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그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에.

치사토 씨는 히나가 했던 과감한 수단과 파스파레를 그만두는 무책임성에 화를 냈지만, 결국 히나를 이해했다고 한다.

히나는 그동안 파스파레 활동으로 모아뒀던 돈을 사용해서 옥탑방을 얻었다.

치사토를 통해서 간간히 연기무대 보조 알바를 구해서 했다.

물론 히나란걸 들키면 안 되니까 치사토가 변장하는 방법을 알려줬고, 그렇게 계속 이 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히나가 마지막으로 말을 꺼냈다.







"언니, 나 이제 곧 유학갈거야."


"유학이라니.. 히나, 갑작스럽게 그게 무슨소리야?"






옥탑방에 있으면서 치사토 씨와 같이 유학에 관련된 정보를 긁어 모았다고 했다.

계속 전교 1등을 하면서 이미 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했고, 정보를 알아내자 히나는 관련 시험을 전부 통과하고 필요한 스펙을 순식간에 쌓았다.

그렇게 준비한 결과, 한 해외 대학의 천문학과에서 OK 사인이 떨어졌다고 한다.

과연, 너는 천재니까. 히나는 이미 비행기 표도 끊고 모든 준비를 마쳤었는데,

그 도중에 치사토 씨가 나에게 히나가 있는 곳을 알려준 것이었다.

히나가 해외로 간다니,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정말 작정하고 우리를 떠날 생각이었구나.





"히나.. 나는 너를 용서했어! 하자와 씨도 너를 책망하지 않는다고, 미안하다고 했어!

네가 해외로 유학 갈 필요는 없잖아,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학교 다시 다니자. 응?"



"언니.. 꼭 두 사람이 나를 미워할까봐, 언니랑 츠구미를 보기 싫어서 가는건 아니야.

나, 너무 언니에게 의지를 많이 했으니까 이제 한 번 언니를 떠나서 살아보는 것도 경험해 보려고.

원래는 평생 외국에서 살려고 했는데... 역시 나는 언니가 없으면 안되네, 방학 때가 되면 돌아올게.

언니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걸 보여줘서 안심시켜줄게. 그러니까 기쁜 마음으로 보내줘, 언니."





히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했다. 그래도 갑자기 일을 벌였던 저번 사건때와는 달리 침착해보였다.

언니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서 안심시키겠다는데 내 욕심으로 막을 수 없었다.

자매라도 멀어지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그 순간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날 배웅해줬으면 좋겠어, 안 될까?"


"당연히 가야되는거 아니겠니. 네 뜻이 그렇다면, 내 욕심으로 너를 막을 순 없잖니. 건강히 잘 다녀와줘, 히나. 응원할테니까."





히나가 드디어 웃었다.







*






사흘 후, 약속했던 날이 다가왔다.

1시간 후면 비행기는 출발하고 나는 한 해외 대학의 천문학과에 입학하겠지.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는데, 언니는 배웅하러 와주려나? 약속했으니까 꼭 올거야.

언니는 나와의 약속을 져버리지 않으니까. 모든 것을 말끔하게 털어낸 채로 떠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언니와 만나서 덜 찝찝한 상태로 후련하게 갈 수 있어.

다만, 마음에 츠구 짱이 걸린다. 언니의 말로는 나를 책망하지 않고 미안했다고 하던데.

사실 내 아집때문에 츠구 짱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가장 심하게 나에게 휘둘렸다.

츠구 짱도 나에게는 좋은사람이었기에 심한 짓을 하고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흘러가니 나도 나를 절제할 수가 없게 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언니와 대화를 했으면 됐을텐데, 굳이 츠구 짱까지 끌어들인 꼴이었다.

나중에 꼭, 직접 용서를 빌자. 받아들여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멀리서도 언니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기가막히게 언니를 찾아낼 수 있어.

이게 자매의 감이라는 걸까. 아님 내가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 멀리서 언니의 민트색 머리가 엄청 반짝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언니만 온게 아니다, 언니 옆에 누군가가 같이 따라온다. 누굴 데려온거지, 설마...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단발의 갈색머리 소녀.

츠구 짱이 언니와 손을 잡고 나를 보면서 오고있다.

어떡하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손발이 덜덜 떨린다.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 지더니 어느샌가 내 코앞에 있었다.

죄책감에 츠구 짱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내 욕심에 휘둘리게 한게 너무 미안하니까.

지금 츠구 짱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기가 두렵다.







"히나 선배."


"....."






츠구 짱이 무거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기에 그제서야 츠구 짱의 얼굴을 본다. 뭔가가 복잡 미묘한 표정이다.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


그런데 갑자기 츠구 짱이 뒷걸음질 친다. 역시 너를 감금했던 내가 아직도 무서운걸까.

아니, 아니다. 저 표정은 무서워하는 표정이 아니고 뭔가 결의를 다진 표정이야.

츠구 짱은 계속 몇 걸음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뭔가 각오를 다지는 듯 눈을 감고 한숨을 후 하고 토해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갑자기 츠구 짱이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향해 달려왔다.

오면서 가속을 붙히더니 마지막에 왼발을 디딤발 삼아서 오른손으로 내 어깨를 엄청나게 힘을 주고 후려쳤다.


어라?

'퍼억!' 소리와 함께 엄청난 힘에 밀려서 뒤로 엎어졌다.

잠깐, 이거 어깨 빠진 것 같은데. 너무 아파서 어깨에 감각이 없다.

어깨를 때린 소리도 굉장히 컸는데, 내가 엎어지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츠구 짱은 뭔가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언니는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예 몰랐던 표정인데, 아까 침착했던 표정이랑 완전히 달라.

츠구미는 힘이 엄청나게 세구나.. 카페 일을 도와서 그런걸까. 아직도 어깨에 감각이 없다.








"저기.. 하자와 씨, 히나랑 결판을 낸다는게 이런 뜻이었나요..."


"네! 저도 많이 무서웠거든요? 제 어깨를 내리칠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언니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츠구 짱은 굉장히 의기양양했다.

나를 노려보더니, 잡고 일어나라고 나에게 손을 뻗어줬다.

나는 츠구 짱의 기세에 눌려서 반사적으로 손을 잡고 일어났다.






"츠구 짱..."


"히나 선배 마음도 모르고 속을 썩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엄청 무서웠거든요? 어깨도 아팠거든요? 그래서 후려쳐봤어요!

선배의 언니를 데려가서 미안해요. 하지만 사요 씨는 제 거에요. 포기 못 해요!"







츠구 짱이 웃으면서 언니를 포기하지 않겠노라며 말했다.

그 기세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츠구 짱은 이기지 못 하겠네... 나, 사실 츠구 짱이라 그렇게 심한 짓을 한 걸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츠구 짱이라면 이기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나에게는 언니도 있고, 츠구미도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네.. 고마워 츠구 짱.

츠구 짱이라면 안심하고 언니를 맡길 수 있어, 너 말고 다른사람은 없을거야."


"히나 선배.. 여길 떠나셔도 잘 지내셔야 해요.."





츠구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너에게 그런 짓을 했는 데도 나를 울면서 배웅해주는구나.

언니도 눈시울이 시큰해졌는지 눈가가 약간 빨개졌다.




두 사람 덕분에 나는 후련하게 떠날 수 있어.

언니와 츠구 짱을 만난 나는 행복해.

두 사람을 만난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히나, 외국에서도 밥 잘 챙겨먹고, 잠도 잘 자고..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못 버틸 것 같으면 다시 우리 집으로 와."


"언니도 참~ 동생 걱정이 너무 많네, 나 어린애 아니야! 그리고 평생 가는 것도 아니고, 방학 되면 돌아올 거야."







그렇게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왔다. 언니와 츠구 짱은 참았던 눈물을 펑펑 터트렸다.

나도 괜시리 울음이 나올 것 같지만 나는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떠나고 싶지않았다.

두 사람을 뒤로 하며 게이트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 같아.

정말로 떠나기 직전, 뒤를 돌아보며 우는 언니와 츠구 짱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다녀올게, 다들 기다리고 있어줘!"




우리 관계는 끝이 아니야.

앞으로 우리의 환한 미래를 비춰주듯, 게이트를 통과하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





뇌절 존나 씨게 했습니다

저번에 썼던 첫 소설은 2만자였음

글 못 쓰는 사람이 길게 쓰면 밑천 드러나니까

꼭 짧게 쓰자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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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엄청 뇌절이야~


납치 감금물은 일상물하고 다르니까 이걸 어케 결말을 내야하나 고민을 좀 했음


처음에는 히나랑 츠구미랑 짜고쳐서 사요를 속이는 연극을 했다는 결말로 낼까?


아님 창고에서 그냥 히나를 자살하게 할까? 츠구미도 죽이고 본인도 자살?






근데 개인적으로는 뇌절해도 해피엔딩을 좋아해서 어떻게든 노선을 틀어버렸음


내가 언제 2만자 넘는 글을 써보겠냐 덕질이라서 쓰는거지..


크리스마스에 납치감금물 완결낸 내가 레전드다


뇌절 오지게 했는데 읽어주신 분들 모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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