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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아야치사][모녀백합?] 테이크 아웃은 마루야마 아야

220.125(211.36) 2019.12.27 19:58:37
조회 1479 추천 3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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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불타고 난 자리엔 재가 남는다.

나는 사랑을 태워야 할 때, 바보라서, 어설퍼서, 비겁해서, 제대로 태우지 못했다.
그래서 재 대신 죄가 남았다.
언젠가 바람이 불면, 재는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
한 때의 추억을 싣고. 정열을 싣고.

하지만 죄는 죽을 때까지 날아가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마음에 눌러붙어, 나를 괴롭힌다.




□ □ □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흔히 힘들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부자리 속이 더 춥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바깥옷을 입고 일하면서 땀을 흘리는 쪽이 차라리 더 따뜻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침 6시. 주위는 서럽게도 어둡고 추웠지만 주방에서는 벌써부터 희미한 불빛과 소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잠을 자기는 하는 걸까, 새벽부터 커다른 마스크를 쓴 채 콩나물을 씻고 고기의 기름때를 건져내는 처량한 엄마의 모습을 보노라면 도저히 혼자 두 발 뻗고 잠에 빠져들기란 어려웠다.

"엄마... 벌써부터 일하고 있는 거야?"
"어어, 일어났어? 좀 더 자지 그랬어. 육수만 내고 아침밥 차릴테니까, 잠시 기다려줄래?"

평소 손놈들에게 '이모'라고 불리는 엄마는, 이모라고 불리기엔 너무 젊은 아가씨였다. 나랑 나란히 서 있으면 동년배ㅡ자매라고 보기엔 전혀 닮지 않았다ㅡ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예쁜 얼굴, 다정한 성격, 듣는 것만으로 귀가 녹을 듯한 앳된 목소리를 가졌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이상 주방 이모, 혹은 주모, 아줌마였다. 늘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손놈들이 얼마나 치근덕거렸을지 두렵다.


어릴 적, 정말 철없던 시기에, 언젠가 엄마에게 원망 섞인 질문한 적이 있었다.

'왜 그 얼굴로 주방 아줌마나 하고 있는 거야?'

그 정도면 연예인을 해도 되는 페이스잖아. 그리고 마스크는 왜 항상 쓰고 다녀? 얼굴은 왜 가리는 거야? 혹시 자존감이 부족한 타입?

'왜 엄마는 이름이 두 개야?'

내가 물어봐도 엄마는 그저 스러질 것 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처지와 과거에 대해 어렴풋이나마도 귓동냥을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철이 없었던 나였지만, 엄마의 미소가 왠지 서글퍼 보여서 그 이후로 더는 묻지 않았다.


...엄마가 이런 벽지에서 숨어 사는 듯이 사는 이유를 알게 된 건 중3 겨울방학이 쯤이 되어서였다.

인터넷 미아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모처럼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휴대폰을 장만해서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을 때다. 순간적으로 내가 무엇을 검색하려 했는지 떠오르지 않아서 어쩌다 보니 엄마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한 것이 화근이었다.

인터넷에 수많은 엄마의 얼굴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놀라서 당장 사진을 저장할 생각도 못했다. 엄마에 대해 올라와 있는 수많은 기사들. 풍문들. 추문들.

쓰여 있는 내용은 대부분 더럽기 짝이 없었고, 거짓일 게 분명한 내용이었지만 몇 가지의 정보를 통해 나는 대강이나마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엄마가 이곳에 숨어 사는 이유. 곧 엄마와 나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내 친엄마가 누구인지까지.

그리고 그때 나는 맹세했다.

내 엄마를 상처입힌 친엄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오래 기다렸지?"

식탁에 따듯한 아침밥이 놓였다. 아직 난방을 틀지 않아 추운 이곳에서 공깃밥은 유일하게 온기를 발하고 있었다.

살림이 좋지 못한데도 반찬만큼은 매일 달랐다. 삭막한 살림에서도 지나치게 풍요로운 식사였다. 나는 눈물과 장어구이를 밥과 함께 입에 배어물고 말했다.

"맛있어요, 엄마."


또한 지금도 항상 거듭 맹세하곤 한다.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를 나만이라도 사랑해주자고.



□ □ □



가게 문 앞에 걸린 [CLOSED] 팻말을 뒤집고 몇 시간이 지나 슬슬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기에, 나는 토끼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고 한가로이 주방에서 마늘을 까고 있었다.

옛날엔 이 가게도 나름 사람이 북적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인적이 드물다. 사람들이 이 촌구석을 떠나서 도시로 향하는 까닭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그땐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식탁 치우랴 설거지하랴 청소하랴 화장실 변기에 묻은 똥도 닦르랴, 잠시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는데 요즘은 그 빈도가 크게 줄어 몸은 편해진 편이다.

힘들었지만 차라리 그 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가게를 열고 처음 엄마가 차리는 밥이 손님이 아니라 내 밥이 된다면 나도 슬플 것이다.
...그만큼 오늘은 유난히 지독할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온기가 부족하네..."

문득 옆에서 엄마의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왔다.

(온기, 인가...)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손님이 없어서 저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온기가 특정인의 '그것'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장사가 비교적 잘 되던 옛날부터 종종 저렇게 가끔씩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치곤 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그리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도 나름대로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나의 친엄마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알기론 현재 엄마가 그리워할 정도로 깊게 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달리 없었다. 나를 키우기 전에 만났던 사람이라고 추측해본다면 역시 그사람이겠지. 친엄마에 대한 생각을 하니 금세 속이 메스꺼워졌다.

...역시 나는 그 여자를 용서할 수 없다.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것도 용서할 수 없지만, 아직도 엄마의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것은 분노라기보다 질투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다.


추위에 얼어 빨개진 엄마진 손에 눈이 간다.

(마음같아선... 손이라도 잡아버리고 싶은데.)

엄마의 손을 잡고 싶다. 깍지를 낀 채로, '엄마한테는 내가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와서 숨길 만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엄마가 좋았다. 가족으로서 뿐만 아니라 분명 연애대상으로서도 나는 엄마를 좋아하고 있었다.

딸로서 엄마를 좋아한다는 건, 역시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명학적으로 보면 엄마와 나는 피 한 방울 이어지지 않는 완벽한 타인이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매력적인 여성을 좋아하게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그런 여자 따위 잊어버리라고, 나는 엄마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윤리의식 따위에 얽매여서는 아니었다.

엄마가 내 마음을 듣고 기뻐하기보단 슬퍼할 것이 두려웠다. 혹시라도 자기가 딸을 잘못 키워서 딸이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자책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안 그래도 무리하며 살아가는 걸 뻔히 아는데 엄마에게 더 이상의 심적 부담을 지워주고 싶지 않다는 기특한 마음도 있다.


나는 가스 난로를 엄마의 옆에 가져다 틀어다 놓고서, 엄마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 척, 능청스레 말했다. 엄마의 깊은 속 따위 어린아이는 몰라도 좋다. 순수해도 멍청해도 오히려 플러스다.

"이러면 따뜻하지, 엄마?"

나는 엄마에게 온기를 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것만이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응. 그렇네. 이제 온기는 충분해. 고마워."

이내 반쯤 어이없는 얼굴을 하곤 웃었다.

ㅡ그 미소는 반칙이야. 엄마는 모른다. 자신의 얼굴, 표정, 몸짓, 말투 하나하나가 사람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엄마의 얼굴을 계속 쳐다봤다간 얼굴이 터져버리고 말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시선을 마늘에 고정하며 번뇌를 떨쳤다.

그저 난로의 온기가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닿았기를 바라면서.



띠리링-

주방 내부의 한기가 충분히 누그러지던 어느 무렵이었다. 문에 달아 놓은 벨이 연달아 부딪히며 정적을 찢었다. 드디어 오늘의 첫 손놈이 온 모양이다. 상대하기는 싫지만 이번만큼은 칭찬해줄게.

나는 나서려는 엄마를 제지하고, 앞치마를 벗고 대신 접대용 미소를 장착한 뒤 주방에서 나왔다. 아무나 엄마를 만나게 해 줄 수는 없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어느 좌석으로 안내해드릴까요?"

...문 앞에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연예인 처럼 예쁜 여성이ㅡ선글라스를 껴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ㅡ가게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여성은 내 얼굴을 보더니, 대답 대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선글라스를 껴서 눈이 보이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야. 예쁜 사람 처음 보니?

"저기... 손님?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여성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또 어색한 정적이 몇 초간 흘렀다. 슬슬 답답해지려고 하던 찰나였다. 불현듯 정적을 깬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황당했다.

"좌석 안내는 필요 없어."
"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년은)
신종진상손놈인가?

"원하는 건 테이크 아웃이니까."

아,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나는 카운터로 가서 메뉴판을 들고 와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시군요 손님~, 보고 원하시는 메뉴를 고르시면 말씀해주세""마루야마 아야."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녀는 메뉴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은 이름을 말했다.

"아야 쨩을 받으러 왔어."



{1: 테이크 아웃은 마루야마 아야} END










저번에 쓴 아야치사 썰이 기반인데

쓰고 보니 겉멋만 들어서 생각보다 오글거리는 구나

더 담백하게 쓸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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