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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츠구미] 민트초코는 원래 까맣다 -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01 22:00:14
조회 575 추천 23 댓글 7
														

1편


-


 불운하지만, 천운이 함께한 사고였다.


 하자와 츠구미의 담당 의사도, 츠구미 본인도 그때의 일을 그렇게 표현했다. 덧붙여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란 말과 함께.


 “란 짱! 나 진짜 괜찮으니까.”


 “다행이야, 진짜 다행이야...”


 자기 이불을 부여잡는 미타케 란을 츠구미는 어쩔 줄 모르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란의 눈가는 땡땡 부어 있었다. 화도 수업이 있던 날이어서, 츠구미가 다쳤다는 사실을 란은 조금 늦게 알았다.


 “나 참. 란은 진짜 울보라니까~”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살짝 게츰스레, 혹은 장난스럽게 눈을 뜬 우에하라 히마리는 란의 옆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그녀 나름대로의 행동이었다.


 “히짱~ 히짱도 엄청 울었으면서 남 말은~”


 “모카앗!”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아오바 모카가 히마리를 바라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히마리를 상대하는 모카의 표정은 언제나 동네 개구쟁이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타박상으로 끝났다곤 해도 환자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너희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러나 입가 어딘가에는 미소 한 조각이 걸린 우다가와 토모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괜찮아?”


 저희들끼리 투닥투닥거리는 모카, 히마리, 란은 내버려 두고, 토모에는 츠구미에게 더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응, 괜찮아. 토모에 쨩.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니, 뭐...”


 츠구미의 활짝 웃는 얼굴에 되려, 굳이 물어 본 토모에가 더 머쓱해졌다. 그래도 뭐, 건강하니까 됐다.


 애프터글로우의 모두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히마리야 말할 것도 없고, 토모에도, 란도, 모카도 언제나 목소리를 내기에 바쁘다. 그러나 언제나 동력이 되는 사람은, 그리고 이 집단에 차분함을 더해주는 사람은 츠구미여서, 토모에는 내심 그녀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곤 했었다.


 “그나저나 히나 선배는 음료수를 사러 어디까지 간 거야.”


 “어, 히나 씨 왔었어?”


 모카와 손을 맞잡은 포즈로 히마리가 말하자, 란은 그대로 그녀에게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히카와 히나와는 워낙 파장이 안 맞는 탓일까, 란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본인 말에 의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예측이 안 돼서 싫다는 느낌이다.


 “금방~ 오지 않을...”


 드르륵, 쾅! 하고, 문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느린 모카의 말을 그 소리가 끊어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제 몸의 크기와 엇비슷해 보이는 기타 케이스를 멘 소녀가 있었다.


 이웃학교인 하나사키가와의 교복을 입은, 그리고 츠구미가 잘 아는 어떠한 사람과 닮은 모습. 분명 아는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에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전혀 모르는 사람.


 “자, 우리는 슬슬 나가볼까?”


 “그, 그럴까! 토모에!”


 “아, 아니... 난 나갈 생각...”


 “라안, 방해야~”


 그 사람이 들어오자, 애프터글로우의 모두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그 작은 병실은 그 어떤 곳보다 큰 공간으로 변모해버렸다.


 계단을 뛰어 올라왔는지, 소녀는 숨을 여러 번 몰아쉬었다. 그녀의 숨결에서 겨울 같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얼굴선을 따라 땀줄기는 흐르고 있었지만,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다고 유세라도 하려는지 무척이나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괜찮습...”


 “괜찮으세요?”


 그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츠구미의 목소리와 소녀의 목소리가 같은 모양을 한 채 허공에서 엉켜버렸다.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소녀의 표정,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소녀를 바라보는 츠구미의 표정.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나눴다.


 “괘, 괜찮아?”


 소녀는 말을 살짝 더듬었지만, 이내 반말로 츠구미를 향해 물어보았다. 뭐가 괜찮은지, 그리고 무엇이 엇갈렸는지 소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소녀는 그동안 살아왔던 감각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네, 괜찮아요. 일단 괜찮은데...”


 말을 살짝 늘어트리며, 츠구미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표정이 워낙 어두워서, 츠구미의 기분도 같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분명 저보다 큰 사람일 텐데, 움츠러든 그 모습은 어딘가 안타깝기까지 했다.


 “음... 제가 아는 분이랑 닮았네요.”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소녀는 츠구미가 잘 알고 있는, 잘 알 수밖에 없는 사람과 닮아 있었다. 하네오카의 학생회장, 히카와 히나와 거의 판박이였다. 저의 앞에 있는 사람은, 히카와 히나의 친척일까?


 “저기 죄송한데, 실례가 안 된다 면요.”


 그렇지만 히카와 家의 친척과 교류 할 정도로 츠구미는 그렇게 발이 넓진 않았다. 츠구미 자신이 생각하기에, 히카와 家에서 친한 사람은 ‘오직’ 히카와 히나 뿐이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궁금증이 일은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에 떠오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소녀에게 진심을 담아 물어보았다.


 “혹시 저를...”


 말을 이어가기 위해서 한 호흡이 필요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문장을 이어가려 했는데, 어쩐지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마치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듯, 그런 불유쾌한 기분이.


 “아세요?”


 그 세 글자를 말하는 데에도, 츠구미는 힘이 들었다. 왜일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


 소녀의 입에선 숨길 수 없는 외마디 신음이 튀어 나왔다. 그게 안타까움인지, 안쓰러움인지, 아니면 그저 슬픔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이란 사실을, 츠구미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만난 적 없던 사람인데, 소녀..... 아니, 그녀는 내가 다친 걸 슬퍼해주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참 상냥한 사람이다.


 그녀는 멍하니 츠구미를 바라보았다. 이전의 표정들과는 사뭇 다르다. 오묘한 표정이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느낌의 반색이 들러붙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녀의 표정은 공허해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빈 껍데기마냥, 혼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빛을 잃은 거울처럼, 이 숨 막힌 공기에 짓눌려, 터져버린 심장을 가진 사람마냥.


 “히카와 사요입니다.”


 단지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몸을 틀어, 츠구미에게서 등을 돌렸다. 병실 침대에 앉아있던 그녀가, 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행여나 눈물이 고였단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무언가를 훔친 도둑마냥, 절도를 당한 것은 본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작 몇 주 전의 일인데, 이미 오래 전의 일인 듯 아득하기만 하다.


 사요는 새하얀 숨을 내쉬어, 그때의 회상을 밤공기 속에서 찢어발겼다.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조각마냥, 그녀의 숨결은 그대로 까만 하늘로 사라졌다. 츠구미도 사요의 옆에서 하늘을 함께 바라보았다. 공허하면서도, 허무한 그것들을.


 시간이 흘러도 변한 것은 없다. 애프터글로우와 히카와 히나는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일단 당분간 비밀에 붙여두기로 했다. ‘기억에 없는 친한 선배.’ 사요와 츠구미의 거리감은 그러했다.


 그래서 여전히 츠구미는 기억상실에 걸린 채고, 사요는 그러한 그녀를 가끔 이렇게 찾아오며 그냥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늘 밑 해바라기같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무언가를 얻을 수는 없고, 서서히 죽어가며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요는 갈증이 났다. 본인이 해소할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이 해소시켜줄 수 있는 그러한 갈증이.


 “갈림길이네요.”


 츠구미가 먼저 꺼낸 말에, 사요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헤어지고 만다. 예전의 사이가 아닌, 그보다 더 먼 사이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히카와 선배.”


 사요의 눈동자에, 츠구미의 뒷모습이 찍혀 흘러내렸다. 손을 뻗어 보았지만, 츠구미는 이미 닿지 않을 거리까지 가 있었다. 손을 쥐어 잡아보려고 해도, 그녀는 코너 너머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미래로 갈 수도 없는 길이 사요의 눈에는 띄지 않았다. 한없이 춥고 어두운 이 곳에서 나 홀로 있는 그런 거, 그런 건 싫어.


 이대로 헤어져버리고 만다니, 그건 절대 싫어.


 “하자와 씨!”


 사요는 조금 더 걸음을 빠르게 걸어, 그대로 츠구미의 손을 낚아챘다. 살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제법 귀여웠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내일, 제과교실 하시죠?”


 그 한 문장조차 똑바로 말할 수가 없어서, 사요는 저도 모르게 더듬어버리고 말았다.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사요는 츠구미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도 가도 될까요?”


 과자교실에 가도 된다는 그 부탁이, 이렇게 어려운 부탁이었던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서로가 참 많이도 변해버렸다.


 사요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츠구미가 이 부탁에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안다. 과자교실을 열 때 항상 여유분의 몫을 준비해두는 것도 알고, 츠구미의 성격상 이러한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리고, 또 불안해졌다. 마치 그녀에게 처음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처럼 사요는 마음이 떨려왔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저에게 활짝 웃어줄 츠구미의 대답을, 결국 사요는 받아내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 환한 웃음에, 사요는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고일려 했다.


 “고맙습니다, 하자와 씨.”


 “아니에요, 괜찮아요.”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사요는 허리를 숙여 인사해버렸다. 그러자 츠구미가 당황한 목소리로 괜찮다며 손을 연거푸 절레절레 저었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기 전에, 사요는 교복 자락으로 눈물을 살짝 닦아냈다. 아직 제 멋대로 벅차오를 때가 아니었다.


 “그럼, 내일....”

 

 “네, 내일 봐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츠구미의 모습에, 사요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힘겨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이윽고 그녀가 저 멀리 골목길 어귀로 사라질 때 즈음, 사요는 몸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그나마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


 공든 탑이 무너지면, 처음부터 다시 쌓아 가면 된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게끔, 튼튼하게 재건해버리면 된다.


‘저, 사요 씨. 저희 이제 말 놓는 게 어떨까요? 이제, 그... 서로 그...그런 사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절대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 그럼 마지막으로 이렇게 불러볼게요.’


 제 아무리 부정해보려고 해도, 다시 쌓은 탑은 그때의 탑이 아니다.


 ‘사요 씨.’


 사요 또한 사고로부터 머지않은 후에, 그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오랫동안 쌓아올렸던 추억들과, 그 기억들과 함께했던 모든 마음들은 이제 모두 사라져버린 채다.


 새로 추억을 만든다고 하여도, 그때의 그녀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좋아해요.’


 히카와 사요가 사랑했던 하자와 츠구미는, 이젠 없다.


-


 역순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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