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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카스아리 2세물) 미숙한 그녀들 -3

AGBM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6 16:25:59
조회 451 추천 17 댓글 4
														

1편 : https://gall.dcinside.com/m/lilyfever/511455

2편 : https://gall.dcinside.com/m/lilyfever/515342



"벌써 가는구나. 저녁 먹고 가도 되는데......"

"괜찮아요. 어머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스미가 죽을 가지고 방에 들어오자 이케다가 가방을 들고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왕 온 김에 저녁까지 먹으면서 아스미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던 카스미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스미 선배, 푹 쉬세요."

"으…. 응...... 이케다, 혹시 감기 옮은 것 같으면...... 무리하지 마."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이케다가 손을 들어 작별의 표시를 했다. 그녀의 하얗고 늘씬한 손가락이 아스미의 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워 보인다는 감상을 묻어두고 아스미도 똑같이 손을 올려 회답해주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아스미는 이케다의 시선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 저 손이 자신의 옆구리와 배에 닿아있었던 게 떠올라 가슴에서 열이 올랐다. 그런 아스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케다는 계속 미소를 짓다가 등을 돌려 천천히 방을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카스미가 죽을 탁자 위에 올려둔 뒤 아스미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케다를 배웅하러 갔다. 방에는 다시 아스미 혼자 남았다.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달걀 죽이 담긴 그릇을 바라보다 옆에 놓인 숟가락을 들고 죽을 퍼서 두어 번 후후 불어 식힌 뒤 입으로 가져갔다. 적당히 짭짤한 게 딱 그녀의 취향대로였다. 아직 사과도 못 했는데 엄마의 호의를 받아도 되는지 망설임이 있었지만, 아침에 본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빨리 먹고 낫는 게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죽을 퍼서 입에 가져갔다. 그러던 중 탁자의 끄트머리에 놓여있던 이케다가 준 작은 포장 상자가 눈에 들어온 아스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그 상자를 들었다. 연보라색 포장지를 벗겨내자 예쁜 모양의 쿠키들이 가지런히 들어앉아 있었다. 전에 이케다가 같이 가자고 권했던 그 카페의 쿠키였다.


'맛있다고 소문났으니까 같이 가자고 했으면서......'


마치 같이 가지 못할 것처럼 쿠키를 선물로 사 온 것은 아마 방금 했던 포옹과 같은 의미였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아스미는 자신의 추태에 떨어졌던 열이 다시 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케이스를 열고 조그마한 쿠키를 집어 천천히 입에 넣었다.


'맛있는 건가......'


혀는 달콤하고 고소한 쿠키의 식감을 느꼈지만, 그녀의 뇌는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혹시 이게 이케다의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아스미는 목이 메기 시작했다. 쟁반에 놓여있던 물컵의 물을 전부 입에 털어넣어 삼켰지만 목멤은 해소되지 않았다. 속이 갑갑해진 아스미는 깊고 빠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코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방문이 열리며 카스미가 들어왔다.



"아스미, 미안! 죽이 식어버...... 아스미?"


눈물범벅인 채로 연신 훌쩍이고 있는 아스미에게 카스미가 서둘러 다가갔다. 카스미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고 그녀는 허둥지둥하면서 주머니에서 별무늬가 그려진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을 아스미의 눈가에 가져간 그때 아스미가 별안간 와락 카스미를 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카스미는 허공에 손수건을 든 채로 당황한 듯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스미의 작은 등에 손을 올리고 아스미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아스미는 카스미의 품에 안긴 채로 계속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카스미의 옷이 아스미의 눈물과 콧물로 진하게 물들었고 아스미가 내뱉는 약간 열이 오른 숨결이 카스미의 살갗을 간질였다. 카스미는 아무 말 없이 아스미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면서 눈을 감고 아스미의 머리에 볼을 기대었다. 두 사람만 남은 방에서 울음소리가 눈물과 함께 흐르며 차가운 저녁 공기를 더 쌀쌀하게 만들었다.


울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흐느낌이 잦아들자 카스미는 아스미의 머리에서 볼을 떼고 조용히 속삭였다.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도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아스미, 이제 괜찮아?"


"......"


말이 없는 아스미를 품에서 떼어낸 카스미는 아직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아스미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 창피해서 고개를 돌리려 한 아스미였지만 카스미의 손이 제지했다. 그래서 아스미는 눈을 바닥에 깔면서 카스미의 부드러운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스미, 예쁜 얼굴 완전 이상해졌어."


카스미는 미소를 지은 채로 농담을 하면서 아스미의 눈가와 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실없는 농담이었지만 아스미는 웃지 못하고 이따금 코를 훌쩍이면서 바닥과 카스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물에 완전히 젖어버린 눈동자가 아련했다. 아스미의 예쁜 얼굴을 모두 닦은 카스미는 손수건을 집어넣고 숟가락을 들어서 이제 식어버린 죽을 펐다. 아직도 축축한 눈가를 비비면서 아스미는 힘없이 말했다.


"괜찮아. 안 먹을래."


배가 고팠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나쁜 아이에게 벌을 내리듯이 자신에게 내리는 나름의 벌이었을까. 그러나 제멋대로인 징벌로 도망가려는 아스미를 카스미가 막아 세웠다.


"아침부터 한 끼도 안 먹었잖아. 빨리 나아야 하니까 먹었으면 좋겠어."


"필요 없어. 나 같은 애는 벌을 바......"


"아스미!"


갑자기 진지해진 목소리에 아스미가 반쯤 감았던 눈을 뜨면서 놀란 듯이 카스미를 바라봤다. 올곧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가 아스미를 꿰뚫고 있었고 입술은 굳게 닫힌 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카스미가 드물게 화가 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아스미는 마지못해 속으로만 한숨을 쉬면서 카스미가 든 숟가락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카스미가 아스미의 손을 피하며 말했다.



"엄마가 먹여줄게. 입 벌려."


"아니, 나 중학생이야. 혼자 먹을 수......"


"아스미."


아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와 인자한 표정으로 이름을 부르는 카스미에게 아스미는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숟가락으로 얼굴을 가져간 뒤 입을 벌려서 죽을 먹었다. 약간 식었지만, 여전히 고소하면서 짭짤했다. 다시 먹어봐도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맞춘 음식이었다. 이유식 먹이듯이 떠 먹여진 아스미의 아침 겸 점심 겸 저녁 식사는 그릇이 밑바닥을 드러내며 끝났다.


"이제 됐어?"


식사가 끝난 아스미는 약간 퉁명스럽지만 맛있는 식사에 대한 감사를 담은 어투로 말했다.


"응, 잘했어 아스미."


카스미가 아스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엄마의 손길이 잔열이 남아있는 머리에 닿아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비었던 위장을 채우자 열이 내린 몸 상태는 확실히 좋아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내일 학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부 활동을 쉬더라도 이케다를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칠까 봐 학교 가기가 껄끄러웠다. 그래서 아스미는 꾀병을 부려서 이번 주 주말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스미가 손등을 아스미의 이마에 얹었다. 아스미는 조금 놀랐지만, 적당히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눈을 감고 부드럽고 예쁜 엄마의 손을 이마로 만끽하기로 했다. 카스미는 손등으로 아스미의 체온을 느끼며 말했다.


"아스미, 열 다 내렸구나. 그래도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는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는 아스미가 빨리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 싶어."


카스미가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꾀병을 생각하던 아스미는 가슴이 쿡쿡 쑤시는 듯 했다.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엄마에게 더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아스미는 결국 꾀병작전을 포기하기로 했다. 항상 이런 식으로 죄책감을 자극하는 카스미 엄마가 참 치사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가 카스미에게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자 카스미는 더 기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빛내면서 아스미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었다.


"......엄마, 화났어?"


모녀의 알콩달콩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빈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가려던 카스미의 발길을 아스미의 말이 멈춰세웠다. 카스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스미를 보면서 웃었다.


"아니, 화 안 났어. ......아스미야말로 엄마한테 화나지 않았어?"


카스미는 그 말을 하면서 입은 미소짓고 있었지만, 늦가을의 초저녁 하늘 같은 그녀의 보라색 눈은 약간 흔들렸다. 나무 쟁반을 잡은 그녀의 손은 아주 약간 떨리고 있었다. 아스미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아니야! 엄마한테 화난 건 아니야! 그냥...... 그건...... 내가......잘못했어. 엄마가 항상 시간 쪼개서 나한테 전화해주고 라인해주고, 집에 있을 때는 최대한 나랑 대화해주고 내 얼굴 봐주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알아...... 음식도 내 입맛에 다 맞춰서 해주고 내 취향도 정말 잘 알고 있는 거 알고 있어...... 엄마가 그렇게 힘내고 있는데 내가 좀...... 심한 말 해버려서...... 그땐 나도 완전 이상해져 버려서...... 진짜……. 엄마, 죄송해요......"


아스미의 미안한 감정들이 아무렇게나 버무린 샐러드처럼 어지러운 말들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똑똑한 머리로 고민하고 속앓이했던 사과는 정말 어이없게 이루어졌다. 미숙한 표현과 말솜씨였지만 카스미에게는 충분히 닿았는지 불안해하던 손과 눈빛은 버무려진 말 덕분에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카스미는 긴 날숨을 내뱉으며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저앉아 버렸다. 아스미는 갑자기 엄마가 쓰러지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아직 근육통이 남아있는 몸으로 허겁지겁 카스미에게 달려갔다.


"어......엄마? 괜찮아?"


"다행이다...... 아스미가 날 정말 싫어하는 줄 알고......"


카스미가 안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미는 카스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카스미의 안색을 살폈다. 카스미의 안색은 건강함 그 자체였기에 아스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다리를 아무렇게나 둔 채로 우스꽝스럽게 앉아 있던 카스미가 갑자기 소리 내 웃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웃음소리에 아스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엄마의 행복한 표정을 보자 아무래도 좋아졌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같이 웃어주었다.


"진짜 아스미...... 옛날 아리사랑 완전 똑같아."


"가......갑자기 무슨 말이야 엄마? 그나저나 엉덩이나 다리 다치진 않았어?"


"아하하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아직 젊다구~"


"......이제 곧 마흔인데 조심해야지."


"에~ 아스미 너무해! 나이 얘기는 실례라구!"


"엄마가 먼저 젊다는 말했으면서."


카스미가 입술을 쭈뼛 내밀고 볼을 부풀리며 아스미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태클 거는 것도 정말 아리사 같다고 생각하던 카스미는 갑자기 손을 뻗더니 아스미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간지러워!"

"헤헤. 부드럽다. 정말 열 다 내렸나보네."


카스미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스미의 볼을 말랑말랑 주물렀다. 아스미는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투덜거렸지만 싫지는 않은지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애정이 넘치는 따뜻한 모녀의 시간을 만끽했다. 따뜻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늦가을의 찬바람이 창문을 스치며 울리는 소리가 나자 카스미의 천진난만했던 눈빛이 물러가고 보라색 눈동자에는 어른의 눈이 자리 잡았다. 잠시 입술을 뻐끔거리며 뜸 들이던 카스미는 마음을 다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스미, 엄마가 미안해. 아스미를 더 챙겨줬어야 했는데. 옛날처럼 또 주변을 보지 못한 것 같아."


갑작스러운 엄마의 변화에 아스미가 당황하는 사이 카스미는 손을 볼에서 뗀 뒤 흐트러진 아스미의 머리를 상냥하게 정리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 엄마가 그동안 찾고 있던 무언가를 찾은 것 같아서...... 이제는 아스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


아스미는 카스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포피파의 멤버가 아니라면, 서클의 동료 밴드가 아니었다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아스미는 앞으로 카스미가 자신 곁에 더 자주, 오래 있어 줄 거란 사실이 내심 기뻤다. 그녀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고 무표정을 연기하면서 짧게 대답했다.


"미안할 건 없어 엄마. 엄마는 계속 노력해 왔으니까......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나도 이제 꽤 컸고...... 스스로 어느 정도는....... 아......"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부끄러워진 건 아스미는 땅을 쳐다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카스미는 가만히 아스미를 지켜보다가 별안간 아스미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놀란 아스미가 고개를 들자 카스미가 말했다.


"그럼...... 엄마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보라색 별빛이 아스미를 꿰뚫었다. 카스미가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아스미는 그 부탁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카스미의 눈빛과 탁자 위의 포장 상자, 그리고 이케다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아스미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뭔데......?"


그래도 아스미는 사람 상대를 어려워하고 사람을 잘 모르는 자신의 예측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제발 헛다리를 짚기를 빌었다.


"아스미의 고민을 말해줄 수 있어? 음...... 혹시 오늘 병문안 온 애랑 관련이 있는 거야?"


아쉽게도 아스미는 정답을 맞혔다. 보통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면 기분이 정말 좋았다. 특히 약한 과목이라면. 하지만 이번에는 약점 분야의 문제를 맞혔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싫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들킨 이상 발뺌하기도 힘들다 생각한 아스미는 속죄도 하는 겸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응...... 맞아."


"어떤 일인지 혹시 말해줄래? 너무 말하기 싫다면 꼭 말해주지 않아도 돼. 그래도 엄마가 보기엔...... 아스미가 너무 슬퍼 보였거든."


진심이 담긴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스미에게 닿았는지 그녀는 백기를 들고 어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자신의 치부를 전부 드러내면서 괴로워진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카스미는 아스미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가 입꼬리를 내렸다가 하면서 다채로운 반응을 보여줬다. 한번 들은 것만으로 카스미는 아스미의 감정을 모두 흡수한 것 같았다.


"......그렇게 이케다를 거의 차버렸고, 이케다도 포기한 것 같아. 그래도 도망친 거에 대해 사과도 하고 싶고 거절이라도 답을 들려주고는 싶은데...... 대체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


설명이 모두 끝나고 아스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스미의 고해성사가 끝났지만 어째선지 카스미로부터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아스미가 고개를 들자 카스미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스미를 책망하는 눈빛이었기에 아스미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그렇게 바라보던 카스미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스미, 아스미는 이케다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 건지 알았어?"


"어...... 편지를 보니까 조금 느껴지던데......"


"얼마나 고민했는지도 느꼈어?"


"응...... 굉장히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 같았어. 편지지나 봉투도 전부 내 취향으로......"


어쩐지 심문당하는 것 같아서 상자에 들어간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린 아스미가 고개를 돌려 카스미의 눈을 피했다. 게슴츠레 반쯤 뜬 눈이 눈빛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서 아스미의 죄책감을 예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역시 카스미는 상대에게 죄책감을 끌어내는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딸이 위축된 태도를 보이자 카스미는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날카로운 눈빛을 누그러뜨리면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아스미, 상대방의 감정과 마음을 모를 수 있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만약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알았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답을 들려줘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해."


 따뜻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여서 아스미는 옆으로 피했던 시선을 살짝 카스미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카스미가 다시 상큼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말을 계속해나갔다.


"몰라서 그런 건 어쩔 수가 없어. 그래도 알았다면 적어도 도망을 쳐선 안 돼."


"그럼……. 거기서 어떻게 대답했어야 정답인 건데? 이케다의 마음은 알았고 대답을 들려주고 싶었어. 거절하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근데 말이 안 떠올라서...... 그리고 거절하면 상처입힐까 봐 무서워서……. 그래도 애매한 건 또 싫어서...... 또 뭔가 거절하기도 싫어서 너무 뒤죽박죽에 엉망이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의 충고에 대해 아스미가 처음에는 따지듯이 말했지만 이내 말끝이 흐려졌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했는지 말은 빨랐고 내용은 뒤죽박죽이었다. 아스미는 스스로 참 말솜씨가 없어서 고생한다고 자조했다. 한편 카스미는 아스미의 말을 듣고 천장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카스미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스미에게 시선을 옮기고 말했다.



"아스미, 정말로 이케다를 거절할 생각이었어?"


"어? 응...... 비록 이케다는 소중하고 친한 후배지만 사귀는 건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다른 것 같아서......"


"음...... 그럼 아스미! 이케다에 대해 들려줄래?"


"에?"


카스미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카스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아스미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카스미가 계속 재촉하자 머릿속에서 이케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음...... 처음 만난 건 올해 봄이었지? 신입 부원으로 들어와서 인사하는데 예쁜 애구나라고 생각했었어. 예의도 바르고 말투로 우아해서 어디 부잣집 따님인 줄 알았어. 게다가 신입생인데도 일도 엄청 잘하고 똑똑한 게 완전 완벽 초인 그 자체야. 그래도 뭔가 혼자 다 짊어지려는 면 있어서 가만히 두면 위태롭다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이 있었어. 서가 정리하는 날 하필 내가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늦게 도서실에 도착한 날이 있었는데 다른 1학년들은 다 도망가버리고 혼자서 그 많은 책을 정리하고 있더라구. 책은 엄청 무겁지. 분류표는 익숙하지도 않지. 그런데도 한 권 한 권 분류표랑 일련번호 대조해가면서 정리하고 있더라구......"


아스미는 신이 난 듯이 이케다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냈다. 카스미는 사소한 이야기, 시답잖은 감상 하나하나를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은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면서 진중하게 들어주었다.


"......아무튼 착하고 성실하고 그리고...... 예쁜 애야. 이미지는 순정만화나 로맨스 소설 같은 거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인데 SF를 가장 좋아한다는 의외인 점도 있고...... 뭐 그런 애야. 이 정도면 된……. 거 같은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을 쏟아내고 보니 하는 거의 저물고 달빛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투박한 스쿠터 엔진 소리가 들리면서 정적에 휩싸인 밤공기를 깨웠다. 동시에 듣고만 있던 카스미도 입을 열었다.


"혹시 아스미, 같은 학년에 도서부원이 있어?"


"응...... 미나미랑 또...... 아! 오오무로."


"그 둘에 대해서도 말해줄래?"


"뭐야 엄마. 오늘 나 교우관계 조사하는 거야?"


"응. 그리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그래. 말해줄래?"


카스미가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후배에 관해 묻더니 이번에는 동급생에 관해 묻는 카스미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스미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피할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미나미는 엄청 산만한 애야. 도서부인 주제에 도서실에서 맨날 떠들다가 지적받는 게 일상이야. 그래도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지 힘이 엄청 세서 서가 정리 하는 날이나 새 책 들어오는 날에는 꽤 의지가 돼. 의외로 책도 많이 빌려 읽고. 오오무로는 그냥 묵묵히 자기일 하는 애야. 긴 생머리가 꽤 예쁜데 가끔 점심시간에 누가 쪽지 놔두고 가는 일도 많았어. 대충 이 정도?"


이케다에 대해 말할 때와는 달리 간결하고 짧은 내용의 소개가 끝나자 카스미는 무언가 발견한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아스미의 양손을 마주 잡았다. 갑자기 엄마가 다가오자 아스미는 입을 벌리고 당황하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아스미, 아스미는 이케다에게 엄~청 관심이 있는 거 같은데?"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 반짝반짝 울리는 목소리로 카스미가 외쳤다. 엄마가 이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보는 아스미는 '에......'라고 외치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관심이 없으면 그렇게 많은 말과 많은 이야기들을 꺼낼 수 없어! 그러니 아스미는 분명 이케다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이케다를 엄청 소중히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뭐? 아니...... 이케다는 어디까지나 아끼는 후배고 그......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어설프게 부정을 하던 아스미였지만 아까 포옹하고 작별 인사를 할 때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던 게 생각나면서 아스미는 혼란스러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음... 그럼 아스미, 혹시 이케다가 미나미랑 사귄다면 어떻게 생각해?"


"뭐? 말도 안 돼. 그런 바보 같은 괴력녀랑 이케다는 안 어울려! 게다가 섬세하지도 못해서 이케다가 상처 받......"


반사적으로 외치던 아스미는  자신이 한 말을 깨닫고 '아.'하는 짧은 탄식을 내며 말을 마친 뒤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 카스미는 아스미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배시시 웃었다.


"아니...... 내가 이케다 부모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지만 이건 그러니까...... 아무튼 미나미는 안 돼!"


거의 정신 착란 상태로 아무 말이나 내뱉고 카스미의 눈을 피해 아스미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스미, 역시 아리사 닮았어. 솔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귀여워. 얼굴이 다 드러나면서~"


"그게 아니라 아니......"


카스미를 똑바로 보며 항의하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전부 맞는 말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스미, 엄마가 보기에 아스미는 이케다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만약 이케다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스미는 거절의 말이 분명 떠올랐을 거야. 적어도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도 않았을거고 도망치지도 않았을거야."



맞잡은 양손에 힘을 주면서 카스미가 조곤조곤 말했다. 아스미는 깍지 낀 손에서 땀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 같아서 초조해졌다. 동시에 가슴도 뜨거워지면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자신도 몰랐던 감정이 카스미 덕분에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스미가 도망친 건, 거절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엄마도 아스미의 생각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도 아스미에게 이정표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모래사막을 빛내는 북극성이라고 하면 될까? 반짝반짝, 두근두근"


"......엄마 오글거려."


"에헤헤...... 소설가랍니다~"


능청스럽게 아스미의 말을 받아낸 카스미는 사랑스럽고 서투른 자신의 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외모는 카스미 자신을 닮은 갈색 머리지만 내면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주제에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게 아리사랑 판박이라고 카스미는 생각했다.


"아스미, 이케다의 마음에 꼭 답해줬으면 좋겠어. 당장 내일이 아니더라도, 말이 아니라 글이라도 좋으니까 꼭 아스미의 진짜 마음으로 이케다에게 대답해 주렴. 엄마가 주는 숙제야."


갑자기 날아온 과제에 아스미는 놀라서 카스미의 얼굴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카스미가 지금 짓고 있는 미소는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과 장난치기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 그리고 아이를 이끌어 주고 싶어 하는 어른의 모습이 모두 겹쳐져 있었다. 그런 것은 둘째치고 그녀는 지금 동경대 입시 문제보다 어려운 과제를 덥석 받아버린 것이다.


"엄마......기한은?"


"기한은 없어! 하지만 엄마의 경험상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질 거야?"


깍지 낀 손을 더욱더 강하게 얽혀가면서 카스미가 장난기 넘치는 말을 돌려줬다. 아스미는 앓은 소리를 내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카스미에게 애원했다.


"엄마, 그럼 힌트! 그래, 엄마 소설가니까 적어도 편지 첨삭이라도 해줘!"


"안 돼. 이건 아스미의 감정을 전해야 해. 엄마가 손대는 순간 아스미의 감정이 아니게 되어버려."


지푸라기를 향한 손길이 너무나 가볍게 꺾여버리자 아스미는 풀이 죽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얽혀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풀었다.


"음, 아스미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엄마가 팁을 하나 줄게. 예전에 엄마가 밴드 할 때 아리사가 밴드를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조금 엇나가버렸을 때가 있었어. 그때 내 마음을 전할 때 아리사의 손을 꽉 잡았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내 마음이 흘러 들어갔어! 혹시 아스미도 해볼래?"


아스미가 풀려던 깍지를 다시 붙잡은 카스미는 먼 옛날의 추억을 털어놓았다. 하마터면 밴드가 사라질 뻔했던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은 반짝이는 북극성이 되어 미숙하고 사랑스러운 딸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카스미는 역시 지금 살아가는 순간 하나하나가 전부 반짝이는 별이라고 생각하며 맞잡은 손의 온기가 상냥하다고 느꼈다.



"에...... 그렇구나......"


아스미는 카스미의 충고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을 잘 파악하는 엄마의 충고가 혹시나 쓸 데가 있을까 봐 머릿속에 넣어두기로 했다.


"꼭! 이케다에게 마음을 전하렴. '꼭'이야?"


"아, 알았어! 전할 테니까! 이제...... 손 놓으면 안 돼? 뭔가 땀이 나서 끈적거려."


아스미의 말에 카스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손을 뗐다. 카스미는 잠시 아스미를 바라보다가 빈 그릇을 들고 천천히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열이 내렸어도 밥도 별로 못 먹고 피곤할 텐데 푹 쉬어. 내일도 학교에 못 가겠다 싶으면 쉬어도 되니까."


카스미는 그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떠났다. 아스미는 찌뿌둥한 몸을 겨우 일으켜 이를 닦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어떻게 말을 전할지 오늘 밤 생각해보기로 하면서.




"아스미는 괜찮아?"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아리사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카스미에게 물었다. 비록 카스미를 울린 일 때문에 아스미에게 좀 화가 났었지만, 몸도 아픈 딸에게 너무 거칠게 말한 것 같아서 종일 미안했던 그녀였다. 라인으로 사과라도 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역시 사과는 직접 말로 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사과의 뜻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좋아하는 간식이나 케이크라도 사갈까 생각했지만, 하필 오늘 부하직원이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급히 수습하기 위해 야근을 해 버렸다. 전부 끝내니 11시가 넘어 카페든 빵집이든 모두 문을 닫아버려서 편의점 조각케잌이나마 사 들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고작이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끝까지 꼬인다는 걸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깨달은 그녀였지만 역시 이런 일은 깨닫는다고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스미는 해맑게 웃으면서 아리사의 질문에 대답을 들려줬다.


"응! 완전히 나았어! 그리고 아스미의 고민도 들어줬고! 숙제도 내줬어!"


"웬 숙제?...... 아무튼 다 나았으니 다행이네."


"헤헤, 아리사~ 여기 올라와~"


카스미가 더블 베드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리사는 먼지가 나니까 이불 두드리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카스미가 반짝거리는 미소로 자신을 맞이하는 것이 기뻐서 그런 잔소리는 접어두고 침대로 올라갔다.


"넌 괜찮아?"


아리사가 걱정을 담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리사는 물어놓고도 좀 더 섬세하게, 좀 더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 묻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리사는 어제 카스미가 드물게도 서럽게 울었던 일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다. 이러나저러나 아리사는 카스미가 되도록 웃으며 지내기를 원했다. 험악한 바깥의 현실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그 자체로 빛나줬으면 하고 항상 바랬다. 물론 우는 카스미도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카스미가 타인이나 현실 때문에 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카스미는 슬픈 이야기를 듣고 우는 거면 충분한 것이었다.



"응, 괜찮아! 아스미도 나를 엄~청 좋아한다고 말해줬으니까! 정말, 솔직하지 못한 게 아리사를 닮았다니까? 너무너무 귀여워."


"켁! 나를 닮았다고?"


아리사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카스미를 바라보면서 반문했다. 하지만 카스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진짜 옛날에 솔직하지 못한 아리사 같아서 너무 귀여워~"


"내가 잘못 키운 건가. 난 우리 딸이 나보다는 카스미를 닮았으면 좋겠는데."


아리사가 굉장히 복잡한 심정으로 자조하듯이 말하면서 눈을 돌렸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을 닮아서 말주변도 없고 무심코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아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스미는 아리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아니야! 나는 우리 아스미가 아리사를 닮아서 상냥하면서도 똑똑하고 예쁘고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애가 됐으면 좋겠는걸!"


갑자기 칭찬 세례를 받은 아리사는 귀까지 빨개져서는 카스미를 바라보며 입술만 뻥긋 뻥긋하면서 아, 에 따위의 의미 불명의 소리를 냈다. 그런 아리사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스미는 계속 말했다.


"아리사, 난 아리사에게 정말 고마워. 아리사와 함께하는 이 시간 일분일초가 반짝이는 보석 같아서! 아리사 덕에 가진 우리의 소중한 딸 아스미가 옛날 아리사를 보여줘서 매일매일 아리사와 처음 만난 그 두근거림을 떠올리게 해줘! 그러니까, 아리사와 아스미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보석 같은 추억이야."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서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카스미는 쉴 새 없이 아리사를 공격했다. 무자각이 가장 무섭다는 걸 카스미와 사귄 약 15년간 계속 생각해온 아리사였다.


"그러니까, 아스미도 아리사처럼 누군가에게 반짝이고 두근거림을 주는 그런 애가 됐으면 좋겠어...... 아! 이미 내게 반짝임을 주고 있으니까 이미 된 건가?! 헤헤...... 아리사? 얼굴이 빨간데? 혹시 열 있어? 옮은 건 아니지?"


이마에 다가오는 카스미의 손을 무심코 밀쳐내려던 아리사는 생각을 바꿔서 카스미의 손을 상냥하게 잡았다. 그리고 빨개진 얼굴로 카스미를 계속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아리사가 자신을 바라보자 카스미도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졌다. 정말 처음 만났을 때랑 전혀 바뀌지 않은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점차 열이 올라서 카스미도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아리사....... 그렇게 쳐다보면...... 좀 부끄러운데……."


"전해졌지?"


아리사가 갑자기 손을 떼면서 말했다. 카스미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는 빨개진 채로 웃으면서 말했다.


"응! 아리사의 마음...... 전해졌어."


아리사와 카스미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소리 내 웃었다. 킥킥 소리를 내면서 웃다가 손을 맞잡아 온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슴에 얼굴을 갖다 대 서로의 고동을 느끼기도 하면서 밤을 보냈다. 카스미의 고동을 얼마 동안 느끼던 아리사는 천천히 몸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카스미의 온기를 느끼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따뜻한 가슴과 달콤한 냄새가 기분 좋아서 카스미에게 계속 기대고 있던 아리사는 카스미가 부르는 소리에 얼굴을 떼고 카스미를 바라보았다. 카스미의 자색 눈동자도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눈동자를 보니 어쩐지 방금 부르던 목소리에도 끈적한 온기가 담겨 있었던 것 같았다. 서로의 달아오른 눈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곧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눈을 감고 천천히 조심스레 입술을 겹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버드키스로 쪽쪽소리를 내며 입술을 맞대던 그녀들의 키스는 곧 혀가 들어가면서 농밀한 소리를 내는 어른의 키스가 되었다.


"카스미, 사랑해......응, 흐읏...."


"나도...흣...."



두 사람의 끈적하고 농밀한 입맞춤이 추운 밤공기를 후끈하게 데웠다. 아리사는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었지만 카스미의 애달픈 표정과 달아오르면서 젖어 든 보라색 눈동자를 보자 그런 걱정은 씻기듯이 사라져버렸다. 그저 사랑스러운 자신의 연인을 부드럽게 껴안으면서 단추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낮보다 뜨거운 두 사람의 밤이 서서히 저물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면접 등등으로 바빠서 쓰다가 쓰다가 지우고 하다보니까 이상하게 되어버렸음


분명 지운다고 지웠는데 왜 양이 더 늘어난 건지 알 수가 없네


아무튼 분량조절 실패로 완결은 4편으로 날 것 같은데 사실 굵직굵직한 갈등과 사건은 모두 끝났어요 4편은 후일담이라는 생각으로 쓰고 싶은걸 쓰려고 합니다


카스미가 정말 다루기 힘든 캐릭터라서 대사를 고민 많이 했는데 범인의 머리로 천재의 감성을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인듯 합니다 나름 카스미의 감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잘 안된 것 같음


그리고 맨날 카스아리 19금 망상은 하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까 이 순수한 총수들한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자괴감도 들고 묘사도 이상해서 그냥 여러분의 망상으로 남깁니다



4편은 2월 끝나기 전에 다 써서 가져올게요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대백갤을 찾고 찾아서 발견해낸 원본 썰 링크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420430


이거 찾는데 엄청 오래걸림 역시 대백갤 흥갤 인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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