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랑의 여신, 아스타르테의 성녀는 여신의 사랑을 대행한다.

클레르 에클레르는 모든 신관의 모범이고 완벽한 성녀였다. 그녀는 가장 낮은 곳에도 손을 뻗었고 않았고 나환자를 끌어안으면서도 미소지었다.

그 손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웃음이 너무 따스해서, 그녀를 호위하는 성기사 아브릴 르클레르는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었다.

어느날 밤, 둘만이 남은 방 안에서 클레르가 차 한잔을 권했다. 나긋나긋한 손이 찻잔에 물을 따르는 순간, 아브릴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찻물을 따르던 손이 멈췄다. 클레르가 탁자 위에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클레르가 물끄러미 아브릴을 바라보았다. 아브릴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얼버무려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클레르가 입을 열었다.

"동성애는 죄악이에요, 자매님."

이미 늦었다.

잠시 사라졌던 이성과 양심이 되살아났다. 아브릴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클레르의 앞에 무릎 꿇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성직을 반납하고 신전을 떠나겠습니다."

망령된 말로 당신을 모욕해서 죄송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정처 없이 흘렀다. 뱃속에서 죄의식이 넘쳐 흘러 바닥에 고였다.

클레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발이 조용히 바닥을 디뎠다가, 사뿐사뿐 움직였다.

"성녀님?"

아브릴은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선 클레르가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동성애는 죄악이지만……."

찰칵, 하고 문이 굳게 잠겼다. 

"……사실, 저도 죄악의 화신이라서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클레르가 다가왔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아브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살며시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의 감촉이 꿈처럼 몽롱했다. 아브릴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고, 클레르는 조용히 눈웃음쳤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아브릴은 머뭇머뭇 일어섰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을 겨우겨우 똑바로 세우자마자 클레르의 얼굴이 확 가까워졌다. 햇살이 새하얗게 쏟아지는 듯한 기분에 아브릴은 눈을 감았다.

클레르가 아브릴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수줍게 닿았던 입술은 금방 떨어졌지만 아브릴은 클레르의 품속에서 떠나지 못했다.

갑자기 클레르의 손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아브릴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성녀님?"

클레르가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여린 손가락이 제 옷을 풀어헤치는데도 아브릴은 움직이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클레르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첫날부터 이런 일을 하게 될줄은 몰랐다. 아브릴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클레르가 살풋 웃었다.

"생각보다 적극적이시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지금 도망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아브릴은 무언가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클레르의 침대가 아브릴의 등을 폭신하게 받았다.

새하얀 매트리스에 잔잔한 향기가 배었다. 같은 향이 클레르의 살결에서도 났다. 아브릴은 더듬더듬 말했다.

"저, 성녀님.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몸을 가까이 하며 클레르가 속삭였다.

"말씀드렸지요. 죄악의 화신이라고."

사방에 가득한 그녀의 향기에 아브릴의 숨이 막혀 왔다.

아브릴의 옷을 벗기며 클레르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사실 그녀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의 여신의 성녀인데도.

클레르는 완벽한 성녀였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지만 뼈대는 한껏 깎아낸 듯 가늘었다. 피부는 밀랍처럼 희었고 길게 기른 머리칼은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그녀를 마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만족했다. 성녀라면 이래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녀 많은 것 중 타고난 것은 신의 은총뿐이었다. 나머지는 고된 훈련과 식이요법, 연금술, 성법(聖法)과 마법으로 몸과 마음을 녹여 성녀라는 틀에 부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브릴의 나신은 클레르와 정반대였다. 그녀를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고 옷을 벗기는 동안 생각이 확신으로 굳었다.

클레르는 천천히 아브릴의 몸 한가운데를 매만졌다. 눈을 꼭 감고 있던 아브릴이 흠칫 몸을 떨었지만, 손끝을 타고 스치는 살갗의 감촉은 단단했다. 살짝 누르듯 훑어 내리자 근육의 굴곡이 선명했다. 키는 클레르보다 작은데, 그 작은 몸 어디에 이만한 힘을 머금은 것인지 신기할 지경이엇다.

'노력했겠지.'

굳은 신앙을 바탕으로 몸을 학대하다시피 하는 사람만이 성기사가 될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성녀의 호위를 맡을 정도니 남들의 두 배, 세 배는 노력했을 것이었다.

클레르는 아브릴이 지나온 삶을 상상했다. 단련한 몸과 마음을 무기 삼아 악마를 징벌하고 많은 생명을 구했을 삶.

그녀가 그렇게 사는 동안, 클레르는 신전의 전시품으로 살았다. 호위와 안전장치와 신의 가호가 없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클레르는 성녀라는 역할이 싫지 않았다. 사람을 돕고 신의 은총을 퍼뜨리는 삶은 분명 보람찼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 신전의 웃어른들이 미처 녹여내지 못한 어딘가에는 뒤틀린 욕망이 남았다. 

손끝에서 아브릴의 몸이, 더 없이 단단하고 강인한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욕망이 이를 드러냈다. 

'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이렇게나 강한 사람이 울먹이고 허덕이고 애원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기쁠까.

클레르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뒤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아브릴은 여전히 눈을 감고만 있었다. 클레르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고.

피곤해서 일단 여기까지만 써서 올림

대회 끝나기 전에 추가본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