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죽여도 더 못 씀

덜걱 하고 자동문이 열렸다.

따듯한 실내와는 다르게 어둑한 밖의 추위는 살을 에는 듯했다.

어디론가 향하는 발길이 부산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에 지일은 수민이 보고파졌다.

손을 가볍게 비비고 수민에게 연락하려는 찰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연갈색 긴 머리를 모아 귀에 거는 모습

어렴풋하게 보였으나 틀림 없이 수민이다.

매일 밤 잠에 들 때마다 수민과의 기억을 곱씹는 지일이 잘못 보고 들을 리가 없었다.

얇은 밑창에 돌이 밟히는 것도 모른 채 달려갔다.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날 보려 여기까지 온걸까?

행복한 상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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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 앞의 광경은 전혀 반갑지도 우습지도 않았다.

수민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남자가 수민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몸 속에서 솟구치는 피가 온 머리에 다다른다.

“이 씹새끼가!”

서류가방을 내팽겨치고 두 손을 깍지 껴 억센 팔을 내려친다.

남자는 예기치 못한 충격에 뒤로 몸이 기울어지고 그 새를 틈타 수민의 허리에 팔을 감는다.

수민은 깜짝 놀라 보였으나 제 얼굴을 보더니 눈을 두어차례 굴리고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한 듯 지일의 손을 바투 잡아 왔다.

“지일아! 뛰어!”

수민이 앞장 서 달리기 시작하자 맞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널을 뛰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같은 머리카락에,

뇌 속을 뒤섞는 달큰한 향에, 얼마나 더 마음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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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슥한 뒷골목에 들어서자 둘은 그제서야 멈추었다.

헐떡이던 숨을 고른 수민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는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야.”

“...응.”

수민이 날카롭게 쳐다보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가로등 하나가 기침하듯 점멸하자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내가 나쁜 말 쓰라고 했어 안했어?

지일은 억울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심결에 욕을 하기는 했지만

몇 번을 다시하던 마찬가지 였으리라.

“나 욕한 적 없어 진짜야!”

지일은 재빨리 수민의 손에 볼을 비비며 아양을 떨었다.

수민이 아무 말이 없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만 도록 굴려 눈치만 봤다.

"으응... 진짠데"

수민이 짐짓 한번만 봐준다는 느낌으로 한숨을 쉬자

지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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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하고 안기는 복슬복슬한 느낌이 마치 애완견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지랄맞은 개.

하지만 제 주인에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애정을 갈구하는 귀여운 짐승.

그게 바로 제 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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