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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쌍둥이가 화해하지 않는 이야기. (3/4) (가학/근친 요소 있음)

후구후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17 2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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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쌍둥이 언니는 벌을 준다.




 고요한 며칠이 지난 후.


 폰을 잊고 나왔다는 걸 깨달은 건 점심시간이 되어서였다. 시영이가 안 오는 날인 듯해서 톡을 보내려고 했는데 폰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엇갈릴 위험을 감수하고 시영이의 반에 갔다.

 시영이는 교실 맨 앞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시끄러운 교실의 소란과 격리된 듯 고요하게. 본 적 없던 모습이라 신선한 기분이 들어 잠시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상급생이, 그것도 이래저래 안 좋은 소문이 있을 상급생이 교실에 들어와서 가만히 서 있으니 당연히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시영이는 그 소란이 전혀 들리지 않는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보았다.

 그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서, 선배님…? 왜 여기 계시죠…? 학년이 떨어지셨나요…?”

 “유급도 아니고 학년이 떨어지는 건 뭔데.”

 “선배님이랑 같은 반에 다니고 싶다는 제 마음이 빚어낸 기적…?”


 한숨을 내쉬며 교실을 나오자 시영이도 얼른 따라 나왔다. 이동하는 곳은 언제나 가는 교내 정원. 거의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벤치에 앉자 시영이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내려와라?”

 “쳇.”


 입술을 삐죽거리며 옆에 앉는 시영이에게 가지고 왔던 종이백을 건넸다.


 “이게 뭔가요? 선배님 속옷?”

 “대체 뭘 먹고 자라면 그런 발상을 하게 되는 건지 진심으로 알고 싶다?!”

 “가장 받고 싶은 걸 말했을 뿐인데요.”

 “그걸 왜 받고 싶은데………………….”

 “어라, 이거….”


 시영이는 백 안에 들어 있던 도시락 통을 꺼냈다.


 “폭탄…?”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물론이죠.”


 시영이는 “때릴 거예요?” 하고 생글생글 웃었다. 기꺼이 딱밤으로 보답하자 이마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러니까 요염한 소리 내지 말라고….


 “그냥 생각난 김에… 너는 늘 배가 고픈 것 같으니까.”

 “그 편견은 수정해 주셨으면 하는데…. 그치만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새댁 도시락…. 예쁘기도 해라….”

 “………….”


 시영이는 황홀해하는 표정으로 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방부 가공해서 영구보존해도 되죠?”

 “…너 가끔 발언이 진짜 섬뜩하거든. 꼭 오늘 중에 먹어라? 오늘은 병원 들렀다 갈 거니까 도시락 통은 내일 돌려주고.”

 “그럼 오늘은 혼자 가야 하네요…. 아, 이거 맛있다…. 선배님, 요리라곤 날고기밖에 안 드실 것 같은 분위기로 이렇게 요리 잘하시는 건 반칙 아니에요?”

 “그 영문 모를 인상의 근거가 궁금한데…. 애초에 유부초밥 같은 거에 요리를 잘하고 자시고가 있어?”

 “또 기만 발언. 그거 요리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제 손을 거치면 유부초밥이 무슨무슨쌀이 되거든요.”

 “밥이 왜 과거로 되돌아가….”


 사실이라면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영이의 손을 보자 등 뒤로 샥 손을 치웠다.


 “너무 보지 마세요. 선배님이랑 달라서 짧고 통통한 손이라 부끄러운걸요.”

 “귀엽고 예쁜 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 하면 더 손을 못 꺼내게 되거든요.”


 시영이는 무릎 위에 올려 둔 도시락을 손을 쓰지 않고 먹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시작했다. 인체 구조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도와달라는 시선을 내게 보냈기에 할 수 없이 거기에 따랐다. 방울토마토를 하나 집어 입가에 가져가자, 앙 하고 방울토마토…와 내 손가락을 물었다.

 입술에 덮이고 이에 붙들린 손가락 끝을 축축한 혀가 장난치듯 두드린다. 빈 손으로 옆구리를 푹 찌르자 앗! 하고 입을 벌렸기에 그 틈에 손가락을 뺐다.


 “너 말야…. 그런 거 하지 말랬지.”

 “손가락을 빠는 건 야한 일인가요 선배님? 선배님은 손가락을 빨리면 야한 기분이 드시나요? 그런 건가요? 앗…! 아앗…! 야한 거 금지!”


 반성할 때까지 옆구리를 마구 찔러 주었다.


  * * * * * * *


 병원의 엄마는 언제나처럼 기운이 넘쳐 보였다. 물론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 병원에 10년 가까이 입원해 있을 이유가 없으므로 언제나처럼 무리하는 것이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못했지만…. 좋은 애라는 정도만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좀 과하게 키스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거라면 나도 싫지 않고….

 엄마는 처음에는 보러 가겠다고, 다음엔 병실로 데려오라고, 마지막엔 사진이라도 보여 달라고 칭얼거렸다. 엄마에게 쓰긴 좀 그렇지만,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이 없다. 내가 필사적으로 거부하자 큰딸이 치사하게 군다며 저녁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상 적절한 표현이 없다.

 간신히 달래서 저녁을 드시게 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실 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애인 생겼으니까 더 안 오겠네….” 하는 말에 심각한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 때문에 그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요즘엔 연이도 학생회 때문에 바쁘다고 계속 안 와서 엄마 쓸쓸한데.


 연이는 요 며칠 내내 병원에 갔다 왔다며 밤늦게나 귀가하곤 했었다.


  * * * * * * *


 연이는 집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 언니 왔어?”라고 반색하며 현관까지 달려왔다. 평소라면 묶고 있을 머리카락도 풀고, 파자마 차림으로 나를 반겼다.

 나와 연이는 머리 모양 정도를 제외하면 차이가 없다. 몇 번 탈색했다가 되돌린 내 머리카락이 좀 더 거칠긴 하지만. 머리를 막 감거나 해서 머리를 묶지 않았을 때의 연이를 보면 거울 속의 자신이 현실에 나와 있는 듯해서 기묘한 느낌이 든다.

 그 얼굴에 나라면 절대로 짓지 않을 표정,  어린애처럼 생글거리는 미소가 떠올라 있다면 더더욱.


 “…기분 나쁘게 뭐야?”

 “아무것도 아닌데~. 병원 갔었지? 엄마는 어떠셔?”

 “나빠지신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근데 진짜 뭐야? 술이라도 먹었어?”


 연이에게서 진한 술 냄새가 났다. 어이없어하며 주방으로 가 보니 식탁 위에 아버지에게 선물로 날아왔던 양주가 뚜껑도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글라스가 둘. 둘 다 호박색 액체가 약간씩 남아 있었다.


 “………………너 누구 불러서 술 마셨어?”


 상황은 명백했지만, 나도 안 할 짓을 연이가 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재차 확인했다. 연이는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술병을 들어 본 나는 내용물이 거의 바닥났다는 사실에 다시 당황했다. 잘은 몰라도 독한 술 같은데….

 비틀거리거나 발음이 꼬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할 만큼 헤실거리는 모습이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면 꽤 심하게 취한 것 같았다.


 “…내가 치울 테니까 넌 들어가서 자.”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연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너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언니, 메시지 보낸 거 안 봤어? 안 봤나? 안 봤구나?”

 “폰 안 갖고 나가서. 뭐 보냈어?”


 연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장난기와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 자주 봤던, 칭찬을 요구하는 표정. 잘했어 잘했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이히히 소리를 내며 좋아했었다.

 당연히 요새는 본 적이 없었다. 볼 이유도 없었다.


 영문 모를 불안감에 방으로 달려갔다. 평소라면 책상 위에 던져 두는데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떠올려 보니 아침에 나갈 때도 찾다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두고 갔었다는 게 기억났다.

 띠링 하고 톡 소리가 들려서 휴대폰의 위치를 알았다. 충전 케이블이 연결된 채로 책상 옆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집어 들고 확인하려 하는데 다시 톡이 왔다.


 「봤어?」


 팝업 알림을 무시하고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려고 하는데 또 톡이 왔다.


 「봤어?」


 연이의 이름으로 된 대화 목록을 찾아서 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톡이 울렸다. 「봤어?」 「봤어?」 「봤어?」 「봤어?」 「봤어?」 「봤어?」 「봤어?」 「봤어?」


 “그만 보내!”


 빽 소리치자 간신히 알림창이 멎었다. 연이의 대화 목록에 들어가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봤어?」의 목록을 거슬러 올라가, 한 시간 전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영상 파일이었다.


  * * * * * * *


 화면에는 작은 방이 비치고 있었다. 생경하면서도 익숙해서 한순간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곧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건 내 방이었다. 평소라면 결코 볼 일이 없는 구도라서 즉각 떠올리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잠깐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다. 상단에 뚫린 구멍 중 하나에서 렌즈가 반사광을 냈다. 웹캠….

 영상은 내 노트북의 웹캠을 써서 촬영된 것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

 한 명은 시영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나를 빼닮은 사람이었다. 나일 리는 없으니까, 연이다….

 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소리가 녹음되지 않아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영이가 뭔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연이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맞추고, 부끄러운 듯 웃더니 다시 입을 맞추고, 양손을 볼에 대고 깊게 입맞춤을 했다.

 나와 시영이는 제법 신장 차가 있다. 당연히 연이와 시영이도 그랬다. 무리하게 발돋움해서 입맞춤을 하던 시영이가 위태롭게 움직이다가 연이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넘어졌다.

 간신히 입술을 떼어놓은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한동안 열렬하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했지만, 서로의 등에 두른 팔은 풀지 않은 채였다. 

 다시 입맞춤이 시작되었지만 이번에는 금세 떨어졌다. 대신 떨어진 입술은 서로의 목 줄기를 헤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시영이의 입술이 연이에게서 떨어지고, 연이는 좀 더 깊게 시영이에게 파고들었다.  시영이는 팔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움찔거리기만 했다.

 뭘 하고 있는 걸까 알고 싶어도, 고정된 웹캠의 화면은 움직이지 않는다. 내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휴대폰 화면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입맞춤을 하면서, 연이가 시영이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얌전한 디자인의 브래지어가 드러나고, 시영이가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마사지하듯 느릿하게 브래지어 위를 맴돌던 연이의 손이 컵 아래로 파고들자, 시영이가 저항하듯 몸을 빼려 했다.

 그러나 연이는 입맞춤을 계속하면서 한 손으로 시영이를 꼭 붙잡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강하다고는 할 수 없던 시영이의 몸부림이 멈추자, 한 손으로 브래지어의 어깨끈을 내리더니 컵을 위로 올려 뽀얀 가슴을 노출시켰다.

 입맞춤을 멈춘 연이가 고개를 아래로 내려 가슴에 달라붙자, 시영이가 격하게 헐떡거렸다. 그러나 막으려고는 하지 않고, 팔을 들어 브래지어를 완전히 뺄 수 있도록 협력할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빠는 연이를,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다정하게 품에 안았다.

 좌우를 바꾸어 혀와 입술로 가슴을 애무하던 연이가 겨우 고개를 들자, 시영이는 연이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까 연이가 한 것보다도 더 느릿하고 부드럽게, 연이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영상은 거기에서 멈췄다.

 영상 위에 떠오른 「다시 보기」 버튼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 * * * * *


 욕실로 뛰어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미끄러졌다. 타일 바닥을 무릎으로 찧어 아픔이 밀려왔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이 배 속의 무엇인가를 토해내야만 했다.

 변기를 붙잡고 입을 살짝 벌린 것만으로도 배 속의 모든 게 쏟아졌다. 음식물이 아니라 뭔가 다른 걸 토해내는 느낌이 들었다. 내장을 가르고 으깨서 뱉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뭘 본 거지.


 녹초가 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변기의 버튼을 눌러 토사물을 흘려보내고, 세면대에서 더러워진 얼굴을 씻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얼굴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눈을 감고, 속으로 열을 센 후 다시 눈을 떴다. 당연하겠지만,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처음으로 알았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욕실을 나왔다. 거실로 가자 소파에 드러누워서 지루한 듯 TV를 보고 있던 연이가 반갑게 몸을 일으켰다.


 “봤어, 언니? …언니?”


 리모컨을 집어 TV를 껐다. 잡음이 사라지고, 모든 신경을 연이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내 기세에 질린 것처럼 연이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3월 초, 농구부에 놀러 갔다가 시영이를 만났다고 했다. 태도가 살가운 후배로구나 생각했었는데 묘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리고 소문이 들려왔다. 걔는 레즈비언이라고. 중학교 시절에 동급생을 스토킹하다가 들통 나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었다고.


 “그렇지만…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 했어…. 저기, 나도… 그러니까….”


 뜻밖의 커밍아웃이었지만 이미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영상으로 충분히 봤으니까. 다만, 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연이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건 놀랄 만했다.


 “그렇지만 걔, 어딘가 이상한 애라서 역시 좀 껄끄러웠어. 그래서 다시는 접근하지 말라고 했는데… 언니에게 달라붙은 거야.”


 연이는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자기가 좋다던 애가 갑자기 나에게 붙어 있으니까.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기는 껄끄러웠다고 했다. 자기가 레즈비언이라고 내게 밝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웠으리라. 시영이는 내가 연이에게 집착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잘 알았다. 그게 뒷조사를 좀 한다고 알 수 있는 일이었을까? 사교 관계라곤 전무한 내 심경을 직관만으로 간파할 수 있는 걸까?

 연이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 훨씬 쉽게 말이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그런데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고, 사귄다고까지 하고…. 나는… 나는 언니에게 들켰을 때 어떻게 될까 계속 무서웠는데….”

 “…그래서 오늘 만난 거야?”


 연이는 오후에 시영이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언니에게서 떨어지라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만나자고 했다고. 그래서 집으로 불러들였다. 나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결과가 저 영상인 셈이다.


 “말 안 했던 거, 정말 미안해….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믿어 줄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으니까.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애써 목구멍 아래로 삼키면서, 간신히 물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해…?”

 “거짓말 아니야, 언니. 나, 정말로….”

 “거짓말이잖아.”


 영상 자체가 조작된 건 아니겠지. 내가 본 건 명백한 사실이리라.

 하지만 우연의 일치가 이상하다. 하필이면 내가 폰을 잊고 간 날 시영이가 연이와 몰래 만날까? 내가 병원에서 일찍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나 몰래 행동하고 싶다면 도리어 나와 연락이 가능한 날이 좋다. 그래야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있으니까.

 촬영 장소가 내 방인 것도 이상하다. 시영이가 정말로 노리는 게 내가 아니라 연이였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굳이 내 방으로 와서 그런 짓을 하려고 할까? 내 방만은 피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반면 연이가 나에게 증거를, ‘조작된’ 증거를 보여 주고 싶었던 거라면 이야기는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연이는 내가 휴대폰 같은 거 굳이 챙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어차피 시계와 웹툰을 볼 때밖에 쓰지 않으니까. 휴대폰을 슬쩍해 놓으면 내가 시영이와 연락하는 걸 막을 수 있고, 나인 척하며 시영이를 불러내는 것도 간단하다. 내가 병원에서 일찍 돌아오는 사태도… 연이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았을 테지.

 굳이 내 방에서 그런 짓을 한 것도 간단히 해명된다. ‘그러지 않는 쪽이 이상하니까’. 연이가 머리를 풀고, 일부러 피부의 윤기를 없애 푸석하게 화장하고서 나인 척하면서 시영이를 꼬드겼다면.

 노린 듯이 침대를 찍고 있으면서 소리만은 들리지 않는 웹캠도 이상할 게 없다. 소리가 들리면 곤란한 거다. 시영이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을 테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려고 한 게 이해가 안 돼. 그런 거짓말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한 게 이해가 안 돼.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짓을 하는 연이를,

 전혀 모르겠다.


 멋대로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멋대로 미워한 건 나였다. 연이는 영문도 모르고 거절당해서 당혹스러워했고, 계속해서 손을 뻗었지만 나는 냉담하게 쳐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걸 연이의 잘못으로 돌렸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영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 연이가, 그 시영이에게 저런 짓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고 했다.

 마음만을 제외하면 완전히 나와 동일했어야 할 존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안 믿어. 믿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를 모르겠어.”

 “언니 동생이잖아…. 내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믿어 줘야 하잖아…?”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연이는 정말로 상처받은 것처럼, 치명상을 입은 사람처럼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믿어 주지 않는 건데…? 왜 나보다 걔 말을 믿는 건데? 이상해. 언니가 이상해…. 정말로 나보다 걔가 좋은 거야…?”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날 좋아한다고 말해 줬으니까! 무엇 하나 너보다 나은 게 없는 내가 좋다고 해 줬으니까! 게다가… 게다가… 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줬단 말야….”


 연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내 마음을 지배한 지 너무 오래 되어 버려서, 그게 잘못인 걸 알아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시영이에게 마구 뒤흔들리면서 그 얄팍한 미움의 토대가 무너져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쓰레기 같은 나를 조금이나마 털어냈기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야.”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의 절박한 표정이 어디 갔느냐는 듯 냉담한 표정을 지은 연이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라고. 언니가 나한테 집착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야.”

 “……뭐?”

 “언니 정말 멍청하다. 논리나 근거가 있어서 사람을 믿는 게 아니잖아. 믿는 게 먼저고, 그 다음에 그걸 합리화하려고 논리나 근거를 찾는 거야. 안 그래? 언니 방에서 그러는 게 이상하다고? 걔가 ‘하나 선배님 방에서 하자. 엄청 재밌을 거야.’라고 말했을지도 모르잖아? 언니가 보지 못한 뒷부분에 걔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언니에게 들려주지 않은 소리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지? 합리적인 흉내를 내고 싶다면 우선 원본을 확인해야겠다고 말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아?”


 연이의 갑작스러운 표변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근거조차 다 확인하지 않고 결론부터 냈지? 그건 언니 마음이 걔에게 쏠렸다는 증거인 거야. 언니 마음이 내게서 떠난 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이상해도 내 말을 믿었을 거야.”


 더더욱,

 연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괴로워하는 언니 보는 게 제일 재밌었는데. 이젠 그것도 끝이네. 유감이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남이었던 적이 없는 연이가, 남을 넘어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려 하고 있었다. 아까 영상에서 본 내용보다도, 지금 이 순간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는 연이의 얼굴 쪽이 더 이해하기 어렵고, 더 무서웠다.

 하지만….


 “한동안은 얘나 가지고 놀아야지. 좋은 영상도 있겠다, 재미있겠지? 또 자살한다고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네.”


 그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내용은 달랐지만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짓다 망치고는 내 모래성에 물을 가져다 붓던, 딱 그 시절의 심술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반응도… 그때와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그때는 울음을 터트린 연이를 아버지가 달래고 어머니가 날 혼냈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는 병원에, 아버지는 해외 부임 중이다.


 나를 밀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연이의 팔을 붙잡았다. 뿌리치려 할 때 더욱 힘껏 당겨서 균형을 무너뜨리고, 꾹 쥔 주먹 밑 부분으로 명치를 때렸다.

 단숨에 바닥에 쓰러져서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컥컥대는 걸 곁눈질하면서 찬장을 뒤졌다. 박스 테이프를 찾아서 가져온 다음, 연이의 팔을 뒤로 돌려서 테이프로 둘둘 감았다.

 간신히 기침을 멈춘 연이가 몸을 뒤집었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연이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어디까지가 정말이고 거짓말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방금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냥 못 넘어가.”


 누군가의 잘못 같은 걸 규탄할 자격이 내게 있을 리 없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럴 자격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연이의 언니니까.

 연이는 내 동생이니까.


  * * * * * * *


 내가 진심인 걸 연이도 눈치챘으리라. 비명을 지르려고 해서 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자유로운 발을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뒤집은 다음 체중을 실어 등을 누르며 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완전히 탈진해서 발버둥도 멈춘 걸 확인했다.


 “조용히 안 하면 더 화낼 거야.”


 경고한 다음 다시 뒤집어서 배 위에 올라타고 테이프를 뜯었다.


 “아, 아아아악! 읍….”


 다시 비명을 지르려 해서 왼손을 입에 밀어 넣어 막았다. 검지와 중지가 목젖에 닿아 구역질이 났는지 몸을 뒤틀었다. 연이는 깨물려고 했지만 구역질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손가락에 잇자국이 세게 남겠지만 그뿐이었다.

 찰싹!

 오른손으로 연이의 왼뺨을 때렸다. 충격에 입이 벌어지고, 몸이 뒤틀리면서 다시금 손가락 끝에 목젖이 닿았던 모양이었다. 연이가 헛구역질을 하며 전신을 뒤틀었다. 입가에서 내 손을 타고 침이 줄줄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연이의 입에서 완전히 힘이 빠진 걸 확인했다.

 따귀를 맞은 뺨이 새빨갛게 물들고, 눈가에 눈물이 괴었다. 뿌옇게 된 눈으로 원망을 담아 날 바라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셋을 세고서 다시 한 번 왼뺨을 때렸다. 그리고 다시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뺨을 때렸다. 하나, 둘, 셋. 뺨을 때렸다. 하나, 둘….

 연이가 읍읍거리는 소리를 냈다. 눈물은 줄기가 되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입에서 손을 빼자 연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어, 얼굴은… 때리지 마…. 어… 언니보다… 못생겨지는 건… 싫어….”

 “….”

 “어, 얼굴은 금방… 티가 나잖아…. 벼, 변명할 수 없게… 돼…. 엄마가… 눈치챌 거야….”


 지당한 지적이었다. 엄마에게 발각당하는 것만은 나도 피하고 싶었다.


 “네가 조용히 한다면.”


 연이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긍정이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연이를 일으켜 내 방으로 걷게 했다. 연이는 완전히 순응하기로 했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따라왔다.

 연이를 침대에 내던지고서 노트북을 켰다. 웹캠을 켜고 화면이 제대로 찍히는지를 확인했다. 아까 휴대폰에서 본 것과 같은 구도의 화면이 비치고, 웹캠을 조작하는 내 뒤에서 침대 위의 연이가 불안해하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녹화를 시작하고서 침대로 향했다. 침대 위의 연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움찔움찔 뒤로 움직여 벽에 등을 대고 있었다.

 파자마 상의의 버튼을 벗기기 시작하자 연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언니…. 뭐, 뭘 하려는 거야….”

 “네가 아까 했던 일.”


 그것처럼 달콤하진 않겠지만.


 버튼을 다 풀자 연이의 상반신이 다 드러났다. 아까 본 휴대폰 속 영상이 왜 시영이가 블라우스를 벗기려는 장면에서 끝났는지를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키, 똑같은 목소리라도 같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깡마르고 앙상해 볼품없는 내 몸과 달리 축복받은 육체가 거기 있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영양만을 보내고 나머지 불순물은 사라지게 만드는 신비한 기관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몸을 보면 그 누구라도 차이를 알아채겠지. 그러니까 영상은 거기에서 멈췄을 것이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확인할 용기도 나지 않지만.


 양손을 뒤쪽에서 테이프로 묶었기 때문에 파자마를 완전히 벗길 수가 없었다. 그대로 뒤로 넘기고, 옷을 사용해 손목을 테이프 위에서 다시 한 번 더 묶었다. 수면 안대를 꺼내 씌워서 준비를 마무리했다.

 연이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로, 팔을 뒤로 묶이고, 풍요로운 양 가슴을 노출한 채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려움에 바싹 선 젖꼭지가 안타깝게 자신을 주장했다.

 나는 연이의 옆에 다가서서 그 가슴에 얼굴을 가져갔다.


 “어, 언니…?”


 숨결이 닿아 간지러웠는지 연이가 몸을 움츠렸다. 나는 한손으로 그 어깨를 잡아 지탱하면서 조심스럽게 유두에 입을 댔다. 약하게 빨고, 입 안에서 굴렸다. 깜짝 놀란 연이가 몸을 떨고, 뒤로, 어딘가로, 내게서 멀리 도망치려 했다.

 물론 허락할 수 없다. 나는 입 안에 문 연이의 유두가 한껏 민감해진 걸 확인한 후, 최대한 조심하지 않으면서 어금니로 씹었다.


 “……!”


 경악한 연이가 비명을 지르리라 생각했는데 용케 참았다. 대신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내게 붙들려 있는 데다가 젖꼭지가 물려 있는 상태에서 그래봤자 고통이 배가될 뿐이다. 풍요로운 곡선을 그리는 가슴이 한순간 기묘하게 펴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연이가 덜덜 떨며 질문하려 했다.


 “…어, 언니… 뭐, 뭘….”


 가슴에서 입을 떼고, 부드럽게 출렁이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힘껏 때렸다.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흰 가슴에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희고 아름다운 세계를 불쑥 덧칠한 그 붉은 흔적이 애처로웠다.

 연이는 아까 티가 나니까, 변명할 수 없게 되니까, 엄마가 알아챌 테니까 얼굴을 때리지 말라고 애원했다.


 얼굴과는 다르다.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들키지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다.


 나는 연이의 가슴 한쪽을 한껏 깨물었다. 상처가 나지는 않을 정도로. 하지만 잇자국만은 누가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과 입술과 혀, 이를 모두 이용해서 연이의 가슴을 애무했다. 연이가 거기에 순응해 몸을 맡길 것 같아지면,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고 하면, 그때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때렸다. 손톱 끝으로 가슴과 유두를 누르고 비틀었다. 형태가 무너질 때까지 가슴을 짓눌렀다.

 연이는 포기했다. 다음 순간 무엇이 찾아올지 알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베갯잇을 깨물며 신음을 참았다.

 한참인지 한순간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연이의 가슴 어디에서도 흰 살갗을 찾을 수 없게 된 걸 확인한 나는 연이에게서 살짝 몸을 뗐다. 5초, 10초, 1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안 연이가 무엇인가 입을 열려 했다.


 “아직이야.”


 연이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연이의 파자마 아래쪽을 향했다. 팬티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그저 그것만으로도 축축한 소리가 났다.


 “아까부터 다리를 꼬는 거, 알고 있었거든.”


 흠뻑 젖어버린 다리 사이를 움직이며 손끝으로 클리를 찾았다. 그 끝단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자, 연이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기분 좋아하는 거야. 아프지 않으면 벌이 아니잖아?”

 “…어, 언니…………? 그, 그, 그러지 마… 나… 나….”


 연이가 어째서 이렇게 멍청한 걸까 생각했다. 방금까지 그 몸에 분명히 가르쳐 주었는데. 기분 좋게 해 줄 수도 있고, 아프게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리를 내면, 그땐 반드시 아프게 된다고.

 연이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혀로 쓸어 클리를 일으킨 다음, 앞니 사이에 가볍게 끼우고….


 “…………………………………!!!!!!!!!!!!!!!!!!!!!!!!!!”


 연이는,

 비명을 참았다.

 아, 역시 착하구나.


  * * * * * * *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이 어쩐지 몽롱했다. 벌을 줘야만 한다는 생각도 흐려지고, 지금은 그저 연이의 가슴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귓가에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했어…. 잘못했어, 언니야….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응…? 언니야….”


 연이가 울면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때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지금은 어째서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아니,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연이의 수면 안대를 벗겼다. 두꺼운 천으로 만든 안대가 축축했다. 계속해서 흘린 눈물 때문이었겠지. 연이의 눈은 붉게 충혈되고, 눈가는 잔뜩 부었다. 볼도 크게 부었고, 실핏줄이 터졌던 듯 군데군데 피가 보였다.

 어째서인걸까. 분명히 나와 같은 얼굴인데, 늘 미워했던 얼굴인데, 이 순간만은 이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연이가 나를 보았다. 눈물로 그렁그렁한 눈이 과연 나를 제대로 포착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혀 내밀어.”


 덜덜 떨면서 내민 그 혀를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나왔다. 혀를 붙잡힌 연이는 몸을 엉거주춤하게 구부린 채로 나를 따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연이를 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면서 연이의 혀를 잡아당기며 놀았다.

 나도 입을 열고, 연이의 혀 중간쯤에 마지막으로 잇자국을 남겼다.

 벌은, 여기까지였다.


 “씻자. 너 지금 냄새 장난 아냐.”


 그 원인 대부분은 내 침이었을 테지만.


 “…응.”


 물론 오랫동안 팔이 묶여 있었던 데다가 체력이 완전히 소진된 연이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 만큼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씻겨줘야 했다.


 같이 욕실에 들어오는 것도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에는 없었던 일이니까 최소한 5~6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때와 달리 어른스럽게 성장한 연이의 몸은, 솔직히 말하면 어딘지 씻겨 주는 내 쪽이 뭔가 포상을 받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가슴 근처는 엉망진창이지만. 왜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위기에 취했다거나 본능에 몸을 맡겼다는 게 맞겠지만, 무슨 분위기고 무슨 본능인 걸까….

 말로 하진 않았지만 연이가 그렇게 부탁하는 것 같아서 같이 욕조에 들어갔다. 어린애가 아니니까 둘이 들어가기엔 욕조가 너무 좁았지만, 필연적으로 맞댄 그 체온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하루 사이에 느낀 감정 기복이 너무 커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안심감이 있어서, 더더욱 자기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욕실을 나와 연이를 방으로 데려갔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연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연이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내 손을 잡고 따라왔다.

 침대에 눕게 하고, 이불을 덮어 준 다음 말했다.


 “그 영상은 지워. 뭐가 있었든 상관없으니까 앞으론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말고. 시영이에게 어떻게 얘기할지는 내가 생각한 다음 정할 거고,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응. 미안해, 언니.”

 “다신 안 그런다면, 그러면 괜찮아.”

 “……응. 저기, 언니…….”

 “응?”

 “다신 안 그럴 테니까… 대신… 가끔 같이 목욕해 줄래…?”

 “…뭐, 가끔은.”


 연이의 방을 나오면서 불을 껐다. 문을 닫고 잠시 벽에 기대어 혹시 뒤척이는 소리가 나진 않나 귀를 기울였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방에 돌아오자 굉장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트가 젖는 걸 넘어 매트리스까지 위태로운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완전히 노곤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몸을 다그쳐서 시트를 벗겨 세탁기에 처넣고 안방에서 여름용 이불 하나를 가져와 침대 위에 깔았다.

 불을 끄고 잠들기 전에, 최대한 애써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주 먼 옛날. 친구가 되자고 다가온 아이의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며 “우리 언니야! 내 거야!”를 외치던 연이의 모습.

 너무너무 이상하고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답을 못 냈었는데… 이거 설마… 연이가 나에게 응석을 부린 건가…? 질이 극단적으로 나쁘고 음험해졌지만, 정말 그런 건가?

 사실이라면 나는 대체 동생에게 뭘… 한 거지….


 답을 내는 게 무서워서, 잠으로 도망쳤다.

 머릿속의 시영이가 “문제를 뒤로 미루지 마세요!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싫다구요!”라면서 화를 내고 있었지만, 오늘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연이도 그렇고 시영이도 그렇고, 내일부터는 또 모든 게 잔뜩 바뀌어 있을 테니까 그때부터 열심히 하게 허락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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