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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고교생A는 쿨하게 사라진다.모바일에서 작성

귤맛팝(순한맛)(175.117) 2020.06.03 17:07:27
조회 419 추천 16 댓글 0
														
난 고교생 A.
고교생 A. 이름 따윈 알 필요가 없다.
그저 한낮 사타구니 놈의 이름 따위 알아서 뭐하겠는가.

평범한 학교 평범한 반. 그곳의 평범한 인남캐A. 그것이 나.

다만 단 한가지. 남에겐 말 못한 취미가 하나 있다.
그것은, 사이좋은 여자아이들의 흐뭇한 애정을 응원하는 것.

예를 들어 지금은 쉬는 시간.
학생들의 목소리와 발소리에 귀가 아파오지만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알수있다. 예를 들어 저기 교탁 앞.
우리반에서 사이좋기로 유명한 두사람.
꽁지머리를 묶은 허스키한 아이가 '안 시오'.
스트레이트 롱헤어를 하고 얌전한 분위기의 180cm의 키를 가진 아이가 '한 서예'.
오늘도 그녀들의 꽁냥거림이 시작된다.

주변의 소음탓에 정확한 대사를 캐치할수는 없지만 난 안다.
그녀들의 정겨운 목소리, 대화의 흐름, 서로에게 보내는 눈빛.
그리고 묘한 분위기의 스킨쉽.
눈도, 마음도 즐거워진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마음.
만약 저것이 진짜라면 응원해주고 싶다.

맞다. 난 백합러다.
솔직히 귀여운 여자애가 나래이터가 아니라 미안하다.

사실 난 원래부터 백합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백합이니 BL이니 사랑이니 뭐니 그런건 중학생 들어오기 전엔 생각도 안 하고 살았으니까.

평범하게 친구와 노는걸 좋아하고, 고든 프리맨과 거대로봇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소년의 모습이었다만...
이런 나에게 암울했던 시기는 바로 중학교 1학년부터, 그날 그것은 찾아왔다.

당시 내가 입학한 학교는 여학생과 남학생을 분리시키는 구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여학생을 본다는건 정말 낮은 확률이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학하고 얼마 안가 그날이 왔다.

"야이씨 그년 가슴 진짜 쩔어주지 않냐? 빨통이 완전 어우-"
"내가 꼭 그 년 (삐이이-)를 (삐이-)해서 (삐이이이이이-)해주고 싶어!"
"(삐이이이이이삐이삐이이이이이------)"

여학생들이 주변에 없기에 브레이크가 풀려버린 발정난 남자새끼들이
남성 호르몬을 주체못하고 음담패설로 교실을 채우는 지옥이 시작된거다.
내가 뭘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걸 굳이 언어로 정의해보자면......그래.

'섹슈얼 리얼리티 쇼크'

그때 딱히 내색하진 않았지만 내 머릿속을 대강 정리하자면
뭐래는거야 병(삐-)들이.
내 귀...
고막 뿌숴버리고 싶어...
당장 믹서가 눈앞에 있으면 머리를 쳐넣고 갈아버리는건데...

딱히 성에 대해 뭔가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욱
남자새끼들의 도를 넘은 음담패설은 순수했던 당시 나로선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고블린 100마리 정도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일제히 사타구니를 까고 나를 향해 자(삐이이이-)를 시전하는 느낌이랄까.

상상하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구나.

몇주간 계속되던 이 지옥을 나로선 버틸 방법이 없었고, 심신은 몇일도 안 가 너덜너덜해져 갔다.
앞으로 3년간, 아니 고등학교에 들어서도 저런걸 들어야하나 하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다.
아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후엔 군대갈거도 생각하면 더욱 속이 썩는다...
어떻게든 그걸 듣기가 싫어서 쉬는 시간마다 자리를 비웠다.
대부분 교실 어디든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도망칠 장소는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정원 정도가 전부였다.
다행히도 친구들과 수다떨거나 놀고있는 학생들은 이곳을 찾아오는 일이 없으며 학교 유리창이나 사람들의 눈에서 완전히 독립된 구조.
혼자 있고 싶을때 최적의 장소다.

'지겹다... 전학 갈... 아이씨 근데 거기도 똑같으면 어쩌냐고...'

남들 눈에 뛰고싶지 않아서 나무가 위치한 정원 구석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을때였다.
음악 한개를 다 들었을때 즈음, 두명인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 여자애들인가...?
에휴, 그래. 여자애들은 좋겠다. 분명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메이크에 대한 수다나 떨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겠지?
부럽다. 이럴줄 알았으면 나도 여자애로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근데 어쩐 일인지, 그녀들의 목소리가 금새 잠잠해졌다.
발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즉 계속 이 정원에 있다는 이야긴데?
의문이 든 나는 나무사이로 머리를 들었다.

'뭐지? 쟤네들도 음악 듣...'

쇼크는 두번 찾아온다.
것도 이번엔 불쾌한 충격이 아닌, 신선한 충격.

1학년 정도로 보이는 키작은 여자애와 2~3학년 선배로 보이는 쿨한 인상의 누나가
긴 시간 동안,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단 한순간. 길게 느껴지는 짧은 순간. 난 그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순간 비명이 튀어나올것을 어떻게든 입을 틀어막았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이지 않게, 나무를 벽으로 삼아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아.
뭐지 이 기분은...?

"푸하앗-! 선배. 여기서 이러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괜찮아. 여긴 오는 사람도 없는데다 유리창으로도 안보이거든. 여기라면 뭘 해도 괜찮아♪"

뭘 해도?! 뭘 할 셈인데?!
선배가 어딘가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그 아이에게 천천히 손을 뻗으려는 순간.
종소리가 교내에 울린다.

"하아... 역시 타이밍이 안 맞네. 남은건 학교 끝나고 할까?"
"......네♪"

그녀들이 돌아가고 몇초 지나서야 막혀있던 숨을 내뱉었다.
'뭐, 뭐지? 뭘 한다는거야? 이건 대체 뭐야??'

머릿속이 진정되지 않았다.
교실로 돌아왔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깟 음담패설과 수업따위 당연히 귀에 들어올리가.
정신이 어딘가로 나간듯한 상태는 집에 돌아와도 계속되었다.
손을 씻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그 날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동공이 열린 상태로 천장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가.

그 날 이후, 난 쉬는 시간마다 그 정원에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언제나 그곳으로 찾아왔다.
쉬는시간 10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녀들은 벤치에 앉아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거나, 때때로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정말, 행복해보여.

그런 그녀들을 지켜보는 자신에게 이런건 옮지 않아라며 몇번이고 타일러 봤지만
지옥같은 반에서 빠져나와 유일한 낙원은 이 정원밖에 없다는 사실과,
그녀들의 존재에 눈을 땔 수가 없다는 사실에 몇번이고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저 그녀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그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그녀들에게 용서를 빌며,
그러면서도 그녀들을 지켜보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들을 보면서 자신의 무언가가 채워지는게 느껴졌다.
마음속 더러웠던것이 깨끗해지는 감각.
퍼즐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는 감각.
그녀들이 행복해지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가혹해서
결국 이별은 찾아왔다.

막 2학년이 될 즈음.
그녀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벤치에 앉아, 그저 아무말 없이 그 아이는 바닥을, 선배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가 먼저 꺼내온 말들은 분명 그 선배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렷다.

"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지금 그 사람이랑 교제하고 있어요."

순간 입이 벌어졌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럼 선배님은? 지금까지 둘이 함께 해온 시간은??

"......언제부터?"

순간 선배님이 하늘을 향해 지은 모든걸 잃어버린듯한 처량한 눈빛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자신의 소중한 반쪽은 더 이상 '자신의 반쪽'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예전에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그 OL 있잖아요. 그 날 이후 알고 지내게 되서...
그래서......윽..."

아이의 눈에서 구슬비가 흘러넘쳤다.

"안, 된다는거, 아... 알고, 있었는데... 나한텐, 선배님이 있는데... 하지만 나도, 어쩌면 좋은지 알 수가 없어서...!!!
기분이, 윽. 엉망진창이...되서...!!!"

목으로부터 통곡이 흘러나올것을 필사적으로 참는게 애절했다.
난 계속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혹시 선배님에게 얻어맞기라도 하는건 아닐까 하고 조마조마해졌다.

"그랬구나.
...다행이다."

......선배님?
웃고... 있는거에요?

"줄곧, 걱정하고 있었거든. 네가 웃을때 언제부턴가 웃음에 구름이 껴있어서, 혹시 어디 아픈건 아닐까, 혹시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괴롭지는 않은걸까 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으니까..."

선배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셨다.
오늘따라 유난히 푸른 하늘, 어디선가 들어온지 모를 이름모를 나비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
"......예."
"같이 있으면 행복하구?"
".........예에..."

선배의 질문에 다시 조금씩 눈물이 흘러넘친다.
분명 멈출수가 없는거다.

그야

"그렇다면 괜찮아. 괴로워 안해도 돼."

그야

"날 더 이상 좋아하게 되지 않아도 괜찮아. 필요하면 미워해도 좋아. 그저 가끔씩 이렇게, 널 안아주고, 위로해줄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그야,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이렇게나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이니까-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선배님의 모습이 유독 커보였다.

그 이후 둘은 아무말 없이 잠시 그렇게 껴안고 있다가
선배님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정원을 나가셨다.
마지막에 한마디만을 남기고.

"꼭 행복해지면 좋겠다."

오직 그것이 전부.
그녀에겐 분명 그것이 전부였던거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그게 곧 자신의 행복이기도 했으니까.

정원에 남아있던 그녀도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볼 수 없을 정도로 격통이 흘러넘친다.
그저 통곡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그녀들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배웅할 뿐.
결국 마지막까지 기분나쁜 엿보기범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였다.

그 이후 그녀들이 이 정원을 찾아오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게 두번 다시 그녀들을 만나는 일 없이 세월은 지나, 나도 어느샌가 고교1학년이 되었다.
결국 난 그대로 백합러로 완전히 각성해서 여자애들이 꽁냥대는걸 보면서 해벌쭉거리는 기분나쁜 놈이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녀들을 생각한다.
그녀들은 어쩌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 주제넘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응원하며 살고있다.

"야! 다 챙겼어? 그럼 슬슬 가자!"

교실문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오락실. 심지어 오늘은 안시오와 한서예도 끼어있다.
이야~ 오늘도 흐뭇하구만!
저거 보니까 사귀기 시작한지 딱 1개월 되었나?
거 남들이 본다고 얼굴 붉히고 손도 못잡는거 보소 허허허허★

그렇게 남들이 봤으면 극혐! 했을 생각을 하며 모두의 뒤를 따라간다.

"선배! 오늘은 저기 들를까요?"
"너 아직도 선배라 부르냐. 이제 학교도 다른데."
"전 선배라고 생각하니까 상관 없거든요~ 붸~"

순간 낮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처음보는 회사원 한명과 고교생 두명이 즐겁게 대화하며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
순간적으로 그녀들의 손가락에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캐치했다.

...아아, 그렇구나...

"야~ 뭐해? 빨리 가자!"

"...그래!"

더 이상 내가 할 말은 없다.
그저 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들러리역일 뿐인 나에겐 이 이상의 이야깃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상 멋대로 말하는건 분명 그녀들에게도 실례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하나, 그녀들을 응원하는것 뿐이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으니,
그럼 이만,
고교생A는 쿨하게 사라져주지.

-END-

...난 분명 백갤러 고교생이 백합커플을 지키기위해 남자난입을 저지하려는 개그물을 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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