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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재업)무제-22

1234(39.113) 2020.07.13 00: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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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자신을 가둔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겠지. 백설화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향했다.


눈이 가려져 제대로 그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없이 원통했지만, 그 이상으로 이제까지의 시간이 괴로웠기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이디 폰 그라스.


마법으로 유명한 그라스 가문의 장녀이자 차기 당주이며 이미 실력은 당대 최고라고 불리는 마법사.


허리까지 늘어진 금발은 마치 실크와 같이 번쩍였다. 전혀 이런 살풍경한 곳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얼굴 또한 그런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절세의 미색. 인간이라는 종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라고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칭송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미모도 이 공간에서는 어떤 의미가 없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자애로운 미소는 여전히 빛났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얼굴은 눈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 기척만으로 백설화를 두렵게 만들었다.


백룡 - 차가운 북쪽의 바람과 눈을 다스리며 지혜로운 겨울의 지배자의 일족인 그녀는 쇠사슬에 양 팔이 묶여 비참하게 늘어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고귀해 보이는 동방의 복식은 이미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이 아니었다. 찢겨진 옷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피부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게다가 그녀의 몸 이곳 저곳에 달린 종이들은 계속해서 마력을 방사하며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마치 최고위 악마를 가두는 봉인과도 같았다. 덕분에 그녀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무력하게 여기에 있어야만 했다.


원래 용족이 가진 힘이라면 가볍게 도주할 수 있어야 할 쇠사슬.


그렇지만 백룡의 공주는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욕과도 같았다. 허나 이젠 마치 자신의 몸과 같이 익숙해진 감각이 백설화를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든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럴 수 밖에 없었어요."


하이디는 옥이 굴러가는 소리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였다.


그렇지만 백설화는 그저 코웃음칠 뿐이다.


한때 친애했던 하이디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내 너를 친구라고 여겼거늘 돌아온 것이 이런 굴욕이라니. 내가 그것을 곱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백설화는 여전히 독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각오는 목소리에 실린 힘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물론, 내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답니다."


하이드는 여전히 미소로 답했다. 하지만 목소리와 달리 그 내용은 섬뜩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내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도망칠걸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당신이 아끼는 그 아이만을 바라보았잖아요."


"...."


백설화는 그 말에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이디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하지만 백설화는 그녀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만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종족의 맹약과 같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녀에게는 또 다른 정인이 있었을 뿐이었고 그 사람에게 충실하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그 결과가 이런 파국이 될 것이라곤 백설화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알아요. 그 아이가 있을 동안 당신은 그 아이만 바라볼 것이라고.... 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죽었어요. 내가 모든 것을 건 부활마법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었다고요. 그렇다면 이제는 날 봐도 되잖아요?"


어느 순간, 미소를 잃은 하이디는 감정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크게 뜬 눈은 눈물로 가득했고 목소리는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하이디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사랑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이디는 최선을 다했다. 오직 백설화 자신을 위해서.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리고 그 날로 모든 것은 끝이었다.


그렇다면 하이디의 마음을 받아줘도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백설화는 여전히 그 아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벗에게 이런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고 백설화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행위는 정도를 벗어났다.


광기.


자신을 향한 애정은 이미 막을 수 없는 소유욕이 되었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눈은 흐리고 탁하게 변했다.


그 원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동안의 굴욕이 백설화를 분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안다. 무엇이 원인인지를.


그렇기에 백설화는 거절하면서도 차마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크윽...."


감정이 격해진 하이디의 마력은 따로 주문을 통해 구체화하지 않더라도 백설화의 몸 이곳 저곳에 붙은 종이를 통해 그녀에게 직접 전달되었다.


고통.


용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하이디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다르다. 드래곤과 대등한 격을 지닌 용도 그녀 앞에서는 결코 무적을 칭할 수 없었다.


"나도 더 이상 당신에게 고통 주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하이디는 조용히 손을 뻗어 상처입은 백설화의 뺨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은 백설화의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전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하이디의 마음을 거절하게 만든다.


"당신은 이토록 완고하죠. 동방의 용이란 모두 그런건가요?"


그저 듣는 것만으로 사람을 슬퍼지게 만드는 목소리로 하이드는 물어보았다. 비록 눈은 가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설화는 하이디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조금만 마음을 허락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에서 해방되고 그녀와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백설화는 잘 안다.


그렇지만 용족 특유의 정신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상처입은 자존심은 그녀를 완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선을 넘으면 안된다는 영혼의 경고가 백설화를 단단하게 지지하였다.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요. 그렇게 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난 당신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네요."


백설화의 거절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하이디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일지 몰랐다.


"읍!"


하이디는 전혀 예상 못한 순간 백설화에게 키스했다. 그저 가벼운 입맞춤이지만, 그것은 그녀 나름의 애정 표현이며 이제부터 시작될 고통의 예고였다.


"라....."


하이디는 맑은 목소리에 마력을 실어 영창을 시작했다.


"크으윽....."


백설화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하이디의 마력은 구체적인 고통이 되어 그녀의 영혼을 관통하였다.


용족의 육신은 어지간한 검이나 마법으로도 상처 입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겼을 때, 용족이 느끼는 고통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된다.


"라아.....!"


하이디는 한층 더 많은 마력을 담아 영창을 이어갔다. 백설화의 몸에 붙은 종이들이 타오르며 순백에 가까운 피부를 불태웠다.


"아악!"


고통.


백설화는 비명을 질렀다. 무한한 인내를 지닌 용족마저도 비명을 지를 정도의 고통은 도저히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라아~!"


하이디는 보다 높은 음색의 영창을 이어간다. 불에 타버린 종이를 대신하여 새로운 종이들이 하이디의 드레스 어딘가에서 나와 백설화의 몸 이곳 저곳에 달라붙었다.


"하아...., 이번에는 또 무엇이지?"


백설화는 새로운 종이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불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물어보았다. 고통의 여운으로 인해 물어보는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기세가 꺾여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하이디는 웃으며 답했다.


"이번에는 쾌락이랍니다. 당신이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을 감각이에요."


하이디의 말에 백설화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고통은 낫다. 하지만 쾌락이라니....


백설화는 안다. 쾌락과 고통의 이중주 속에 타락한 동포를.


아름다운 흰 머리가 검게 변한 동포들처럼 자신 또한 타락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또 다른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내것이 되어주세요. 설화. 나만 바라보게 만들게요."


"그, 그러지 마라... 그것은 안될 일이다!"


하이디의 간절한 목소리를 백설화는 거절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라아!"


다시금 노래하듯 하이디는 영창했다. 그리고 이제까지와 다른, 열정에 들뜬 숨소리가 내부를 가득 채웠다.


----------


최근 그라스 가문의 성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드래곤이 아닌 몬스터가 성 근처에서 보였다고.


그것은 검은 털을 지닌 아름답고 성스러운 동물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더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었지만 그 울음 소리는 더 없이 열정적이면서도 슬프다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하이디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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