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이 하루나의 긴 머리카락에 남은 수분을 날려버린다. 샤워가 끝난 후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다음 날이 힘들기에 하루나는 정성껏 머리카락을 말렸다.

장발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법, 그래도 이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에 하루나의 손길은 세심했다.

이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씻고 있는 중, 아쉽게도 헤어 드라이어는 하나 뿐이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샤아아아

욕실의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는 헤어 드라이어의 소음을 너머 들린다.

루미는 이제 곧 나오겠지.

하루나는 다행히 늦지 않게 머리카락을 다 말릴 수 있었다. 언제나의 시간, 언제나의 일이다.

"아 시원해."

샤워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루미는 밖으로 나왔다. 방금 막 나온 그녀는 마치 작은 동물과도 같았다.

"어서 와서 머리 말려."

마치 언니처럼 하루나는 루미를 불렀다. 다 쓴 헤어 드라이어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이제부터 시작될 일을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응!"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라는 듯 루미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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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난 여자 중고등학교는 멀리 사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운영한다. 2인 1실에 각 방마다 샤워실이 설치된 생각보다 호화 사양이다. 원래는 모텔인 건물을 인수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좋은 시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둘은 이렇게 방에서 나가지 않고도 샤워를 즐길 수 있었다.

휘이이잉

헤어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이 루미의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들을 증발시켰다. 하루나의 손가락이 보다 루미의 머리카락 사이를 기분 좋게 지나가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다 빠르게 마르도록 도와주었다.

침대 위, 하루나에게 반쯤 기댄 상태로 루미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응, 기분 좋아...."

루미는 언제나 솜씨 좋게 머리카락을 말리는 하루나에게 어리광 부리듯 중얼거렸다.

"아기 같다니까?"

미소 지으며 하루나는 말리기를 계속 할 뿐이었다.

틀어 놓은 TV에서는 저녁의 버라이어티 쇼가 한창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루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하루나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에 집중할 뿐이었다.

"자, 이제 끝."

하지만 언제까지고 머리카락을 말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지나친 헤어 드라이어의 사용은 오히려 머릿결을 상하게 할 뿐. 하루나는 재빨리 마무리 지으며 헤어 드라이어를 옆으로 치웠다.

"아...."

루미는 자신도 모르게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허리를 펴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하루나에게 살짝 몸을 기대었다. 하루나는 언제나의 일이라는 듯 루미를 뒤에서 살짝 껴안으며 그녀를 받아주었다.

하루나에 비하면 루미는 아직 아이같다. 그래서일까? 하루나의 품 안에 루미는 쏙 들어갔다.

그렇게 둘은 TV의 소리와 상관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하루가 끝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아... 아무 것도 안하고 이렇게 있고 싶어."

루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그러자 하루나는 살짝 얼굴을 옆으로 기울여 루미의 뺨과 자신의 뺨을 맞추었다.

"그러게."

학교 생활은 분명 즐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둘만의 농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때론 숙제로, 또는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모든 일과가 끝나면 언제나 함께였다.

"그러고 보면 내일은 토요일이네."

루미는 기대가 담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같이 놀러가자고 했지?"

하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학교에서 벗어나 잠깐이나마 도시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지 않는 학생은 없었다.

더구나 둘은 내일 함께다.

하루 종일,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싶고, 이것저것 이쁜 것도 사고 싶고...."

루미는 아이같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루미를 다시 꼬옥 끌어 안으며 하루나는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러게. 루미랑 함께라면 재미있겠지."

"아...."

하루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루미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비록 샤워를 마치고 얼굴에 홍조가 살짝 돌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붉어졌다.

"그, 그렇네...."

이미 안겨 있는 상태에서도 다시금 부끄러운지 루미의 목소리는 아주 조금 작아졌다. 그런 그녀가 더 없이 귀엽다는 듯 하루나는 손을 살짝 뻗어 루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키스해도 돼?"

하루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응."

루미는 눈을 감으며 답했다.

TV에서는 연예인들이 계속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떠들었다. 그렇지만 둘은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