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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재업)무제-17

1234(39.113) 2020.07.21 16:23:42
조회 108 추천 12 댓글 0
														

왕궁을 제외한다면 이 보다 더 웅장한 건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저택.


그곳의 정막으로 가득 찬 긴 복도를 청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정도로 긴 길이는 이곳의 주인이 얼마나 큰 권세를 지녔으며 많은 돈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의 장식들은 하나같이 최고급품. 그저 보는 것만으로 입이 벌어지게 할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품들로 가득 찬 이 복도를 단 한명의 메이드가 청소하고 있었다.


비록 이 저택에는 많은 사용인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은 오직 한명.


그것은 매우 가혹해 보였지만 당사자는 무표정하게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메이드로 일하기 위해 최소한의 화장과 꾸밈만 했을 뿐이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메이드의 이마에는 땀이 가득했지만 쉬는 일 없이 손을 바지런히 움직이며 솜씨좋게 하나 둘 일을 처리해간다.


아무 것도 모르고 본다면 메이드가 성실한 것이라 하겠지. 하지만 그녀의 혼잣말을 만약에 듣는다면 자신의 감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아름다운 여성도 이토록 험한 저주를 퍼부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일하고 있는 메이드, 에밀리아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혐오했다.


과거 자신이 살던 저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한순간의 꿈.


아버지의 몰락, 그리고 남은 것은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자신이었다.


물론 평민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지진 않았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것들을 그녀들에게 남겨주었다.


보통은 그것만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몰락 귀족의 삶이 쉬울리 없었다.


아버지의 유산을 노린 수많은 악인들의 틈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험난한 일이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정리를 잘해놓고 간 덕분에 스스로를 지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나머지 모든 것을 정리한 그날 쓰러졌다. 그리고 에밀리아는 메이드를 시작했다.


현시점에서 엄청난 약값이 들어가는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그리고 남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렇게 일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몸을 팔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돈을 버는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없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가문을 몰락시킨 자들의 집에서 메이드 일을 하는 것은 무슨 말로도 할 수 없는 굴욕. 그렇지만 에밀리아는 이를 악물고 일을 해 나갔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이 가문의 가주가 자신에게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원한다면 자신을 얼마든지 유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최소한의 예우라는 것 같았다. 자신과 한 때 천하를 두고 싸운 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최악의 모욕일지 모른다.


몰락한 정적의 남은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한 희열은 없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어느 쪽이던 한가지는 확실했다. 


가주는 에밀리아를 어떤 의미로 가장 확실하게 보호해 주었다. 따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사용인처럼 일하게 할 뿐 어떤 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해두었는지 이곳의 사용인들은 에밀리아를 자신들과 똑같은 사용인으로 대할 뿐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귀족가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에밀리아에게 감히 손을 대려하지 않았다.


몰락한 귀족이 여전히 귀족의 이름 아래 보호 받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더할 나위 없는 굴욕이며, 지금에 와서는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그 사실이 에밀리아를 매 순간 괴롭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몰락하는 순간을 기억하기에 더욱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과거는 과거 현실은 현실.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그녀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이들을 위해서 에밀리아는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진작에 버린지 오래다. 지금은 그저 혼자 일하며 각종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메이드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일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아마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이겠지.


"어머나? 에밀리아? 좀 쉬어 가면서 하지 그래요?"


하늘에서 내린 듯한 미성이 복도 전체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세린 드 보르딘, 귀족가문 전체에서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없다고 찬양받는, 하늘이 내린 미녀이자 이 가문의 장녀, 그리고 에밀리아의 또 다른 상처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복장을 갖춘 세린은 이런 곳까지 와야 할 이유가 전무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단 한명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세린 아가씨...."


에밀리아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답했다.


가문을 몰락시킨 자의 장녀이자 소꿉친구, 그리고 이제는 주인댁의 아가씨와 메이드.


어떤 말로도 에밀리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증오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렇기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아가씨를 차마 볼 수 없기에 에밀리아는 시선을 최대한 돌리며 머리를 숙였다.


"언제나 그렇네요. 당신은 과거랑 별로 변한게 없어요."


세린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미 몇 번이나 이렇게 만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둘 사이는 변함이 없었다. 세린의 아름다운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절실히 묻어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는 그저 청소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에밀리아는 그렇게만 답하며 어서 빨리 이순간이 멈추기를 바랬다. 자신을 누구보다 좋아해줬던, 하지만 이제와서는 원수의 딸이 이 공간에 함께있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넓은 곳을 혼자서 청소하다니.... 일부러 그런거지요?"


"...."


세린은 그렇게 말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에밀리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다.


"이제라도 내 아래로 들어오면 좋을텐데...."


세린은 그렇게 말하며 에밀리아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에밀리아는 흠찟 하면서도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만에하나 거절하는 것은 죽어 마땅한 불경죄, 그것은 곧 가족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일 터였다.


평민과 귀족. 그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도 크다.


"아가씨.... 전...."


세린의 손에 의해 억지로 고개를 든 에밀리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린의 눈을 보는 순간 아주 조금 나오려는 말까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완벽한 석상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본다. 여자라도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 앞에 에밀리아는 완전히 잡아 먹힌 기분이었다.


허나 그녀는 곧 알아차렸다.


세린의 눈에 있는 안타까움을. 그것은 동정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 이상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린은 그녀에게 절대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차라리 에밀리아를 마구 대한다면 맘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에밀리아의 소꿉친구는 언제나 그렇듯 그녀를 안타깝게만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하지만 난...."


세린은 그렇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더니 대신 양손을 에밀리아의 두 뺨에 가져갔다. 그리곤 조용히 에밀리아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곤 몸을 돌렸다.


"아가씨...."


친애의 행위,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에밀리아는 가슴이 타는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 속에 그녀는 석상처럼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세린은 그런 에밀리아을 두고 조용히 몸을 돌렸다.


에밀리아는 그저 그녀가 복도 너머로 갈 때까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


침묵 속에 한참동안 에밀리아는 그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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