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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승지영원] 스물하나, 열일곱 - 2화앱에서 작성

공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21 18:39:07
조회 312 추천 20 댓글 1
														


영원은 주말이면 고깃집에서 서빙 알바를 하였다. 그 탓에 온몸이 근육통인 그녀는 늘 몸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고, 자신의 몸에 나는 파스 냄새를 승지가 모르길 바랐기에 편의점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떼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은하게 남아있는 냄새의 존재를 승지는 알 수 있었다.

"영원아 알바 힘들지 않아?"
"응? 아니, 전혀. 하나도 안 힘들어."

승지의 질문에 영원은 당황하기라도 한 듯 손을 마구 저으며 말했다. 그런 영원의 모습에 승지는 단숨에 영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바 그만하면 안돼? 인제 고등학생이니까 공부해야지."
"하지만... 대학 등록금 모아야 하니까 난..."

영원의 말에 승지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내줄게.'라고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영원이 '왜?'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기에 차마 말하진 못했다.

그렇게 대화 없이 어두운 골목을 걷자 어느새 영원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에 도착했다. 그곳은 차가 들어가기 힘들 만큼 좁았지만 사람 두 명이 걷기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헤어지기 바라는 영원의 눈빛에 승지는 언제나 이곳에서 영원을 놓아주었다.

영원을 보내주고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승지는 그녀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원의 모습이 완전 사라지고서야 승지는 자신의 집을 가기 위해 돌아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승지의 집은 영원의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둘의 만남이 잦아들수록 둘은 가까워졌고 그로 인해 승지를 대하는 영원의 말은 편해졌으며, 영원을 대하는 승지의 태도는 부쩍 살가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어딘가 높은 벽이 있었고 이 벽을 깨부수는 게 옳은 일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승지는 곧잘 영원에게 밥을 사주었다. 공부를 하고 온 영원이 배고프진 않을까 신경 쓰인 것도 있었지만, 그녀의 일이 대부업으로 바뀌면서 (지금 위치가 막내인 만큼) 돌아다니는 곳이 많아져 배가 금방 고파져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시간인지라 승지는 다음날 영원의 등교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밥만 먹고 그녀와 헤어졌다. 즉, 영원은 술을 마신 승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영원이 왔어?"
"아, 언... 니..?"

늘 보는 편의점 앞의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는 승지를 발견한 영원은 반가운 것도 잠시 그녀의 비틀거리는 모습이나, 옆에 있는 낯선 여성의 모습에 긴장을 하였다. 낯선 여성이 승지의 시선을 따라보며 영원의 존재를 발견했다.

"아, 그쪽이 영원씨? 어라, 학생..?."
"어... 저.."
"아, 미안. 난 승지의 직장동료 희신이라고 해."
"아, 안녕하세요. 저기, 승지언니 어디 아파요?"

영원은 처음 보는 희신에게 인사를 건네기 바쁘게 승지의 상태를 물었다.

"별건 아니고. 오늘 회식이 있었는데, 얘가 좀 많이 마시는 바람에 꽐라된 거야."
"네...?"

대수롭지 않은 듯 걱정하지 말라며 희신이 말했지만, 영원은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영원이 살며시 승지에게 다가가자 그녀에게선 지독한 술 냄새가 피어올랐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하니까 자꾸만 영원학생 만나야 한다면서 여기서 움직이질 않더라고. 그런데 듣던 대로 귀엽네, 학생인지는 몰랐지만."
"네?"
"이 년... 아니 승지가 영원학생 이야기 많이 했거든. 아, 말 편하게 해도 되지?"

긴장한 영원과 달리 희신은 그녀를 마치 몇 번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하였는데, 그것은 승지에게서 그녀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덕인 듯했다. 영원은 많이 들었다는 그 내용이 궁금했으나, 승지의 비틀거리는 모습에 그런 궁금증은 곧 사라지며 다시 승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한편 희신은 이대로 영원에게 승지를 맡기고 돌아갈까 생각했으나, 그러기엔 영원이 힘도 없어 보이고 학생에게 저런 주정뱅이를 맡기고 가는 게 할 짓이 못 된다 생각하여 결국 승지의 집까지 본인이 부축하고자, 승지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며 말했다.

"에이씨, 이게 뭔 고생이야. 야, 권승지. 영원이 왔으니 인제 집으로 가자."
"어어... 영원이... 바래다... 줘야."

술기운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승지가 중얼거렸으나 희신은 철저히 무시하며 그녀가 두 발로 서도록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승지와 헤어지게 되는구나 생각한 영원이 멀뚱히 서 있자, 희신이 그녀에게 말했다.

"영원학생 빨리 와, 안 오면 두고 간다."

희신은 승지에게 하도 영원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탓에 그녀들이 함께 산다고 믿었고 영원보다 걸음이 빨랐던 희신은 다행히 승지의 집 주소를 알고 있었다.

***

"더럽게 무겁네. 권승지 두고 봐, 이 은혜 무조건 받아낼 거야.."

승지의 집에 도착한 희신은 술 취한 자식은 침대에 누울 자격 따윈 없다며 승지를 현관에 던지며 말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승지를 낯설게 보는 영원의 모습에 악담을 퍼부은 희신이 멋쩍게 말했다.

"사실, 권승지 이렇게 된 거 사장새끼 때문이야. 얘가 그동안 회식을 몇번인가 빠졌는데 사장새끼가 그게 맘에 안 들었는지, 아주 억지로 먹이더라고..."
"네..?"
"권승지 주량이 꽤 센 편이긴 한데... 아무튼 이건 사장새끼가 나쁜 거니까 승지 일어나면 너무 뭐라곤 하지 마."

희신은 승지가 영원을 마중 가기 위해 회식을 빠졌단 사실을 굳이 말하진 않았다. 잠깐이나마 본 영원의 성격상 이것을 말하면 영원이 그녀가 스스로 자책감에 빠져 버릴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희신의 설명이 없어도 영원은 그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저... 고마워요... 승지... 언니 챙겨줘서.."
"고맙긴, 뭘."

빙긋 웃으며 대답한 희신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둘이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희신이 나서고 문이 닫히자 도어락이 명랑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끝으로 승지의 집에는 적막함이 맴 돌았다.

승지의 집은 혼자 살기 딱 좋은 사이즈의 미니투룸으로 내부는 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영원은 거실을 지나 보이는 문을 발견하였고 그곳이 곧 승지의 침실일 것이라 생각하며 여전히 차가운 현관 바닥에 있는 승지를 옮겨 주기로 했다.

희신이 그랬던 것처럼 승지의 팔을 자신의 목에 두른 영원은 그녀를 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하여 일어나 보았다. 그러나 연약한 영원이 거구의 승지를 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애를 쓰는 그녀의 신음만 비집어 나왔다. 그때 영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은 승지가 번쩍 눈을 떴다.

"여기는... 영원아?"
"승지... 꺅."

눈을 뜬 승지는 마치 취한 적 없는 사람처럼 몸을 번쩍 일으켰고 그에 엉거주춤한 영원이 넘어질 뻔하였으나 승지가 그녀를 받쳐주었다.

"영원아 네가 여기 어떻게 있어?"
"아... 오다가 희신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언니랑 나를 여기로 데려다줬어."
"희신이가? 아..!"

승지는 그제야 아까까지 자신이 술에 취해있었음을 떠올렸다. 동시에 회식에서 제게 억지로 술을 먹였던 사장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혀 인상을 썼다. 그 모습에 영원은 승지에게 숙취가 온 것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승지야, 속 안 좋아? 물 마실래? 물 줄까?"

속사포로 말하는 영원의 모습이 승지에게 너무 귀여웠다. 저를 걱정하는 여린 눈망울이 오늘따라 더 순해 보였고,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자꾸만 오물쪼물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그 모습에서 영원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승지는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그녀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내 곁에 있어 줘."
"응...? 꺅!"

갑작스레 승지가 영원을 안아 들자 영원은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승지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그대로 영원을 제 허벅지 위에 앉혀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 말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승지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승지를 안은 영원의 심장이 자꾸만 쿵쾅거려서 그 소리가 승지에게 들릴까 영원은 조마조마하였다.

"승지야.."
"응."

영원은 괜스레 승지를 불러보았고 승지는 곧바로 대답했다. 영원은 평소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지만, 한 번씩 그녀가 너무 좋아 참을 수 없을 때 그녀를 이름으로 불러보았다. 승지의 이름은 영원을 더욱 설레게 만들어 주었다. 승지의 목을 두르고 있는 두 손을 깍지 낀 영원은 괜히 손가락 사이를 매만졌다.

이런 마음은 승지도 같았다. 지금 제 곁에 영원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녀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멈추기를 바랬고, 멈추지 않는다면 함께하기를 바랬다. 승지는 인제 인정해야만 했다. 승지는 영원을 좋아한다.

"좋아해, 영원아."

그것은 매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고백이었다. 좀 더 좋은 곳에서, 좋은 상황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 말은 지금 하지 않으면 심장이 고장 나버릴까 봐 그만 무서워서 승지의 입에서 튀어 나와버렸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데...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만큼, 너무 좋아해. 그냥 다 너무 좋아."

한번 시작한 승지의 고백은 물이 가득 찬 댐이 터지기라도 한 듯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다.

"나... 도, 좋앗.... 해."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에 영원의 심장은 그만 멎어버릴 것 같았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심장이 더 아프기 전에 너무 떨려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끄집어내며 영원도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나도, 언니가 좋아."

영원의 고백에 승지의 감정은 넘쳐흘러 눈물이 새어 나왔다. 

"이름으로 불러줘.."
"좋아해, 승지야."

취기 때문인지 발그레해진 승지의 뺨에 손을 대보자 그곳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승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은 영원이 천천히 손을 떼어내려 하자 승지가 영원의 손을 붙잡고는 그대로 그곳에 얼굴을 비비었다. 영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승지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영원은 귀엽다가도, 마주친 시선이 뜨거워서 어쩐지 무서웠다.

영원의 손에 뺨을 비비던 승지가 서서히 고개를 꺾으며 영원의 손바닥에 입술을 비볐다. 그리고 쪽쪽 소리를 내며 그곳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승지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곳곳마다 영원의 손은 불에 덴 것 마냥 뜨거웠다.

"앗, 승지야.."

영원이 승지를 부르자, 승지가 영원을 바라봤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올곧게 영원을 비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승지의 얼굴에 영원이 살며시 눈을 감기 시작했다. 영원의 도톰한 입술에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이 붙었다 떨어졌다. 영원이 다시 눈을 뜨자 애타게 부르듯이 바라보는 승지의 눈동자가 시야에 바로 닿았다.

"영원아, 정말 좋아해."
"응... 나도. 좋아해, 승지야."

둘은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영원의 첫 키스는 술 냄새가 났다.

***

"애기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전날 승지는 시간이 늦었다며 영원을 자신의 집에 재웠고, 평소 그녀의 등교 시간을 알고 있던 승지가 시간에 맞춰 영원을 깨웠다. 승지의 침대에서 부스스 눈을 뜬 영원은 승지가 빌려준 린넨셔츠 차림으로 눈을 끔벅끔벅 뜨기 시작했다. 어제의 일이 혹시나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잠시, 자신을 깨운 승지가 "모닝뽀뽀."라며 영원에게 입맞춤을 하자, 영원은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부끄럽기도 한편 기분이 좋아 배시시 미소를 그려냈다.

영원이 제대로 잠에서 깬 것을 확인한 승지는 그녀를 데리고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그곳엔 아침 일찍 일어나 영원을 위해 준비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것을 본 영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의자를 당겨 영원을 앉힌 승지는 그녀에게 어서 먹어보라고 보채었고 그녀가 한술 뜨기 바쁘게 승지가 물었다.

"어때, 입맛에 맞아?"
"응, 엄청 맛있어."

다행이라고 대답한 승지는 이번엔 달걀후라이를 하기 시작하며 영원에게 반숙과 완숙의 취향을 물었다. 평소 아무거나 라고 대답하던 영원이 반숙이라 대답하자 승지는 빙긋 웃으며 반숙을 완성하여 그녀 앞에 두었다. 그것을 본 영원의 눈동자가 빛나더니 숟가락을 조심조심 움직여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뜨고는 입에 쏙 넣는 모습이 정말로 좋아하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반숙에 정신 팔린 영원이 그제야 승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왜 자꾸 쳐다봐."
"우리 애기가 너무 예뻐서."
"...내가 왜 애기야."
"애기니까 애기지. 아니면 자기라고 불러줄까? 응, 자기야?"

아까부터 신경 쓰인 승지의 애칭에 영원이 물었으나 그녀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영원은 더 낯부끄러워져 말 없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그런 영원의 모습이 승지는 귀엽기만 했다.

식사를 끝낸 영원에게 승지가 교복을 건네주자, 교복은 어쩐지 평소보다 빳빳한 감촉과 따스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승지가 영원을 위해 다림질을 한 흔적이었다. 자신을 위해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주고, 교복을 다려준 승지가 정말 고마워서 영원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언니... 고마워..."
"그러면 나 뽀뽀해줘."

큰 이목구비를 시원하게 웃으며 상체를 숙여 영원에게 뺨을 드러낸 승지가 말했다. 그 모습에 주춤주춤 영원이 움직이더니 빠르고 짧게 승지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교복을 입기 위해 침실로 도망가듯이 영원이 달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승지는 홀로 웃음을 터트렸다.

"잘 다녀와."
"응."

교복을 차려입은 영원이 현관에서 신발까지 신자, 승지가 영원에게 헤어짐의 인사를 남겼다.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아쉽기는 서로가 마찬가지였지만 아무튼 영원은 승지와 달리 결석 한번 없이 성실히 등교하는 학생이고, 승지도 조금 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 둘은 이대로 헤어져야 했다. 영원이 승지의 집을 나서려던 그때, 승지가 영원을 잡아 당기더니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진하게 붙였다 떼며 말했다.

"등교 뽀뽀."

또 한 번 시원하게 웃으며 말하는 승지에게 영원도 싫지 않은 듯이 웃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승지가 말했다.

"나중에 봐, 정말 좋아해."

***

"너 아는 딜러 있댔지, 거기서 벤츠도 알아볼 수 있냐?"
"너 차 사게? 저번엔 필요 없다며."
"그랬는데, 갑자기 필요해서."
"흐음, 근데 왜 하필 벤츠야? 그런 거 욕심 없어 보이더니만."
"우리 영원이 탈건데, 좋은 거 태워야지."

다음날 희신을 만난 승지가 그녀에게 전날의 답례라며 밥을 사며, 그녀를 통해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지의 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나오자 희신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평소 무뚝뚝한 승지의 얼굴이 풀어지며 배시시 미소를 짓는 게 꼴사나워서 그랬다. 희신은 그런 승지를 무시하며 자신이 아는 딜러에게 연락을 취할 준비를 했다.

"언제까지 필요한데?"
"가능하면 오늘."
"뭐? 넌 무슨 장난감 사?! 무슨 차를 당일 알아보고 당일 사?"
"아, 가능하면 이라고 가능하면. 어서 알아나 봐줘."

희신은 승지에게 은혜도 모르는 년이라고 욕을 하며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면서 입에 담배를 한 개 물며 불을 붙이려 하자 가만히 있는 승지에게 물었다.

"넌 안 펴?"
"응, 인제 끊으려고."
"허, 웬일이래."
"우리 애기가 싫어해."

희신은 곧 승지가 말한 애기가 누구인지 알아차렸고, 그것을 물어본 본인을 증오하기까지 했다. 희신은 승지의 마지막 말을 철저히 못 들은 척 무시하며 휴대폰 너머로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영원과 사귀기 시작한 승지가 곧바로 실행한 것은 차를 장만하는 일이었다. 차가 있으면 영원의 등하교를 도울 수 있고, 그러면 영원과 잠시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영원의 학교는 그녀의 집에서 제법 멀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의 집 주변에 이렇다 할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으로, 학교를 가기 위해 영원은 다른 아이들보다도 일찍 일어나 두 번의 환승을 거쳐야 제때 등교를 할 수 있었다. 야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교 시간이 되고 저마다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동급생들 사이 영원은 어깨에 멘 가방을 두손으로 꼭 쥐며 버스정류장으로 혼자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와 멀리서 보아도 이목구비가 화려한 그녀, 승지가 나타났다.

"영원아!"
"언니!"

갑작스러운 승지의 등장에 영원은 놀라기도 잠시 곧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영원의 미소를 보자, 승지의 화려한 이목구비가 더욱 화려해지며 그녀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마중 왔어, 집에 가자."

승지의 갑작스러운 허그에 영원이 당황했으나, 승지는 개의치 않으며 영원의 손을 잡고 미리 시동을 걸어둔 차량 앞으로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차량의 문을 여는 모습에 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승지에게 차가 있었던 점이나 면허가 있었던 점을 몰랐다며 말했다.

"면허는 작년에 땄었고, 차는 오늘."

'가능하면 오늘'이라고 말했던 승지는 딜러 앞에서 '무조건 오늘'로 조건을 바꾸었다. 승지는 영원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하얀 벤츠를 원했으나, 당일 출고가 가능한 차량이 없는 탓에 차선책으로 당일 출고가 가능한 검은 BMW를 고르게 되었다. 승지는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또한 영원과 썩 잘 어울린단 생각으로 스스로 골랐다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딜러에게 말려서 얼떨떨하게 구매한 정황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영원은 오늘 샀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으나, 급하게 오느라 아직 뜯지 못한 뒷좌석의 비닐을 보며 승지의 말을 믿게 되었다. 승지에 의해 조수석에 앉은 영원이 차량의 내부에 감탄하고 있자 운전석에 앉은 승지가 영원에게 다가와 영원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승지의 얼굴이 제게 다가와 그녀가 또 키스를 하는 줄 알았던 탓이었으나, 승지는 그녀의 안전밸트를 메주기 위해 움직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영원은 부끄러운 착각을 한 것에 얼굴과 귀를 붉혔다.

"앞으로 영원이 등하교는 언니가 다 해줄게."
"... 응!"

승지의 말을 들은 영원은 앞으로 그녀와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승지의 차가 평소 영원과 헤어지는 골목 앞에서 멈추었다. 더 안쪽으로는 차가 다닐 수 없기에 그곳에 멈춘 승지는 영원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럼 난 이만.."
"같이 가자. 집 앞까지 바래다줄게."
"아니야, 혼자 갈 수 있어."
"...그래 알았어.."

생각보다 빨리 포기한 승지에게 영원은 다행이다 생각하며 돌아서려 하자, 아침때와 같이 승지가 자신을 잡더니 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붙였다.

쪽.
"이건 헤어지기 전 뽀뽀."
쪽.
"그리고 이건 아까 영원이가 기대한 거."

방금 전 차 안에서 영원이 어떤 착각을 했는지 정돈 승지는 당연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들킨 영원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
***

매일 영원의 통학을 도와주는 승지는 늘 아침에는 간단한 샌드위치를, 영원이 시험을 치는 날에는 독서실의 마중과 도시락을 챙겨주었고, 또 한 번은 이전에 교복을 다리면서 영원의 팔꿈치가 1학년인데도 벌써 반질반질 해가 진 것에 물려받은 것을 알아차리고 새 교복을 사주거나, 가끔은 제집에서 재워 든든한 아침과 다림질을 마친 교복을 준비해주기도 하였다.

"영원아, 오늘도 잘 다녀와."
"응, 다녀올게."

평소처럼 영원을 학교에 데려다준 승지가 그녀의 안전밸트를 풀어주자 곧 승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직업 특성상 전화는 빨리 받아야 했기에 승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권승지입니다... 네, 지나가는 길인데요... 아, 연락이 안된다고요?......네네, 가면서 들려볼게요."

전화를 끊고 다시 옆을 바라보자 영원이 승지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승지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얼굴에 승지가 물었다.

"왜 그래 영원아."
"등교 뽀..뽀... 아직 안 했으니까."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둘의 키스를 영원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이런 쪽의 대화는 먼저 꺼내지 않던 영원이었기에 승지는 기쁘기도 한편, 작은 욕망이 떠올랐다.

"오늘은 자기가 나한테 해주라."
"응?!"
"어서."

승지는 눈을 감고 영원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영원의 손을 꼭 잡은 승지는 그녀가 해주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잡고 있었다. 그러나 선팅이 짙게 된 차 안에서 자꾸만 영원이 눈치만 보고 해주질 않자 승지는 곧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걱정할 시간에 열 번은 했겠다."

귓가에 속사여지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영원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마주 보고 있는 승지의 날렵하게 트인 눈매가 영원을 종용하듯이 휘어졌다. 영원이 불안한 눈초리로 창밖을 몇 차례 더 살피고는 주춤주춤 승지에게 다가갔다. 말캉한 감촉이 승지의 입술에 짧게 닿았다가 이내 멀어졌다.

"이게 뭐야. 제대로 다시 해줘."

순식간에 지나간 것에 귀여워서 승지는 괜히 어깃장을 놓았다. 영원은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더니, 그대로 다시 머뭇대며 다가왔다. 그리고 말캉거리는 감촉이 아까보다 더 진하고 강하게 승지의 입술에 닿았다가 멀어졌다. 기분이 좋아진 승지가 눈매를 크게 휘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잡고 있는 영원의 손을 잡아 당겨 이번엔 자신이 영원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동시에 승지가 혀를 내밀어 영원의 입술을 핥았다. 그 순간 전기가 짜릿하게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에 영원이 몸을 떨었고, 승지도 재빨리 입술을 떼어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학교 잘 다녀와, 영원아."

부끄러운지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 영원이 조심스레 차에서 내리고 학교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승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앞으로 2년 반만 더..."

영원의 졸업까지 남은 기간을 되뇌며 속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승지였다.

***

승지의 집은 1년 계약의 전셋집으로 재계약을 거쳐 2년 정도 살았으며 곧 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평소의 승지였으면 이사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그대로 살 법하였으나, 상황이 바뀐 만큼 생각도 바뀌었다. 그녀는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부동산을 다니며 지금보다 큰 집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지금 영원의 학교가 끝나고 집까지 바래다준 승지가 늘 헤어지는 골목의 앞에서 평소보다 더 오래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자신을 붙잡고 있는 승지의 얼굴에서 긴장하고 있음이 역력하여 영원이 승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영원에게 말했다.

"있잖아, 영원아. 내가 자기한테 정말 잘해줄 자신 있는데..."
"응?"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랑 함께 살자, 영원아."

영원의 손을 잡으며 말하는 승지의 손이 떨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승지에게서 동거는 꽤 큰 의미였기에 혹시나 영원이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가정이 무섭게 다가왔다. 슬쩍 바라본 옅은 가로등 아래의 영원의 얼굴은 순수하게 반짝거렸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승지는 또 한 번 딸꾹질처럼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었다.

"정말 좋아해, 그러니까 우리.."
"영원아?"

그때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영원에게 시선을 둔 승지를 두고 영원이 소리를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영원의 시선을 따라 승지도 남성의 존재를 발견했다. 그 남성은 어딘가 영원과 닮아 보였고, 무엇보다 영원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승지는 본능적으로 그 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기만을 바랬다.

"영원아, 아빠야."

'씨발.'

이것은 영원의 아버지에 대한 승지의 첫인상이었다.

***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차량키스신의 일부, 찜질방 외전편의 대사와 묘사를 그대로 베낌
영원이 승지에게 키스할 때면 찜질방편이 자꾸 생각나서 2차로는 못찌겠음
근데 베끼면서 든 생각인데 역시 갓차수열 문맥도 매끄럽고 묘사도 쩔어서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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