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로해피 정규 회의 시간. 하구미는 평소와 다르게 상기된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흥~흥 흥~."

"하구미?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거니?"

"응! 하구미, 어제 미-군 네 집에서 잤는 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차를 마시던 미사키의 손이 떨렸다. 

미사키는 지금 한 순간의 욕망으로 인해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구미가 미사키네 집에 놀러오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 밴드 베이스 파트 조율 문제를 조정해야 했기에

하구미는 조금 더 늦게까지 미사키 집에 있어야 했고, 덕분에 하구미는 미사키네 집에서 자고 가게 되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하구미는 당연히 미사키네 집 욕실을 썼고, 미사키의 옷을 입고 미사키네 집 수건을 썼다.

하구미가 미사키 옆에 찰싹 붙으면 달콤한 샴푸 냄새가 났다.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탄탄한 허벅지와 알맞게 차오른 가슴을 보고, 미사키는 저도 모르게 흥분했던 것이다.

미사키는 하구미의 엉덩이를 쓸며 조심스럽게 덮쳐들어갔다.

"하구미. 우리, 병원놀이 할래?"

그런 범죄자 같은 변명을 하면서.

"미-군이랑 병원 놀이를 했어!"

"병원 놀이? 정말 재밌었겠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거니?"

다시 현재. 미사키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병원 놀이라는 말에

코코로는 웃으면서 맞장구쳤지만, 다른 두 멤버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미사키는 특히 못볼걸 봤다는 듯 민망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카논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

"응.... 병원 놀이를 어떻게 하냐면!"

"그, 그냥 내가 의사 선생님하고 하구미가 환자가 되서 소꿉 놀이 같이 했어! 그렇지?"

미사키가 하구미의 입을 틀어막고 상황을 대신 설명했다. 더이상의 이미지 하락은 막는 게 필수였다.

억지로 하구미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 카오루가 상황을 대신 정리해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코코로, 그것보단 더 중요한게 있지 않니? 오늘 우리는 다음 공연을 어디서 할지 정하기로 했잖니."

"맞아! 하지만 하구미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까, 그 병원 놀이란게 너무 궁금한걸! 미사키. 그 병원 놀이는 어떻게 하는 거니?"

"후에에에...."

더 이상 못듣겠다는 듯 카논이 귀를 틀어막았다. 카오루가 식은땀을 삐질삐질흘리며 미사키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미사키가 당황하는 그 순간 하구미가 입을 열었다.

"응! 우선 청진기를 대야한다고 미-군이 내 윗도리를 벗.....읍읍!"

"청진기! 맞아! 청진기로 심장 박동을 쟀어!"

미사키가 다시 하구미의 입을 틀어막았다. 코코로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윗도리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코코로! 뭐하는 거야!"

"응? 그치만 병원 놀이를 하려면 윗도리를 벗어야 한다고 들었는 걸?"

"아니, 그... 안 벗어도 돼! 안 벗어도 되니까!"

"응? 안벗어도 되는 거야? 그치만 미-군. 하구미가 부끄러워하니까 꼭 벗어야 한다고....."

"우와아아아아악!!!!"

미사키가 다시 하구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카논이 마침내 김을 내뿜으며 기절했다. 카오루 고개를 저으면서 미사키에게서 슬쩍 거리를 벌렸다.

미사키는 필사적으로 하구미에게 속삭였다.

"하구미. 그 때 같이 병원 놀이한건 우리들끼리 비밀이라고 했잖아!"

하구미가 그 말에 고개를 기울이더니 대답했다.

"응? 그랬어? 이미 친구들이랑 엄마 아빠한테 다 자랑 했는데."

"뭐?"

미사키의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렸다. 미사키는 하구미를 내버려 두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수십통의 문자 메세지가 들어와있었다.

- 오쿠사와 미사키 양. 어제 우리 딸이랑 있던 일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문자 드립니다. 딸 이야기만으로는 저희가 괜한 사람을 의심하는 걸수도 있으니까요.

어제 우리 딸에게 손을 대셨나요?

미사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