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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대충 눈떠보니 S급 공략대상 엘프궁수 10화모바일에서 작성

포도맛딸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08 06: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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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아님
광자야 야설 아님
응우옌아 야설 아님

대충 눈떠보니 어쩌고 모음집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lilyfever/621979



"...또에요?"

"네, 또 헬팟이에요."

이번에도 파티에서 탈퇴한 용사는 혼자 마을에 남아 굶주리고 있었다. 아니 뭐, 내가 찾아가긴 쉬우니까 그 점은 고마운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렇게 초췌하게 있는건 안쓰럽게 느껴지기만 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결국 나는 용사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차피 이번 세상도 망할거, 망하는거 같이 지켜봐드릴 수 있어요. 그때까지 여행이나 다녀요."

"그냥 망한 판은 빨리 리하는 게 나은데..."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시라구요! 대체 얼마나 죽었으면 죽는 거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에요? 저번엔 칼로 자기 목까지 찌르고!"

"아하하, 좀 징그러웠죠?"

"징그러운게 문제에요 지금? 어떻게 그렇게 자기 목숨을 소홀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대답없이 힘없게 웃고만 있는 용사를 보니 괜히 화를 냈구나 싶었다. 안그래도 기운에 의욕도 없는 사람한테 짜증만 부리는 모양이었으니까. 아차하며 일부러 화를 낸건 아니라 사과하니 용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기분 좋은데요.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거, 걱정이... 맞긴 한데요, 어쨌든..."

"파티원들은 마왕 잡는데만 정신이 팔려있던가, 트롤링하기에 바쁘고. 이 세계 주민들은 제가 바라는건 맹목적으로 들어주기만 했어요. 살인이나 도둑질이 아니면 전부. 옷을 벗으라면 벗고, 대신 몹한테 맞으라면 맞고... 그러다보니 제게 의미있는 것은 없어져버리고 말았어요. 그냥 관성처럼 될 판은 마왕을 잡고, 안되는 판은 리트하고."

"..."

"점점 그 관계들이 질려가는 거에요. 이전 회차에선 저를 원망하고 죽어가던 사람들이 다음 회차에선 구해줬다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간이라도 꺼내줄 것처럼 굴고. 미치겠는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저 혼자라는 거구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나에게 용사는 한탄을 멈추고 장난스레 말했다.

"일라이자 잘못이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오히려 일라이자가 와줘서 저는 희망이 생겼는걸요. 물론 NPC라고 지레짐작하고 떠보기를 먼저 해서 미안한 것도 있지만..."

"미안해하지 말아요. 전 용사님 덕분에 이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은 거니까... 애당초 패닉에 빠질 틈도 없이 끌고다녔잖아요 생각해보면!"

"아하하."

"미안하면 저 데리고 좋은데 가줘요!"

"그래요.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내 윽박에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 모습이 기운없는 모습보단 보기 좋았다.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용사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이여자 저여자 추근덕거리면서 나에게까지 능글맞게 들이대던 예전과 다르게, 다른 사람에겐 불필요한 대화도 걸지 않고 나에게만 친절했다. 그렇지만 이게 용사의 본모습이겠지. 그녀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가 내게 가진 마음의 짐을 털어버리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곳의 시간으로 한달쯤 지나, 마왕을 잡는다던 파티가 아이템 분배를 실패했다고 서로 뒤통수치다가 자멸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저게 진짜냐는 눈빛으로 용사를 바라보았을때,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이래서 헬팟이었냐고.

용사 파티가 없으니 마왕은 손쉽게 인간의 마을을 점령했지만, 우리의 여행엔 지장이 없었다. 그저 밥을 먹기 위해 찾아가는 식당 주인에게 뿔과 꼬리가 생기고, 다른 손님들의 종족이 다양해지는 정도였다. 의외로 이 게임, 전투 외엔 전체이용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을에선 이렇다할 갈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여정에도 끝이 있어서, 모든 인간의 마을이 마왕에게 점령당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자동적으로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졌다.

그래봐야 다시 만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수십번의 리트라이 동안 파티가 정상이면 마왕을 잡고, 아니면 단 둘이 여행도 다니고, 정착도 해보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조금씩 용사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내게 마음을 여는게 느껴졌다. 마왕마저 반가울 정도로 잡다보니 싸우지 않고 모두가 행복했답니다 하는 해피엔딩 이스터에그를 찾기도 했지만.

그렇지만 현실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은 진전이 없었다. 마법 서적이나 유물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해보았지만,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용사는 나만 있으면 괜찮다며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했지만, 그런다고 괜찮아질 리가 있을까. 나는 당신만이라도 현실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렇게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 찾은 방법은 용사가 나를 안게 만드는 것이었다. 달 밝은날, 나는 나름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용사에게 술을 먹였다. 대놓고 유혹하는 분위기다보니 용사는 꽤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입맞춤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역시 키스 잘하시네요. 많이 해본 솜씨에요."

"아니, 그건... 후. 앞으로 일라이자한테만 할거니까."

술을 꽤 먹이긴 했지만 서로 아직 정신이 멀쩡하다는건 알았다. 그래도 술이란건 한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키스를 하고도 내가 침대까지 유도한 용사는 여전히 주저하는 기색이 만연했다. 역으로 용사의 옷깃을 붙잡아 침대에 눕히고 내가 그 위에 올라탔다. 용사는 저항하지 않았다.

"아직도 뭐가 걸려요?"

"제가 일라이자를 좋아할 자격이 있을까요?"

"뭐래. 이미 실컷 나 유혹해놓고서."

"그건 일라이자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구요."

"미안한만큼 사랑해줘요 그럼."

용사가 더 변명하고 주저하기 전에 나는 용사의 입술을 훔쳤다. 술에 달아오른 숨결이 후끈했다. 아직 망설이는 손길이 내 어깨에 닿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용사의 혀를 호흡이 가빠질 때까지 탐했다.

술김에 이렇게까진 했지만, 이제 뭘 어떻게 한다...? 야한 영상도 본적이 있긴 하지만 여자끼리의 관계는 처음이었기에 가쁜 숨을 고르며 잠깐 용사에게서 입술을 뗐다. 그런 당혹감을 눈치챘는지 용사는 능글맞은 웃음을 되찾고 끈적하게 속삭였다.

"나한테 맡겨줄래요?"

"흥, 좋아요. 해보세요."

순식간에 용사는 내 팔을 끌어당겨 자세를 역전시켰다. 내 금발과 용사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침대 위에 얽혔다. 어깨부터 가슴을 간지럽히는 그 흑장발의 부드러움에 잠깐 한눈을 판 순간, 용사는 가벼운 손길로 내 드레스를 벗겼다.

"후회 안하시겠어요?"

"용사님이랑 돌아갈 수 있다면야."

"이러고도 못돌아가면 제가 평생 책임질게요."

"돌아가면?"

"돌아가도. 그러니까 용사 말고 이름을 불러줘요."

용사의 눈에는 아직 불안함이 서려있었다. 나는 부러 밝게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해요, 제인."

"저도요, 일라이자."

제인만 현실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살결이 맞닿고 제인의 맥박이 느껴졌다. 귓가에서 느껴지는 제인의 숨과, 가슴 끝을 튕기는 손가락과,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사르륵 내 살을 스치는 머리카락들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술 덕분일까, 아니면 제인이 너무나 능숙한 걸까.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나는 제인을 꼭 끌어안았다.






만족스러운 나른함과 뜨거운 여운이 침실에 가득했다. 제인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직 숨을 헐떡이는 나를 달랬다.

"아무래도 이걸론 돌아갈 수 없나봐요."

"그런가봐요..."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는 파들파들 떨리는 팔로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내 드레스를 가리켰다.

"드레스 뒤져보면 뭐 있을 거에요..."

"드레스요?"

용사 스펙이 굉장하긴 한지, 제인은 아직 쌩쌩해보였다. 조금 숨만 고르고 도로 멀쩡해진 그녀는 내 드레스를 뒤적여 은장도를 찾아냈다.

"...이거 말하는 거에요?"

"네. 그거 뽑아볼래요?"

"일라이자... 농담하는거죠? 이게 뭐 열쇠라던가..."

덜컥 겁이 났는지 제인은 주저하며 은장도의 칼집을 뽑았다. 딱히 열쇠나 기적같은 반전은 없이, 달빛에 새하얗게 빛나는 칼날이 드러났다.

"사실상 제인도 저를 좋아하고, 저도 제인 좋아하니까... 공략은 끝난 거잖아요. 같이 자기도 했고. 근데, 저도 이거 볼 수 있거든요. 제가 공략 대상이란거."

"...말하지 마요."

"아마 이쪽이 맞는 것 같아요. 공략이란게 참... 마침 저 체력도 바닥인데... 제인이면 안아프게 해줄 수 있죠?"

농담이 아니고,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었다. 밑에 깔리기만 했는데도 모든 힘이 다했으니까.

제인은 입술을 파들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에요. 이건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 아니면 리트하면 되잖아요. 제인 혼자서 그렇게 목숨 걸고 하는거, 너무 미안했는데."

"일라이자도 죽으면 살아날 것 같아요? 아닐 수도 있어요!"

"그땐 신전 가서 부활하면 되니까 뭐..."

"..."

"한번 해봐요. 아픈건 무서우니까 한번에. 이거 한방이면 제인, 집에 갈 수 있는 거에요."

돌아간다는 말에 제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은장도를 들어올리는 그녀에게 나는 두 팔을 벌렸다. 역시 아프겠지? 칼에 베이고 찔리는건 전부 그녀가 막아줬기에, 아픔에는 면역이 없었다. 그래도 참아야지. 어쩌면 이별이 될지도 모르는데, 못나게 막 아프다고 비명지르고 그러고싶진 않았다.

잠깐의 침묵 뒤에, 은장도가 내 가슴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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