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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이런 거 써와도 읽어주냐?

dd(211.219) 2020.11.08 15:50:01
조회 1277 추천 39 댓글 21
														

대백갤은 매우 처음인 푸릇파릇한 초짜글쟁이 뉴비야 잘부탁해

3년 전에 써놨던 거 올려보려 하는데 약간 얀데레 느낌내려고 했던 거라

사람에 따라서 조금 매운맛이 느껴질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면 고맙겟어

잘 봐줬으면 좋겠다


=========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죽었다. 나의 사랑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차마 보지 못한 너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이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고통이 엄습하곤 했다. 네가 사고를 당했을 때의 고통과 감히 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사고를 당한 곳은 학교로부터 꽤나 가까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며, 나는 늘 너의 마지막 핏방울을 보려고 애썼다. 이 세상에 네가 있었다는 그 마지막 잔흔을 보려고. 실로 무의미한 짓이었다. 한적한 길가엔 주인 잃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인기쟁이였던 너를 추모하는 꽃다발의 행렬이었다. 이미 가루가 되어 바다 어딘가를 떠돌 너는 아마 절대 맡지 못할 향기. 또 못된 눈물이 앞을 막아섰다.


그날따라 하나에와 나는 서로에게 마음이 상해 있었다. 오붓한 카페에 앉아 조각케익을 먹을 때까지 그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비는 이따금 카페의 창을 툭툭 치고 지나갔다.

“대체 사키는 왜 이렇게 다른 애들한테 살갑게 대하는 거야? 사키의 애인은 나잖아. 사키의 미소는 나만 봐야 한다고.”

하나에의 투정에 나는 애써 웃으며 그녀를 달래주었다. 사실 조금 지치는 기분이었다.

“하나에, 그 애들은 그냥 친구야. 나한텐 하나에밖에 없어. 그리고 따져 보면, 인기는 하나에가 더 많은걸? 항상 발렌타인데이 때마다 하나에 책상엔 후배들이 보낸 초콜릿이 한가득하고, 고백편지도 내가 본 것만 세 번이던가….”

“하지만 사키는 그런 것 갖고 뭐라고 한 적 한 번도 없잖아! 사키는 그런 것에 대해 관대할지 몰라도 나는 안 그렇다고!”

“그래도 그저 웃었다고 이러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하나에는 가만 보면 집착이 좀 심한 것 같아.”

“뭐라고?”

그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의 관계를 위해 집착 좀 줄여보는 게 어때? 단지 웃었다고 이렇게 혼나는 거, 정말 질릴 것 같거든.”

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네 몸은 가늘게 떨리더니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조금 심하게 말했나 싶었다.

갑자기 너는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한번 노려보더니 그대로 그냥 나가버렸다. 나는 괜한 자존심에 쫓아가지 않았다. 비도 오는데, 금방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기다렸다. 5분, 10분…30분. 문득 걱정이 되어 카페를 나서려는 찰나에,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불안했다. 나는 너와 종종 걸었던 거리를 향해 내달렸다. 제대로 된 인도가 없어 늘 내가 너를 안쪽에 두고 걸었던 거리. 뛰어가면 갈수록 사이렌은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러자 경시청 사람들의 무전 역시 들려왔다.

“…부상자 미야가미 하나에. 17세.”


너는 병원에 이송되는 길에 숨졌다. 갈비뼈가 부러져 폐부를 찔렀다고 언뜻 들었다. 뺑소니를 당한 너는 길가에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신고를 할 때까지 우두커니 누워 있었다. 너는 그 차가운 길바닥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를 원망했었을까.


나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수업이 끝난 후부터, 떠나버린 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너와 만나지 못하면서부터 나는 부쩍 시간관념이 흐릿해졌다. 정처 없이 어딘가를 떠돌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면 해가 지고 있는 게 일상이었다. 너와 함께 하던 산보였다. 너의 빈자리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피아노는 아예 근처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음악실에선 늘 함께였는데. 하나에와 나는 서로에게 유일한 청중이 되어주었고, 그 점은 언제나 내게 원동력으로 다가왔다. 이전 같았으면 점심시간마다 연주하곤 했을 테지만, 심장에 스치는 저릿한 아픔에 나는 건반 위로 손을 올리는 것마저 너무나도 버거웠다.

“잘 자, 사키.”

“응. 너도 잘 자, 카미코.”

오늘 밤만은 잘 잠들 수 있을까. 네가 사라진 날부터 나의 밤은 그야말로 괴로운 환희였다. 꿈속에서 마주하는 네 모습에 나는 가슴 깊이 스며드는 그리움으로 결국 눈물을 내비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상을 등지고 모진 불길 속에서 한 줌 재가 되어, 아득한 바다에 흩뿌려진 너. 오늘에서야 비로소 너는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건 내 내면으로부터의 떠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룸메이트인 카미코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이불 속에 몸을 뉘었다. 고요한 심해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이 차갑고 무거웠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피아노의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적막한 세피아 톤의 바닷가를 보면 이런 느낌일까. 을씨년스러운 그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왔다.

“카미코, 자?”

나는 몸을 일으켜 옆 침대의 카미코를 불렀다.

“으음…왜 그래?”

카미코는 막 잠에서 깬 모습으로 돌아봤다.

“이 소리….”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아까 분명히 피아노 소리가 들렸는데….”

카미코는 이불에서 벗어나 내 침대로 왔다. 그리고는 내 등을 토닥여줬다.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그렇겠지…?”

“응. 같이 자 줄까?”

“미안해. 그래 줄 수 있어?”

쉽사리 음산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던 나는 그녀와 자기로 했다.

그렇게 대충 일단락되는 듯했다.


“사키, 괜찮아?”

며칠 뒤, 교실에서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으…응. 괜찮아.”

“다크서클 장난 아니야.”

“얼굴도 수척해지고….”

“힘 내, 사키.”

“괜찮아. 다 이해해.”

모두들 나를 걱정해주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순 없었다.

피아노 소리가 들린 날 이후부터, 나는 그 으스스한 음악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카미코가 같이 자 주곤 했지만, 음악이 들리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 음악은 내가 어찌어찌하여 겨우 잠들 때까지 계속 되풀이되고 되풀이될 뿐이었다.

“야간연습? 그런 건 안 하는데. 기숙사생들한테 민폐이기도 하고 말이야.”

관현악부에 물어봐도 밤에 피아노를 친다거나 그런 건 일절 없었다. 그렇다고 누가 카세트테이프를 튼다거나 시디를 재생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더 이상한 건 나에게만 그 음악이 들리는 것이었다. 한번은 카미코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고 같이 새벽까지 그 음악소리가 들리길 기다려봤지만 허사였다. 또 어느 날은 음악이 들릴 적에 급하게 카미코를 깨웠지만, 카미코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 음악은 거짓말같이 멈췄다.

이쯤 되니 정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대체 정체가 뭐지? 어디서 날 지켜보는 걸까? 날 놀리고 있는 건가?


짜증이 극에 달한 그 날도 피아노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빗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참 대단한 집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잠시, 나는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학교를 둘러보리라 결심했다. 비까지 오는 바람에 음습한 느낌이 배가 되는 것 같지만, 이렇게 결심을 굳힌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는 갈 용기가 생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산과 랜턴을 챙기고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차가운 비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비 오는 밤의 학교는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이 스산스러웠다. 춥고 무서운 느낌에, 아무래도 괜히 나왔나, 하고 망설였지만, 다시 마음을 굳히고 학교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인 음악실은 4층이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니 음악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려왔다. 학교를 집어삼킨 어둠이 금방이라도 나까지 집어삼키려 들 기세로 덤벼들었다. 나는 얼른 랜턴을 켜 덤비는 어둠을 애써 막아냈다.

벽에 스위치가 보였다. 켜고 싶었지만 수위 아저씨가 올까봐 그러지 못했다. 어둠 속에 있으니, 귀가 유독 예민해지는 느낌이었다. 수돗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비바람에 창틀이 덜컹거리는 소리, 쇠문에서 나는 끼익거리는 소리….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울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랜턴을 더 세게 그러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4층에 들어서자, 과연 음악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복도 저 끝, 음악실에서 들리는 게 확실해졌다. 그 섬뜩한 음악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듣고 있자니 오금이 저려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나는 스위치에 손을 댔다. 팍 하고 4층에는 휘황한 형광등이 켜졌다. 이러니까 훨씬 낫잖아, 하며 나는 조금 더 큰 보폭으로 음악실로 향했다. 

음악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섰다. 피아노 소리의 근원지. 문틈 사이로 지긋지긋한 그 음악이 명료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이 문 너머엔 누가 있을까, 그 사람에게 왜 이러는지 물어봐야하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별안간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듯 복도를 밝히던 모든 불이 훅 꺼졌다.

“꺅!”

너무 놀라 나는 후다닥 문을 열고 음악실로 들어갔다. 문은 쾅 하고 닫혔다.

피아노 소리가 멎었다.

피아노 앞에는 사람의 형체가 있었다. 번개가 번쩍 하고 그 형체를 비추자, 새하얀 세일러 칼라가 보였다. 우리학교 교복이었다. 그 사람은 내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왔네.”

익숙한 목소리, 정말 다시 한번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떠한 발소리도 남기지 않은 채로.

“사키.”

창백한 얼굴이다. 17일 전 사고 때처럼.

“하…하나에….”

얼어붙은 입을 간신히 움직여 그녀의 이름을 짜냈다.

그녀의 입에 미소가 일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미소가 아니었다. 너의 그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워보였다.

“사키, 나 보고 싶었어?”

하나에였다.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그래도 너는 너였다. 왈칵 눈물이 터졌다. 말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키 많이 보고 싶었어.”

그녀는 날 안아주었다. 오싹한 냉기. 그녀의 품은 아주 차가웠다.

“하나에, 내가…미안해…. 다 나 때문이야….”

그녀의 품에서 여태껏 앓았던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내가 그때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녀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근데…대체…어떻게 된 거야…”

가까스로 울음을 억누르고 나는 말했다.

“사키가 보고 싶어서…이렇게 왔어. 조금 이상하게 보이려나.”

“하나에 품, 차가워.”

“응. 어쩔 수 없지. 이미 죽었는걸.”

“근데 하나에,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투명하진 않은데?”

“응. 그렇더라. 만질 수도 있어.”

그러면서 그녀는 내 뺨을 살짝 쓸어보였다. 서늘한 한기가 뺨에 느껴졌다.

“신기해. 정말 살아 돌아온 느낌이야.”

“하지만 발소리는 안 나.”

“그래도 이렇게 안을 수 있는 게 어디야.”

하면서 나는 그녀를 다시 꼭 안았다. 감격스러웠던 걸까, 그녀와 마주보고는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갖다 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녀의 숨결은 없었다. 이따금 차가운 무언가가 내 입 안을 건들 뿐이었다. 마치 인공호흡을 하는 느낌이었다.

조금은 섬뜩했던 입맞춤을 마치고 우리는 피아노에 나란히 앉았다.

“근데 그 곡은 왜 계속 연주한 거야?”

“음, 그냥 울적했달까. 사키가 이 곡을 듣고 와줬으면 했던 것도 있고.”

“그럼 밝은 곡을 연주해도 되잖아. 쇼팽의 녹턴도 있고.”

“왜, 마음에 안 들어?”

“응. 좀 무서웠어.”

“그랬구나.”

하나에는 짐짓 슬픈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피아노에 손을 올렸다.

“사키, 우리 듀엣 할까? 예전처럼 말이야.”

하나에는 생긋 웃었다.

“그럴까?”

“곡은 사키가 좋아하는 밝은 곡으로 하자.”


“이렇게 계속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리워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연주를 하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사키…,”

왠지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뭔가 그녀가 기쁜 내색을 억지로 숨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갈까?”

음악은 멈췄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조금 후에야 깨달았다. 또 다시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하나에….”

“같이 가면 평생 이렇게 듀엣도 할 수 있고, 함께 거닐 수도 있고, 사랑도 나눌 수 있어.”

두려웠다. 그녀의 모든 말이 너무나 두려웠다.

“사키, 갑자기 왜 이렇게 어두워졌어? 나랑 함께 하는 게 싫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도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사키. 말해봐. 응?”

“…미안.”

“뭐라고?”

“…함께 갈 수 없어. 미안해, 하나에.”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못마땅함을 나타내는 그녀 특유의 표정이었다.

“왜?”

대답할 수 없었다.

“사키는 나 사랑한다며. 내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녀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한순간 잔혹할 정도로 차가워졌다.

내 안의 본능이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도망쳐!

“사키, 어디 가?”

나는 문으로 내뛰었다. 재빨리 문손잡이를 잡았지만, 문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아뿔싸, 이미 그녀가 잠근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문을 잡고 힘껏 흔들어 보았다. 문은 다만 덜컹거릴 뿐이었다.

“사키.”

모르는 틈에 그녀는 내 등 뒤에 있었다. 나는 뒤로 돌았다. 그녀는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왜 그래, 사키. 사키는 내 애인 아니야?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녀는 온몸에서 악한 냉기를 뿜고 있었다. 일순간에 나는 어마어마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저리 가!”

나는 그녀를 밀치고 그녀를 피해 피아노 쪽으로 도망갔다.

“아프잖아, 그렇게 밀치면….”

그녀는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꺅!”

그녀는 내 양 손목을 잡았다. 너무 차가워 금방이라도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다.

“같이 가자. 나는 너무 외로운걸.”

평온한 목소리와 다르게 몹시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이거 놔!”

나는 그녀를 뿌리쳤다. 그 반동으로 그녀는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같이 갈 순 없어. 미안해.”

“사키, 그게 뭐야. 그 말은 모순덩어리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녀는 일어서더니 나에게로 다시 다가왔다.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이유를….”

“고집부리지 마!”

나는 언성을 높였다. 살아생전에도 너에게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네가 이렇게 떼쓰게 둘 순 없잖아.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나는 문득 눈물을 또 내비치고 말았다.

“네가 죽은 건 안타까워. 그리고 너무 아파.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살아있고, 어쨌든 나는 살아가야 할 거 아니야. 너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결국 끝난 거라고.”

“너…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라고 생각해?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미안하다며 울부짖었던 것 같은데, 이게 미안한 사람의 태도인 거야?”

그녀는 분노로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우리가…왜 끝이야?”

그녀의 눈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불길이 휘감겨 있었다.

“말해!!”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음악실의 유리창과 거울이 깨져버렸다. 비바람이 몰아쳐 음악실의 커튼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게시판의 종이들도, 테이블 위의 악보들도, 모두 흩날렸다. 이 기괴한 모습에 너무 놀라서 나는 뒤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는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다, 불현듯 뒤의 거울을 쳐다봤다. 간신히 매달려있는 조각들 속에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사키, 우리는 끝이 아니야. 함께 할 수 있어.”

갑자기 그녀는 거울의 잔해로 다가갔다.

“내가 너를 데리고 가면 돼. 그러면 되는 거야.”

그녀는 산산조각난 거울을 헤집으며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비바람에 그녀의 머리칼도, 새하얀 칼라도 펄럭이고 있었다.

“사키, 이거 봐.”

그녀는 미소 지었다. 광기에 얼룩진 미소. 한 손에는 기다랗고 뾰족한 거울조각을 들고 있었다. 또 한 번 번개가 번쩍 했다.

“이걸 네 심장에 꽂아 넣으면…너를 데려갈 수 있겠지?”

그녀는 후후 하고 웃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하나에, 그런 모습 무서워. 싫어.”

“지금 생각난 건데, 내가 연주했던 그 곡 있잖아. 처음엔 그저 내가 울적해서 친 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어쩌면 사키의 레퀴엠인 걸지도 모르겠어.”

시시각각으로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나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하나에, 이러지 마….”

나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뒷걸음질쳤다.

“사키, 넌 틀렸어.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어.”

천천히 다가오던 그녀가 확 뛰어오기 시작했다.

“꺄악!”

나도 엉겁결에 몸을 뒤집어 일어나서는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키.”

허사였다. 몸의 정중앙으로부터 느껴지는 막대한 고통에 나는 내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붉은 장미가 피듯 옷이 빨갛게 젖어들고 있었다. 등이 불타는 듯이 쓰라려왔다.

“아….”

나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어디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프다. 너무나도, 아프다.

뜨겁게 달군 쇳물에 풍덩 빠진 것 같이, 뜨겁다.

네가 차에 치이고 끝내 세상을 떠났을 때, 이런 고통이었을까?

너도, 이렇게 아팠을까?

“사랑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거울 조각을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루비 같은 붉은 빛 유리 조각이 기어이 옷 앞섶을 뚫고 나와, 기묘하게 내 몸 한가운데에서 솟아났다.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그리고 그 처참한 광경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무언가에 목구멍이 콱 막힌 듯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숨쉬기가 극도로 불편해졌다. 나는 결국 옆으로 쓰러졌다. 그녀가 박힌 거울조각을 빼자 음험한 입 마냥 벌어진 등으로 피가 꿀럭꿀럭 새어나왔다. 몸을 가누지 못해 다시금 등을 대고 쓰러졌다.

“하…하나에….”

쿨럭, 하고 기침하자 분무기처럼 핏방울이 입에서 튀었다. 마른 바닥이었음에도 나는 꼭 익사를 하는 것만 같이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의식이 흐려지고 있는데도 별안간 뜻 모를 안도감에 젖어들어 갔다. 차라리 이렇게 하나에의 손에 죽는 게 어떻게 보면 꼭 맞는 나의 결말인 것만 같았다.

‘그래, 이렇게 해서 네게 진 이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불 속에라도 뛰어든 듯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내 몸을 자꾸만 괴롭혔다. 하지만 그 끔찍한 작열감을 피하고 싶어도, 내 몸은 더 이상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 한 군데도 쉬이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간신히 눈만 뜨고서는 나는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위에 올라탔다. 점점 아련해지는 시야에 그녀의 핏기 없는 얼굴이 다시 한번 보였다.

“영원히 함께하자.”

그렇게 그녀는 내 귀에 속삭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거울 조각을 잡더니 높이 쳐들었다.

“사랑해, 아이자와 사키.”

쉬익 소리와 함께 그녀가 들고 있던 거울 조각이 공기를 갈랐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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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만 안 먹었으면 좋겠다

사키가 밤마다 들었던 음악이 궁금하면 아래 영상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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