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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많이 망가진 백합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12 01:48:36
조회 641 추천 15 댓글 1
														








지금까지 나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이 나를 에워싸고 욕설을 퍼부었다. 맺었던 관계를 욕하는 것이 아닌, 나의 본질에 대한 날이 시퍼렇게 선 말들이었다. 너희들은 그딴 소리 할 자격이 없다고, 시끄럽다고 소리치며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 발악마저 저지당한 채 그들은 내 귀에 내가 부서져 버릴 때까지 소리를 쑤셔 넣었다.



손에 차가운 시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무의식 중에 그녀의 체온을 찾아 본능적으로 뻗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해 보았다. 또 그 악몽이었구나. 꿈속에서 나온 여자들은 나에게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어두운 말들을 나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의 얼굴을 빌려 꿈 속에서 재생하는 것뿐이다. 역시 자신의 뇌 아니랄까 봐 자기자신이 어떤 악몽을 가장 잊지 못할지 알고 귀신같이 구성해놨다 아주.



같잖은 복수에는 익숙했지만 어제는 필름이 끊겨서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 걸로 찍은 사진 몇 장과 저장된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코웃음을 치며 욕 몇 마디로 답장을 해주고 번호를 차단해버렸다. 만났던 흔하디흔한 가학적인 애들과 다를 게 없었다. 적당히 만나주면 전혀 딴판인 취향에 제풀에 지쳐서 사라지는 것들.



귀찮은 일은 이만하면 됐고 폰을 밀어둔 채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대었을 뿐인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정신도 못 차리는 상대로 얼마나 과격하게 해댄 걸까 도대체.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누워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하다가 마지막 수단을 떠올리고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아무도 모르는, 그녀조차 모르는 최후의 수단. 예쁘게 포장된 알코올 솜을 하나 집어 준비를 마치고 심호흡을 한 뒤 손에 힘을 주었다. 사각-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방이 너무 어두워 제대로 된 건가 확인할 수 없어 화장실 거울 앞에 서보았다.



손, 몸과 볼 어디 한 군데도 멍은 하나도 안 빠졌고. 머리도 개판이고. 다크서클이 심해서 진짜 아파 보이네. 이게 그렇게 걔들이 환장하던 병약미라는건가? 하여간 아픈 사람이면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더 괴롭혀지고 싶다니 걔들도 머리가 맛이 간게 확실하다. 옷차림도 아직도 가운 하나 걸친 채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끈 때문에 헤벌레하게 앞섬이 벌어져 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제랑 별로 다를 게 없다. 그것보다 소매를 걷어야...



"...언니?"

"너 아직 있었구나."



급히 소매를 내리며 태연하게 말을 건넸으나 손에 든 물체를 숨길 여유까진 없었다. 처음부터 두고 왔어야지 왜 바보같이 화장실까지 이걸 들고 왔을까.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초췌한 모습 때문에 눈치채지 못 했길 기도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가 거칠게 내 손목을 잡아챘다.



"아팟!"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비명에 죄를 알아서 시인한 꼴이 되었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는데 예기치 못한 격통에 소리가 새어 나와 버렸다. 아, 또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다 큰 어른인데 내 몸도 마음대로 못하나 싶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언니 도대체 이게..."

"별 것도 아닌걸로 왜 호들갑이야?"



붉은 피가 맻힌 내 손목을 보며 그녀의 표정에는 깊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있었다. 분명히 심드렁한 내 반응도 한몫했겠지. 아차 싶었지만 내 발언에 가식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책을 보다 손을 베인 것이나 내가 그은 것이나 별 차이가 없었으니까. 그 점이 그녀를 더 슬프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울먹이며 내 이름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돌연 그런 모습이 나의 심기를 건드려 기분이 나빠졌다. 평소답지 못한 그녀의 태도에 하던 일에 몰두하기로 다짐하고 그녀의 품에 안겼다.



"반말로 해."

"은, 은정 언-"



사각.



내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은 진짜 이유를 그제야 눈치챈 그녀가 몸을 벌벌 떨었다. 하지만 난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팔에 힘을 주며 그 의사를 확고이 한 뒤 눈을 감고 그녀의 체온과 향기, 나의 팔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그녀답지 못했던 행동을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평소'가 되도록 덧씌웠다.



"으, 은정아아..."



사각.



"은정아아!! 제, 제발..."



붉은 선이 하나씩 새겨질 때 마다 머릿속이 그녀로 가득 채워졌다. 몇 번 정도 반복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져서 허리에 감은 팔을 풀자 그녀는 내 팔부터 확인했다. 죽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 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흉터를 훑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녀와 비슷했던 선배가 나에게 헤어질 때 한 말이 떠올랐다.



-은정아. 네가 너 힘든거 알아서, 좆대로 굴어도, 자위기구처럼 불려다니는 것도, 꾹 참았어. 근데 그렇게 계속 다른 사람 마음 찢어놓고 다니면 언젠가 네 마음도 그렇게 될거야.



착하고, 상냥하던 선배가 어쩌다 나 같은 새끼랑 이어졌는지. 보나마나 동성애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내가 가여워서 그랬겠지. 그런 식으로 여자를 찾아내는 나한테 잡힌 선배가 더 가여운데. 생각보다 잘 버티는 선배에게 나는 선배가 무너질 때 까지, 나를 받아줄 수 없을 때까지 한껏 기댔다. 아니, 기약없는 고문에 가까웠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는 누군가 사라져야 끝나는 고문. 그 정점에서 나는 오늘처럼 팔을 피로 물들였다. 아마 선배의 입에서 욕을 들은 건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머리를 조금 식히고 보니 또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질렀다. 평소고 자시고 누구라도 손에 날붙이를 들고 피를 흘리는 사람을 보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게 정상이다. 동물적인 본능에 가까운 걱정일 뿐인데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그녀를 가지고 논 꼴이 되었다. 문제라면 그걸 인지한다 한들 저 상황의 나는 언제나 저렇게 행동할 것이었고 그녀는 뒤늦은 자기혐오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를 보며 하찮은 애정을 느끼고 이 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유지할려고 인내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걸 애정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걸까? 차라리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부모가 변덕을 부려 부성애나 모성애를 보여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애정에 가깝지 않을까.



일단 칼을 내려놓고 눈이 퉁퉁 부은 그녀가 하는 말에 영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지치지도 않는 애정에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이 되어가는 그녀의 대체제를 찾는 것이 귀찮아 타산적으로 그녀에게 애정을 조금 배푸는 것 뿐이다. 그녀를 걱정할 때도, 자기혐오에 빠질 때도,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그녀가 절대로 1순위인 적이 없었다. 모든 사고는 '나'로 시작할 뿐. 이런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면 그녀가 나를 받아줄지 아닐지를 무서워서 숨기는 것조차 아니다. 착한 그녀니까, 순진한 그녀니까 병신같이 등쳐먹히는 거라며 과거의 선배처럼 이번엔 그녀에게 기댄다. 이게 나의 본심이다.



"...어요. 언니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위로했을때."

"응...?"

"사랑해요. 언니의 그런 마음도 전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제발 웃지 마. 지금이라도 그녀를 쳐내. 넌 씨발... 양심이라는게 없어? 너가 싫다는 말 한마디면 이 아이는 너라는 구속에서 해방되는데. 너라는 저주 때문에 더 고통받을 이유가 없는데. 어제 다른 여자 품에 안긴 사실도 벌써 까먹은거야? 아니, 다른 여자가 그 여자 하나도 아니면서, 누구라도, 널 안아줄 여자라면 가리지 않는 주제에, 왜. 도대체 뭣 때문에.



웃기지 마. 전부 그녀의 선택이잖아. 수락해서 내가 손해볼건 전혀 없는 이득일 뿐인 거래야. 이제 와서 착한 척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너가 상처입힌 사람은 이젠 두 손으론 셀 수도 없잖아. 차라리 한 명만 끌어안고 같이 나락으로 빠지는게 훨씬 합리적인 판단 아닐까? 이제와서 다시 필요없는 상처를 몸에 새기고, 미친 년한테 잘못 걸려서 돌림빵당하고, 선배같은 사람 마음에 대못을 박는 짓을 또 할 자신이 있어? 그게 더 쓰레기같은 짓 아니야?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나 같은 새끼는 도저히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역겨워서, 쥐뿔도 없는 자존감과 자기혐오 때문에 눈시율이 붉어졌다. 내 행동 때문에 그녀는 또 착각하겠지. 이 감정은 그녀 때문이 아닌데. 난 아직도 그녀 앞에서 그녀의 이름조차 불러준 적이 없으니까. 어제의 변덕스러운 행동은 그저 위로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게 화를 내면 받아주고, 다리를 벌리면 기분 좋게 만들어줄 뿐인 도구에 불과하니까. 그런 나에게 배신당할 게 분명한 그녀의 마음을 두고 볼 용기도, 그녀 없이 버틸 용기 역시 없었다. 그러나 이 빌어먹을 몸은 당장 닥칠 자신의 고통에 무릎을 꿇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보고 나도 아쉬워서 더 써봤는데 역시 쓰기 힘드네. 나랑 취향 비슷한 금손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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