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열심히 하지 않을리가 없다. 노력이란 감히 양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기숙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거의 매일같이 훈련만을 거듭하고, 그 고생을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누구도 앓는 소리 않고 그저 싸워서 승리를 얻는다. 그것이 그들이 표현하는 긍지가 된다.
긍지는 고통과 불편함을 잊게 하고 내면의 힘과 아우라를 준다.
유메는 그녀들의 꿈을 안다.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같은 꿈을 꾸었다.
[남은 아웃카운트 하나! 에이스 이시가미-]
“앞으로 하나! 앞으로 하나!”
“찍어눌러!”
“상대는 1학년이야!”
패배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던졌다!]
벤치의 후배들은 결국 눈을 감았다. 3학년은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지켜봤다.
‘그녀는 크게 휘두를 뿐인 미완성된 파워 히터. 카운트를 몰아붙이고 변화구로 승부하면, 분명, 확실하게...!’
유메는 고개를 돌렸다.
[아야나미 쳤다! 타구는 우측! 깊은 코스! 아리하라가 몸을 던지지만!]
그것은 그녀가 평생토록 후회한 일 중에 하나였다.
리에는 기억 속 장면과 겹쳐보았다. 1점차. 투 아웃. 안타 하나 혹은 아웃카운트 하나로 끝나는 승부. 사양없이 최대 출력을 발산하는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던 배트.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을 거다. 함께였기에 볼 수 있는 경치다.
불안함은 있었다. 유우키마저 덕아웃의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어 두 손을 모아 빌고 있었으니까. 사쿠타는 단 1구 승부 동안 3번이나 안경을 고쳐 썼다. 마야는 숨길 기색도 없이 다리를 떨며 기도했다. 모두가 미래를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리에는.
“아이나.”
그저 믿고, 지켜보았다.
야구는 질서있게 시작해서 돌발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구장 내의 모든 생각을 파괴하는 그 라스트 신의 주인공은 달렸고. 특등석에서 다른 모든 의식적-무의식적 작업을 잊고 직관한 리에.
“아이나...”
분명 누구라도 호쾌하다고 평가할 스윙과 타구. 리에의 머리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 가슴을 옥죄어오는 감정이 있었다. 아픔을 수용하지만 분명 본질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고.
[시합 종료! 접전에 접전이 이어진 예상 못한 파란의 승자는!]
직시하기엔 너무나도 눈부신 파트너를 향해서 확실하게 마주보고 달려갔다.
다른 모든 이들이 정지하고, 료가 유유히 홈을 밟는다. 심판이 경기 종료를 선언하지만 묻히는 목소리. 음소거처럼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지기를 잠시.
“와아아아아아!”
미츠키의 등판이나 타석에 비하면 현저히 작은, 하지만 선명한 환호성. 섞여있는 높은 음의 목소리는 마지막까지 연주해준 시라사키 밴드부와 응원을 와 준 학생들일 것이다.
박수 소리가 섞인 그것을 들은 류오 측 관중석의 3학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졌...다고?”
신호탄은 그것. 이윽고 같은 뜻의 문장들이 뒤를 이었다.
하루카는 일어나지 못했다. 란은 못 박힌 듯 섰다. 케이는 무릎꿇었다.
미츠키는 오른팔을 떨며 덕아웃을 처다보았다.
“미안하다.”
줄곧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에게 전하고.
“고맙다.”
격한 환영을 받는 승자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최종 스코어 5 대 6! 1, 2학년들로만 이루어진 9명. 시라사키 고교의 대역전승!]
[평범한 집중도가 아니었죠. 딱 하나. 하나의 실투를 완벽하게 공략했습니다.]
“아, 아아, 아아아 아야나미이이이!”
“아이나!”
그라운드 위에서 소리가 있던 곳은 홈 근처 뿐. 아이나를 기둥 삼는 것처럼 시라사키의 전원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서로 누구인지도 모른 체 껴안고 있었다.
생각만큼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다음. 전원 정렬. 백과 적의 도합 29명이 홈 앞에 모인다.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표정도 내면의 감정도 서로 달랐지만 모두 확실하게 허리 숙여 인사. 이후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신게츠였다.
“나이스 파이트.”
마주본 것은 리에. 악수를 청한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그런 플레이였어.”
뭐, 나는 아직 2학년이니까. 라며 자조적으로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는 그녀다.
말이 있나 없나의 차이는 있었지만 등번호 1~9번은 모두가 악수했다.
“이시가미 ㅆ-”
“지금은 그저 앞을 봐라. 그게 응원해준 모두에 대한 예의니까.”
그렇게 해산. 각자가 각자의 응원적 앞에 선다.
“나카무~롸! 멋있었다!”
“미하~치! 연주 고마웠어!”
“아야나미 양, 나이스 피칭!”
“엄청 엄청 굉장했어!”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뒤섞여 환영해주는 상황.
“잘 했다, 1번!”
“4번도 8번도 나이스 플레이! 수비 좋았어!”
“고의사구로 욕해서 미안해!”
“이왕 저질러버린 김에 다 씹어먹어버려!”
해야할 대답은 하나.
“감사합니다!”
단순한 감사의 말이 아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할 의무를 짊어지는 각오의 표명이다.
이렇게 시라사키 고교, A블록 1차전 돌파. 다음 상대는 유라 고교.
마침내 1차전은 오후 시합만을 남기고 모두 끝난 상황. 여기서부터가 진정한 여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프로 리그의 포스트시즌도 아니니까 퇴장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쿨 다운을 마치고 구장 밖의 처음 들어온 입구 쪽에 자리잡은 시라사키 나인.
“...대낮이니까 왠지 이제부터 싸우는 거 같아.”
“동감이에요, 아이하라 선배. 뭔가 전신이 다시 프로텍터를 입으라고 외치는 듯한...”
간단히 말해서 아직 승리를 실감하지 못한 상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 아직도 자신을 낮춰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만해져서는 안되지만, 여러분은 부디 좀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때가 있어요.”
“응, 응~. 먀 짱도 2안타로 활약했잖아?”
“너 분명 텍사스 히트는 안타로 안 치는 거 아니었어?”
“아니~. 그건 내 기준이고.”
“결국 안타는 안타라는 뜻이니까-”
“-자신감을 가져야지, 주장.”
사쿠타의 인맥 덕분에 연습 시즌에는 16강급 상대와 자주 싸울 수 있었는데, 물론 격전구와 비격전구의 차이가 있기에 류오 레벨의 상대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승률 50 퍼센트대를 기록한 이유가 바로 분위기에 있을 것이다. 유우키를 비릇한 오버 밸런스의 상위타순이 선취점. 하지만 후보 투수들의 실점으로 ‘역시 우리는 안돼’ 같은 인식이 생겨 하위타순은 막히고 타순도 꼬이며, 작은 실점이 계속되어 역전당하는 패턴이 많았다.
역으로 오늘 이길 수 있었던 건 선취점을 뺐겼으니까. 항상 타이트한 경기 상황이었기에 항상 백지의 마음으로 싸운다는 팀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던 것.
“결국에는 에이스가 막고 클린업이 치는 전개가 되었습니다만, 그 상황을 만들어낸 건 모두의 노력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손뼉으로 마무리하는 사쿠타. 잠시 쉬는 분위기가 되었다.
‘과연. 아이나의 8K는 말하지 않으시는 거군요, 감독님.’
류오전 탈삼진 8개 1실점. 이미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가 있을 정도의 대형 사고다. 왠 3승짜리 고졸 루키가 포스트시즌 시리즈 4차전에 선발 등판해서 활짝 웃으며 7과 3분의 1이닝 동안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것과 거의 동급의 상황.
다만 이건 조건이 다소 달랐다. 선발 등판이 아니고, 공식전 데이터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무대의 클라스도 달랐다. 준비된 상황에서 1회부터 정면승부했다면 절대 1실점으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솔직히 오늘의 아야나미는 예상 이상이었으니까요. 건드리기 무섭습니다.’
대다수의 투수들이 부정하겠지만 근본적으로 투수들은 민감하다. 조금 과장하면 낙엽이 굴러가지 않아도 컨디션이 바뀔 수가 있다. 함부로 성적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는 거다.
“아이나, 역시 오늘 MVP는 너야. 타격도 타격이지만 마운드에서 너무 멋졌어.”
“잠깐. 카나, 스톱.”
그러나 그딴 건 모르기에 은근슬쩍 거리를 좁히며 말을 걸어오는 여자가 한 명.
“그런가요?”
“응. 오늘도 또 다시 반했어.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리에와 마찬가지로 사쿠타의 의도를 눈치챈 료의 제지에도 할 말은 다 하는 카나. 예쁜 건 알아서 전혀 불편하지 않은 앞머리를 넘기며 달라붙는다. 얼굴이 가깝다.
“저도 아직 여러분과 그라운드에 설 수 있는게 기뻐요.”
그렇지만 아야나미 아이나. 이미 익숙해진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 시선이 다소 끈적해도 의식하지...않는다.
“......”
리에는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저 광경이 신경쓰이지?
모 해외 야구 커뮤니티 사람들도 감히 음해하지 못할 훈훈한 팀메이트의 모습이다. 그럴 거다. 하지만 본능이 아니라고 외치기에 리에는 움직였다.
“카나. 아이나는 편하게 쉬어야 해.”
팔짱을 끼는 것처럼 양팔로 아이나의 오른팔을 안아서 때어내는 리에. 작은 벤치 사이에서 중심이 이동했다. 아까와는 반대로 대칭되는 상황.
카나는 잠시 놀란 듯 처다보더니.
“불편하게 한 적이 있는걸까?”
당기기다보다는 자신이 다시 하체를 끌어서 붙는다. 아이나는 두 참깨빵 사이에 낀 패티같은 상태. 두 경찰에게 연행된다고도 할 수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그런 가게’의 서비스 같기도 하다.
“이겨서 좋은 건 알겠지만 그렇게 붙어있으면 덥겠지.”
“본인이 신경쓰지 않잖아? 아무리 배터리라도 좀 과민반응이 아닐까.”
“아이나는 착하니까 그러는 거야.”
“흐응. 내가 나쁜 사람인 것 처럼 말하네, 리에.”
리에와 카나는 점점 가까이서 노려보고, 아이나의 공간은 갈수록 좁아졌다.
“어쨌든 떨어져.”
“네가 놓으면.”
“저, 저기...두 분 다 진정하시고...”
유우키가 다소 징그럽게 웃고 료가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쉰다.
그렇게 리에와 카나의 머리가 박치기 직전까지 가까워질 때.
“어.”
카에데가 접근하는 두 명을 발견했다. 아이나 급의 키와 자신보다 작은 키의 2인조. 카에데가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수고하셨어요.”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르듯 말해오는 유메. 시라사키 나인의 시선이 일제히 모인다.
동시에 주장인 마야를 향해 다가가는 미츠키. 손에는 꽤 큰 종이백이.
“...이거를.”
“아, 네.”
급하게 받아든 마야에게는 내용물이 보였다.
“종이학...!”
누가 만들었는가는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야 말로 또다시 전국으로. 후배들의 그 일념이 담긴 천 마리다.
우리들의 몫까지. 마야는 그 무언의 의사를 거절할 수 없었다.
한편 유메는 리에에게.
“작전과 현장 지휘는 당신이 하신 거죠.”
“네...맞습니다.”
“멋진 작품이었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고의사구였어요. 약소하지만 이것을 사용해주세요.”
유메가 건낸 것은 다수의 서류봉투. 그 겉면에 적힌 글자로 리에는 내용물을 이해했다.
“A블록 팀들의 데이터...!”
“대회 전개의 시나리오별로 준비했는데 쓸모없게 됐네요. 저희에게 맞춘 자료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정은 필요하겠지만-”
“가,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쓸게요!”
중력이 몇배는 강해진 것 같은 기세로 허리 숙이는 리에를 붙잡아 세우는 유메.
“승자는 고개 숙이는 거 아니에요.”
“네, 네!”
용무를 마친 그녀는 먼저 몸을 돌리고.
“아야나미.”
“이시가미 씨...”
“...불쾌하군.”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네?”
“그런 표정 짓지 말아다오.”
아이나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는다. 모르는 사이에 주름진 것이 느껴진다.
“당당히 싸운 결과다. 너도 나도. 상대가 단 1초의 훈련도 거치지 않는 초보자라도, 몇년 연속의 우승기록을 가진 초 강호라도. 승패 앞에서는 공평하지. 너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당당히 승자의 표정을 보이도록.”
“하지만, 이걸로 마지막-”
“그런 점도 포함해서다.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사람은 도전하고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 그런 당연한 일을 일일히 동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
“그리고, 끝이 아니다. 나는 몸이 허락하는 한 어딘가에서 배트를 들고 공을 잡을거다. 만일 너 또한 그런다면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고 싸운다.”
“네.”
“옳지. 좋은 대답이다. 역시 웃으니까 예쁘군.”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미츠키도 몸을 돌린다.
“그럼 이만.”
한 박자 망설이고. 결국 미츠키를 불러세우는 아이나.
“저기...팔은...”
놀란 눈으로 고개만을 돌리더니 다시 피식 웃는 미츠키.
“당연히 병원에는 갈 거다. 다만 거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으니까...”
“......”
“어째서냐고 해도, 나에게는 당연했다. 팬들한테까지 큰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고...후배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가 무너지면 그녀들은 너희 팀에 대해서 안 좋은 분위기를 끌고 가게 돼. 언젠가 다시 맞붙을 때를 생각해서라도 그건 안 될 일이지.”
이번에는 정말 뒤돌아보는 일 없이. 그녀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걸음을 유지했다.
“마지막 여름을 저렇게 초연하게...”
내년 여름이 끝날 때 그녀들 자신은 똑같이 할 수 있을까. 2학년 전원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내년의 이야기.
“자. 정리하고 버스에 타자, 모두.”
마야는 애써 목소리를 냈다. 그녀를 칭찬하듯 사쿠타가 어깨에 손을 얹고.
“돌아가면 간단하게 스트레칭만 하고 자율 트레이닝입니다. 내일은 그라운드에 모이지 않고 개인 메뉴를 소화하고 휴식. 다음 싸움을 준비하죠, 그녀들을 위해서.”
승리 이상으로 더욱 소중한 것을 이어받은 순간이었다.
미츠키와 유메는 걸었다. 목적지는 물론 팀원들이 있는 곳. 히나를 시작으로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기에 사실은 가기 싫었지만, 돌아가야 하니까.
“유메.”
유메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앞만을 봤다. 거리를 벌리려는 것처럼 그저 걸었다.
그러나 보폭의 차이는 매울 수 없는 법. 미츠키가 어깨를 붙잡는다.
“유메.”
“놔 주세요.”
실날같이 여린 목소리. 그 소리에 망설였지만 결국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모두에게도 말했듯이, 네 탓으로 돌리지 마라. 함께 싸워서 맞이한 결말이다.”
“...함께...싸웠다고요?”
고개 숙여 전신을 떨던 유메가 불쑥 머리를 든다. 그녀의 얼굴 주위를 체공하다 사라지는 작디 작은 물방울들.
“저는! 그저...! 같이 싸우는 척을 했을 뿐이에요! 빈약한 지식을 가지고 보잘 것 없는 말을 지껄이면서 도움이 된다는 착각을 한 거라고요!”
“...유메.”
“중학교 때 부터 반했어요. 당신을 돕기 위해서는 모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저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고개를 돌렸어요. 도망쳤어요. 당신을 믿지 못한 거라고요! 전부 다 가짜였던 거에요! 가짜였다고요!”
미츠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제가 당신 곁에 있어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운동도 서툴고 두뇌도 어중간하면서 매니저 때도 매니저 일도 제대로 못하고...절대적인 발언권으로 모두를 이끄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무책임한 조언을 했을 뿐인...! 그런...! 쓸데없는 존재에요. 당신의 마지막 여름을 망쳐버린 백해무익한 벌레같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끌어안았다. 몸으로 눈물을 받아내었다.
“끄윽...흑...”
뜸을 들여 천천히, 분명하게 발음하는 미츠키.
“아니야. 그건...절대로 아니야.”
“선배는...이런 곳에서 져도 되는 사람이 아닌데...”
“너는, 존재 자체만으로 나의 힘이 되어줬단다.”
턱을 한 손으로 들어올려 충혈된 눈을 마주본다.
“네 말이 모두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는 노력했지. 네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아니에요...아니라고요...”
“네가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더 강하게 안는다. 키만 비슷했어도 이마가 맞닿았을 거리다.
“평범한 팬이 몇 명이 있든 너 한 명보다는 부족하다. 네가 힘내는 모습이 귀엽고 대견해서 나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거다.
“......”
“내가 무뚝뚝한게 잘못이겠지.”
“...네?”
“유메. 너는 짝사랑이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만...”
귓가에 대고, 고즈넉이 말한다.
“나도 너를 좋아한다. 네가 예상하는 것보다 일찍부터, 네가 예상하는 것보다 많이. 사랑한다.”
유메는 석상이 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과 접촉한 것 같은 모습으로.
“네 손에 우승기를 들려주고 말할 셈이었다만. 이런 곳에서 져버려서 말이다.”
“미츠키 선배가...저를?”
“그래. 믿지 못하겠다면 몇번이고 말해주마. 팀 전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외칠 수도 있다. 나는, 너를, 확실하게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다고.”
“...읏!”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온다. 의미가 다른, 따뜻한 것이.
“그러니까 울지 마라. 좋아하니까, 울지 말았으면 한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며 서툴게 유메의 눈물을 닦아주자, 이번에는 그녀에게 안겨지는 미츠키.
“네. 약한 소리 하지 않을게요.”
“그래. 너는 앞으로 1년 더, 정보 분석원 및 작전 참모로서 모두와 함께 싸워줘야 하니까.”
“...내년에는 반드시. 고시엔으로.”
“그래. 그 기세다.”
등을 토닥여준다. 정성스럽고 부드럽게.
“선배.”
“응. 여기 있다.”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응.”
“앞으로도, 어리광부려도 될까요?”
잠시 뒤, 유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놀란 뇌로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한 결과 미츠키의 가슴팍에 깊이 파묻혔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잠, 깐. 선배...숨이-”
“안될 리가 없지.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안 받아주겠냐는 말이야.”
“우으읍~.”
“얼마든지 의지해 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의 4번이자 에이스니까.”
이것이 미츠키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에이스라고 칭했던 순간.
“저도 좋아하니까, 일단은 좀~!”
두 사람을 찾으러 온 란이 목격한 결과 평생의 안주거리가 된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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