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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여름, 편의점 앞, 그리고 두 캔의 맥주

0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4 12:18:56
조회 524 추천 21 댓글 10
														

여름, 편의점 앞, 그리고 두 캔의 맥주.


 “...역시 맛없어.”

 나는 혀를 내밀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걸 왜 먹는 거야.’ 하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게, 왜 나랑 같은 걸 고른 건데.”

 먹다보면 달게 느껴지기도 한다면서 몇 번 더 캔을 홀짝이는 이 녀석은 내 같은 과 동기다. 같은 나이임에도 굳이 친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한 학기 내내 대화했던 적이 손에 꼽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것도 대화라기엔 민망한 수준으로 짧은 것이었지만.

 만약 누군가 같은 과에, 같은 수업, 같은 동아리 활동까지 하고 있으면서 그럴 수가 있나?’ 라고 묻는 다면 나는 좀 곤란해진다. 그야 오티 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가 엄청나게 피해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그 이전부터 이 녀석을 알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그 때는 꽤 친한 사이여서 방과후나 쉬는 날에도 곧잘 둘이 붙어다니곤 했다. , 나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많은 애였으니까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조금씩 몰려오는 술기운이 자꾸만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나는 내가 그 애의 가장 특별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 말고 다른 아이와의 대화가 신경 쓰였고, 웃으며 가볍게 그 애의 몸에 터치하는 다른 아이들이 싫었다. ‘오직 나와만 웃으며 이야기 하고, 내게만 너를 허용해 준다면 좋을 텐데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어린 아이의 소유욕이었다. 그냥 네가 나에게 특별한 만큼 너에게도 내가 특별했으면 했다.

 “...손 잡을래?”

 지금이라면 절대 그런 말 같은 거 못했을 거 같은데. 아마 내가 평생 낼 수 있는 용기의 전부를 그 하굣길에서의 한 마디에 쏟아 붓지 않았나 싶다. 잔뜩 긴장했던 나에게 돌아온 말은 ’, 긍정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그 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슬쩍 곁눈질했을 때 보았던 너의 간질간질한 표정이 나를 들뜨게 했고, 헤어져야 하는 갈림길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딱 거기까지. 거기에서 끝냈어야 하는 마음을 키운 게 내 실수였다. 우리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던 어느 날, 나는 그 애를 놀이터로 불러 고백했다. 널 좋아한다고. 조금 돌려서 말했을 법도 한데, 어렸을 때 나는 참 요령이 없었다.

 “..? 저기, 그게.. 미안, ...”

 거기까지 들은 나는 그대로 뒤돌아 집까지 뛰어 들어갔다. 더 들었다간 그 자리에서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꼴사납잖아. 헉헉 거리며 집에 도착한 내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표정의 변화가 없던 네가 그렇게까지 곤란한 표정을 하다니. 나의 착각이 너와의 관계를 망쳤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았고, ‘미안해로 시작하는 너의 문자를 읽을 수가 없어 지워버렸다. 학교에 가서도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피했는데, 일주일 후 나는 너를 피할 수조차 없어졌다.

 아버지의 전근. 그 흔하디 흔한 사유가 네가 나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이유였다. 그제서야 너의 문자를 읽어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지만, 이후로는 이미 깨끗해진 메시지함처럼 너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일은 내 바보 같았던 어린 시절의 첫사랑 정도로 잊혀져 가는 중이었는데, 올해 신입생 오티에서 이 녀석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내 가장 부끄러운 흑역사를 기억하는 장본인을 말이다. 게다가 왜인지 그 흑역사의 대상이 나만 보면 끈질기게 말을 걸어온다니, 내가 왜 이 녀석을 그렇게 피해 다녔는지 충분한 설명이 됐을 것 같다.

하아, 결국 오늘 이렇게 허무하게 잡혀 버리긴 했지만. 내가 한숨을 내쉬자 앞에 있던 네가 왜 그러냐는 듯 웃는다. 아까 그렇게 마셔놓고 왜 이렇게 멀쩡한 거지?

 오늘은 종강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에게는 조금 곤욕스러운 행사다. 그래서 평소처럼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 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내 옆자리에 앉아 놓고는 술게임이란 술게임은 다 틀려 버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1차에서부터 몸도 못 가누는 상태가 되어버린 걸 옆자리에 있던 내가 떠맡게 됐고, 술 좀 깰 겸 편의점에 데려다 앉혀 놓는 다는 게 지금 이 사태를 초래했다.

 비틀거리는 걸 겨우 옮겨다 앉혀놨는데, 그새 다시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맥주를 먹겠다고 하니 내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저렇게 금방 멀쩡해질 줄 알았다면 두고 나올 걸 그랬다.

 “사이다나 다른 음료 같은 걸 골랐어도 됐을 텐데.”

 “그냥.”

 ‘술도 못 마시면서하고 또 웃는다. 원래 저렇게 잘 웃는 애였던가. 몸에 대충 걸친 듯한 셔츠가 흘러내리면서 나시를 입은 어깨라인이 그대로 들어난다. 상당히 흐트러진 모습. 예전부터 느꼈지만 너무 무방비하다고 해야 하나. 말수는 적지만 왠지 주변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그런 애였다. 그래서 늘 이런저런 사람이 주변에 들러붙고는 했지. 오늘만 해도 그렇게 잔뜩 취해 있으니까 주변의 남자들이...

 으,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하게 된다. 나는 너의 옆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도 너를 데리고 나왔을 거란 사실을. 술기운을 빌려 너랑 둘만 있어보려고 일부러 편의점으로 끌고 왔다는 의도를. 입 안에서 너와 같은 맛을 느끼고 싶어 네가 고르는 맥주를 골랐다는 시꺼먼 속마음을. 어라, 나 너를 왜 피하는 거였더라. 머리가 지끈 거린다.

우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매끄럽게 이어졌다. 대학생활의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너는 나의 고백에 대한 이야기나 내가 널 피해 다녔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내가 곤란해 할 것 같은 주제는 모른 척 해주는, 너의 상냥함이겠지.

 그래, 나는 너의 그 상냥함이 싫었다. 우리가 재회 했을 때, 너는 나와 있었던 불편한 일들은 다 없던 걸로 만들고, 다시 나와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았다. 너의 그런 편안함에 스며들었다가는 언젠가 나도 모르게 또 선을 넘어 버리고 말테니까. 그런 마음이 은연중에 너를 필사적으로 피하게 했다.

 홧김에 맥주 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킨다. 입안의 씁쓸함과 너의 당황하는 표정. 같은 맛은 무슨.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한심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닌데. 손을 잡고 걸으며 두근거림을 느꼈던 나와 그렇지 않았던 너처럼.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같은 마음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너에게 단 것이 나에게는 썼다.

 “...내가 너를 왜 피해 다녔는지 알고 있잖아.”

 “.”

 뭐가 이야. 이런 때조차 말을 아끼는 네가 미웠다. 왜 항상 그렇게 미적지근한 건데. 너는 뭔가를 생각이라도 하는 듯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됐다. 이제 그만할래. 역시 이런 쓰기만 한 걸 괜히 먹었어.”

 일어선 나를 네가 지그시 올려다본다. 갑자기 일어났더니 살짝 어지럽다. 알코올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구나. 이런 상황인데도 아무 말이나 해서 도망가는 날 붙잡아줬으면 한다니. 이제 진짜 마음 접어야하는데.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야지.”

 뒤돌아선 내 손을 덥썩 잡고는 순식간에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답지 않게 빠른 행동에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입술이 내게 닿는 게 느껴졌고, 미지근한 맥주가 혀와 섞여 들어왔다. 절대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엔 쓰지 않았다.

 “그 때의 고백에 대한 내 대답이야. 어때 이번엔 달았어?”

 예전 분위기랑은 다르게 밝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능글맞아진 거였어. 빤히 날 바라보는 의기양양한 시선에 괜히 내 얼굴만 화끈거린다. 똑같이 마셨는데, 너만 멀쩡한 얼굴인 건 억울하잖아. 당하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잘 모르겠는데.”

 재빠르게 너를 의자에 밀어 앉히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방금 전보다 좀 더 느긋하게 너를 느낀다. 부드러운 입술이, 혀가 입 안에 남아있던 맥주의 씁쓸한 맛을 모두 앗아갔다. , 솔직히 달지는 않다. 그래도 너와의 첫 키스는 분명 간질거리고 달콤한 타액의 맛으로 기억되겠지.

 이제 너의 얼굴도 나와 똑같이 잔뜩 달아올라 보인다. 자기가 더 엄청난 짓을 했으면서 아까의 능글거림은 어디로 갔는지 귀까지 새빨개진 채로 버벅 거리는 게 귀엽다. , 정말. 나도 이런 부끄러운 말 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술기운 때문일까, 이미 오래전에 고갈됐다고 생각한 용기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내 등을 떠민다.

 “대답이 너무 늦었잖아. 한 번으론 모르지.”

 쪽. 이후로 몇 번이나 너에게 입을 맞췄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애타게 날 끌어당기는 혀와 끌어안은 허리에서 전해져 오는 떨림이 너와 나도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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