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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a4 한장으로 끝내보는 백합

글쓰는병시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18 05:17:38
조회 603 추천 1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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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이 세상에 묶어두던 것은 알량한 나와의 관계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너와 헤어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너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너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 달라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는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너를 현실로 불러와 앉히곤 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네가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내 말에 반응을 하고 나를 바라볼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희미하게 사라지려는 존재가 내 앞에 선명하게 고정이 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종종 불안했다. 네가 나를 좋아해서 사귀는 것이 아닌, 그저 의무감으로 사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너에게 늘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불안을 너는 알아챘는지 입으로, 몸으로 내 불안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그때 뿐이었다.

 너는 늘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네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달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며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점점 지쳐갔다. 너의 감정은 늘 같았겠지만 내 감정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연락이 점점 드물어지고, 만나는 횟수도 점점 줄어갔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언제나 내 쪽에서 연락을 하고, 내 쪽에서 만나자고 했다는 것을. 내가 연락을 안하니 너 역시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관계는 그렇게 어영부영 사라져 버렸다. 나는 나만 몸이 달아올라서 너를 향해 감정을 들이밀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차차 너에 대한 것들을 점차 잊어가기 시작하던 한겨울 어느 날의 오후였다. 너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네가 사라졌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너의 말버릇을 떠올렸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 완전히 사라지려고 했던 너였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직 너에 대한 것들이 잔뜩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투명한 목소리, 내 몸을 어루만지던 부드러운 손과 짧게 정리가 되어있던 손톱, 서투른 솜씨로 만들어온 발렌타인 초콜릿,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던 빼빼로, 그것들 말고도 아직 수많은 기억들이 내게 남아있었다. 나는 너의 친구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듣기로 하였다. 다행히 서로 근처에 있어서 조용한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너의 친구는 매우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 애가 갈 만한 곳이 있을까요?“

 내게 처음 한 말이 저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뇨, 저도 모르겠어요. 아직 연락이 안되는거죠?“

 "연락은 사흘 전부터 안됐어요. 워낙 연락이 안 닿아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집에 가보니 아무도 없더라고요. 직장도 안나온지 이틀째라고 했고요. 일단 그 애 부모님한테도 연락해두었고, 가볼만한 곳들은 저 스스로도 찾아보려고 해요. 혹시 그 애랑 연락이 닿으면 저한테도 연락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친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한참이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었다. 약간 어둑한 조명 속에서 나는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바라보았다. 너에 대한 감정은 모두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었나 보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커피잔을 집으려고 뻗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커피는 죽음처럼 쓴 맛이었다. 나는 그 커피를 다 마시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쓴 맛은 내가 카페에서 나오고 나서도 입 안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완전히 사라지고 싶었던 여자와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던 여자 이야기


저렇게 쓰니깐 a4 한장 분량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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