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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보빔 못 쓰는 뉴비인데 이런 거 좋아해?

ㅇㅇ(220.76) 2021.02.26 19:21:04
조회 1018 추천 38 댓글 3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언니가 한 명 있다. 흔히 막내는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한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언니가 몸이 약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은 항상 막내인 내가 아니라 언니에게 쏠렸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평소에 멀쩡해보이는 언니에게만 시도때도 없이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섭섭함과 질투심을 느끼곤 했다.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저녁 일찍 잠에 드려고 침대에 누워있자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방 밖에 나온 일이 있었다.

그러자 늦은 시간에 나갈 준비를 끝낸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엄마는 자다 깬 내가 왜냐고 물을 새도 없이 나갈 준비를 시켜서 손을 잡고 집을 나서게 되었다.

얼마지 않아 택시에 타고 나서야 엄마에게 어째서 아빠 차도 아니고 택시를 타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말 끝을 흐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그렇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에 복잡한 기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자 붉은 불빛이 맞아주었다. 건물 앞 '응급실'이라고 써진 글자가 안그래도 조마조마하던 마음에 불을 지른 것 같이 더욱 불안해졌다.

붉은 빛에 홀린 듯 멍하니 있는 내 손을 엄마가 잡고는 건물 안으로 향했다.

어떻게 걸어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실내를 지나가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언니가 보였다.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언니 주위에는 가운을 입고 있는 어른들. 어린 내가 봐도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 때 나에게는 언니의 모습이 이 세상과 연결되는 한 가닥의 실을 힘겹게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가녀리고 애처롭게 보였다.

언니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누구에게 비는 지도 모르는 채 나는 필사적으로 언니를 미워해서 죄송하다고, 언니가 이번에 나으면 언니는 내가 지켜줄 거라고 언니의 곁에서 기도를 하였다.

그러고 난 다음 날, 내 기도를 누군가 들어주었는지 언니는 다행히도 무사히 깨어났다.




그 날 이후로 줄곧 집 침대 신세를 지는 언니의 곁을 지킨 지 어느 새 10년이 지났다.

꼬맹이였던 나는 학생이 되었고 언니는 학교에도 나가지 못하는 채로 여전히 침대에 앉아서 생활을 하고 있다.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시피하는 생활이 지긋지긋할 만도 했지만 언니는 평소에 책을 보고 지내며, 싫거나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고 나와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오늘도 학교에 갔다온 뒤 언니의 상황을 보러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김없이 언니는 책을 읽고 있었다.

언니에게 별 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숙제를 하기 위해 침대 옆에 상을 펴놓고 교과서와 노트를 펼쳐놓았다.


"……."


요즘따라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언니를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언니가 없으면 답답한 듯 하면서도 언니를 보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평소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언니와 상담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고 마음먹고 공책을 덮어놓고 언니를 불렀다.


"언니는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아?"


"음…."


내 설명을 들은 언니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까까지 읽고 있던 책을 들어서 나에게 주었다.


"이 책에 네가 원하는 답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 길로 내 방으로 돌아가 언니가 준 책을 다 읽었다.

받은 김에 끝까지 다 보기는 했는데, 언니의 생각이 맞는지 당혹스러웠다. 언니가 준 책은 연애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에 비교하자 주인공이 겪고 있는 두근거리는 심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 거라니, 그것도 언니를 상대로.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지금까지 언니가 한 말은 대체로 맞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확인해보려 오늘은 언니와 같이 자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책을 돌려주려고 언니의 방으로 향했다.


"언니, 책 가져왔어."


"……."


방에 들어서자 언니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자고 있었다. 조용히 책을 언니 머리맡 책장에 놓아두고는 문득 언니의 얼굴에 시선이 갔다.

햇볕을 맞지 않아 새하얀 피부,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서 어깨 정도까지 오게 자른 머리, 누워만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끈한 피부.

새삼스럽게 잠든 언니의 모습을 의식하게 되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언니의 옆에 누웠다.

어렸을 때부터 간병한 내가 언제든 언니의 옆에서 잘 수 있도록 넓은 침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둘이 누워도 좁지는 않았다.


"응…?"


"아, 미안. 깨웠어?"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냐고 하려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말도 없이 내가 옆자리에 누운 것을 싫어하는 기색 없이 가까이 붙었다. 고민하던 때처럼 답답하거나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요즘은 같이 안 자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 요즘은 밤 늦게까지 공부하니까."


사실은 요즘 언니와 얼굴을 마주하면 기분이 밍숭맹숭해서 본의 아니게 피한 거지만.


"책을 읽은 소감은 어때?"


"언니의 생각이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어."


"그래…."


그 말을 들은 언니는 가까이 누워있는 나를 안아주었다.


"언니?"


"네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네 생각을 존중해줄 생각이야."


"……."


언니야말로 지금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나를 안아준 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이 상황이 싫지는 않고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락된다면 이대로 계속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분명 이대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면서 천천히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언제부터 내 동생인 세아가 나의 곁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따르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몇 번이나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일조차 제대로 기억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나에게 있어 세아는, 평소에는 바빠서 얼굴을 마주하기 힘든 부모님보다도 훨씬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세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 간에 일어나는 일을 듣고 세아가 없는 때에는 책을 읽으며 지식을 얻어갔다. 


나에게 있어 과장 보태서 세아는 세상 그 자체나 다름 없게 되었다. 


세아가 없으면 나는 세상과 단절되는 셈이니까 그 말에 과장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아가 학생이 된 지금도 그런 관계는 변하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세아에게 나는 특별한 감정을 갖고 만 것이다.


이 감정이 책에서 본 사랑과 같은 것인지는 다른 사람을 겪어보지 못해 검증할 수 없지만 나는 세아와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 무서워서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아가 나에게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을 걸어온 것이다.


나는 세아의 감정이 사랑일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직접 말해주기보다는 읽고 있던 책을 들려주었다.


이렇게 세아의 등을 떠밀어주면 무언가를 의식할지 모른다. 비겁하지만 세아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지금은 더 바랄 게 없다.


오랫만에 나와 같이 자려고 누운 세아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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