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최고의 씨발년 2부 -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8 01:03:39
조회 490 추천 17 댓글 1
														
0화
1화



=====================



‘멍청하게 서서 보고만 있느니 그냥 와서 붙잡지’


등을 진 채 너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며 나는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좆까”라고 말하는 강수담의 목소리로부터

감정 성분을 나름대로 분석해본다면

‘좆’에는 약한 분노가 70%

‘까’에는 나머지 30%가 부끄러움으로 차있었을 것이다

 

강수담과 나 사이의 공백이 넓어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발자국이 떨어지는 소리는

나를 향해있던 신발 앞코가 방향을 바꾸는 소리는

오래도록 들리지 않았다

강수담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 내리꽂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천재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뒤통수에 눈이 달리진 않았다

그건 괴물이지 천재가 아니니까


아무쪼록 나는 그녀에게 응해주지 않기로 한다

내가 집으로 향하는 길을 가만히 쳐다보는 이유가

꼿꼿하게 앞으로 걷는 잘 빠진 뒷모습이 매력적이라서 그러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엔 내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지만,

굳이 가는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 강수담이 나를 볼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였고

또한 괘씸함의 문제였으며

반항심의 문제이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론 자격의 문제였다


ㅡ뭔 왜야

ㅡ집에 수람이 혼자 있으니까

ㅡ너랑은 어제 오늘 계속 같이 있었잖아


그리고 나는 강수담에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둘이 함께였던 시간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서 내가 첫번째가 아니었다면

나를 돌려세울 자격이 너에게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왜곡된 중력이 내 등을 뒤에서 당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저 열심히 꾸준히 끈질기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 쯤 되면 내가 돌아봐도 안 보이겠지?

싶은 지점을 한참 넘어서까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가서 도착한 곳은

강수담을 등진 그 곳이 아니라

어김 없는 나의 집


내 생각을 도저히 멈추질 못하겠어서 나를 찾아왔다는,

싸구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을 세상 진지한 얼굴로 뱉던 강수담의 입술을 떠올린다

저물어가는 봄의 저편에서 불어든 바람에 짐짓 차가워 보이던 얼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분명하게 나를 향하던 눈빛

그리고 따뜻했던 품 속

공간이란 기억으로 구성되고 연결되는 거라던 누군가의 말에

나는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 어떤 이름도, 의미도 없던 아파트 입구는 그렇게 공간이 된다

너와의 기억이 내 마음 한 켠에 빚어낸 자리로 파고든다


아파트 입구

엘리베이터

현관문

신발장

부엌과 거실

욕실

그리고 침실


하루 전엔 온갖 종류의 데시벨로 넘쳐났던 공간들엔

지금은 만질 수 없는 기억들만 가득하다


“...”


단 하루 뿐이었던 그 누군가와의 왁자지껄함을

괜시리 그리워하게 된다면

그 감정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세탁기에 욱여넣어진 침대 시트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어스름한 새벽 사이 너와 내게서 퍼져나갔던

쾨쾨한 땀 냄새 뿐

시간은 좋았던 것을 쫓아내고 나빴던 것을 불러낸다

보통은 반대 아니었던가


좋았던 것들이 그래도 조금은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강수담이 밥을 먹었던 그릇과 수저로 저녁식사를 한다

괜히 혼자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쾌속으로 세탁해 건조까지 마친 침대 시트를 깔아 그 위에 눕는다


“...”

“...”

“...”


시간은 좋았던 것을 밀쳐내고 나빴던 것을 당겨온다

해가 넘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너의 손을 잡았던 밤보다

홀로 눈 뜨는 아침이 더 어두우리란 걸

나는 혼자서 확신한다


“...”

“그냥 데려오지 말 걸 그랬나”

“...”


후회

그 후회가 괜한 것인 이유는

강수담을 내 옆에 눕혔든 눕히지 않았든

지금 내 안에 차오르는 감정은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됐다”


가진 게 없어도 갖게 되는 게 있다

잃을 게 없어도 잃게 되는 게 있다

나는 너를 완전히 갖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내 손은 지금 텅 비어있다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게 없다

그래 분명 잃을 게 없어야 하는데

웃기게도 지금 나는 그렇지를 못하다

가진 적도 없는 너를 나는 지금 잃은 것만 같다


너의 손과 같은 차가움은 없지만

어렴풋한 감촉의 끝자락 만큼은 남아있는 내 오른속에

나는 참으로 애처롭게도 나의 왼손을 가져다 포갠다


‘스ㅡ윽’


두 피부가 맞닿고 비벼지는 소리

강수담과 반지우의 세포를 이루는 성분은

분명 한 치의 차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표피는 케라틴이라 불리는 단백질로 둘러싸여있다

그러니 과학적으로, 네 손의 감촉은 내 손의 감촉과 다를 바가 없다


‘스ㅡ윽’


하지만 나도 알고

여기 없는 너도 알겠지

감촉의 문제가 아니라

감과 촉의 문제라는 걸


나는 이게 다 뭔가 싶어 왼손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천장을 향해 대(大)자로 뻗는다

그리곤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가져와 전원을 넣은 다음

실로 오랜만에 전화번호부에 들어간다


‘씨발년’


조상의 혀가 자아낸 지혜의 맛은

참으로 담백하면서 맵싸하다

내가 자기 이름을 이렇게 저장해둔 걸 알면

강수담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모르지만 알 수 있다

갖지 못한 것을 잃을 수 있듯이


초록색 통화버튼이 지구라면

그 위를 맴도는 나의 엄지는 아마도 달

지구는 분명 파란 색인데

그렇다면 초록별 지구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색맹일까

분명한 의도를 갖고 전화를 걸어놓고선

색맹이라 벌어진 헤프닝이라 너스레 떠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빨간색 차단 버튼을 누르려고 했는데

눈이 안 좋아서 초록색 버튼을 눌러버렸어

이 다음에 너의 입에서 나올 말은

‘지랄’일까 ‘좆까’일까


ㅡ뭔 왜야

ㅡ집에 수람이 혼자 있으니까

ㅡ너랑은 어제 오늘 계속 같이 있었잖아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건

0에 수렴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좋은 것만큼 나쁜 것도 생각나니까

대충 계산한다 쳐도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


그래도 달은 돌아간다 

초록별 지구 위에서 끊임 없이

이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는 건

결국엔 좋은 것이 나쁜 것보다 많다는 걸까


빙글 빙글 빙글 빙글

엄지가 그려내는 투명한 원 사이로 너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얼굴의 주인이 내게 계산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너에게 쓸 시간은 이 정도고’

‘지금 그 시간이 다 채워졌으니까’

‘이제부턴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 쓸 것야’

‘너는 너의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려’


시간을 나누고 할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지금 나는 혼자다

너가 먼저 그렇게 나왔으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삑ㅡ’


그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살색 달이 초록별 지구와 충돌한다

작별인사와 함께 너에게서 돌아선지가 꽤 됐다

지금 내 등엔 침대 뿐이지만, 그리고 누워있으니 중력도 이 쪽이 맞지만

나는 여전히 너로 인해 어딘가로 당겨진다


‘뚜루루루ㅡ’


그래서 나는 결심한 것이다

너의 시간 중 일부를

나의 시간으로 바꾸기로


‘뚜루루루ㅡ’


목소리가 넘어오는 순간

너의 계획도 끝이다

나의 시간 속에 너가 들어온다

들어올 수밖에 없다


‘찰카닥ㅡ’


이윽고 내가 마주한 목소리는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별 일 없으면 연재 텀은 1주일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일들이 좀 겹쳐서 어쩌다보니 좀 늦어졌네요

중간에 관두는 일은 정말 되도록 없게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항상 봐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17

고정닉 8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 설문 스타보다 주목 받는 것 같은 반려동물은? 운영자 25/10/20 - -
- AD 은퇴한 걸그룹 출신 엑셀방송 출연 후 수익 공개 운영자 25/10/24 - -
- AD 월동준비! 방한용품 SALE 운영자 25/10/23 - -
1641564 공지 [링크] LilyAni : 애니 중계 시간표 및 링크 [7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3.26 51284 100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3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40957 120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30] <b>&a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37207 21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2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36791 33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23345 39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1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24590 68
1331450 공지 공지 [3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29142 53
1758962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8.24 6585 10
1758963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8.24 4996 7
1817935 일반 백합소설봇 소개 보다가 깜짝 놀랐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25 26 2
1817934 일반 부회장님 정말 성덕이구나 [6]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24 56 0
1817933 📝번역 뒤떨어진 후르츠 타르트 115화 [2] 산소jam의배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24 17 3
1817932 일반 ㄱㅇㅂ)리버스 콘서트 짱좋단말이야 [5] 소리야겟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23 31 2
1817931 일반 아지사이의 백합.jpg [2] ㅇㅇ(211.244) 21:23 44 1
1817930 일반 ㄱㅇㅂ) 대박 귀여운 강아지 짤 발견했대 [7] 마후카나데나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21 31 1
1817929 일반 스포) 아 니지동 회로 개쳐망했네 [4] 타입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8 86 0
1817928 🖼️짤 붕스) 청작이랑 뜨밤 보내려는 부현 [4] ㅁ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8 46 1
1817927 일반 미리 마여 애니 패야함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7 27 0
1817926 일반 니지동 극장판 pv가 떴구나 [2]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6 46 1
1817925 일반 백합애니 추천. 받습니다. [8] 아스트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5 73 1
1817924 일반 라비라비투야야~ [1] HairuCrea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4 18 0
1817923 일반 오늘밤부터 한파 시작이래 [2] 만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4 48 0
1817922 일반 스포) 여러분 시즈카스는 안전합니다 [8] 니코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3 60 2
1817921 일반 “머리카락이 키보다 긴 140cm 음침이” 특징이 뭐임? [2] ㅇㅇ(175.122) 21:13 32 0
1817920 일반 보라머리 총수캐 누구 있지 [6] ㅇㅇ(1.221) 21:12 40 0
1817919 일반 ㄱㅇㅂ)헤드셋은 서비스 종료다... [2] HairuCrea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 59 1
1817918 일반 스포) 아리사 취급은 왜 이따구가 된거야 [1] ㅇㅇ(122.42) 21:08 71 1
1817916 일반 따라올 수 있겠나? [5] 소리야겟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5 83 1
1817915 일반 애니화 예정작 뭐있음? ㅇㅇ(106.146) 21:02 37 0
1817914 🖼️짤 붕스) 생각이 복잡해진 삼칠이 ㅁ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 54 0
1817913 일반 몰락가문마지막남은메이드와아가씨백합 어디 없나 [5] 13F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 56 1
1817912 일반 니지 극장판 이제서야 봤는데 케로리라 작화 엄청 별로네 [1] ㅇㅇ(175.211) 21:01 79 0
1817911 일반 듀엣 나이트 어비스 내일 11시 대개봉 [3] 공혜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 73 0
1817910 일반 제미나이 ㄹㅇ 알못이네 [2] ㅇㅇ(125.183) 21:00 76 0
1817909 일반 이 짤 맘에 드네ㅋㅋㅋ [4] 아다시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0 89 3
1817908 일반 마마마 나중에 다시볼까 [2] 고뇌하는스미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9 30 0
1817907 일반 ㄱㅇㅂ) 상어가 자기소개할때 하는 말이 뭔지 아니? [5] 아삭AS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8 54 0
1817906 일반 재판스포) 짤같은 커플링을 뭐라고 함? [2] ㅇㅇ(211.208) 20:58 50 0
1817905 일반 고증 완벽한 아논소요 [7] 공혜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6 69 0
1817904 일반 와 메이저란 메이저는 다 때려잡았네 [7] ㅇㅇ(59.12) 20:54 180 11
1817903 🖼️짤 셰리한나 [3] ㅇㅇ(122.42) 20:53 57 1
1817902 일반 백합만화책사고싶어서 울었어 치요치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2 42 0
1817901 일반 부걱스 질문) 스위치2사려고 돈 아끼려는데 [5] HairuCrea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2 60 1
1817900 일반 야! 곰! 과자 뭐먹을까? ㅋㅋㅋ [6] 퇴근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2 42 0
1817899 일반 마마마 반역 다 봤는데 왤케 어려움 이거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2 70 0
1817898 일반 “ai메이드 갸루모드 끄는법을 모르는 음침이” 특징이 뭐임? [1] ㅇㅇ(175.122) 20:50 32 0
1817897 일반 시오세츠는 살아있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0 38 0
1817896 일반 시마무라의 칼날까지 읽었음 [4] 파운드케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9 101 0
1817895 일반 엥? 줄자가 이렇게나 많이 남는다고? [2] ㅇㅇ(210.223) 20:49 60 0
1817894 일반 나백일은 진짜 쩌는거같아 고뇌하는스미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8 33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