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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누군가 말했던 공중전화 하나메르 버전으로 써봤어

냥햏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11.22 22:37:37
조회 1542 추천 30 댓글 6
														

 열 다섯잔.


 잘 아는 사람들은 두 병 이라고 부르는 양이며, 비틀 거리며 골목을 걷고 있는 금발의 의사에게는 치사량을 한참 넘는 양이였다. 37세의 스위스 출신 의사, 앙겔라 치글러에게 소주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앙겔라는 술보다 차분한 모임을 좋아하는 타입이였고, 술자리는 꼭 특별한 날이나 자리에만 참석해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었다. 그냥 여느 때와 같은 주말 이었고, 누군가와 함께 한 것도 아니였다. 그저 흘러가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었다.


 "으... 왜... 왜에..."


 비틀거리며 걷던 앙겔라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넘어지는 바람에 신고 있던 구두 한짝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잠시 몸을 가누려고 노력하던 앙겔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골목길 벽에 기댔다. 어두운 골목에서 켜진 가로등이 자꾸만 그녀가 보고 도망쳤던 장면을 기억나게 만들었다. 그래, 평범한 하루였었지.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진.


 "왜에... 하나... 아..."


 애 닳은 목소리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송하나. 19세의 나이로 오버워치에 들어와서 단 1년만의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아이였다. 앙겔라는 처음 본 순간부터 빠져든 자신의 마음을 금방 알아챘고, 숨겼다. 같은 여성인 것도 모자라서 18살 연상인 자신이 어여쁜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다닐 수는 없는 법이였다. 


 그렇게 마음을 숨길 수는 있었지만 돌릴 수는 없었다. 하나는 기숙사는 절대 싫지만 너무 먼 것도 싫다면서 오버워치 한국지부 근처의 오피스텔로 들어갔었다. 말이 근처지 거의 옆건물이라 출퇴근 길에 자연스레 하나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자꾸 어른거리는 얼굴을 지우려 노력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하나의 집 앞에 멈춰있었다. 



 오늘 밤도 그랬다. 갑자기 밀려든 부상자들로 인해 생긴 주말 출근의 퇴근길, 피곤함에 뒷목을 이리저리 누르던 앙겔라는 어느새 하나의 오피스텔 앞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멍하니 하나의 방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린 앙겔라는 쫓기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앙겔라가 막 골목을 도는 순간이었다.


 “또 올거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쉬운 듯한 목소리가 따라 나왔다. 너무나 익숙한 하나의 목소리는, 앙겔라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온기와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앙겔라는 저도 모르게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도 왠지 하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어있던 앙겔라의 생각이 하나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다다랐다. 누구지?


 앙겔라는 벽에 몸을 바싹 붙인 채로 고개를 내밀었다. 얕게 깔린 현관등 아래로 포옹하고 있는 인영들이 눈에 들어왔다. 충격으로 앙겔라의 눈이 커졌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키 큰 누군가의 품에 하나가 안겨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앙겔라의 사고가 정지했다. 어둠을 뚫고 더 잘보이기라도 할 것 처럼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래. 혹시 필요한 거 생기면 연락하고."

 "응! 다음 주 잊어버리면 안돼?"

 "잊어버릴게 따로 있지. 아무튼 나 이제 가볼게. 늦었어."

 "알았어 오빠. 그때 봐!"


 굵은 남자의 목소리는 하나를 향해서 명백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답하는 하나의 목소리 역시 평소의 활발함보다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앙겔라의 머리 속에서는 그런 작은 변화들이 하나의 단어와 함께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오빠? 누구의? 앙겔라는 하나의 부모님이 옴닉사태 때 모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오빠라는 호칭이 연인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호칭이라는 사실도. 


 앙겔라가 못박힌 듯이 서있는 사이, 남자는 하나를 한번 더 품어주고는 떠나갔다. 안기면서 턱수염이 따갑다고 웃는 하나의 웃음소리가 채찍처럼 앙겔라를 후려쳤다. 벽을 짚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면서 긴 손톱자국을 남겼다. 말도 안돼.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읍...."


 앙겔라는 새어나오는 비명 같은 울음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푸른 눈에 차오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어, 눈가에서 넘실대다 넘친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잘게 떠는 입술을 짓씹는 동안 갈 길 잃은 손이 검은색 터틀넥을 찢어지도록 쥐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앙겔라는 기어코 비집고 나오려는 오열을 길바닥에 뚝뚝 흘리며 뛰었다. 어디든 상관 없었다. 이 곳만 아니라면. 



 울면서 골목을 헤매던 앙겔라가 도착한 곳은 후미진 곳의 조용한 포장마차였다. 날카로운 눈매의 주인은 울먹이는 앙겔라의 주문을 용캐 알아들었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술과 안주를 내주었다. 그렇게 혼자서 눈물과 술을 삼키던 앙겔라는 문득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싶어졌고, 마지막 병 바닥에 남은 소주를 모두 털어넣고선 포장마차를 나섰다. 주인은 고맙게도 앙겔라가 비틀거리며 사라질 때까지 무심했다.


 "풉..."


 그렇게 발 가는대로 걷던 앙겔라가 다다른 곳이 바로 이 또 다른 골목이었다. 술로 데워진 몸에 닿은 콘크리트 벽이 차가워서 기분 좋았다. 짧은 기억을 떠올리던 앙겔라는 실소를 머금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갈 길 잃은 연심이, 지금의 처량한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찢어진 스타킹 아래로 드러난 맨발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굽이 부러진 구두 한짝이 나뒹굴고 있었다. 눈물로 흐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구두는 작은 부스 같은 것 앞에 있었다. 앙겔라는 맨발이 차가운 길 바닥에 닿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갔다.


 구두를 손에 쥔 채로 눈물을 닦아내자, 맑아진 시야 사이로 낡은 공중전화 부스가 보였다. 요새는 거의 볼 수 없는 유물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앙겔라는 홀린듯이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화면 속에 띄여진 검은 숫자는 공중전화가 작동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동료 의사가 지나가듯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르는 전화는 안 받는 편인데, 약속한 친구가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서 계속 안받다가 만나지 못했었다는 이야기.


 비록 답을 받을 수 없는 마음이라 해도, 전하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할 것이었다. 자신의 이 고통도, 눈 뜬채로 지샜던 불면의 밤들도 모두 없는 것이 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기적이라 해도 좋았다. 보답 받지는 못해도, 적어도 이 마음을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앙겔라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바라보았다. 수화기 속에서 건조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0-1-0-2-8-8-1.... 마지막 11번째 숫자를 누르는 앙겔라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앙겔라는 발신음이 흐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등 뒤에서 식은 땀이 베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여보세요?"

 "......."


 수화기에서 어딘가 숨찬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나양. 잠긴 목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맴돌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해...요..."


 좋아해요.


 "네?"

 "윽... 흑... 제가..."


 정말 좋아해요.


 "......."

 "흑.... 흐윽... 정...말... 정말..."


 사랑해요.


 하지 못했던, 앞으로 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릇의 물이 넘치듯이, 한계를 넘은 마음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해요... 좋아... 해요... 정말로... 좋아해요...."


 어떠한 꾸밈도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이었다. 그 어떤 말로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의 진심을 되는대로 쏟아냈다. 그렇게 힘겹게 수화기를 붙잡고 있던 앙겔라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다시 눈물을 흘렸다. 길게 늘어진 줄에 매달린 수화기에서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마저도 긴 신호음과 함께 끊겼다. 일정한 템포로 이어지는 높은 신호음이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심장 박동 모니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이제는 끝날 자신의 사랑처럼.

 

 앙겔라는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 처럼 갑갑해진 가슴을 움켜쥐었다. 기대고 있는 유리 부스 밖으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졌다. 한번, 두번 떨어지던 것이 이어지며 빗소리가 되었다.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 


 "으윽... 흑... 흡... 으앙...."


 앙겔라는 내리는 비를 보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 부스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우는 자신이, 갈 길 잃은 마음이 너무 처량했다. 술에 취해서 그런건지, 계속 울어서 그런건지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복받치는 울음 사이로 뜨문뜨문 이름이 새어나왔다.


 "하나아... 하나아..."


 앙겔라는 그렇게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밖에 내리던 비는 더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엉망이었다. 화장은 다 지워지고 울면서 비벼댄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멍하니 내리는 비만 바라보던 앙겔라는 또 감정이 복받치는 것 같아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시간이라도 보아야 더 울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젖은 손으로 만져 물기가 남은 핸드폰 화면에는 붉은 부재중 전화 알림이 떠있었다.


-부재중 전화 : 하나양 51건.


 "....? 이게 무슨...?"

 "박사님!"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부스의 문이 열렸다. 전화부스의 문을 부수듯이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하나였다. 비를 맞아도 한참을 맞은듯 온몸이 젖어서 머리카락에서 물이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부스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던 앙겔라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양... 여긴... 어떻게..."

 "박사님, 울었어요?"

 "아니... 그..."


 부스 안으로 성큼 들어온 하나는 부스의 문을 닫았다. 자신의 젖은 머리카락이 닿을 새라 목 뒤로 정리한 하나가 가만히 앙겔라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앙겔라는 하나의 깊은 갈색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엉망인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여기서 혼자 울고 있었어요."


 덜 젖은 부분에 손을 비벼 물기를 제거한 하나가 앙겔라의 얼굴을 감쌌다. 앙겔라는 따스한 하나의 손에 감싸이자 다시 눈물이 고이는게 느껴졌다. 안돼. 여기서 울어버리면-


 "바보."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던 앙겔라의 사고가 완전히 정지했다. 조금 차가운 입술이 부드럽게 앙겔라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하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고개가 꺽였다. 입맞춤은 더 깊어졌다. 머뭇거리며 다가온 작은 혀가 아랫입술을 쓰다듬었다. 앙겔라는, 이성을 놓았다.


 비 내리는 골목길, 작은 공중전화 부스에 점점 뜨거운 기운이 차올랐다. 빗 속에서 달아올라 흐려진 유리에 찍힌 연인의 손자국만이 선명했다.



**



"네에? 친척 오빠요?"


 조금은 소란스러운 포장마차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올랐다. 목욕을 한 뒤인지 뽀송뽀송해진 앙겔라가 역시 말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하나에게 건네던 어묵이 멈춰섰다. 멈춰선 어묵을 바라보던 하나는 입을 벌리고 앙겔라를 바라보았다. 먹여주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일단 어묵을 물려준 앙겔라는 인상을 쓰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하나양, 다음 주에... 데이트 약속...."

 "냠... 데이트 약속이요? 다음 주 저희 친척 분 생일이에요. 그 오빠 부모님."


 하나는 연신 우물거리며 그 왜, 저 키워주신 분들 있잖아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부모님을 여읜 뒤로 친척 분을 밑에서 자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친척 분들의 아들이 하나와 이렇게 친한 사이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아들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박사님."


 하나가 떡볶이를 가리키며 눈을 감았고, 먹음직 스러운 떡볶이가 덜덜 떨리는 젓가락을 타고 입으로 넘어갔다. 박사는 젓가락질을 잘 하는 편이였지만, 부끄러움에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는 친척 오빠 분을 보고 오해했다는 거네요?"

 "혼자 사는데 뭐 필요한거 없냐고 오셨었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이 오빠 때문에 박사님 울었네요. 이 화상을 그냥..."


 울었네요, 라는 부분에서 앙겔라의 얼굴이 떡볶이처럼 붉어졌다. 앙겔라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뜨거운 어묵 국물을 마시곤 질문을 이어갔다.


 "저는 어떻게 찾은거에요?"

 "딱 봐도 공중전화에서 온 전화인데, 이 근처에 공중전화 거기밖에 없거든요. 또 골목 밖까지 제 이름이 들리는데 모를 수가 있겠어요?"

 "......."

 "그리고,"


 하나는 앙겔라는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비록 작은 손이였지만, 꽤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치 이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전화 왔을 때 부터 박사님인거 알고 있었어요."

 "네? 어떻게요?"

 "다 아는 방법이 있어요."


 진지하게 바라보던 앙겔라가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나는 박사의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김밥을 집는 앙겔라의 젓가락이 분주했다. 그러면서도 맞잡은 손이 퍽 다정했다.








 공중전화에서 몰래 전화했는데 드라마처럼 나타나서 키스하는 썰 보고 메르하나로 뽕차서 지름
 근데 너무 날림으로 써서 망한거시야
 내일 수능 화이팅하렴!


 쓰고보니 박사님 계산 안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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