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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단편] 자라따기

Button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12.12 17:09:00
조회 15369 추천 73 댓글 6
														









#1.




저희 가족은 대대로 병에 유난히 약했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폐렴으로 번지고, 상처는 덧나고, 밤마다 열이 올라 헛소리를 하던 집안이었죠.




초등생 시절이었을까요. 친척 동생의 숨이 가쁘게 들썩이던 밤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다른 집처럼 치료나 약을 먹을 수 없는 가정 형편이었기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죠.




어머니는 눈물을 지으시고, 아버지는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털털한 발걸음으로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이 때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은 사람은 바로 할머니였습니다.




우리 집은 피가 약하다며, 자라를 따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그 말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여쭈어 봤습니다만, 그 자라라고 함은 몸의 일정한 곳에 생기는 쌀알 같은 아주 못된 것이라고 답해주셨죠.




자락요법. '자극할 자(刺)'에 '경락 락(絡)' 자로 사람의 신체 일정부위를 절개하여 그 속에 있는 기름덩어리를 떼어내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이렇게 적당한 자극을 주어, 결과적으로 각종 질병을 치료하게 되는 것이라고요.




각설하고, 할머니께서 부엌칼을 불 위에 달궈냈습니다.




아버지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이냐며 역정을 내셨지만, 그렇다고 딱히 방법은 없었기에 금방 수그러들었습니다.




헐떡이는 동생 손을 붙잡고 건네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울지 마라. 자라가 도망간다."




칼끝으로 동생의 손바닥 중간을 스윽 긋자, 놀랍게도 붉은 핏방울이 아니라 노란 덩어리가 살짝 튀어나왔습니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집어내어 부엌바닥에 톡 하고 떨어뜨리셨죠.



지글지글

여담이지만 그것은 지글,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지글지글










#3.




기적이었습니다. 다음 날 동생의 열이 순식간에 내려갔습니다.




그 일은 가족들 사이에서 효험이 있었다고 회자되었죠. 결국 그 뒤로 누군가 아프면 무조건 자라를 땄습니다.




열이 나도, 배가 아파도, 밥을 먹지 못해도, 꿈자리가 뒤숭숭해도, 배가 고파도, 자꾸만 잠이 솔솔 온대도.




덕분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그럴수록 굳건해졌습니다.



그 때마다 붉은 방울이 아닌 노란 덩어리가 나왔기 때문이었죠.




안심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했기에.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됐어. 우린 괜찮을거란다."











#4.




그랬어야 했습니다.




노란 것이 계속 나왔어야 했는데요.












#5.




친척 동생이 다시 눕게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자라를 땄습니다.






하지만 노란 덩어리가 아닌 붉은 것이.




지글지글

붉은 것이 나오더랍니다.






할머니께서 당황하셨습니다. 당황하신 모습은 처음 봤어요. 할머니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죠.












이게 아니라며, 다시 한 번 손바닥을 그어보셨습니다.






지글지글

또, 또 붉은 것이.

지글지글






그럼 이번엔 오른쪽을.








지글지글

붉은 것이.

지글지글







자라가 다른 곳에 났구나.










발바닥을.

지글지글







지글지글

붉잖아.

지글지글








그럼 배는 어떨까.




지글지글

아.

지글지글


아.

지글지글


지글지글

제발.

지글지글






붉었습니다.

지글지글



모든 게 붉었습니다.

지글지글



헐떡이는 동생 등 아래로, 장미와도 같은 그림자가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지글지글


빨갛게 색칠된 식칼을 벌벌 떨며 들고 계셨던 할머니, 그리고 그 손을 꼬옥 쥐어주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지글지글

아버지께서는 칼을 받으시더니



지글지글

이내 이곳에는 분명 자라가 있을 것이라며

지글지글









동생의 목덜미에 -











#6.



지글지글

오늘도 저는 집에서 식칼을 듭니다.


지금은 비록 아무도 보지 못하겠지만


집에 오랜만에 오시는 작은아버지께서 부엌문을 여신다면,

지글지글

그곳엔 붉은 것이 아니라,


노란 피들이 흘러내리길 바랍니다.


저의 손바닥 뿐 아니라

지글지글

허벅지, 발바닥, 얼굴, 목 그리고 뱃속까지.


모든 것이 열린다 하더라도.


저희 집안은.

지글지글

분명.


어디선가 자라가 남아 있을 것이기에.

지글지글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이제 괜찮다. 자라는 없어졌단다. 더이상 우리 집안은 아플 일 없어."


맞습니다 할머니.


더이상 저희 가족은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7.


지글지글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글지글

그럼 그렇지.

지글지글

붉게 색칠된 식칼을 들고 자라를 바라봅니다.

지글지글





...



여기 있었구나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8.


지글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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