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녀와 그녀의 테마파크
19,879자
이 글은 한섭 기준 시점으로 「에덴조약 완결」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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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
키리후지 나기사님께.
삼가 평안하셨는지요.
평소와 같이 격무로 공사다망하실 줄 사료되오나, 이렇게 초대장을 보냅니다.
저 역시 수적으로는 크지 않으나, 느끼기로 억겁과 같은 시간, 제 업에 충실히 매진하여 마침내 지지난달 말일에 메모리파크를 완공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안전 점검과 영업 준비 등으로 격조하여 저 역시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희 메모리파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시대에 주목받는 ‘레트로’를 주제로 과거의 추억과 현대의 지향점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히 접목하여 남녀노소 공감하고 추억하며 즐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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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자기네 사업이 준비 되었으니, 그간 다져놓은 교류 관계와 의례를 핑계로 홍보를 부탁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렇게나 싹싹하게 구셨던 거군요.
이사되는 사람이 사무의 일로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매번 자신의 볼일이 끝나면 눈치껏 바쁜 시간을 피해 찾아와 값비싼 찻잎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러고 애프터눈 티를 권하며 홍차에 관한 견해나 사적인 담화를 나누고는 했다.
키리후지 나기사는 자기 앞으로 도착한 초대장을 끝까지 읽지 않고 딸려 온 자유이용권 티켓 몇 장과 함께 편지 봉투에 도로 집어넣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목구멍 너머에서 탄 맛이 올라오는 것만 같아서 차를 홀짝였다.
쌉싸름한 첫맛이 은은하게 퍼지며 그것을 밀어내고 이내 첨가된 코코아와 위스키의 향미가 입안 가득 단내를 풍겼다.
“아이리쉬 위스키 크림― 과연. 산뜻한 것도 좋지만, 이처럼 바디감이 무거우면서 단맛이 그윽한 제품도 별미네요. 밀크티로 만들어 먹는다면 극상이겠어요.”
선물 받은 찻잎이었다. 비록 에덴 조약은 무색하게 되었지만, 특정 단체들과는 이전보다는 비교적 상호이해가 이루어지는 관계가 되었기에 그간 노력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은 특선이에요. 게헨나에도 이쪽에 조예가 깊은 분이 계신가 보네요. 기회가 된다면 양 학원에 티 타임을 주선하여 교류회를 가지는 것도 좋겠어요.”
“멋진 혜안이에요. 나기사님.”
필리우스 분파의 간부이자, 그녀의 직속 비서인 소녀가 진심으로 탄복하며 말했다.
“후후.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홍차의 상징적인 크리미함처럼 서로 간의 분위기가 좀 더 부드러워진다면 직접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빈말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기사는 그녀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까지 기대하는 것 같았기에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곤란하네요. 이 차는 다소 개성이 강한 듯해서 받은 초대장처럼 색이 강한 다과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데…. 바쁘기도 하니 거절하도록 할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 한편에 집히는 부분이 있다.
계산적인 정이었음을 생각하면 괘씸한 부분이 없잖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로부터 선물 받은 좋은 찻잎들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한 번 정도는 초대에 응해 주는 것도 도리가 아닐까―, 음. 아니. 까놓고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것은 그녀의 핑계였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좀 더 뭐라고 할까.
입밖으로 꺼내는 것이 제 품행에 어울리지 않게 꺅꺅대 버릴 만큼 안달복달한다고 할지, 분명히 소망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생각만으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런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더는 정신이 사납지 않도록 거절하기로 한 것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나기사님. 이번 주말은 준비된 예정이 없기에 다녀오셔도 됩니다.”
“네? 하지만, 중대한 안건은 아니라도 사소한 잡무들이 꽤 남아있지 않나요?”
“그 부분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 정도는 저희가 뒤탈 없이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에덴 조약 건이 정리되고 나서 지금껏 일전보다도 강도가 높은 격무에 시달리시지 않으셨습니까. 모처럼 생긴 시간이니 잠시 펜을 내려두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 아뇨. 그렇게까지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처럼 티파티의 체계가 어지러워진 마당에 저까지 긴장을 놓아서야 호스트로서의 체면이…”
“나기사님. 그렇기에 더욱 쉬셔야 하는 거예요. 말씀처럼 현재 티파티 내부에는 언제 소요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감이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럴 때야말로 저희 필리우스 분파의 수장이자 현 티파티의 일인자나 마찬가지인 자리에 일임하고 계신 나기사님께서 휴식의 시간을 가져 주시면 저희도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가 되겠지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닙니다만….”
윗사람이 쉬지 않으면 언제 아랫사람이 쉴 수 있단 말인가. 나기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 정세가 얼마나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그것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음 또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 낯부끄러운 마음이!
“그…, 마땅히 함께 갈 사람도 없을뿐더러….”
“제가 조사해 보았습니다만, 이번 주말에는 미카님과 세이아님께서도 쉬는 날입니다.”
“네? 미카 씨는 그렇다 치고, 세이아 씨도 말인가요?”
“그런 것으로 되었답니다.”
되었답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렇게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 나기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곧장 알아차렸다. 초대장이 트리니티에 도착하고 정세에 지쳐있던 간부들이 암암리에 일사천리로 이 일을 준비한 것이다.
그래, 상투스 분파와도 입을 맞춘 것이다.
“후후. 좋은 수를 두셨네요.”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장난이지만, 이렇게 또 믿었던 이에게 체크메이트를 선언 받다니.
물론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기사가 진지하게 거절하려고 든다면 얼마든지 그럴 재량이 있다. 하지만, 예속의 이러한 고충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는 것 또한 트리니티 종합 학원이라는 거대한 단체의 리더인 호스트 자리에 필요한 덕목임을 알고 있었다.
“후후. 저희가 누구를 보고 배웠다고 생각하시나요?”
“후후후. 그러네요.”
“후후후. 그렇습니다.”
찻잔을 쥐고 있는 나기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집무실을 빠져나온 나기사는 이미 벌어져 버린 일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모두에게 쉴 시간이 필요한 것도 공연한 사실이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모여 친목을 다졌던 것도 벌써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 사실은 나기사에게 있어서 늘 마음에 걸리는 무척이나 따끔거리는 전류였다. 중학교 시절, 혹은 좀 더 내려가 초등학교 시절. 그때의 세 사람은 어떠하였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를 마치면 동네 놀이터의 모래사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하기도 하였고 미카가 주선하여 못마땅해하는 세이아나 마지못해 휘둘린 나기사와 곧잘 밤새 통화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세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다과회에 대한 애착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트리니티 번화가에 있는 디저트 거리를 거닐던 그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랬던 세 사람이―
점점 더 치열하고 냉랭해지는 트리니티의 정세와 게헨나와의 그칠 줄 모르는 혐오 전쟁, 그 도마 위에 대표하는 필리우스, 파테르, 상투스 세 분파의 수장이 된 세 사람에게서 그때의 햇살에 잘 말린 이불과 같은 따스한 포근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일단락된 지금 역시 그 잔재는 남아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복도에 홀로 선 나기사는 모모톡의 연락처 최상단에 즐겨찾기로 고정된 두 사람의 프로필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허공에 대고 질문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녀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아닌, 이 상황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되는 선생님에게 상담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
>[…이런 일이 있어서 그…, 두 사람에게 이번 주말 함께 해주기를 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전하는 게 좋은가 싶어서…. 혹시 바쁘시지 않으시다면 잠시 상담에 응해 주실 수 있을까요?]
[평범하게 같이 가자고 하면 되지 않아?]<
>[분명 저희는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예전과 비교해 훨씬 더 나아진 교우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일까요. 뭔가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게 무안하다고 할지, 처음에는 저도 선생님과 같이 단순한 문제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권하려고 하면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제가 있어서….]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쉽게 말해서 미안해, 나기사.]<
>[아뇨, 선생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저 역시 보잘것없는 갈등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나기사에게서 모모톡을 받고 나서 식도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꽉 막힌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서류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다. 잠시 펜을 내려놓은 뒤, 의자를 뒤를 쭉 뺀 뒤 몸의 각도를 비스듬히 하여 편하게 앉았다.
그렇게 바라본 천장은 공허했다.
가볍지만, 무거운 이야기.
쉽지만, 어려운 이야기.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이야기.
그녀가 내게 하려는 말은 그런 것이었다.
처음 장문을 보았을 때, 업무 때문에 경황이 없어 무심하게 답장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 가벼운 문제일 리가 없다.
지금의 나기사는 얘기한 두 사람에 대해서 더 없는 신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약했던 마음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성장하고 이제는 그것들이 그녀의 마음을 더 강하게 떠받들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사람이란, 결국 마음속에 응어리를 남기기 때문에.
가령 내가 절친한 친구에게 악담을 들었다고 하자,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고 한들 그 기억이 내게서 사라지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엮일 때마다 내 기분이 좋지 않거나, 그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쓰레기통에서 끄집어 내어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게 될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말이다.
이것은 거리감을 만든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이어져 마음속에는 그녀가 느낀 것과 같은 망설임을 만든다.
나기사는 예전과 같이 그들과 끈끈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응어리진 그 잔재가 손을 내미는 데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소꿉친구인 세 사람이 어릴 적처럼 팔짱을 끼고 하하호호하며 디저트 거리를 거닐던 그때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보잘것없다니, 그렇지 않아. 가 고민하고 있는 건 앞으로 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줄 거야.]<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역시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게 정답이었네요. 털어놓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마음이 진정될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응. 나도 나한테 상담해 줘서 고마워, 나기사.]<
하지만, 그렇기에 정말 감사하게도 그녀가 내게 상담을 부탁해 준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나는 바라건대, 세 사람의 관계가 미적지근한 온도에서 머무르지 않았으면 한다.
트리니티가 어떤 곳인가.
모두 자기가 바라는 것을 위해 그 아담하고 가녀린 한 몸을 불사를 정도로 뜨거운 곳이 아닌가. 해피엔딩도, 사랑도, 디저트도, 손에 넣은 일상도, 친구도, 그 외 그녀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에게 말이다.
마음속에 남은 잔재들을 딛고 일어서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서로서로 딛고 이끌어 주어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면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처럼 나를 의지해 주는 것은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나, 평소에 그녀는 내게 자신과 어울려 주기를 권하는 일이 적지 않다. 지금과의 그 차이가 조금 재미있기도 하고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기도 해서―
[그런데, 나기사.]<
>[네?]
[이상한걸. 저번 주에는 업무차 내가 트리니티에 방문한 김에 같이 티 타임을, 나흘 전에는 나기사가 샬레에 와 주었을 때 강변의 산책을, 바로 어저께는 같이 시계탑 사거리에서 쇼핑했었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전부 나기사가 권한 거였지?]<
>[…네.]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니까 말이야.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권한다면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나기사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그건….]
이러면 조금은 당황해 주겠지. 그러면 농담이라고 얘기하며, 만족스럽게 상담을 끌어 나가면 될 것이다.
>[선생님이 특별한 거니까요.]
[어…. 그렇구나, 고마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내가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그녀에게는 올곧은 성격 가운데에 당돌한 일면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의도치 않게 못 내친 기쁜 마음을 만끽한 뒤,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경직시키고 답장을 보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내가 두 사람한테 똑같이 테마파크의 표가 생겼으니, 다른 두 사람에게 권해서 함께 다녀오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해 볼게.]<
[나기사도 나한테 연락받은 것처럼 똑같이 반응해 줘.]<
[만약 두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면 그 뒤는 나기사에게 맡길게.]<
그녀가 혼자 끌어안고 있는 부담감을 나누는 것이다. 내 생각에 미카와 세이아는 이것을 고민하더라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고 서로가 낯간지러운 상황이라면 나기사가 훨씬 더 손을 내미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
>[그런 방법이….]
나기사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두 사람을 속이고 짐을 나누어 억지로 들게 하는 것처럼 느꼈는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혼자 쭈뼛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가 미카가 그 모습을 보며 할 소리를 상상해 보라고 하자 바로 승낙했다.
날이 지나고, 그녀에게서 제차 연락이 왔다.
>[사진]
내게 곧장 보내온 것은 그녀들의 단체 채팅방을 캡처한 것이었다.
>[그, 저기…, 얘들아? 오늘 학원 어땠어? 날씨도 정말 좋았잖아?]
>[미카, 용건부터 말하게. 장황하게 시작하는 건 좋지만, 지금 시각이 자정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어, 어라? 세, 세이아 쨩? 깨어 있었구나…. 근데, 뭐야? 분명 내가 늦게 연락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얘기할 건 없잖아.]
[저기, 다들 이 시간에 무엇을 시작하시려는 건가요…?]<
>[나기 쨩도 깨어 있었구나!? 들어봐, 세이아 쨩이 대뜸 저러잖아. 너무하지 않아?]
>[너무한 건 미카, 자네의 시간 감각이겠지.]
>[…세시야ㅉ으ㅏ, 지금 ㅁ랃 다했어?]
[저기, 여러분…? 그래서, 용건은…?]<
>[이제는 타자도 제대로 못 치는 건가. 미카, 자네는 그렇게 곧잘 흥분하는 습관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흐응. 세이아 쨩, 혹시 내일 일 있어? 나, 정의실현부에 잠깐 볼일이 있거든. 가는 김에 얼굴이라도 잠깐 볼까 하는데 말야.]
>[…사과하도록 하지. 조금 예민했던 상태라 거들먹거렸던 모양이야.]
>[응…. 나도 다들 잘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해.]
>[그, 특별하다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아니. 응, 방금 말은 취소. 특별히 두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저도 두 사람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나도 마찬가지네만.]
>[뭐야, 뭐야? 이런 일도 있는 거구나☆ 그러면 3분 뒤에 셋 다 동시에 얘기하는 건 어때?]
>[그러도록 하지.]
[저도 좋아요.]<
[선생님께서 테마파크의 표를 제공해 주셨는데 함께 가주시지 않을래요?]<
[…?]<
>[나, 이번에 선생님한테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3장을 받게 됐거든. 혹시,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괜찮다면 말야…. 둘 다 주말에 바쁜 일 없으면 나랑 같이 가주지 않을래?]
>[대단한 부탁은 아니네. 어저께 선생에게서 안부차 연락이 온 줄 알았네만, 최근에 완공되었다는 테마파크의 표를 두 사람 분까지 포함하여 받게 되었다네.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서 당황했네. 하지만, 일껏 구해다 준 표를 버리기에도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이렇게]
>[?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아니요, 꿈은 아니에요.]<
>[선생의 소행이로군….]
>[어, 어라? 선생님이 나한테만 특별히 하는 얘기라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미카.]
>[누가 할 소리야!]
[그런데, 미카 씨께서 3분 뒤라고 하셨는데, 두 분 다 제 메시지를 보고 나서 보내시지 않으셨나요?]<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나기 쨩! 으, 으응. 잠깐 폰을 손에서 놓쳐 버려서 조금 늦은 것뿐이야. 세, 세이아 쨩은 왜 메시지를 보내다 만 거야? 그리고 너무 길어!]
>[자네가 3분밖에 주지 않았잖은가.]
>[저기, 왜 그렇게 말을 어렵게 하는 거야?]
>[내 말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자네의 생각이 단순한 게 아니고?]
[제발, 여러분….]<
이 뒤로는 읽을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나기사가 중재하는 내용이 30분도 넘게 이어졌다. 그래도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이야기가 잘 정리되었는지, 보람이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렇게 돼서 이번 주말에 아침 일찍 모여서 메모리파크에 가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께는 정말 받기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야. 엄청나게 고생한 것 같지만.]<
모모톡의 내용을 보아 내 제안을 듣고 미카와 세이아 두 사람도 나기사와 같이 나름의 고민과 갈등을 고뇌했겠지. 무엇보다 가장 먼저 서두를 꺼내 준 미카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이다. 생겨버린 거리감에 씁쓸함을 곱씹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이로서 그녀들의 우정은 잠시 동안의 정체기를 마친 뒤, 다시 나아가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몇 시에 만나기로 한 거야?]<
>[네? 개장 시간인 9시에 맞춰서 만나기로 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나는 알람 앱을 실행해 주말의 알람 시각을 그녀가 말해 준 때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맞추어 두었다.
누군가 무슨 짓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에 대해 변명하고자 한다.
이미 여기까지 와 버린 이상 내가 서 있는 곳은 세 사람이 만들어 낸 거미줄 위다.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보기 좋고 재미있는 3명의 유흥을 눈앞에 두고 어찌 속 편하게 샬레의 집무실에만 틀어박힐 수 있단 말인가.
포기한다 한들,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고 결단코 단언할 수 있을 지경이다.
못 참지.
그런 이유로 그녀들을 미― 아니,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
“어라, 미카 씨. 먼저 와 계셨군요.”
“지금도 약속보다 이른 시간이네만.”
나기사와 세이아, 두 사람은 같은 교통편을 이용한 것인지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시끌벅적하다.
정문에서조차 각지에서 몰려든 학생들과 가족 손님들의 자글자글한 목소리들이 스피커에서 울리는 몽환적인 음악보다도 큼직했다.
매표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대기 손님용 파라솔 아래 앉아, 손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정리 중이던 미카가 얼른 일어나 해맑게 웃으며 그녀들을 반겼다.
“좋은 아침, 나기 쨩! 세이아 쨩! 나도 온지 얼마 안 됐어. 주말이라 도로가 막힐까 봐 조금 일찍 와버렸지, 뭐야☆”
오늘도 해는 뜨겁고 하늘은 그것을 비추는 수면 위처럼 투명하고 청명했다. 그녀의 미소처럼 말이다.
하지만, 차를 빌려 30분도 전에 미리 도착해 있던 나는 알고 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저곳에 있었다. 행동력 좋고 부지런한 점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을 웃돌아서 자칫 들킬 뻔했으니까.
“헤에…, 다들 귀엽게 입고 왔네? 그리운 기분인걸.”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기사는 고풍스러운 무드가 느껴지는 단벌의 원피스를, 세이아는 평소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캐주얼한 의상을 입고 왔다. 모두 잘 어울리는 데다 학원 내에서 보게 되는 지위나 그 격의 딱딱함과 달리 한창때의 여고생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흐뭇한 심정이었다.
물론 하늘하늘한 순백의 원피스 위에 얇은 청재킷을 입고 온 미카도 무척이나 귀여웠다.
“후훗. 그러네요. 이렇게 입고 여러분과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 만인지…. 날씨도 화창하네요. 모쪼록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그간 서로 많이 바빴으니 그런 감상에 젖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 나 역시 설레는 마음에 조금 잠을 설쳤다네. 우선 안으로 들어가지. 이곳에서 추억에 잠기기엔 해가 너무 뜨겁지 않나.”
두 사람은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멀찍이서 나도 끄덕였다.
그러고 그녀들은 나기사가 대표로 받은 것으로 되어있는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매표소를 통과했다. 혼자 온 것이 맞냐고 두 번이나 물어보는 직원 덕분에 겸연쩍은 표정으로 곧장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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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제한으로 2분할, 다음 링크로 ->
https://gall.dcinside.com/m/projectmx/708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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