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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권력-지식, 통치성
푸코는 권력의 철학자라고 잘 알려져 있음. 문제는, 푸코는 "권력"이 뭔지 한 번도 정의내린 적 없음. 푸코의 거의 모든 핵심 개념들은 전부 정의된 적이 없음. 그냥 권력뿐만이 아니라, 생명관리권력도, 통치성도, 장치도, 권력의 미시물리학도, 담론도, 자기 배려도 정의하지 않았음. 이로 인해 모든 푸코 연구자는 고통받고 있고, 푸코의 큰 약점 중에 하나임.
하지만 이 많은 개념들 중에서 권력만큼은 어느정도 옹호하고 싶음. 알튀세르는 호명 이론을 통해 권력을 정의한 적이 있음. 이로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저평가되었던 주체를 강조할 수 있게 되었음. 하지만, 이 호명 이론마저도 권력을 축소하는 것이 아닐까? 광인도 있고, 수감자도 있고, 성 관련 비정상인들도 권력의 대상이 아닐까? 이 사람들을 위한 권력 이론은 무엇이 있을까? 이런 편재성을 위해서 권력을 쉽사리 정의내리지 못했는지도 모름.
권력-지식과 통치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말해둘 게 있음.
한국의 "처세술"이라는 말은 번역하기 굉장히 어려움. 영어에 대응되는 말은 사실상 없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savoir-faire라는 단어를 써야 함. 정작 이것은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일 뿐만 아니라 이것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임. savoir-faire는 영어로 직역하면 know-how이고, 노하우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니까.
이 예시처럼, 한 언어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게 다른 언어에서는 엄청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음. 권력-지식이 그런 사례임. 권력-지식은 프랑스어로 savoir-pouvoir임. 프랑스어에서는 단어와 단어를 붙혀서 의미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임. savoir-pouvoir는 프랑스 사람에게 그저 "권력하는 지식"이나 "권력하기 위한 지식" 등으로 이해될 수 있음. 바로 저 노하우, savoir-faire처럼 말이야.
이렇기 때문에, 미셸 푸코가 후기에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말을 썼을 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해했음. 권력이란 말이 저항이라는 반대말의 이미지가 강하므로 이것을 통치라고 바꿨고, 그렇게 통치성은 그 권력-지식을 이어받은 "통치하는 이성", "통치하기 위한 이성"을 의미할 뿐이었음. 사실 푸코는 강의에서 통치와 통치성조차 별로 구분하지 않았음.
이렇게 "권력하는 지식", "통치하는 이성"이라고 본다면 푸코가 가진 권력의 한 속성을 볼 수 있음. 푸코의 권력에는 "구멍"이 많음. 푸코에게 통치성이 가장 발달된 사례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나온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이겠지만, 이조차도 1984적으로 주체의 대항품행을 원천차단할 만큼 통치성이 발달되진 않았음. 이것은 보드리야르나 지젝이 했던 생각과 많이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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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영토 인구 - 대항품행 (4강, 8강, 9강, 13강)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 - 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5장으로 수록)
갑자기 고대 시기의 언급이 나옴. 정확히는 초기 동방정교회 교부들과 그 이전의 저작이 그의 연구주제가 됨. “안전, 영토, 인구”의 특정 부분이나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을 읽지 않으면 대체 왜 일어났는지 거의 알 수가 없음.
주체의 해석학 - 강의 상황
시몬 베유 -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에티엔 발리바르 - 대중들의 공포 - 1부 "정치의 세 개념"
에티엔 발리바르 - 폭력과 시민다움 - 2부 "폭력과 시민다움 : 정치적 인간학의 한계에 대하여"
게리 베커의 인터뷰 - 게리 베커와 자본주의 정신 ( https://www.dropbox.com/scl/fi/q2q87h04kkgiq460o50sw/Becker-on-Ewald-on-Foucault-on-Becker.pdf?rlkey=xznope17xoj8kznilkj822ppj&dl=0 )
일단 "주체의 해석학" 전체보단 일단 뒤에 있는 "강의상황"만 읽어도 될 것 같음. 이것만 읽어도 푸코의 주체 개념이 정체성 정치와도 신자유주의 주체와도 다른 아주 미묘한 개념이었음을 알 수 있음.
발리바르는 중요한 푸코의 비판자임. 권력과 주체는 푸코에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틀임. 하지만 발리바르는 바로 이 개념틀을 지적함.
푸코는 주체가 권력에 맞춰서 마치 "반성적 평형" 같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지만, 개인과 사회는 아주 비대칭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발리바르는 지적하는 것임.
발리바르는 아주 어렵게 쓰는 철학자이지만, 이 두 가지 글이라면 그의 푸코 비판과 그의 대안인 “시민다움”을 파악하는 데 나쁘지 않을 거임.
“힘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을 사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끝까지 행사되는 힘은 사람을 문자 그대로 사물로 만듭니다. 사람을 시체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힘을 소유했거나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꼭 그만큼, 철저하게 그 힘에 도취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짜로 힘을 갖진 못합니다.”
“강자와 약자는 서로가 동일한 종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약자는 자신이 강자와 비슷하다고 여기지 않고, 또 그렇게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발리바르가 예시로 들었던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를 보면 그 힘과 인간과의 관계가 얼마나 불균형한지 이해할 수 있을 거임.
또한 여기에 게리 베커와의 인터뷰도 넣겠음.
푸코와 신자유주의와의 관계는 의외로 굉장히 복잡함. 푸코의 제자이고 푸코 사후 원고들, 강의들을 편집한 프랑수아 에발드는 프랑스기업연합회의 드니 케슬레르와 함께 프랑스에 신자유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사람임. 게리 베커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하이에크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설계자로 평가한 사람인데, 게리 베커는 푸코의 책에 동의하고 있음. 이것 또한 이상한 일임. 푸코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대해서는 여기가 아닌 3단계에서 진행하겠음. 일단 여기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음.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부분이므로, 주의해서 읽었으면 좋겠음.
1984년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 진실의 용기
(담론과 진실)
이 강의에서는 1983년에 잠시 언급한 "파레시아"라는 개념이 핵심 주제가 됨.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하기", "솔직히 말하기"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적인 의미로 쓰였고 독재에서도 민주주의에서도 위험한 것이었음. 푸코가 보기에, 이것을 삶의 양식으로 처음 활용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음. 푸코는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의 유언인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 주게. 잊지 말고."를 분석함. 뒤메질의 분석을 빌려 이것이 니체의 "인생은 질병이라네" 식의 해석이 아닌, 파이돈 89a-89e처럼 사람들에게 있어 논변 혐오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중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겪은 바를 파악함으로서 공동체를 치유해주는 것을 의미했다고 말함.
이 삶의 양식으로서의 파레시아를 이어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파레시아라고 답하기도 한 디오게네스였고, 그는 키니코스 학파의 창시자였음. 폴 틸리히, 클라우스 하인리히, 슬로터다이크가 말한 것과는 달리 키니코스 학파의 견유주의와 Cynicism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실존과 진리와의 관계라는 점에서 연속성을 가진다고 말함. 이런 키니코스 학파는 철학적 삶의 방식으로서 "화폐를 변조하라",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을 바꿔라"를 모토로 삼았으며, nomos(화폐, 법, 관습)에 의존하지 않은 채 꼿꼿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했다고 말함.
이 고대시기의 파레시아는 초기 기독교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정직함이 아닌 사람과 신 간의 정직함으로 바뀌었고, 또한 4-6세기 사목권력이 들어서면서 신과의 마주봄을 피하면서 파레시아가 나쁜 것으로 변형되었다고 말함. 하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파레시아는 19세기 혁명적 운동이나 19세기 보들레르, 플로베르, 마네 등의 예술에서 다시 나타났다고 말하고, 이 냉소주의Cynicism와 회의주의는 진리와 실존과의 관계에서 굉장히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말함.
아주 중요한 강의록이라고 생각함. 한국어로 번역되진 않았음.
자기 철학을 정리하려는 의도가 강한 책임. 맨 처음 플로우차트에서 내가 준 "비판이란 무엇인가 / 혁명이란 무엇인가 / 계몽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라고 볼 수 있음. "진실의 용기"에서는 노모스를 대신해 다른 삶이나 다른 세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진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음.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의무로 제시되고 있는 것 안에서 개별적이고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제약을 찾는 것이야말로 철학적 과업이라고 봤음. 그리고 이것이 푸코의 작업들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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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cy
이 책에서 푸코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키니코스 학파와 시니시즘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한 모토를 강조함.
"change the value of the currency"가 바로 그것.
그대로 번역하면 "화폐를 변조하라"라는 것이 됨.
대체 왜 화폐위조가 그들의 모토가 되고, 왜 푸코는 주목했을까?
이 모토가 만들어진 이유는 디오게네스의 첫 일화에서 나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의 번역본을 그대로 나열할게.
"디오게네스는 주조업자인 히케시오스의 아들로 시노페 사람이다. 그런데 디오클레스가 말하길, 디오게네스의 부친이 나랏돈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으면서 통화를 변조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다고 전한다.
그가 화폐주조 기술자들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을 때 그들이 그를 설득하자 델포이 또는 그의 조국에 있는 아폴론의 성소에 가서 그들의 권유대로 해야 할지를 아폴론 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폴론 신이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to politikon nomisma) 을 바꾸라고 허락한 것을 그가 잘못 알아듣고서 통화를 변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드러나면서 그는 추방되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 스스로 자기가 나라 밖으로 도망갔다고도 말한다."
그저 디오게네스가 견유주의자가 된 평범한 일화처럼 보임.
여기에 뭐가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자, R. B. Branham의 "The Cynics. The Cynic Movement in Antiquity and Its Legacy"에선 이를 "change the value of the currency" 대신 "deface the currency"라고 번역함.
"deface the currency"라니? 똑같은 화폐위조인 것 아님?
사실 "deface the currency", 이것에는 더 깊은 뜻이 있어.
"늑대와 향신료" 같은 책에서도 나와 있는 내용인데,
고대와 중세의 화폐는 보통 금속 주화의 형태였고, 이 주화의 표면에는 그 당시 가장 강력하고 명예로운 자의 얼굴과 같은 문양이 새겨졌어. (현재 한국의 지폐에 율곡 이이나, 세종대왕이나, 신사임당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야.)
여기서 권력자가 바뀌게 되면, 조폐국은 그 문양을 바꿨어. 현대보다 훨씬 더 유동적으로, 권력자에 더 알맞은 문양으로 말이야.
여기서 디오게네스가 한 일은 자신의 아버지의 직업을 빌려 권력자의 눈밖에 나오는 문양을 새겼다는 것이야.
만일 한국에서 누군가가 신사임당의 얼굴에 매직펜으로 이순신을 그렸다면,
우리는 화폐의 가치는 일단 그렇다치고 이것이 굉장히 사회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단박에 알아챌 수 있겠지.
이것이 디오게네스가 한 의도였음. 화폐는 그대로 있는데, 화폐의 표면을 달리 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이냐는 거지.
화폐위조는 그렇다 치고, 화폐위조가 목적이 아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임.
디오게네스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이 일을 했지. 하지만, 푸코는 여기서 하나를 더 주목함.
[currency는 1650년대, 라틴어 currō("달리다")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인 currere에서 유래되어 "사람에서 사람으로 흐르는 상태 또는 사실"이라는 의미였으나, 이제는 드물거나 구식인 의미가 되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흐르는 상태 또는 사실" 이라는 개념은 "대중적, 통속적 지식의 연속성"(1722년)과 "교환 매체로서 현재 존재하는 매체, 화폐"(1729년)라는 의미로 이어졌다.]
이것이 currency의 어원임. 이제, 또 다른 용어가 하나 더 있음.
[currō의 현재 능동태 분사형인 currens는 영어 current의 어원이 되어 1560년대에 "널리 퍼지다, 일반적으로 보고되거나 알려진"이란 뜻이 되고, 1600년경부터 "현재 진행 중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current(현재의)와 currency(화폐)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임.
그리고, 같은 어원을 가진 용어가 하나 더 있음.
[currō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인 currere는 접두사 dis-("따로 떨어져")와 겹쳐 discurrere가 되었고, 이는 초기 라틴어에서는 "돌아다니며 달리기, 앞뒤로 달리기, 서두르다"라는 뜻으로, 후기 라틴어에서는 "주제를 다루며 장황히 말하다, 이야기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는 1550년대부터 "언어로 이야기하는 주제의 설명, 생각을 담은 의사소통"이라는 의미, 1580년대부터 "공식적인 연설이나 글에서 주제를 다루거나 논의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 discourse의 어원이 되었다.]
discourse(담론)이 바로 current와 currency와 같은 어원에 놓여있다는 것임.
이렇게 보면, 담론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게 된 것임.
“현재와 따로 떨어져 뛰어라”만큼 푸코를 더 잘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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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방법론 (이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을 때의 보조루트)
폴 벤느 -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11장
폴 벤느 -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1-5장
(폴 벤느 -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1970년대 초반 선풍적 인기를 끈 폴 벤느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재차 환기시키는 "어떻게 역사를 쓸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역사는 사건의 이야기이며, 모든 것이 여기서 유래한다." 그가 이 책에서 역사 인식론을 다룬 목적은 어떤 점에서 역사가 과학이 아닌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지에 바탕을 두고 그는 역사를 '이야기 전개'로 본다. 상황의 변화는 설명을 필요로 한다. 대조적으로 역사의 방법론적 측면은 중요하지 않은 부분으로 간주된다. 그에 따르면 역사란 사실의 이야기이다. 역사 영역의 불확정성은 중요도의 순서에 따른 모든 계서제적 구성 전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설명만이 관심 대상 이야기의 소재로 작용하는 사실들에 독특한 가치를 부여한다. "사실들은 역사의 설명을 위한 조직, 즉 물질적 원인, 목적이나 우연이란 측면에서 과학적 요소는 희박하고 삶의 단편이나 말과 같은 인간적 혼합물 -역사가들이 자기 방식대로 다루고 객관적 연결성과 상대적 중요성인 사실들- 이라는 점에서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역사의 설명이란 이야기가 포괄적인 실타래로 엮어지고, 한 인과 관계가 다른 여러 갈래의 이야기 실타래 중 선택된 일화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근본적으로 개념적이건 유형적이건 이론적 부분을 중요한 요소를 제시하고 역사의 구체적 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예비해 두는, 설명의 개괄적 틀 정도로만 여기는 경험주의자이다. - 프랑수아 도스 - 역사철학]
푸코의 방법론은 자기가 쓴 “지식의 고고학”보다 폴 벤느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에서 더 잘 나타남.
이 책은 100% 신뢰해도 됨.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의 초반부에서 자기 철학의 방법론을 설명하는데, 폴 벤느의 이 책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함. 이 책이 말하려 한 논지와 정확히 같았다고 해도 될듯.
푸코는 좀 자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쓰기 엄청 어려운 방법론을 썼고, 그래도 이 책이 있다면 그가 뭘 원했는지 알 수 있을거임.
핵심적 논지를 다루는 1-5장과, 지식인에 대한 논의가 있는 11장이 중요한 거 같고, 된다면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 부록도 있는 이 책 전체를 다 읽어도 될 거 같음. 굉장히 어려운 책이지만.
B 루트 끝.
(토마스 렘케 -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장 피에르 뒤피 - 파국이냐 삶이냐)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진태원 - 생명정치의 탄생 (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186096 )
이것은 생명권력을 설명하는 파트임.
좀 할 말이 많음.
생명관리권력에 대한 내 의견은 이거임. 푸코는 오직 신체로만 권력을 분석하는 특이한 분석을 했는데, 이부터 "신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가이성에서 중요한 권력을 보이려 한 것임. 그것은 바로 "인구"임. 생명관리권력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 인구고, 생명관리권력이 그저 인구권력을 뜻할 뿐이라고 해도 그다지 문제가 있지 않아보이는데, 좀 이상하게 해석이 된 거 같음.
COVID-19 이후로, 장 피에르 뒤피란 철학자는 “파국이냐 삶이냐”를 통해 하이데거 식의, 혹은 푸코 식의 생명을 신성시하는 담론을 비판했음. 이 책을 추천함.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추가되어 있음. “사회계약론은 역사에서 그 어떤 중요점도 가지지 않았다”는 책의 중심 주제 때문에 영미권에서는 푸코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거론되지만, 정작 그의 저작들 중에서는 가장자리에 있는 것 같음? 아무튼 여기서 생명권력이 무엇인지 굉장히 간략하게 언급이 되어있음. 여기에 넣겠음.
아무튼, 생명관리권력은 한 번도 푸코가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음. 이 문제를 진태원의 글이 다루고 있으니 참고해서 읽어.
3단계
폴 벤느 - 푸코 : 그의 사유, 그의 인격
폴 벤느 - 푸코 : 그의 사유, 그의 인격 - 개정판 옮긴이 후기 / 푸코를 불태워야 하는가?
그저 푸코의 2차저작이라기보다는, 푸코론을 다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음. 푸코가 그래서 대체 이 책들로 하려는게 무엇이었나를 다룸. 폴 벤느가 의도했던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푸코: 사무라이와 금붕어”였음. 사무라이처럼 연구를 진행했지만, 철학적 입장에서는 금붕어였다는 것임.
그는 시위를 많이 했지만 그의 저작의 의미와는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는 것임. 또한, 그는 저작에서 계보학적 연구를 했지만, 그 저작에는 회의주의 이외에 거대한 의미가 없다는 것임. 하지만 이런 철학적 저작들은 어떤 논변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확실성과 독단주의를 뒤흔든다는 것임.
이 입장은 비트겐슈타인과 연결지으면 편함. 자신의 연구가 다 진행되어 자신의 입장이 연구에서 드러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비트겐슈타인은 전혀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함.
이 벤느의 책에서 꽤 많이 언급되는 철학자가 하나 있는데 막스 베버임. 이런 저술적 활동과 자신의 입장 사이에서 대립하는 지식인을 설명할 때 막스 베버를 많이 인용하는데, 정작 나는 막스 베버에 대해 잘 모름…
이 책은 “미셸 푸꼬와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과 비슷한 면을 가짐. 고고학에서의 저술을 설명한 부분이 있고 “감시와 처벌”에서의 시위하는 푸코의 이미지와 프랑스에서의 유행까지는 다루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전세계에서의 유행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음. 어느정도 아쉬운 부분임. 또한 존 라이크먼(그리고 피터 브라운)을 제외하면 영미권 철학을 거의 다루지 않는 것도 주목할 부분임.
그리고, 이 책 옮긴이 후기에 기 소르망 폭로를 분석한 “푸코를 불태워야 하는가?”가 있음.
프랑수아 퀴세 - 루이비통이 된 푸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푸코가 대표되고 있음. 그러나 푸코는 이 용어를 거부했음. 더 논의에 밝은 사람들은 리오타르가 이 용어를 주창했다고 말함. 하지만 리오타르조차 이 용어를 빌려서 썼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적어도 1971년에 미국의 비평가 이합 핫산이 쓴 적이 있음. 리오타르는 이 용어를 그저 한 저작의 제목에 빌렸을 뿐이고, 그 뒤의 저작인 “쟁론” 등에서는 전혀 이 용어를 쓰지 않기도 했음.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이론가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지를 정말 진지하게 논하게 되었음. 이 사례처럼, 미국 캠퍼스에서 일어난 이 지성사적 사건은 그 자체로 논의 대상이어야 함. 프랑수와 퀴세는 이 책에서 좋게 말하면 재점유로, 나쁘게 말하면 정말 이상한 형태의 무언가로 바뀐 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언가를 논함.
이 무언가는 분명 강력했음. 법학에서도, 신학에서도, 심지어 푸코의 주 분야인 사상사에서도 "스스로를 프랑스 이론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며" 아주 문학적인 언어적 전환을 진행하게 됨.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체성 정치로서, 캠퍼스 스타로서, 예술로서, 인터넷 문화로서 재점유되었지만, 광란적 인기를 끌던 초청 강의에서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 학파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시뮬라크르는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찬물을 던진 것처럼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있었음.
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흐름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스탠리 피시, 에드워드 사이드, 리처드 로티, 프레드릭 제임슨, 이브 세지윅, 도나 해러웨이와 같은 수많은 캠퍼스 스타들 중에서 "나는 여신이기보다는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도나 해러웨이를 제외하면 이들에게 1인칭 표현이 없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함. 퀴세는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점을 세 가지 개념으로 요약함. 문화연구와 단어에만 치중한 나머지 사회적 맥락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과잉기호학화"로, 차이를 물신화한 나머지 차이를 사유하는 데 있어 철학을 찾지 않으려 하는 차이의 문제로, 이 "포스트모던"하다는 사상은 원래 정체성 정치보다 기존 정치의 문제점을 훨씬 더 많이 의도하고 있었다는 "탈맥락화"로.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푸코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 프랑스에서는 정반대로 나아가기 시작함. 1977년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시작된 신철학적 기조, 1978년 프랑수아 퓌레의 프랑스 혁명 재서술, 1980년대 프랑수아 에발드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으로 굉장히 다른 사상으로 전복되고, 이 "프랑스 철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중으로 부당한 대접에 처하게 됨. 그러나 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흐름은 미국뿐만이 아닌 남미, 러시아, 일본에서도 퍼진 국제적인 이론이 되었고, 프랑스에서조차 미국적인 형태의 프랑스 이론이 다시 수입되기도 했음.
이 책에서 퀴세는 앨런 소칼을 언급하지만, 이 상황이 확실히 그의 비판보다 더 복잡하고 더 심했다는 것을 알림. 200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격으로 레오 스트라우스 류의 네오콘이 부상한 것을 보며, 미국의 좌파들에게 학계와 현실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상태에 책임이 있지 않은지, 제도, 선거, 언론 같은 낡은 용어로 정치를 해석하는 것에 그치고 있지 않는지, 소수자 관련 정책의 성공이란 결국 "미국적인 것"의 실패가 아닌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음.
일단 다른 건 다 고사하고, 굉장히 재밌는 책임. 한 번 읽어봐.
C1. 프랑스 과학철학 (이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을 때의 보조루트)
// "C. 프랑스 과학철학"의 분류 - 푸코 그 전 / 임상의학의 탄생 / 푸코 그 후 (푸코 그 후는 "심화, 그리고 대항" 부분에서)
// 푸코 그 전
{도미니크 르쿠르 - 맑스주의와 인식론} - 가장 중요
도미니크 르쿠르 - 조르주 캉길렘
푸코와 철학자들 - 6장 푸코와 캉길렘
조르주 캉길렘 -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알렉상드르 코이레 - From the Closed World to the Infinite Universe
프랑스 과학철학의 토대를 알기 위한 좋은 글로 이렇게 5가지를 선택했음.
가장 중요한 책은 도미니크 르쿠르의 “맑스주의와 인식론”임. 엄청나게 빨강빨강한 표지가 박혀 있는데, 정작 읽어보면 내용의 90%는 바슐라르를 다루고 10%에 캉길렘과 푸코를 다루는 그냥 바슐라르 2차저작임… 분석철학에 익숙하다면 바슐라르가 말하는 (분석철학에선 “반실재론”에 속할) 실재론에 대한 비판과, 과학과 일상적 경험을 분리하는 것을 방해하는 언어에 대한 비판에서 굉장히 색다르고 그럴듯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거임. 또한 이 입장에서 자기 철학을 함부로 과학과 연관지은 후설과 화이트헤드를 어떻게 비판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음.
(레닌만 딱 한번 언급되나 그럼. 표지는 아마 알튀세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썼기 때문인 거 같은데, 나는 알튀세르가 진짜 바슐라르를 제대로 사용했는지가 의문임…)
// 임상의학의 탄생
허경 - 임상의학의 탄생 읽기
자, 푸코가 생전에 출판한 저작 중에 “임상의학의 탄생”이라는 게 있음. 현재 한국어 번역본은 너무 번역의 질이 나쁘고, 영어로는 있지만 많이 어려움. 여기 허경의 2차저작이 있으니 이것으로 대체하겠음.
C1 루트 끝.
말과 사물
(게리 거팅 - French Philosophy in the Twentieth Century)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과 아주 자주 묶이는 에피스테메가 바로 이 책에서 나옴. 서양의 인간과학에서는 시기상으로 르네상스 에피스테메, 고전 에피스테메, 근대 에피스테메라는 세 가지 사유형태가 있었다는 것. 이 말과 사물은 분명 그 이후의 저작을 받쳐주는 역할이 있지만, 푸코 스스로 자인하듯 그의 가장 과잉된 저작이기도 함.
맨 처음 1장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분석함. 이는 미학을 다루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림에 고전 에피스테메의 특징인 “재현”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임. 그러나 여기서 나온 분석이 잘못되었다거나 이 그림 또한 아직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론이 있음.
그리고 라이프니츠에 대한 분석이 있음. 라이프니츠의 마테시스 유니베르살리스 체계는 아직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에피스테메 이전의 결과였기 때문에 잊혀졌다고 말하지만, 이것 또한 이렇게 결정지을 수 없는 주장임.
또한 퀴비에에서 문제가 있음. 라마르크와 퀴비에 중에 현재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진화론의 선구자인 라마르크임. 하지만 푸코는 퀴비에가 에피스테메의 한계를 짐작했으므로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 이는 캉길렘이 말한 “진리 안”을 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과잉된 주장이라는 말이 많았음.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 또한 있음. 푸코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를 따랐기 때문에 근대 에피스테메에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피스테메가 지나고 나면 그의 이론 또한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했음. 푸코는 이것이 경제학만 해당할 뿐 마르크스가 작업한 다른 분야는 관련 없다고 해명함.
마지막에서 나오는 도래할 에피스테메의 특징인 “인간의 죽음”은 사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에서부터 계속 푸코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고, 인간을 자연적 개념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생각한 것은 그의 스승이던 장 이폴리트의 헤겔 독해에서도 있었음. 큰 논란은 없지만, 새로운 것은 아님.
1장에서 8장까지, 그리고 10장은 그래도 읽혀지는 부분이지만, 9장은 그 당시 철학자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써졌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 저런 여러가지 면 때문에 비판으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느정도 넘겨 읽었으면 함.
그리고 프랑스 철학의 역사적 연결로 굉장히 좋은 책인 개리 거팅의 책을 추천함. 영미철학권이라 쉽게 써져 있어. 그래도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선택화하겠음.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 새로운 세계합리성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새로운 세계합리성”은 이 플로우차트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책임. “안전, 영토, 인구”에서 나온 통치성이란 개념, 그리고 이 통치성으로 신자유주의를 분석한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이 푸코의 논의를 써서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이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새로운 세계합리성”을 내놓았음. 엄청나게 좋은 책이고, 이 두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들을 섭렵하는 책이라고 봐서 이 플로우차트에 넣겠음.
책의 내용은 설명을 안하겠음. 좀 어려운 책임.
푸코의 강의들의 논점들을 따라가는 것은 이 책의 강점이면서도 약점임. 5장에서 칼 폴라니는 낡은 도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푸코의 강의에서도 따라나오는 점임. 8장에서 슘페터를 설명하면서 그의 이론은 전혀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다고 말하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보임. 9장에서 하이에크를 두고 10장에서 게리 베커를 두면서 하이에크와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분리되어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것은 푸코의 강의에서 이미 중요한 논점이었음. 11장과 12장에서 푸코 사후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확장을 논하지만, 이 부분은 이 책에서 철학적 논지가 가장 빈약한 부분임.
마지막 장인 13장은 주목해볼만 함. 이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주체성을 좌절시키는지를 논함. 사회의 거시적 개념들을 주체성과 연결시킨다는 것으로 푸코의 방법론을 따라가지만 신자유주의의 주체는 그때까지의 주체성의 문법을 벗어난 “초주체화”라는 형상을 띤다고 푸코를 비판하고 있음.
이 책의 저자인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은 그 이후 "Never Ending Nightmare"와 "내전, 대중 혐오, 법치"라는 책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를 다시 진행했음. 나는 "내전, 대중 혐오, 법치"만 읽었는데, 이 책만 두고 말하자면 새로운 세계합리성의 어려운 부분인 9장을 법과 법률의 구분을 통해 더 노골적으로 논하는 파트와 최근의 대중정치의 흐름을 논하는 파트로 나눠져 있음. 이 뒤에 나온 책들은 새로운 세계합리성을 그 전에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보임.
영번역 판본은 이 책의 5장부터 시작함. 저자 중 한 분이 벤담을 전공했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지만, 진짜 이 거대한 책을 5장부터 시작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거임.
D. 성의 역사 (이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을 때의 보조루트)
성의 역사 1,2,3,4
나카야마 겐 - 현자와 목자 : 푸코와 파레시아
피에르 아도 -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피터 브라운 - The Body and Society
[(만약 우리가 이런 파생물을 하나의 새로운 차원으로서 간주하지 않는다면, 또한 우리가 주체성을 의무적 규칙의 측면에서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주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 들뢰즈 -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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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이 "성의 역사"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음. 먼저 저술 과정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성의 역사는 1권과 2-3권의 출간일 간격이 큰 것으로 유명함. 1권은 1976년에 써졌는데, 2권과 3권은 푸코가 사망한 해인 1984년에 써졌지.
그래서 이 8년동안 연구가 진행되었느냐, 그의 철학에 어떤 난점이 생긴 것이 아니냐 같은 말들이 많았지만, 뒤에 이 시기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들이 출간되면서 굉장히 다른 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꾸준한 생각의 변화 또한 일어났다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음.
그렇지만 이 강의와 성의 역사의 저술에는 다른 요소들이 많아서, 저작의 순서가 많이 바뀌었음. 1983년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폴 라비노우에게 2권 "쾌락의 활용"을 출간한 뒤, "성의 역사" 시리즈와 다른 독립된 책으로 "자기 배려"를 출간한다고 했지만, 1984년에는 이 "자기 배려"가 성의 역사의 3권으로 끼워넣어졌음.
게다가 2018년에 푸코는 출간하지 말라고 했던 성의 역사 4의 미완성본이 출간되었는데, 이 작업은 2권과 3권을 작업하기도 전인 1979-1980년에 현재 나온 대부분을 작업한 것으로 밝혀졌음.
이제 이 저술 과정으로 보면 굉장히 이상한 "성의 역사"를 읽는 방법이 나옴. 1권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를 읽은 뒤, 4권으로 넘어가서 "성의 역사 4: 육체의 고백"을 읽고, 그 뒤 2권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을 읽고 난 뒤에 2권의 참고 형식으로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를 읽는 거임. 이 1-4-2-(3)이란 순으로 읽으면 진짜 어느정도 이 책들이 읽혀짐.
이 "성의 역사"를 "성"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읽으면 금방 실망할 것임. 어느정도 있기는 하지만, 마치 이 책은 성이 주제가 아닌 것처럼 써져 있음. 이는 성행위가 안 나온다는 말도 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됨 - 이 4권까지의 책은 제목을 바꿔도 됨. "성의 역사"가 아닌 "주체성의 역사"라고. 푸코가 보기엔 4권에서 다룬 아우구스티누스 시기부터 이미 성과 진실과 권리가 하나를 이루는 주체성이 발견되고 있고,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긴장되게 조여졌다고 보고 있음. 그리고 이 주체성이란 속박을 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연구한 것이 2권과 3권의 주제인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였다는 것임.
이 성의 역사의 서술에 비판한 철학자들이 있었음. 찰스 테일러는 기독교에서의 사랑은 에로스와 아가페로 나뉘어 있다고 말하면서 푸코는 에로스에만 집중한 채 아가페에 대해서는 소홀했다고 비판했고, 피에르 아도는 "성의 역사"와 그와 같이 주체성의 대안을 다룬 "주체의 해석학"과 같은 강의들을 세심히 봐서 푸코는 현대의 관점으로 윤리학에만 집중했지만 고대 철학자들은 우주관 또한 그들의 세계관을 이뤘다고 비판했음. 이는 이런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형태의 자기 자신의 구축이 한계를 보일 것이라고 더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음.
특히 피에르 아도의 비판은 푸코 스스로가 아도의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때문에 후기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함. 이 피에르 아도의 푸코 비판으론 그의 "Reflections on the Idea of the 'Cultivation of the Self'"나 "An Interrupted Dialogue with Michel Foucault: Convergences and Divergences"를 참고해.
또한 이 한계점은 푸코 스스로도 알고 있었음. 일단 아주 표면적으로 봐서, 고대 그리스 시기의 동성애는 그대로 현재에 자리잡혀서는 안 됨. 에라스테스와 관계를 맺는 에로메노스는 대략 12-18세의 소년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럼. 또한 철학적 입장에서 이 고대 그리스 시기를 그대로 "생존의 미학"으로서 둘 수도 없는데, 이는 "도덕의 회귀"라는 인터뷰의 내용을 그대로 빌리겠음.
[- 생존의 양식이라, 멋진데요. 당신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훌륭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푸코 : 아닙니다.
- 대단하지도, 훌륭하지도 않다는 말인가요?
푸코 :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나요?
푸코 :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고대 도덕의 모순점으로 여겨지는 것에 그들은 바로 빠지고 맙니다. 즉, 한편으로는 생존의 특정한 양식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만인에게 공통된 것으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양식이라는 것에 그들은 다소 막연하게나마 세네카와 에픽테토스와 함께 다가가기는 했는데,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인 양식 내부에서만 그것에 전념할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고대 전체가 '심각한 오류'처럼 느껴집니다.]
이 성의 역사에서는 bios라는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 지금 상황에서 zoe와 bios의 차이를 논한 아감벤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하지만, 빼놓아야겠음.
아감벤이 푸코의 책과 강의록에 영향을 받았고, 둘 다 고대 그리스를 연구했지만, 아감벤이 한 일이 푸코의 분석틀과는 다르다고 말해야겠음. 푸코에게 bios는 주체성의 대안의 역할일 뿐 그 이상을 섭렵할 수는 없었음.
푸코가 고대 그리스를 연구한 것이 꽤 우연적이었다는 것도 언급해야겠음. 성의 역사 1을 쓴 직후 그는 이 책을 6부에 걸쳐서 진행하려고 했음. 이 초안에 써진 성의 역사 6부의 제목은 다음과 같음: “앎의 의지”, “살과 육체”, “어린이 십자군”, “여자, 어머니, 히스테리 환자”, “변태”, “인구와 종족”. 이 점 또한 참고했으면 함.
푸코의 작업을 아감벤의 작업과 분리하는 것은 이 플로우차트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음.
성의 역사와 관련된 저작으론 피터 브라운의 The Body and Society를 추천함. 이건 1988년에 써졌는데, 보면 피터 브라운과 푸코가 비슷한 시기에 굉장히 비슷한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이 책은 철학적 의견을 빼고 역사적으로 본다면, 진짜 역사학자가 본다면 어떤 관점을 가지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함. 내 생각엔 이 The Body and Society가 성의 역사 4보다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
그 외에도 2차저작으로 나카야마 겐의 현자와 목자란 책을 추천함. 성의 역사 2권과 3권, 푸코의 후기 강의에서 나온 관점을 그대로 사용해서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를 현자로, 사목권력이 자리잡히는 때를 목자로 두고 어떻게 현자에서 목자로 통치성이 이동했는지를 보여줌. 4권이 출간되기 전에 나와 이제는 충돌하는 내용도 있지만, 이해하기엔 좋은 것 같음.
그렇다면 지금의 성소수자에게 이 "성의 역사"는 도움이 될 수 있나? 이것은 잘 모르겠음. 역사에서 주체성의 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수준의 입장표명은 가능할 거임. 하지만 푸코가 죽기 직전 2권과 3권을 어느정도 마친 이후로 그의 예전 강의인 "비정상인들"의 작업물을 다시 연구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푸코도 관심이 있었던 거 같음. 특히 에르퀼린 바르뱅이라는 1800년대 인터섹스였던 사람의 일기장에 푸코가 서문을 달아 출판했다는 점을 보면 그럼. 하지만 성의 역사의 저술에 있던 모든 활동이 주디스 버틀러가 푸코에게 한 주장과는 충돌하는 것으로 보임. 적어도 "젠더 트러블"에서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음. 주디스 버틀러는 성의 역사 1에서의 억압 가설 비판에 억눌려 있던 푸코의 의도가 에르퀼린 바르뱅의 일기 서문에서 분출된다고 말하는데, 성의 역사 1 이후의 글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임.
자, 이런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 일단 “성의 역사”가 그저 저작을 읽는 것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것만큼은 확실함. 그래서 이 플로우차트에서는 아예 따로 빼놓기로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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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루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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