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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다시 맑음 소녀가 돼야 하는 거야?#5

ㅇㅇ(211.200) 2019.11.07 00:19:19
조회 3023 추천 58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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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매우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다.


“누구세요?”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 그리고 매우 인자한 인상의 아주머니다. 나이는 대략 삼십대 후반 정도일까?


“겁먹지 말아요.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그 아주머니는 싱긋 웃으며 나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왔다.


낯선 사람이 외딴 곳에서 다가오는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삼 년 전에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 ‘100% 맑음 소녀’죠?”


“네, 네.”


“학생은 이미 세상에 줄 만한 것은 전부 줬어요. 더 이상 희생할 필요는 없답니다.”


“하, 하지만…….”


나는 메는 목을 억지로 쥐어짜서 열변을 토했다.


“사람들이 죽어가요! 기억에서 잊히고 있어요! 제가 맑음 소녀를 억지로 그만두는 바람에 생긴 재앙이에요!”


“그만큼 비는 약해지고 있지 않나요?”


아주머니의 반박에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잠깐 말문이 막혔다.


흉악한 빛줄기들이 뜬 이후로, 그동안 폭우에 가까웠던 비가 이슬비처럼 약해지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사실이다.


마치 내가 인간 제물이 되면서 하늘이 맑아지던 과정을 천천히 늘인 것처럼.


“그건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 아니에요.”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람들을 돌려놔야 해요.”


“어떻게요?”


“제가 맑음 소녀로 돌아가면 모든 게 해결돼요. 사라진 사람들은 다시 기억과 일상으로 멀쩡히 돌아올 거예요.”


“모든 게요?”


아주머니는 물끄러미 내 눈을 주시했다.


“그건 아니랍니다.”


“네?”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마음에 뻥 뚫릴 구멍, 그건 무슨 짓을 해도 메울 수 없어요.”


갑자기 아주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하늘의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학생과 만나길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있지요? 삼 년 전부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세요?”


“가슴에 꾹 담아놓고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눈빛으로 그 모습이 드러난답니다.”


곧이어 아주머니는 몸을 숙여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돌아가신 엄마의 손길처럼 따뜻했다.


“굳이 날씨의 무녀가 되지 않아도 이 사건을 해결할 방법이 있어요.”


“네?! 그게 뭐예요?”


나는 안달이 나서 그 아주머니에게 매달렸다.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네?”


“쉽지는 않아요. 잘못하면 사람들을 돌려놓지도 못하고, 학생은 학생대로 희생당할 수도 있어요.”


“아…….”


일말의 거짓조차 섞이지 않은 눈빛과 말투. 낯선 사람이지만 절절히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떠오른다.


푸른 하늘과 드넓은 연록색의 초원, 투명한 물고기들이 공중을 헤엄치며 만들어낸 절경.


얼핏 보기엔 낙원 같지만 실상은 그 어느 곳보다 답답하고 잔인했던 감옥.


다시 그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때는 호다카가 기적적으로 구해줬지만, 이번은 어림도 없다.


“할게요.”


그래도 물러날 수는 없다.


“호다카와 다른 사람들, 모두 포기할 수 없어요. 모두 지켜낼 거예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자애롭게 웃으면서 무언가를 건넸다.


반지다. 작고 예쁜 은색 반지.


“이걸 껴요.”


“뭐예요?”


“용 신의 눈을 피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물건이에요.”


“정말이요?!”


“단, 조건이 있어요.”


아주머니는 경고하듯이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반지의 힘을 쓰려면 망자의 기원을 받아야 해요.”


“망자? 죽은 사람이요?”


“네.”


“어떻게요?”


“스스로 알아내세요.”


거기서 선이 그이자 아리송하기만 했다. 공동묘지라도 파헤치라는 뜻일까.


새삼 그 반지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은색 기조에 규칙적인 무늬가 있고, 작은 선홍색 보석이 박힌 모습이 투박함이나 자연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시중에 파는 물건 같다. 결혼반지처럼.


“그런데 이 반지는 어디서……?”


그렇게 물으며 고개를 드는 순간,


“어?”


나는 멍하니 정신을 놓고 땅에 뿌리를 박을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다.


고작 2초 전까지만 해도 세 발짝 앞에서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던 아주머니가 흔적도 없다.


심지어 여긴 옥상이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나는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며 그분을 불러댔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이미 모습도, 목소리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였다.


“설마……!”





“나기, 나기!!!”


“음?”


황망하게 소리치며 집 문을 벌컥 열자, 담요를 뒤집어쓴 채 보이차를 홀짝이던 나기가 움찔했다.


“누, 누나? 왜 그래? 눈이 삼백안이야…….”


“귀신을 봤어!”


나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귀, 귀신?”


“그래, 귀신! 토리이 근처에서 귀신을 봤다니까! 잠깐, 따라와 봐!”


“자, 잠깐, 누나! 진정해! 왜 이래, 누나답지 않게!”


“얼른, 얼른!”


“으아아아악!”


나기는 겁을 먹었는지 병자답지 않은 움직임으로 자기 방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더니 다 들리게 혼잣말로 중얼댔다.


“누나가 호다카 형 때문에 가슴앓이하다가 드디어 미쳤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죽은 사람의 기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30분을 설득하고 나서야 다시 나기를 볼 수 있었다.


나기는 여전히 내 정신이 못 미더운지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


“응, 죽은 사람.”


“그렇게 말해도 말이야.”


나기는 리모컨을 조작해 TV 채널을 돌렸다.


곧이어 영화 케이블 채널에서 으스스한 좀비들이 공동묘지를 기어오르는 장면이 나왔다.


이걸 평일 7시 황금시간대에 틀어주다니.


“애초에 죽은 사람이 현세에 나타나는 건 대체로 저런 것뿐이잖아. 팔다리 뒤틀리고 사람 머리 파먹고.”


“음, 다른 형태는 없을까?”


나는 팔짱을 끼고 신음을 흘렸다.


사실 한 번은 나도 망자가 된 적이 있었다. 호다카와 침대에서 작별을 고하고 구름의 정원에 올라갔을 때.


아프거나 숨이 막히진 않았지만, 그때 나는 현세와 동떨어진 상태였다.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힘들다.


그 사람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속절없이 갇힌 상태일 테니까.


나도 호다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아, 있다!”


“응?”


갑자기 나기가 머리 위로 전구를 반짝였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이다.


“뭔데, 뭔데?”


“기억 안 나? 누나가 맑음 소녀 일을 할 때 찾아갔던 그 옛날 집! 거기서 첫 백중날을 맞이해서 제사를 올렸잖아?”


“아.”


기억났다.


타치바나 가였나?


“그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제사를 올려보자! 그럼 죽은 영혼들이 기원을 해줄 지도 몰라! 우리 부탁이라면 들어주겠지?”


“좋아!”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





“……아.”


틀렸다. 일이 안 풀리려니 이렇게 안 풀릴 수가.


나와 나기는 구릉 위에 서서 허망한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었다. 계속 퍼붓는 비에 침수돼서 하나의 거대한 호수로 변해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누나?”


“글쎄, 이사한 주소를 알아낼 방법도 없고.”


“돌아가서 우리끼리 제사를 지내볼까?”


“효험이 있을까? 제대로 된 절차도 모르는데.”


이래저래 곤란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목소리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20대 중반의 남자다.


“아, 당신은!”


그 모습을 시야에 담자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타치바나 가를 방문했을 때 뵀던 할머니의 손자 분이다.


“안녕하세요.”


“어, 맑음 소녀?”


손자 분은 나를 알아보고 금세 밝은 표정이 됐다. 그런데 바로 곁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기다란 머리에 선한 눈빛, 고전적인 미모를 한 언니뻘의 여성분이다. 손자 분과 비슷한 연령대거나 약간 연상 같다.


“타키 군, 이 아이들이 저번에 만났다던…….”


“맞아, 백중날 때 할머니가 불렀어. 이거 참 신기하네. 마침 물이 좀 빠졌나 확인 나온 참에 이렇게 만날 줄이야.”


타키라고 불린 손자 분이 앞장서서 소개를 했다.


“미츠하, 이쪽은 히나. 히나, 이쪽은 미츠하. 그리고 나는 타치바나 타키.”


곧이어 미츠하 씨가 인사를 나누고 나기에게 시선을 옮겼다.


“얘는 누구니?


“나기, 제 동생이에요.”


“어머, 귀여워.”


미츠하 씨는 흐뭇하게 웃으며 나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기 군.”


나기는 그 특유의 붙임성을 발휘해서 씩 웃으며 양손으로 악수를 나눴다.


얘는 문신한 야쿠자만 아니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두 분은 무슨 관계예요?”


“응? 나랑 미츠하의 관계?”


타키 씨는 잠깐 고민에 잠겼다가 의미심장한 힌트를 던졌다.


“네 상상대로야.”


“아.”


애인이시구나, 부럽다.


저렇게 당당히 남 앞에서 팔짱을 끼고 몸을 맞댈 수 있다니.


‘나도 호다카랑 다시 만나면 저렇게…….’


그 순간 열이 확 올라서 뺨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여기는 왜 왔니?”


“어, 그게 그러니까… 푸엣취!”


나기가 기침을 하고 오들오들 떨었다. 아직 감기 기운이 다 가시지 않았는데 너무 무리한 모양이다.


“이런, 따라오렴. 따뜻한 곳에서 이야기하자.”





“죽은 사람의 기원을 받아야한다고?”


커피를 마시던 타키 씨가 자초지종을 듣자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는 근처의 휴게실.


침수된 마을 근처인데 용케도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차량은 드문드문 지나가는 곳이라 장사는 되는 모양이다.


“네, 그래야 빛줄기에 닿아서 사라지는 사람들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누나가 그랬어요.”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의 창피함을 내게 모두 덮어씌우려는 말투다. 나기, 혼자 빠져나가려고?


그런데 타키 씨와 미츠하 씨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그거 큰일이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겠는데?”


“타키 군, 혹시 그때 우리가 겪은 일이랑 관련이 있을까?”


“어?”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그저 철없는 어린애들의 망상으로 치부하고 넘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진지한 태도로 귀를 기울여주셨다.


“저기, 믿어주시는 건가요?”


“그럼, 100% 맑음 소녀잖아.”


타키 씨는 심각한 와중에도 서글서글한 미소를 보이며 잔을 마저 비웠다.


어른스럽다는 수식이 어떤 사람을 두고 쓰는 말인지 확실히 알 것만 같았다.


“사실은 미츠하랑 나도 만만찮게 신기한 일을 겪었거든.”


“네, 어떤 일이에요?”


“말을 하자면 너무 길어.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사태니까 말이야. 어디 보자…….”


타키 씨는 잠깐 고민에 잠겼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이 미츠하 씨에게 물었다.


“미츠하, 너 이토모리에 있을 때 무녀 일 했었지? 망자랑 이야기하는 거, 어떻게 안 될까?”


“미야미즈 신사? 지금은 그만둔 지도 오래고, 그때도 죽은 영혼을 상대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는걸. 의식 때 옷 갈아입고, 신악무를 추고, 또…….”


갑자기 무슨 불쾌한 일이 뇌리를 스치기라도 했는지, 미츠하 씨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아, 아무튼 나는 신님과 접견하는 것이 역할이었어. 그게 한 번이라도 통했는지는 몰라도. 아니, 한 번은 통했었지만 그건 타키 군이 껴있을 때였고…….”


“신님?”


그 말을 듣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용 신의 이야기인가요?”


“용 신?”


미츠하 씨는 생소한 말인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어떤 신이니?”




--------------------------------


날아 이야기만으로 써보려고 했는데


즉흥적으로 쓰다보니 느그명과 살짝 크로스오버됨.


결말은 생각해놓음


추천과 댓글, 그리고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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