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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다시 맑음 소녀가 돼야 하는 거야?#7

ㅇㅇ(211.200) 2019.11.11 14: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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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병상에서 호흡기에 의존하며 간신히 숨만 붙들고 있던 엄마가 아니다.


아직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던 시절, 넓은 품으로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던 그때의 모습이다.


얼굴에 혈기가 돌고, 머리에는 윤택이 흐르며 자애로운 눈빛으로 나와 나기를 흐뭇하게 바라봐주신……

.

“엄마―!!!”


나는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엄마의 품으로 달려갔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하천의 범람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던 둑이 결국 무너진 느낌이다.


“엄마, 엄마, 엄마……!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야, 엄마…….”


옛날처럼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울었다.


4년 전에 작별을 고하고 꾸역꾸역 참아온 감정이 일시에 터지자 주체가 되지 않았다.


환상이 아니다. 꿈이 아니다.


온기, 감촉, 모든 것이 진짜다.


그렇게 한동안 원 없이 눈물을 쏟아내다가,


“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정하게 나를 안아주고 머리까지 쓰다듬어주면서 엄마가 단 한 마디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엄마, 왜 그래? 왜 말을 안 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쏟아내려면 황혼의 시간이 아니라 며칠이 걸려도 모자랄 텐데.


의아해서 눈을 깜빡이는 내 볼을 어루만지던 엄마는, 천천히 내가 끼고 있는 반지 쪽으로 손길을 향했다.


토리이 근처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건네준 그 은색 반지다.


엄마는 반지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자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소 탁해진 은색 반지가 황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어둑해져가는 사무실 실내를 밝혔다.


마치 작은 태양을 손가락에 끼고 있는 기분이다.


“이게 뭐야?”


사실 궁금하진 않았다.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망자의 기원.


죽은 사람이 내리는 축복.


그걸 받으면 용 신의 눈을 피해서, 다른 길을 통해 구름 위의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내가 황혼의 시간을 기다려서 기도를 올린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대화를 시도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대로 헤어지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이 시간을 연장하고 싶어서.



“엄마, 이제 떠나지 마.”


“…….”


“옛날처럼 집에서 같이 살자. 나기도 이제 많이 컸어. 울지도 않고 어른 다 됐어. 보면 많이 흐뭇할 거야.”


“…….”


“뭐라고 말 좀 해 봐, 엄마. 아무 말이나 괜찮아. 그렇게 예쁜 목소리 어디에 두고…….”


훌쩍이면서 말끝을 흐리다가, 문득 바깥의 변화를 감지하자 시선이 돌아갔다.


해가 진다.


어둠이 찾아온다.


남색의 베일이 하늘을 덮고, 모래처럼 흩뿌려져 그 위를 치장하는 별들이 밤하늘을 만든다.


예쁜 광경이다.


그러나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아는 나로서는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재앙이 찾아온 기분이다.


“엄……!”


나는 다시 엄마를 부르며 시선을 돌렸지만, 그저 어두컴컴하고 텅 빈 사무실의 풍경만이 날 맞이했다.


엄마는 사라졌다.


황혼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여기보다 더 따스할지도 모르는.


나는 다시 북받치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엄마, 약속할게.”


아기처럼 품에만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이제 어엿하게 성장한 딸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나기를, 사람들을 반드시 돌려놓겠다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그땐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약한 말 따윈 안 할 게. 꼭 해낼 테니까.”




나는 삭막한 유령도시가 된 도쿄의 밤거리를 지나서, 요요기의 폐건물 옥상까지 걸어갔다.


지나가는 와중에 파멸의 빛줄기를 여러 갈래 목격했지만, 그것들은 나를 덮치진 않았다.


이미 제물은 충분히 바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맑음 소녀였던 나는 제물로서 효력이 없는 건지.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를 대신해서 희생된 사람들을 되돌릴 기회가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예전이라면 그냥 체념하고 맑음 소녀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 하나 희생해서 도쿄의 사람들이 모두 살 수 있다면 모두가 환영할 테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야.



‘자신을 위해 기도해, 히나.’



그때 호다카가 남긴 말은 내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이제 나는 누구를 위해 행동할 뿐, 희생하진 않아.


그것이 나기도, 호다카도, 엄마도 원하는 길일 테니까.




왔다.


작고 붉은 토리이.


4년 전의 그때, 그저 맑은 날씨를 바라기만 했을 뿐인 내게 지우기 힘든 저주를 내린 공간.


여기를 다시 통과한다.


그러나 그때처럼 구름의 정원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맑음 소녀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


나는 토리이를 통과하기까지 한 발짝만 남겨놓고 멈칫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나는 미츠하 씨가 남긴 조언을 떠올리고, 양손을 모았다.


‘만약 신님이 계시다면, 부탁입니다. 많은 건 바라지 않습니다.’


일체의 가식이나 거짓을 섞지 않고, 본심만을 담아 기도했다.


‘만약 제가 일을 그르쳐서 죽게 된다면, 호다카를 한 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약속을 어겨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짤막한 기도를 끝내고, 나는 힘껏 발을 내딛어 토리이를 지났다.


엄마의 기원을 받은 황금색의 반지를 왼손 약지에 낀 채로.




“……어?!”


숨이 찬다.


마치 얼굴만 간신히 수면 위에 내놓고 바다에 빠진 것만 같다.


태풍을 연상시키는 돌풍이 얼굴을 때리고 시야를 가렸다.


나는 반지가 빠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붙든 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허우적댔다.


그런 발악이 아주 쓸모없진 않았는지, 나는 기류를 거슬러서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벽처럼 사방을 막고 있던 짙은 회색의 먹구름을 뚫자, 새로운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예전의 그 평화로운 정원이 아니다. 하늘의 물고기도 없다.


새빨간 액체로 가득 찬 공간의 한가운데 반투명한 주머니가 있고, 반딧불처럼 샛노란 빛 덩어리들이 그 안에서 춤을 추는 광경이었다.


“이건 뭐야?”


어안이 벙벙했지만, 곤충의 고치처럼 생긴 주머니의 움직임을 보자 금세 의문이 풀렸다.


쿵쿵.


빛 덩어리를 담은 주머니는 규칙적인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의 심장처럼.


“여긴 용 신의 안?”


그렇다면 저 빛 덩어리들이 뭘 의미하는지는 쉽게 유추가 된다.


빛줄기에 제물로 잡아먹힌 사람들.


그 사람들의 영혼이 빛의 형태로 갇혀있다.


구해야 돼.


지금 당장.


“아, 아흑!”


차갑고 빠른 액체의 수류를 거슬러서 헤엄치다보니 짧은 신음과 비명이 연이어 새어나왔다.


숨이 가빠지고 팔과 다리에 힘이 떨어진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이게 실패하면 도쿄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나까지 죽게 된다.


“다, 닿았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헤엄치자 가까스로 고치 모양의 주머니에 닿을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마치 해파리의 몸체처럼 투명한 막이 사람들의 영혼을 가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감옥이다.


그 푸른 정원처럼.


나는 팔을 천천히 뒤로 뻗었다가, 온힘을 다해 앞으로 내질렀다.


그러자 주머니를 이루고 있는 얇은 막이 찢어지고, 안에서 세차게 움직이고 있던 빛 덩어리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빠져나갔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수백? 수천? 수만? 아니, 그 이상.


다시 자유를 찾아 흩어지는 빛 덩어리를 보자 마음이 후련하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어. 생각보다는 일이 순탄하게 풀렸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돌아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출구처럼 보이는 곳이 없다.


그렇게 붉은 액체 사이를 유영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꺅!”


갑자기 액체의 수류가 강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그 흐름에 휘말리고 말았다. 아까처럼 몸부림 따위로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으로 물렁한 벽을 뚫고 나오는 감촉을 느끼고 가까스로 눈을 떴다.


더 이상 액체 안에서 유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불길하고 지옥 같은 공간에서 드디어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지상도 아니다.


여긴 설마…….


“어?”


익숙한 감각이다.


텅 빈 허공에 부유하는 느낌.


내 주변을 감싸며 헤엄치는 하늘의 물고기.


그리고,


“용 신?”


있었다.


희뿌연 구름으로 이루어진, 뱀처럼 기다란 몸통의 형상이.


소름끼치는 포효를 내지르며 나를 주시한 채 앞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두렵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감정은 한층 더 격렬했다.



증오스럽다.



“이제 그만해!”


나는 물고기들을 손으로 쳐내고 힘껏 목청을 높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날씨 하나 때문에 도시 사람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신이 어디 있어?!”


경어를 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제 우리를 그만 내버려 둬! 당신에겐 날씨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우린 아니야! 공존할 수 있는 방법도 있잖아!”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살면서 화를 내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악에 받쳐 호통을 지르는 건 처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맑은 날씨마저 포기할 수 있는 게 사람이야! 우릴 이해하기 싫으면, 나도 당신을 이해할 생각 없어! 그만해!”


그러자 용 신이 반응을 보였다.


분노에 물든 포효로.


“헉.”


용 신은 입을 벌리고 나를 향해 쏜살같이 다가왔다.


너무 빠르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나는 용 신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아까의 붉은 액체는 온데간데없고, 세찬 강풍과 헤엄치는 물고기 떼만이 내 몸을 강타했다.


이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의식이 혼미해지던 와중에,


“앗!”


휘몰아치는 강풍 때문에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기도가 막힌 것처럼 일시에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나를 감싸주고 있던 엄마의 기원이 힘을 잃자 이 가혹한 환경은 내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기력이 다한 나는 하늘 꼭대기에 놓인 사지에서 의식의 끝자락을 놓고 말았다.



아니, 놓을 뻔했다.



“어?”


손목이 따뜻하다.


이상하다. 이런 곳에 핫 팩이나 난로 같은 것이 있을 리가.


게다가 이질적인 느낌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부드럽다.


무엇보다, 다정하다.


누군가의 손길이다.


나는 몽롱한 와중에 고개를 들어 그 온기의 주인을 시야에 담았다.


그러자 완전히 꺼질 것만 같았던 의식이 돌아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다카……?”



---------------------------------------



전개 특성상 이번 화는 대화 하나 없이 오로지 히나의 독백만으로 이루어져있어서


분량 채우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히나가 나이에 비해서 너무 조숙한 성격인 게 안타까워서,


한 번이라도 어린애처럼 응석부리거나 펑펑 우는 장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팬픽으로나마 소원 이루어서 만족합니다.


다음 화가 마지막.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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