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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제2차 베르기젤 전투: 바이에른-작센 연합군을 대파한 티롤의 반군

제국의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5 18: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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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5월 25일, 디로이 중장Bernhard Erasmus von Deroy의 제3 바이에른 사단은 베르기젤에서 티롤의 반군과 충돌했다. 디로이는 전투에 4,000 명의 병력과 12 문의 대포를 이끌고 와서 교전에 돌입했다. Andreas Hofer호퍼는 티롤의 반군을 지휘했고 그의 부관은 스폿바허, 테이머, 요제프 아이젠스테켄, 오버스트레넌트 에르텔이었다. 호퍼의 군대는 9,400명의 무장한 반군과 900여 명의 오스트리아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규군에는 제16 뤼지냥 보병연대와 제25  드 보 보병연대가 각각 1개 대대, 제9 엽병대대 2개 중대, 제3 오라일리 근위 경기병연대의 반개 대대, 그리고 총 5문의 대포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이에른인들은 20명에서 70명 사이의 사망자와 100에서 150 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티롤인들도 50 명의 사망자와 30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역사가 Digby Smith딕비 스미스는 그  전투가 바이에른의 승리였노라고 칭했지만, 그의 서술 상에서는 그 전투가 무승부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티롤의 반군이 봉기에 가담하지 않은 지역 주민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낙담하여 남쪽으로 후퇴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군은 5월 29일에 돌아와 디로이에게 2차 공격을 가했는데, 데로이는 12개 대대와 8개 중대, 18문의 대포로 편성된 5,24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저항했다. 13,600명의 티롤 반군은 1,200명의 오스트리아 정규군과 6문의 대포와 합류하고 있었다. 반군에은 35개의 북티롤과 61개의 남티롤 schützen저격병, landsturm국민군 중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제7 군단에게 인스부르크가 함락된 바로 다음날인 5월 21일~22일 양일간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공에게 나폴레옹이 패배했고,  제7 군단의 François Joseph Lefebvre르페브르가 인스부르크에서 물러나 북쪽의 잘츠부르크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고 이에 따라 바이에른 군대가 동요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저항의 깃발을 올린 호퍼에게 호응, 기세가 올라 수백명의 지원병이 몰려든 것이었다. 궁국적인 목표가 북쪽으로의 후퇴였던 바이에른군은 간신히 자리를 지켰지만, 87명의 사망자와 156명의 부상자, 53명의 실종자를 내어야만 했다. 반군은 90명의 사망자와 160명의 부상자를 냈다. 다음날, 탄약과 식량이 부족한 디로이는 인스브루크에서 철수고 북쪽의 쿠프슈타인 요새로 후퇴했다. 양군 모두 200명 가량의 비등한 숫자의 사상자를 내었고,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7월 5일과 6일에 바그람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했다. 반군 지도자들의 색출과 무기의 자진 반납을 요구하며  르페브르는 티롤을 다시 침공했고 디로이는 7월 24일 Lueg Pass루에그 고개에서 작은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티롤인들은 다시 한번 저항의 깃발을 올린 호퍼의 봉기 요구에 호응하여 모여들었다. 하스핑거와 스폿바허가 이끄는 약 5,000 명의 티롤 반군이 Franzensfeste프란첸스페스테의 계곡에서 8 월 4일과 5일, 양일 간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 장군 Marie François Rouyer마리 프랑수아 루이어가 이끄는 3,600 명의 Confederation of the Rhine라인동맹 연합군을 격파했다. 작센군 보병 연대는 988명의 사상자를 내며 전멸했고, 바이에른군은 추가로 100명의 병력과 2문의 대포를 상실하였다. 그에 비하면 티롤 반군의 손실은 경미한 것이었다. 이 계곡은 여전히 Sachsenklemme(Saxon Trap)작센 죔쇠로 알려져 있다. 다음날 르페브르가 소식을 듣고 제1 바이에른 사단과 함께 도착했지만, 티롤 반군의 저항에 부딪혀 고전해야 했다. 8월 8일과 9일에는 Prutz프루츠에서 로만 버거가 이끄는 920명의 티롤 반군이 디로이의 제3사단, 대령 부르샤이트가 지휘하는 제10 바이에른 보병대와 제2 용기병 연대의 2,000  병력을 대파했다. 티롤 반군은 1,200 명의 포로와 2 문의 대포를 포획하면서 적에게 200명의 사상자를 강요했다. 반군의 손실은 7명에 불과했다. 18,000명의 티롤 반군과 디로이의 사단이 격돌한 8월 13일, 14일 벌어진 제3차 베르기젤 전투도 토벌군의 굴욕적인 패배로 끝났다. 불어난 티롤 반군의 규모의 기세에 눌려 르페브르는 현지 유력 가문들에게서 인질을 확보하고 인스부르크를 포기, 잔존 병력은 8월 18일까지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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