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xlvii 무언

아바돈은 귀를 기울인다.

”목소리가 멈췄네.“

시카르가 입을 연다.

그렇다. 천 갈래의 목소리가 한데 엉켜 속삭이던 목소리가 갑자기 침묵에 잠긴다. 함선의 삐걱거림, 동력이 웅웅대는 소리를 제외하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바돈은 다음 복도로 전진하라는 신호를 보내려던 참이다. 그리고 갑작스럽고 격렬한 쾅 하는 소리가 난다. 총성처럼 들리지만, 아바돈은 그 소리를 알아챈다. 일전에도 들어본 적 있는 소리다. 저 클락슨이 울부짖기 전에, 호박색의 경고 룬이 깜박이기 전에 그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챈다.

”결속!“

아바돈이 소리친다.

”전원 꽉 잡아라!“

함체 균열, 그리고 그에 따른 폭발적인 감압. 공기가 호각을 불며 그를, 그리고 그의 측면에 선 전사들을 빨아들인다. 자력판이 작동한다. 아바돈은 벽의 버팀목을 붙들고 육신을 지탱한다. 공기가 그들을 지나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마치 저 앞의 복도가 그들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청난 저항이 솟구친다. 먼지, 흙먼지, 파편들의 눈보라가 갑주에 튕기며 휘날린다. 강풍에 휘말린 그들의 대형을 지난 눈보라는 그대로 터널의 목전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사, 금속 조각, 너덜너덜한 전선, 펄럭이는 종잇조각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멈춘다. 시작만큼이나 갑작스럽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의 움직임이 멈춘다. 비상 셔터가 자동으로 닫히며 우주에 노출된 공간을 폐쇄한다. 느슨하게 떠올랐던 물체들이 갑판에 툭툭 떨어지고, 소용돌이치던 먼지가 가라앉는다.

”이 빌어먹을 배가 망가지고 있군.“

바락사가 으르렁거린다.

아바돈은 바락사를 무시한 채 몸을 곧게 세운다. 찢긴 종잇조각들이 잎사귀처럼 흩날리고 있다. 아바돈이 공중에서 한 장을 낚아챈다.

시카르가 다른 한 조각을 잡는다.

”이건 뭐지?“

그가 묻는다.

아바돈은 손에 들린 조각을 응시한다. 세월의 더께가 잔뜩 묻은 낡은 책의 조각이다. 마치 찢어낸 것처럼 보인다.

”뭐랄까… 무슨 시 같은데.“

도대체 이건 어디서 온 거지? 아바돈은 생각에 잠긴다. 이게 무슨 뜻이지? 그는 읽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처음에는 목소리와 속삭임이더니, 이젠 아예 종이에 새겨서 뿌려대나? 아바돈은 주먹 안의 종이를 그대로 구겨버린다.

”중대장님!“

아르나노드(Arnanod)가 지휘하는 전술 분대가 전진한 뒤다. 아바돈은 그들에게 합류하기 위해 전진을 시작해 다음 복도로 건너간다. 아바돈은 분대가 발견한 것을 본다. 이곳의 바닥은 갑판이 아니다. 낡고 오래된 양탄자다. 양 벽에는 선반이 늘어서 있다. 오래된 책, 피지함, 그리고 필사본들이 널려 있다. 몇은 감압에 휘말려 곳곳의 바닥 위에 반쯤 열린 채 흩어져 있다.

아바돈은 무기를 들어 올린다.

”따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