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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가드맨과 레가 캡틴 -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2.18 08: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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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은 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acropolis) 바닥에 널부러져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한구는 눈이 샛노랗게 변색되어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드맨 세르게이 아스딕(Sergei Asdic)은 그 시체의 얼굴에 공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죽은 자도 여전히 의지가 남아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세르게이는 죽은 그의 동료들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거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무너진 석조 더미에 기대어, 이제 쓸모없어진 그의 양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어지러움증에 고개를 가누기 힘들었다. 기침을 하자 밝은 피 거품이 입술에서 흘러내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배에 난 상처의 고름이 경련을 일으키게 했다. 어느것도 그에게 도움이 되진 못했다. 누군가 그를 도와주러 온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리라.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죽은 자들이 가득했다. 세르게이의 시체는 곧 익명의 통계 숫자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고, 잊혀질 것이다. 그는 플레이그 마린(plague marine)들이 어서 빨리 자신을 끝장 내주길 바랬다. 그러면 적어도 고통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기다리지 않아도 될테니까.


동료들의 유해 근처에는 플레이그 마린의 시체도 한 구 있었다. 곪아들어가는 그 거인의 시신은 방금 전 세르게이의 복부를 꿰뚫었던 녹슨 칼날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원형 기호와 가시가 그려진 녹색 파워아머는 잔뜩 녹이 슬었고 살점들은 부풀어 오르고 괴사하면서 파워아머의 균열 사이로 구더기들이 마치 퍼티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헬멧은 산성 숨결에 반쯤 부식되었고, 거인의 머리는 반쯤 잘려서 어깨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방금 전 세르게이가 필사적으로 쏜 라스건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세르게이는 역겨운 악취에 고개를 돌렸다.

 


괴수의 이빨처럼 삐죽삐죽 부서진 벽 뒤로는 어둑어둑한 회색빛 하늘이 보였다. 마치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쟁통으로 인해 대기 자체가 그을린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투사체의 울부짖음과 찢어지는 플라스틸의 비명은 아크로폴리스의 이상하고 무덤 같은 분위기 밖에서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세르게이는 그것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는 자신이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알았고, 불과 몇 시간 전에 하늘에서 떨어진 투하 포드를 보고선 구원의 희망을 느꼈다. 황제 폐하의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 공허 속에서 천둥치듯 나타났으며, 그들은 안드리코르(Andricor)와 사르가시온 리치(Sargassion Reach) 전체에서 카오스의 더러운 오염을 정화할 것이다. 그는 적어도 그것에서 위안을 얻었다. 이 행성은 버림받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갑자기 움직임이 느껴졌다. 세르게이는 그 쪽으로 머리를 돌렸고 그 동작으로 인해 배의 상처가 한번 더 고통을 일으켰다. 세르게이는 상처를 움켜쥐고 손을 더듬어 라스건을 무릎 위에 올려놨다.


'거기 누구냐? 모습을 보여라!'




만약 적이었다면, 세르게이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들을 쓰러뜨리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그가 먼저 당할 가능성이 더 컸을 테지만 말이다.


그는 안뜰 입구를 주의 깊게 바라보며, 피로의 안개에 압도당할듯 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거친 숨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전투 소리에도 불구하고 매우 크게 들렸다.


다시 그것이 움직였다. 세르게이는 상처의 고통에 항명이라도 하듯 이를 악물고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는 언뜻 무언가를 보았다. 거대하고 검은색의 형태가 부서진 기둥 옆에 숨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방아쇠 위에 맴돌았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나자 세르게이는 사격 준비를 했다.




'쏘지 말아라'


그 목소리는 명령조였고 간결했다. 세르게이는 망설였다.




'관등성명을 대라!' 


세르게이가 말했다.




'앞으로 나와, 얼굴을 봐야겠다'


그는 라스건을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발걸음 소리가 깨진 석조물 위로 울렸고, 이어서 그 목소리의 주이 빛 속으로 나타났다. 세르게이는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스페이스 마린이었다. 칠흑같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파워 아머를 입은 그 자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음에도 세르게이보다 훨씬 커보였다. 두 주먹은 하얀색이었고. 전기 스파크가 쉿쉿거리는 발톱이 달려있었다. 어깨에는 제국의 아퀼라(Aquila)처럼 생겼지만 다른 새의 형상이 흰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벨트에는 한뼘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새 두개골처럼 보이는 것이 얇은 사슬에 매달려 있었다.  세르게이는 그 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목을 앞으로 뺐다. 하지만 그 자는 주둥이가 길쭉한 호흡기 같은 것이 달린 헬멧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스페이스 마린이 그에게 다가오자 세르게이는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다리가 반응하지 않았고 등은 이미 벽에 기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르게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는데, 마치 그 행동이 거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것처럼 느껴졌다.


가까이서 본 그의 갑옷에는 수백 개의 룬 문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름들 같았다. 닳고 닳은 파워아머의 거의 모든 표면에는 그런 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기억이었다.


세르게이는 다른 스페이스 마린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으나 그 자는 혼자인 것 같았다. 세르게이는 그의 존재 앞에서 두려움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스페이스 마린은 세르게이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레이븐 가드 4중대의 캡틴 코린(Koryn)이다. 무기를 내려놓아라'


세르게이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자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그는 라스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방아쇠 위에 검지 손가락을 쭉 펴서 올려두었다.,


거인은 고개를 기울여 세르게이를 바라보았다. 헬멧 속에 감춰진 그의 얼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자네는 죽어가고 있다, 가드맨.'


그것은 조롱도, 질문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세르게이의 꽉 다문 이빨 사이로 피와 공기가 쉿쉿 거렸다. 그가 앉아있는 타일 위에는 이미 피가 흥건했다.





'그건 저도 압니다.'


세르게이가 간신히 말했다. 그러자 레이븐 가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이름이 무엇인가?'


세르게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찢어버리려고 내려온 반역자 괴물들을 제외하고는 스페이스 마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야기는 항상 들어왔다. 인간들 사이를 거니는 거인들의 이야기, 카오스와 제노들의 위협으로부터 황제 폐하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반신들. 하지만 그는 가드맨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스페이스 마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무서운 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 궁금했다.




'세르게이 아스딕입니다. 방금 전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암울한 농담에 미소지었다.




스페이스 마린은 발 밑의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 플레이그 마린의 유해를 살펴보았는데, 마치 그것이 실제로 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세르게이는 무심코 그렇게 내뱉었다. 그러자 스페이스 마린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세르게이는 움찔하며 자신의 무례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생각했다.


하지만 거인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설(legends)을 통해 살아간다네. 그 이야기가 우리를 정의하지. 난 위대한 업적(great deeds)을 세운 자의 이야기(tale)를 듣고 싶다.'


'위대한 업적이요?'




코린이 되물었다.




'그저 우리들 20명이 저 놈 하나를 쓰러뜨렸을 뿐입니다. 그 대가로 다 죽었지만요. 아마 당신도 똑같이 하셨을 겁니다.'


코린은 그 사실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대는 승리했고,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목숨을 바쳤네. 자네들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그렇게 했다. 나 같은 존재가 단 한 명의 적을 쓰러뜨리는 것은 잠깐의 작업에 불과하지만, 그대와 그대의 형제 자매들은 20명 분의 용기와 목숨을 필요로 했네. 나는 그 행동에서 희생과 명예와 고귀함(greatness)을 느낀다네. 그러니까 죽기 전에 자네의 이야기를 말해주게.'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은 그에게 꿈처럼 느껴졌다. 마치 몇 년이 지난 것 같았다. 전장과 적의 무기의 울부짖음, 죽어가는 자의 고문 같은 비명, 배의 욱신거리는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치 몇 시간 전의 일이 다른 생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 'WITH BAITED BREATH'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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