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싱은 일반적으로 그림을 대고 그 위에 따라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초보들에게 권유하는 프로들이 있는 반면, 트레이싱으로는 절대 실력이 쌓이지 않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프로도 있다.

과연 트레이싱은 효과가 있는걸까? 없는걸까?

어떤 주장이건 각각 근거는 있는데 트레이싱을 통한 실력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모방이 모든 학습에 통용될만한 좋은 방식임에도 왜 트레이싱은 실력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걸까?

그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1. 쉽게 익힌 것은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상식

2. 트레이싱을 통해 얻은 지식이 그림이라는 요소의 일부라는 것

3. 실제로 트레이싱을 통한 훈련으로 비약적인 실력을 갖췄다고 말하는 프로가 없음

다 근거가 있는 말이다. 실제로 트레이싱이라고 해봐야 선을 따는 정도나 색을 스포이드로 찍는 것에 그치고 있다. 경험적으로도 쉽게 익힌 것은 쉽게 휘발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트레이싱이 효과가 있었다면 너도나도 추천하는 방법이었을 거다.

트레이싱은 그렇다면 효과가 없는 것인가? 아니, 사실은 효과가 있다.

다만 목적성이 없는 트레이싱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트레이싱이 효과없다고 말하는 영상이야 흔하고 납득이 가니까 그냥 넘어가고,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프로의 입장에서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쪽의 영상들을 살펴봤다.

그 중에 흥미로운 것이 2개였다.

'how to trace to improve your skill'이랑

proko의 'how to do an anatomy tracing'이었다.

사실 이것 외에도 말그림 트레이싱하면서 효과 있을까 없을까 테스트한 영상도 있는데 처음에는 말 기억에 의존해서 못 그리다가, 말 트레이싱 해보고(선, 네거티브, 도형화 번갈아가며 여러개 그려봄) 그린 영상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레이싱은 효과가 있다.

다만, 내가 무지성으로 하면 효과가 없다. 왜 같은 행위를 하는데 무지성이면 효과가 없을까?

공부를 할 때 결국 중요한 건 문제를 보고 > 출력하는 거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도 무언가를 묘사한다는 문제 > 출력이라는 프로세스를 가진다.

창작, 모작은 그림이라는 행위의 문제를 시작부터 만나게 해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하는 문제 인식 > 그리고 문제 해결 방법을 머릿속에서 강구 > 해결하기 위한 시도 > 성공시 만족 or 실패시 좌절 후 재시도(혹은 포기) 라는 과정을 거치는 거다.

목적없는 모작과 창작도 마찬가지지만 트레이싱은 특히나 이런 문제 인식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자칫하다간 선을 대지 않고 그린 그림들이 시간 대비 결과가 불만족스러워 트레이싱이 아니고선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트레이싱은 어떻게 활용해야할까? 사이토 나오키의 경우 트레이싱을 통해서 인식의 해상도를 높이라고 말한다.

추상적으로 말한 것같긴 해도 핵심이다. 결국 눈이 높아져야한다는 얘기고 문제를 인식하는 눈을 가져야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트레이싱은 단순히 선을 옮겨 그리는 수동적 작업이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는 능동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적절한 질문을 품거나, 목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한 유튜브 영상 또한 트레이싱을 통한 그림 기술의 개선효과를 언급하며 분명한 목적을 설정해줬다.

'how to trace to improve your skill'

영상 대충 설명하자면 오리 그림 수정하는 건데 선을 어떻게 그렸을까 너가 그리는 사람이 되어 역추적해보라는 거임.

도형에서 시작해서 요렇게 바꿨다든지 하는 식으로.

방법 - 그림을 보고 선을 따라 그리되 도형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을 도형으로 표현하며 그리기

목적 - 이 사람이 어떻게 간단한 도형과 부위와의 상호 관계에서 그림을 그려냈을까 추적해보기

길러지는 능력 - 결과물을 통해 작업 과정을 상상하는 능력 + 구체화되어있는 그림을 도형이라는 추상으로 인식하는 능력

proko의 'how to do an anatomy tracing'이었다.

방법 - 사진에 대고 근육 부위 그려보기

목적 - 이해하기도 힘들고 응용하기도 까다로운 해부학적 지식을 사진에 대고 활용함으로써 익숙해지고 능숙해질 수 있음

길러지는 능력 - 근육과 형태 이해 능력, 해부학적 지식 등

만약 생각없이 선만 따라그리는 걸 한다치면 뇌에는 아무런 부하가 걸리지 않는다.

운동 부하가 있어야 근육이 찢어지고 성장하듯이, 뇌에도 부하가 걸려야 하는데 트레이싱은 이런 부하를 줄여준다.

트레이싱은 보조 기구가 운동의 부하와 효과를 줄이듯이 그림공부의 효과도 부하도 줄인다. 그러니 하지 않는 게 좋다?

자칫 트레이싱이 효과없다는 말들과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겠지만 생각을 해보자.

턱걸이를 하나도 못하는 사람은 운동을 위한 힘이 부족한데 무게는 힘보다 많이 나간다. 즉, 과부하라고 볼 수 있다.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없고 부상을 입기 딱 좋은 상태다. 하지만 트레이너가 붙어 무릎을 들어주거나, 탄성있는 보조장치를 통해 턱걸이를 쉽게 할 수가 있다.

원래라면 턱걸이 하나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철봉에 억지로 매달려 가며 바둥거리다가 손바닥 살만 아프고 내려오기가 십상인데 말이다.

그림으로 치자면 원래라면 부상을 입고 멘탈 바스라졌을 그림 공부가 계속하여 익힐 수 있는 것으로 단련가능해지는 것이다.

트레이싱이라는 보조장치는 그림에 있어서 부하를 줄이고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단련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난도조절용으로 좋다는 거지.

따라서 트레이싱은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말 창작으로 그림 그리다가 트레이싱해보고 다시 그린 사람의 경우도 동일했다. 상상으로 그릴 때 어설프던 말 그림이 트레이싱 이후에 훨씬 더 정교해졌다.

트레이싱이 도형화의 능력이나 해부학적 지식의 단련만이 아닌, 정교한 드로잉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증거지.

결국 핵심은 무지성 모작이 아니라 문제 인식(안 똑같은데, 어떻게 해야 똑같이 그릴 수 있을까? 등등)을 하고 난 다음에 트레이싱을 했다는 거다.

실제로 사람들은 기억하려고 마음 먹은 것을 훨씬 잘 기억하고, 출력하려고 마음먹고 있을 때 훨씬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목적이 없으면 행동도 공회전하는 거다. 어떤 그림 훈련보다도 문제 인식능력이 없어지기 쉬운 트레이싱이다보니 관련해 숱한 오해들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갤러들이라면 트레이싱을 보조장치로서 이해하고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돈받고 파는 작품에 표절하라는 얘기는 아니고 훈련용으로.

결론

1. 트레이싱은 부하를 줄여준다.(때문에 0에 가까운 부하에선 아무 효과가 없기도 하다)

2. 적절한 문제인식(부하작용)만 가지고 행한다면 트레이싱 역시 좋은 훈련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