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크레인이 처음 등장한것은 로만 폴란스키의 '테넌트'(1976)에서 나온, 파리의 넑은 아파트의 안마당 담장을 나선형으로 따라 내려오는 크레딧 시퀀스였다. 만일 더 옛날에 감독이 그런걸 하고싶았다면 그에 맞는 세트를 새로 지어야했을 것이다. 스필버그는 '1941'(1979)에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로마크레인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로마크래인이 단 한대만 존재했었지만, 스필버그는 돈이 아주 많았기때문에 로마크레인측 사람들에게 전체 촬용을 위한 돈을 지불했다. 그건 당시에는 소형트럭에 수용했다. 40~50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있었으며 조립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스필버그는 레비에르와 버스비 버클리가 시도했던것과 같은 숏을 주로 찍기위해 로마크레인을 사용했다. 카메라를 댄서들의 머리 위로 위치시키고 움직이는것 말이다. 레비에르 일행이 그런 각도에 도달하기 위해선 대규모 장치를 발명해야만 했다. 로마크레인의 등장은 일을 너무도 간단하게 만들었다.
내 생각엔, 로마크레인을 장난감에서 창조적 도구로 만든 첫 영화는 '베를린 천사의 시'(1987)이다. 빔 벤더스는 LA에서 10년간 일한 후에 독일의 언어를 재발견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릴케를 읽고 베를린 거리를 거닐며 그는 도시 전치를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소요적인(peripatetic) 캐릭터에 집중하는 영화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맨 처음엔 우체부나 소방관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다음에 그는 한 쌍의 수호천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 경우엔 로마크레인이 제격이었다. 벤더스는 로마크레인을 사람 위로 떠다니다가, 사람들의 위치로 내려왔다가, 사람들 사이로 떠돌아다니도록 한다.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원격조종 크레인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벤더스가 '미국인 친구'(1977)에서 처음으로 로마크레인을 썼을때는 거의 악몽이었다. 나중에 그가 고백한 바에 의하면, 그때는 그 기술이 불완전했다고 한다. 로마크레인이 제대로 작동되게 하려다가 조명을 잃기가 일쑤였다. 결국 세트장에서 로마크레인측 직원끼리 고함을 치며 싸우는 지경까지 갔고 결국 그들도 포기해버렸다. 때로는 완벽한 도구가 있더라도 그걸 제대로 써먹지 못할 경우도 있는 법이다. (完)
ㅡㅡㅡㅡㅡㅡㅡㅡ 이로써 2014년부터 2015년까지 4회에 걸쳐 기고된 폴 슈레이더 감독님의 GAME CHANGER는 마지막입니다. 졸역임에도 이해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비리아 숏에대해 검색했다가 우연히 보게되어 순응자와 unmotivated 카메라무빙에 대한 부분을 읽고 흥미가 생겨 1부부터 정리해보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는 폴 슈레이더 감독님의 글을 보며 공부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영어실력때문에 부자연스럽거나 오역에 의한 곡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