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과묵해보이는 소년이 있다. 놈의 외관에서 확인 가능한 과묵 수치는 분명 수준급이지만, 본디 과묵함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척도라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그의 과묵함 준위가 그렇게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년이 상대적으로 더욱 멍청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아주 멍청한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과묵한 소년의 이름을 예측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멍청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잖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벙어리같은 정신병자의 이름은 무엇일까?

[JEFF MCBRIDE]

소년의 이름은 제프 맥브라이드(Jeff McBride)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 제프이다.

방 안은 빈 공간과 긴장감으로 한가득이다. 너희 또래 아이들에게 있어 이런 개인공간은 꽤나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을테지만, 마피아 대부의 아들로서는 그렇게 이상한 점은 아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집으로 위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물론 네가 그런 사람의 아들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건 그냥... 예시를 든거지.

이러한 어려움에도 너는 몇 가지의 관심사를 마련해 추가적인 평범함 포인트를 쌓을 수 있었다. 각종 비디오 게임과 먹을 것에 대한 열망. 너의 황량한 방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긴 이 두가지는 살아가는 데 필수인 일이기도 하므로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너는 치명적으로 무자비한 요리 기술도 조금 배워놨고 또 존나 잘한다. 네가 마피아 대부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셰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넌 그냥 셰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할까?

넌 스버브 설명서를 이미 1달 동안 수십번은 더 읽었다. 이 시점에서 더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네가 알고 있는 한 목숨이 위험한 친구는 없다. 조금 뒤라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1달이라는 시간 동안 설명서를 안 읽은 녀석이 있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아니. 싫다. 절대 그 주제로 이야기 꺼내지 않을거다.

이건 너의 아빠였던 것의 흔적이다. 10년 전부터 선반 위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네가 아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억은 크리스마스 날 의자에서 멋지게 돈을 세던 그가 천장을 뚫고 떨어진 운석에 맞고 잿더미가 되던 모습이었다. 그건 너의 가장 첫 기억이기도 하다.

이걸 보고 있으면 세상 만사가 기이하게 느껴지곤 한다.

아빠에게 공양하는 의미의 물건들이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너로 말할 것 같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오래 놔둘수록 점점 더 맛이 없어지고 있고, 적절한 치즈가 없이는 즐기기 힘들다.

뭐.

이건 알코올이다. 문제의 소지가 있다.

너는 불법적인 욕망에 저항하고 컴퓨터를 돌아본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넌 우리가 이미 봤던 대화들을 읽는다. 대충 넌 이렇게 말하고 끝냈다.

ㅇ

메모의 내용은 너도 알고 있던 내용들이다. 별 쓸모 없는 내용이니 게임을 설치해두고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이미 수십번은 더 읽었다고 하긴 했지만, 정말 곧이라고 생각하니 역시 조금은 긴장된다.

넌 게임 설치를 해둔 뒤 마지막으로 에마가 만든 설명서를 한 번 더 읽기로 했다.

솔직히 읽기 힘들다. 그림도 알아보기 힘들다. 내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애초에 이미지 파일로 보낼거면 잘못 쓴 글씨에 취소선을 긋지 말고 그냥 편집해서 삭제하면 안 되었나? 에마의 유머는 이해하기 힘들다.

너는 이미지를 넘기면서 중요한 부분을 체크한다.

클라이언트의 방에 장비를 놓을 땐 드래그로 방을 넓히면 좋다던가. 기왕 할 거라면 한 방에 모든 장비를 몰아서 설치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