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미리 겁주는 거임

그니까 내 말은, 이거 감수할 자신 없으면 재수하지마
그냥 성적 맞춰서 대학 써.

나도 아직 대학 안다녀봐서 모르겠는데

친구들 중 그냥 망해도 대학 갔었던 애들 몇몇 있는데

반수한다 그래놓고 막상 가니 다녀볼만하고 너무 행복해서

반수 아무도 안하더라.

오히려 최상위권 애들만 욕심때메 더하고..

아무튼.

나는 23수능 좆망하고

11-12월 우울하게 보내다가

1월에 잇올 들어갔어.

솔직히 메이저 재종 갈 점수도 안되고 집에 돈도 없고 해서

남은 선택지가 이거더라.


처음에 잇올 들어가기 전에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감정과 함께

현역때보다 압도적으로 공부 시간도 확보되니까

나름 기대도 있었는데..

첫날 딱 가고 진지하게 집 돌아와서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

2달만에 피는 책에서 느껴지는 낯섬.

그리고 생판 남들 사이에서

잠깐 졸아도 순찰 돌며 깨우는 그런 숨막히는 공간이

너무 힘들더라.

인스타에선 술 마시고 행복하게 노는 친구들이 있고

나는 이런 지옥 같은 나날을 300일 버텨도

실패할 수 있는 도전에 몸을 맡긴 셈이니까.

사실 나는 이것때메 초반에 sns를 지웠는데

지우는게 낫기야 하지만

크게 의미는 없음.

왜냐하면 어차피 대학가는 친구들이 맘편히 놀고 있는건 그냥 사실에 수렴하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이상,

또 봄부터는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나오면

과잠 입고 돌아다니는 신입생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때마다 사람이 미침.



나는 재수전에는

밤에 집 온 뒤에 헬스도 하고 좀 쉬고 ㅎㅎ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아님. ㅋㅋㅋ

집 10시 반정도에 오면

공부를 제대로 했다는 가정하에

그냥 멍함... 극도로 피곤해서 자야함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안 됨.

그니까 쉽게 말해서

300일 동안

'내 시간' 이 없다싶이함.

가끔 좀 집 일찍 가서 쉬거나

아예 휴원을 해도 (나는 300일 동안 8일 정도 했더라)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가 않음.

몸은 편한데

공부를 안하고 있으니 죄책감들고

뭐 좀 하고픈거 끄적여봐도

일반인 신분일때보다 훨씬 재미없고 그냥 우울함.

내가 디시를 원래 전혀 안했는데

재수때 하게 됨

사실 수험생 커뮤만 보긴 하는데

수험생 커뮤를 그처럼 간절히 찾은건

나와 동병상련을 겪는자들의 공감과 연민이

그나마 최선의 수단이어서 그런거 같다.

재수생활을 비유해보자면

개미지옥에 빠진 벌레가 된 기분임.

이렇게 하면 행복해지겠지?

이렇게 하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수능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막막하고 불안한 감정이 없어지지 않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너를 대신해서 힘들어해줄 수 없고

구해줄 수도 없음 그 개미지옥 속에서.

요즘 n수 정말 많이 하잖아?

정시 준비하다가 잘 안된 애들도 있을거고

수시의 경우도 최저떨도 있을거고 워낙 올해 수능이 어려웠으니

이렇게 n수생 비율이 높다보니까

재수도 안해본 애들 입장에서는

남들이 다들 많이 하니까

뭔가 덜 두렵고 해볼만 할 거 같고 그런 생각이 들게됨

나도 그랬었고

인간이라면 심리적으로 그런게 당연하지.

근데 막상 까보면

최선을 다한 애들 기준으론

각각 각자의 지옥속에서 살고 있는거야..

다 끝나고

300일 진짜 빨리 갔다들 하지만

나는 존나 길던데 진짜

진짜진짜 시간이 안가.

맨날 달력이나 보고 있고

그리고 가면서 점점 초췌하고 추해지는 너의 겉모습을 볼 때마다

많이 속상함.

나는 집-잇올 통학하는 도중말고는

동네를 거의 안 돌아다녔는데

그 이유는 혹시라도 친구나 지인 만날까봐.

외관과 처지 둘 다 너무 부끄러웠음 내가 그들에게 죄를 지은 도 아닌데

또래 대학생들은 통상 이뻐지고 훈훈해지거든

사람이 굉장히 위축된다고 해야하나

또 점심 저녁도 매일 혼자 먹고

엄청 외로움 정신적으로.

무엇보다도, 결과

이 지랄을 겪고도 실패할 수 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잇갤 뿐만 아니라

올해 수능 직후의 수험생 커뮤들 찾아봐.

그냥 이건 직접 찾아서 눈으로 봐. 비참함이 느껴질거야.



마지막으로 내 얘기를 하자면... 뭐 망하진 않았어

좀 아쉽지만 수긍하고 갈만한 점수를 받았어 궁금하면 물어봐





내 글을 보고 다시 한번 심사숙고라도 해보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해
만약 네가 베이스가 있다는 전제하에
한다 해도 무조건 반수 추천해 나는
무조건


민약, 어떤 이유로 쌩재수로 마음을 굳힌다면

정말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