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할로윈이 생일인 선지자

ㅇㅇ · 2020.06.13 14:35:40

할로윈 즈음이 되니 생존자들끼리 장원을 할로윈 분위기로 꾸미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굉장히 들떠보이는 선지자. 다같이 장식같은 거 달고 준비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정원사가 열심히 잭오랜턴 같은 거 만들고 있으니 선지자가 도와주겠다고 오는 거지.

"어라, 일라이씨도 할로윈같은 거 좋아하시는 거에요? 안 그러게 생기셨는데ㅎㅎ"

선지자는 뭔가 축제같은 거 안 챙길 것 같은데 엄청 즐거워하며 도와주고 있으니 정원사가 물어보는거야. 그래서 선지자는 할로윈이 생일이라 그런다면서 자기도 할로윈 좋아한다고 웃는거야.

"드루이드가 삼하인이 생일이라니, 멋지네."

존재감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옆 잭오랜턴 위에 앉아있던 모험가가 말했어.

"삼하인을 아세요?"

"삼하인?"

갑자기 삼하인이란 말을 듣고 신기해하는 선지자와 그게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정원사에게 모험가는 이야기를 시작했어.

나는 지금껏 이런 저런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나라에서 할로윈의 유래를 듣게 되었고, 그것이 켈트교의 삼하인이었다..삼하인은 ~한 이유로 열리는 축제고 그래서 ~한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내 말이 맞지?"

"어..네. 알고 계신 분은 처음 보네요?"

"와! 일라이씨 멋있어요! 그리고 커트씨도 아는 거 진짜 많으시네요!"

오랜만에 다른 생존자들이 자기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반응도 해주니 모험가는 뿌듯해져서는 다른 생존자들에게도 얘기해주고 오겠다 했지. 선지자는 자기 생일 때문에 모두의 축제가 자기를 위한 걸로 될 수는 없다며 자신의 생일 얘기는 빼달라고 했지. 모험가는 알겠다며 손을 흔들고 떠났어.

정원사는 아까보다 더욱 반짝거리는 눈으로 선지자를 바라보며 이번 할로윈은 특별하게 삼하인처럼 지내보자며 말했어. 선지자는 살짝 쑥스러워 하며 자신도 삼하인이 있던 시대에 살았던 건 아니라 정확히는 잘 모른다고 했지.

"그래도 한번쯤은 해봐도 괜찮지 않겠어요? 다른 분들도 분명 재밌어 할거에요!"

그렇게 어쩌다보니 삼하인 축제를 섞어서 하게 되었지. 어차피 할로윈 자체가 삼하인이 별로 변형되지 않은 채 내려온거라 따로 뭘 더 준비하고 할만한 건 없었어. 물론 샤먼이나 주술사같은 타종교 애들은 살짝 반대의견을 내긴 했지만 어차피 진행될 예정이었던 할로윈 축제였으니 그냥 조용히 일을 도와주었어.

"삼하인의 마무리는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거니까.. 허수아비가 필요한데..."

"화원에 허수아비 하나 있던데 그거 쓰면 안됩니까."

삼하인 준비를 돕던 모험가에게 변호사가 말했어. 그 말을 듣고 정원사는 급하게 달려와서 말렸지. 대신 하나를 더 만들어주겠다며 제발 화원의 허수아비씨는 건들지 말아달라며 사정하길래 모험가는 당황해서는 알겠다고 했어. 변호사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어디론가 가버렸지.

그동안 선지자는 혼자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어. 삼하인 축제의 진행은 드루이드 사제가 맡았고, 자신은 그걸 해보기는 커녕,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까짓꺼 해보자며 스스로를 달래봤지만 역시나 진정이 되지는 않았지. 그런 선지자에게 부엉이는 얼굴을 부비며 달래주려고 노력하는 듯 했어.

그렇게 할로윈이 되었어. 선지자는 새로 받은 할로윈 의상을 멋지게 입고는 다른 생존자들을 확인하고 다녔어. 생존자들은 각자 무섭게, 멋있게 분장을 하고는 서로 간식을 달라며 장난치고 있었지. 다들 평소 할로윈처럼 호박파이도 먹고..물론 삼하인에 먹는 몇몇 요리들도 맛있게 먹었어. 게임중에 감시자들도 평소와 다르게 생존자들에게 살살 대해줬고, 자신도 멋진 스킨을 입고 와서는 자랑한다던가, 간식같은 걸 나눠주는 감시자도 있었지.

웃고 떠들며 놀다보니 어느새 깊은 밤이 찾아왔어. 생존자들은 다같이 장원 건물 밖에 모였지. 아까보다도 훨씬 멋을 부린 듯한 선지자가 횃불을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뒤를 다른 생존자들이 따라가며 행진이 시작되었지. 중간중간에 몇몇 생존자들도 횃불을 들고 다른 생존자들의 발밑을 밝히고, 쌀쌀한 날씨 탓에 옆의 친한 생존자를 꼭 껴안고 행진을 따라가는 생존자들도 있었어. 긴 행진을 부엉이는 하늘에서 바라보며 혹시 낙오되는 생존자는 없는지 지켜보았지.

행진은 큰 모닥불 앞에서 종료되었어. 정원사와 선지자는 함께 한쪽에 준비해둔 허수아비를 꺼내와서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불속에 던졌어. 선지자는 모두의 손에 도토리 같은 작은 열매를 쥐여주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불 속에 던지면 된다고 했지. 생존자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는 다들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어. 공군과 조향사처럼 서로의 안전을 빌었다며 호호거리는 생존자들도 있었고, 헬레나는 뭐 빌었어? 라며 알려달라고 조르는 기계공처럼 서로 뭘 빌었냐 물어보는 생존자들도 있었지. 선지자는 그 모습들을 보며 이번 할로윈 축제를 삼하인 축제를 섞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어.

"여러분, 오늘 축제를 진행해주신 일라이씨께 감사인사 드려야죠?"

정원사가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어. 선지자는 웃으며 쑥스럽게 그런 거 왜 하냐고 했지.

"생일 축하드립니다!"

"생일 축하드려요!"

여기저기서 선지자의 생일을 축하했어. 선지자는 무척이나 놀랐지. 하지만 이내 웃으며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어. 부엉이도 발에 쥐고 있던 꽃을 선지자의 손에 던져주며 옆에서 피유피유 울었어.

그렇게 달아오른 분위기처럼 모닥불은 조용히, 크고 화려하게 타들어갔어.

다음날 새벽, 정원사와 함께 선지자는 모닥불이 꺼진 자리로 갔어. 약간의 연기는 나지만 거의 까맣게, 잿빛으로 변해있었지. 선지자는 재를 한움큼 쥐고는 점을 치기 시작했어. 재로는 처음 점을 쳐보는 거라서 좀 많이 긴장했지만 부엉이가 옆에서 조금씩 도와줬어. 순서를 잊을 때마다 다음 순서를 가르키며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했지. 정원사는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점 치는 것을 구경했어.

이윽고 점괘가 나오자, 정원사는 옆에서 선지자를 재촉하며 의미를 물어봤지.

"아마.. 모두들 원하는 거 이루시고 장원 밖에서 행복하게 사실거에요..."

"역시! 빨리 다른 분들께 알리고 올게요! 에밀리씨도 좋아하시겠지?"

웃으며 뛰어가는 정원사의 뒤로 손 흔들던 선지자는 시야에서 정원사가 사라지자 굳은 표정으로 손을 내렸어.

그도 그럴 것이, 점괘의 내용은 '모두 이곳에서 죽는다' 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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