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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신의 구조에 관한 잡지식 (2) 정신의 구조 1

우유속에딸기과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14 03: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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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와 기능론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앞내용인 리비도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번에 담아내는 내용은 융이 그려낸 정신의 구조이다.

이것은 아직 기능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아니지만 MBTI 와 8기능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에게 '기능 사이의 역동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예를 들어 8기능을 접한 사람들은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다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접할 수 있다.


'왜 Ti 가 1차일 땐 이렇고 4차일 땐 이런 것인가?'

'저 8기능자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유형은 Ti 가 3차이기 때문에 Ti 가 1차인 유형과 이러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원리가 왜 Ti 가 4차일 땐 적용되지 않는가?'

'아까까진 Ti 가 1차이니 4차이니 하는 식으로 설명해놓고선 이번엔 설명에 모순이 드러나니 1차기능의 특징이니 4차기능의 특징이니 7차기능의 특징이니 하며 Ti가 아닌 기능위계의 특징을 끌고와서 얼버무리는데 그 근거는 또 무엇인가? 이번에도 또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서 얼버무릴 것인가?'


8기능에선 이러한 모순들이 참 많다.

8기능의 모순은 당연히 기능에 관한 기본적인 정의들을 다지지 않았으며 또 기능을 해석할 때 융의 이론을 어중간하게 참고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이번에 설명한 정신의 구조는 의식성(또는 무의식성)에 따른 정신의 특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기능에도 적용이 된다.

따라서 글을 열심히 읽으면 8기능의 모순을 파헤치며 인간의 정신기능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지식에 한계가 있고 설명에 불완전하기 때문에 내 글을 열심히 읽는 수고를 할 사람들에게 미리 사과를 한다.






2. 정신의 구조의 두 가지 표현



①의식성의 정도에 따른 정신의 구조



자아(에고)

🔼

개인무의식(비교적 의식적인 무의식, 삶 또는 세상을 경험한 무의식)

🔼

집단무의식(의식의 빛이 닿지 않는 무의식의 깊은 영역)

🔼

자기(self, 전체정신, 정신의 중심)



②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따른 정신의 구조

페르소나 <-> 자아 < 그림자 < 아니마/아니무스 <-> 자기

<-> 상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

< 일방적인 위계, 그러나 의식의 노력에 따라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



1)) 의식의 발달, 자아의 형성 과정


우리 마음은 본래 하나의 완벽하고 전체적인 정신이다.

이러한 전체정신 속에서는 '이러한 나' 또는 '저러한 나' 같은 것이 없다.

나는 그저 나이며 원래부터 나였고 앞으로도 나일 것이며 나는 평생 나이다, 정확히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중요하지 않다, 잡초에게 있어서 잡초가 어떠한 잡초인지가 중요한 것인가?

이것이 정신의 근원적인 형태이다, 마치 하등동물의 마음구조와도 같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정신의 형태이다.

그러나 발칙하게도 인간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현명한 자아(의식성)'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정신에 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분열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분화 또는 분리가 맞는 표현이다, 분열은 병적인 표현이니깐.

인간의 마음에서는 '나' 가 뚜렷하며 '나와 너' 가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인간의 의식에 명료한 생각의 힘을 가져다주게 되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정신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마치 신들에게 버림받은 인간처럼 혹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간처럼, 문명인들은 더 이상 '참다운 나' 또는 '유일한 나'로 살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이러한 나', '저러한 나', '이런 상황에서의 나' 와 같은 수없이 많은 나를 갖추게 되어 살아야 하는 삶에 처하게 된 셈이다.

많은 종교신화의 서론은 '아주 오래전 그 어떠한 근심도 없이 살 수 있었던 인간들이 어떠어떠한 죄를 저질러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와 같은 구절을 포함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의 발달' 을 아주 잘 설명해준다, 신을 죽게한 것이 다름이 아닌 바로 인간의 탁월하고도 교만한 지성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인간은 '죽음의 공포' 와 '영웅적 욕망'이라는 숙명에서 달아날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기 위해 저세상의 신들을 믿고 천상의 존재들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 이름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영웅이 되어야만 자기 자신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앞서 자연스러운 정신의 형태, 즉 무의식 그 자체를 동물의 본성에 비유한 것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융에게 있어서나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나 무의식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내용물들을 담고 있는 마음의 영역이다.

다만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그 영역은 문명인들이 가진 원시성의 잔재였고, 융에게 있어서는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토대이자 개인의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보배였다, 단지 그것이 보배인지 독인지는 의식이 무의식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무의식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동물성, 다시 말해 맹목적인 충동(리비도의 형태)이다.

열등기능이라 함은 그 기능이 모든 기능 중에서 가장 무의식의 영역에 있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INTJ 유형의 맹목적인 감정판단이 그러하고, INTP 유형의 맹목적인 감각추구와 무의식적 감각성이 그러하다.

각각의 경우 감정과 감각이 의식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동물적인 정신으로는 삶과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그래서 각각의 정신은 제마다의 방법으로 의식적인 적응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의식의 분화이다.


나는 기능론이나 개인의 정신적 발달(분화)을 논할 때 종종 머릿속에 어떠한 씨앗을 떠올린다.

이 씨앗은 그 사람의 전체정신이며 동시에 그가 태어날 때 지녔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정신이다.

막 태어난 그가 자라고 어느새 걸음마를 떼며 그의 의식도 동시에 분화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씨앗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줄기가 자라는 것과도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대지를 뚫고 어느정도 자라났을 때 비로소 그것의 품종이 세상에 형태를 드러낸다.

의식의 발달은 이와 같다.

앞선 리비도의 설명 글에서 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사상을 살며시 언급했다,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지를 품고 있다는 것을.

해바라기 씨앗은 태양을 향해 노란 꽃을 피우려는 의지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민들레 씨앗은 민드레를 꽃피워 그 씨앗을 공중에 흩뿌리려는 의지를 이미 씨앗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라고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 같다.

저마다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 성격, 의식의 태도를 보면 그의 모든 후천적 정신적 양식이 이미 그의 정신적 씨앗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은 유형론에 대한 내 견해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관념에 관한 숙고가 목적인 내향적사고형의 정신, 외부세계의 가능성을 엿보고 그것의 실현을 촉구하는 외향직관형의 정신.

저마다의 정신은 어떠한 정신적 실체가 지닌 의도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융은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신의 전체중심인 자기는 마치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정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것이 꿈에서 드러난다."

나는 해당 텍스트를 읽었을 때 묘한 공감을 느꼈는데 아마 정신에 대해 어떠한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2)) 자아와 페르소나

자아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써 갖춰야할 정신양식은 페르소나이다.

비록 자아가 무의식에 비하면 문명적이라곤 하여도 자아는 지나치게 '개인적'이다.

사회는 언제나 집단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의 요구에 맞춰 우리는 저마다의 새로운 성격양식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는 집단에 대한 개인의 원만한 적응을 돕는다.

만약 페르소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그는 사회적인 사람이 될 수 없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 융학파 분석가인 이부영 박사는 분석심리학의 핵심목표인 자기실현을 추구하기 이전에 페르소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중년이전의 청소년-청년기에 해당되는 개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페르소나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실현을 통한 정신 내면의 심원한 이해와 성숙함은 페르소나를 갖춘 다음이다.

페르소나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는데 자기실현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자기실현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찾지 못하는 것을 공상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볼법한 행위가 아닐까?

페르소나의 형성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페르소나의 형성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른다.

사회경험과 삶에 적응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정신적 고통과 삶의 경험이 그에게 올바른 페르소나를 갖추어주는 지혜가 되어준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겉으로나마 사회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스스로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미심쩍은 사람인지는 우리가 각자의 삶을 통해서 경험해봤을 것인데 말이다.


페르소나는 다른 말로는 자아의 '외적인격' 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비단 페르소나가 겉으로 드러나는 인격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를 통하여 형성된 인격' 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페르소나는 필연적으로 자아와 관계를 맺게 되어 있다.

자아는 페르소나의 형성 주체이다.

넓은 관점에서는 자아와 페르소나가 전부 자기(무의식)의 설계하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페르소나는 무의식보다는 자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격발달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기실현인 이상 페르소나는 우리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다.

이 말은 비록 페르소나가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초기에서는 외적인 삶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삶의 적응이 우리 정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 자신인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경우 생기는 것이 '중년의 위기' 또는 갱년기이다.

한사람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회사나 어떠한 곳의 어떠한 직책으로서의 나 자신을 개인의 삶의 목표로 삼고 있었던 사람이 그러한 역할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겪게 되는 방향감의 상실을 말한다.


따라서 페르소나의 형성은 특히나 중년기 이전에는 중요한 것이며, 무의식을 희생해서라도 이것을 다듬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이것이 우리의 삶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중년의 위기'는 중년이 아닌 어린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본인이 속한 무리에서 겪는 경우은 물론, SNS 같은 곳에서의 경험에서 벗어났을 때의 찾아오는 삶의 무료함 같은 것이 어떻게 보면 지나친 페르소나와의 동일시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페르소나는 어찌보면 살아있는 동안 평생 필요한 것이다.

청년기가 지나면 페르소나는 더욱 중요하면 중요했지 덜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형성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청년기 시절이 페르소나 형성 임무의 가장 커다란 시기인 셈이다.

이는 다시 말해 20-40대 시절에는 외부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말과도 같다.



3)) 그림자

그림자는 자기실현의 첫번째 과제에서 마주하게 되는 개인의 무의식이다.

자아를 하나의 밝은 빛으로 생각해보자.

실제로 우리의 광활하고 방향이 없는 무의식에서 의식은 하나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하고 그 빛의 중심이 바로 자아이다.

"태초에 빛이 있으랴" 라는 말처럼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미약하나마 의식이 자라고 그 중심에서 자아가 형성된다.

그러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자아가 미처 못 보는 의식의 어두운 테두리가 바로 그림자의 영역이다.

빛과 그림자는 하나의 숙명적인 관계이다.

자아가 있는 개인이라면 누구나 그림자를 가진다.

'나에게는 그림자(마음의 어두운 부분)이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 만큼이나 짙은 그림자를 가진 사람이 또 없다.

융이 제시한 그림자의 개념은 인간의 정신이 필연적으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동시에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의식된 생명체의 숙명이다.

만약 인간이 의식이 없는 동물과도 같은 존재였다면 당연히 그림자도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의식이 '자아의 그림자와의 분열 및 대립'을 피워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개는 자신이 신성한 개라든가, 사악한 개라든가, 부족한 개라든가, 위대한 개라든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는 그저 개이다.

개는 자신이 개라는 자각마저 없다, 그 개에게 주어진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신에 순응하고 놓여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의 아름다움을 설명해주지 않는가? 이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운 정신들에게 아주 자연스럽다.

우리가 자연스러움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 우리가 얼마나 자연과 동떨어진 곳에 놓여있는지를 설명해준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타인들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감히 인간만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의식의 의지'가 바로 개별성의 확립과 정신의 독립성을 촉발시키는 동인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림자를 가지는 것이 우리에겐 자연스럽다.

그것은 인간정신의 특유의 구조이고 우리가 의식된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림자가 우리의 정신에 끼치는 주된 부정적 현상은 바로 그림자의 투사이다, 심리학에서 종종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그 투사 현상 말이다.

내가 그저 사람이고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타인에 대해 어떠한 존경심도 반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특정한 누군가에게, 혹은 특정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강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 마음은 종종 무의식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투사는 종종 그림자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지성이 총명하고 현명하다고 알려진 것과 반대로, 그림자는 우리의 좁은 자아의 힘을 벗어난 영역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무의식의 충동성('무' '의식성')을 가지고 있다.

그림자는 이처럼 자아의 밝은 영역의 바로 뒤에 있는 그늘진 영역이다.


그렇다면 그림자의 의식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는 어렸을적부터 수없이 '나는 오늘부터 착한 마음만을 가질거야', '나는 오늘부터 모두에게 친절할 거야' 라고 마음 먹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반하여 부정적인 마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나는 것을 경험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더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림자는 다시 말해 무의식의 영역이다, 상기에 설명했듯이 자아는 전체정신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무의식의 영역은 의식의 크기를 상회하며 의식이 무의식을 통제한다는 것은 낚시꾼이 낚시대로 땅을 들어올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림자의 통합(의식으로의)은 반성과 성찰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림자를 억압하면 더 커다란 그림자가 새로 생겨날 뿐이다, 말하자면 투사를 거두는 것이다.

그림자의 투사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아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림자가 생기는 원인은 자아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기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림자는 자아에 밀접한 위치에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무의식의 심원한 것들과는 달리 고개를 조금 숙이는 것으로도 그것을 되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행위가 자아에 입히는 사소한 상처를 자아가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평생 그림자를 못 보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겉으로는 제 잘난맛에 살며 자신의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자아의 아주 좁은 영역에 갇혀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왜냐면 자아의 좁은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무의식의 내용물이 마치 그를 뒤쫒는 영혼들처럼 그에게 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 일방적인 고집은 개인의 고립화를 심화시킬뿐 정신의 발달에는 아무것도 이바지하지 못한다.


글을 쓰는 나도 때때로 내 그림자의 형상에 놀라곤 한다.

그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그것이 나의 진실된 내면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어떻게보면 그림자란 마치 우리를 뒤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히는 못된 친구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림자와 자아의 관계는 일차적으로 자아의 태도에 달려 있다.

그림자가 악령이 되느냐 삶의 동반자가 되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성찰이 이끄는 셈이다.


그림자의 대면 또한 페르소나와 마찬가지로 평생에 걸친 과제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삶의 과제가 되는 것은 페르소나 형성의 시기 이후인 중년 때부터이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페르소나의 대극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페르소나를 지닌다면 그만큼 그림자도 커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그림자를 대면하든 혹은 그림자의 개념을 부정하든간에, 당신이 인간의 자아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 받아들인다면 그것만으로 당신은 스스로의 여러가지 일면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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