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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우크라 장의사 이고르의 이야기 (인터뷰)

Alama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5.13 01:10:36
조회 5991 추천 40 댓글 18
														

'기저귀를 찬 노파를 발굴했다.' 러시아 점령 기간 동안 키이우 밖에서 살해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발굴하고 있는 장의사, 이고르 세레다 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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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에서 일하고 있는 이고르 씨.


전쟁 발발 이후 키이우 지역에서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군이 일시적으로 점령한 지역에서 사망했다. 이고르 세레다(24)는 네미시예브라는 마을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2월 24일 이후, 그는 러시아의 포격 아래 근처의 마을들에서 온 희생자들을 매장해야 했다. 마침내 키이우 교외가 해방되자, 그는 부차에서 대규모 무덤과 임시 매장지를 발굴하는 일을 시작했다. 본지 특파원 릴리야 야파로바는 이 장의사에게 전시 장례식과 점령 기간 동안 러시아 군인에 대해 알게 된 것에 대해 인터뷰했다.

어떻게 네미샤이브의 수석 장의사가 됐나.

아버지는 20년 동안 마을에서 장례 서비스를 제공했다. 내가 처음으로 영안실에 들어가게 된 것은 14살 때였다.

허리 질환 때문에 페체르스크 군병원을 방문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여기 영안실에 아는 사람이 있단다. 같이 가겠니?" 그 당시의 나는 정말 어렸고, 내가 '남자'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내게 처음이었던 그 낮선 냄새를 기억한다. 부검대에 오른 -- 장기가 제거되고, 두개골이 열린 -- 사람을 보았을 때 미지의 존재와 같은 것을 느꼈다. 살아있는 사람들만 보았던 내 앞에 장기가 제거되어 검사되고, 심장이 적출된 남자가 있었다. 그것이 내가 죽음을 의식하게 된 사건이다.

아버지는 내가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16살 때부터 사고 현장과 그들의 집에서 고인을 모으기 위해 아버지가 사망자들을 수습하고, 부검을 요청하고, 염하고, 옷을 입히기 위해 사고 현장과 그들의 집에 방문하는 일정에 동행했다. 내가 18살에 운전면허를 땄을 때, 나는 그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제가 2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혼자서 해 왔다. 지금 나는 24살이다.

가족 사업을 계속하고 싶었던 건가.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아버지는 제가 장례식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너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야."라고 아버지는 종종 말씀하셨는데, 장의사라는 일은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고작 마흔 다섯이었다.

그 일은 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 일어났다. 나는 대학에서 SFS(우크라이나 국고청-우리나라의 관세청과 국세청에 해당하는 기관임)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며 기숙사에서 살았다. 우리는 장례 서비스만 한 것이 아니라 묘비도 만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전화를 걸어 묻기 시작했다. "우리 묘비는 어디 있지?" 일주일 동안 병가를 내고 만들어야 하는 석물들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를 병원에 태워다 드려야 했고, 아버지를 위한 약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났다. 아버지는 계속 혼수상태였다. 그 상태로 돌아가셨다. 대학에서는, 내게 네가 완전히 떠나든지 아니면 기숙사로 돌아가든지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지역 협의회로부터 요청이 들어왔다: "당신은 기술을 배웠군요! 계속 해보는 게 어때요? 우리는 여기저기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곳에는 장의사가 매우 적다. 아무도 이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고 빈소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장의사라는 것은 매우 특수한 유형의 직업이다.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됐을 때 나는 네미샤이브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머무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곧바로 이해했다. 어머니도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3월 9일까지 이곳에 있었다.

러시아군은 3월 초순에 네미샤이브에 진입했다. 점령 당시의  순간을 말해줄 수 있나.


전쟁 초기에는 여느 때처럼 장례식을 치렀다. 신부님과 장례 행렬이 있었다. 우리는 끝까지 러시아군이 네미샤이브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처음에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이해했다.

만약 러시아인들이 운전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들을 향해 차를 몰고 나간다면, 그들은 총을 쏠 것이다. 공중으로던, 아니면 직접 당신의 차로던. 그들은 부차에서처럼 마을 점령 기간 동안 20명의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살해하기도 했다.

내가 운영하는 장례식장 근처 미쿨리치에서, 어떤 부랴트인 군인이 문을 두드리며 그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단순히 주인의 이마를 정면에서 쏘았다. 멈춰서고, 죽이고, 걷고. 멈추고, 죽이고, 걸었다. 다섯 명이 그렇게 죽었다.

초기에 통신이 제대로 작동할 때, 사람들은 나를 부를 수 있었다: "여기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그를 묻어주세요." 나는 러시아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 사망자를 묻으러 나갔다. 네미샤이브의 모든 거리가 500미터, 때로는 1킬로미터 이상으로 매우 길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안 보이면 도로 끝까지 차를 몰아서 간다. 옆 거리를 다시 보고 반복한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미쿨리치에서는 상황이 좀 더 어려웠는데, 거리에 러시아군이 쫙 깔려 있었다.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러 올 수도 없었고,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자기 집 마당에 묻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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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0일, 열 살 난 보바가 부차 점령 기간 동안 러시아군에게 살해된 어머니 마리나의 장례식을 앞두고 있다.


점령 기간 동안 사람들이 당신의 일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일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사정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항상 장의사를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키이우에서는 장례식이 25,000흐리우냐[한화 약 110만원]인 반면, 바로 여기에서는 8,000흐리우냐[한화 약 35만원]이다. 이 금액에는 관과 십자가, 묏자리 파는 비용, 영구차 비용, 운구 비용이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큰 금액이라, 우리는 끊임없이 불평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전쟁 기간 동안 우리의 노력에 감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건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영안실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영안실"이라는 단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네미샤이브에는 시체안치소가 없었다. 병원, 응급실 안에는 세탁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건물에서 가장 추운 방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자물쇠를 부수고 시신을 그곳에 보관했다.

때때로 지역 주민들이 시체 안치소로 시신을 데려오곤 한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포라' 근처에서 총격을 받고, 이 지역에 러시아군이r 눈에 띄지 않자 자원봉사자들이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시신을 주워 데려온 경우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를 묻어 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관을 마련해 망자를 묻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장례식을 미루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우리가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일을 질질 끌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라면,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이기도 하다.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묻은 사람을 기억하나.

그렇다. 그는 내 학창시절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날 우리는 네 명을 한꺼번에 묻었다. 불과 몇 시간 간격으로 포탄이 내 친한 지인인 자원봉사자 세르히 라스케비치를 죽였고, 그 후 내 친구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한 명의 남자가 도로 바리케이드에 교통사고가 나 그 충격으로 죽었고 노인 한 명이 자연사했다.

친구는 목을 칼로 찔려 죽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전시 음주 때문이었는데, 그는 병약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2월 24일 이후사람들은 그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 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고 술을 마셨다. 키이우 지역을 지나는 바르샤바 고속도로에 러시아 검문소가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갔고,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군은 그가 단순히 칼에 찔렸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매장 중에 생긴 상처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다들 계속 칼에 찔렸다고만 했는데 상처가 칼로 난 상처가 아니라 뭔가의 파편에 난 상처였기 때문이다. - 상처가 넓고, 가장자리를 따라 불에 탄 살점이 있었다 -

그의 동생과 친구들은 그가 칼에 맞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칼로 그런 상처가 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전문적인 의학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장의사를 하면서 본 것이 많다. 전시가 아닐 때에도 나는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을 다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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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발굴하는 자원봉사자. 2022년 4월 12일.


지인들을 매장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

그렇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세르히의 죽음이 정말 슬프다. 그는 자원봉사자였고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왔었다. 그는 나보다 조금 어린 딸과 조금 큰 아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벙커가 있었고 전쟁 중에는 7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피난을 위해 모였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모든 식량, 약품, 그리고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그곳에 갔다.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필요한 약을 얻기 위해 약국에 침입해야 했다. 라스케비치가 살해된 그날, 우리는 그들 중 일부를 마을 주민센터(거기에 수술실이 설치되어 있었다)로 데려간 다음 나머지를 벙커로 데려갔다. 우리는 두 대의 차를 이용했다. 우리 차와 세리히의 차. 우리 차가 먼저 도착했고, 우리는 모든 짐을 내리고 떠났다. 15분 후, 전화가 걸려와 다른 차를 운전하던 세르히가 죽었다고 말했다. 15분 전에 우리가 방금 떠났던 바로 그 장소였다. 포탄은 그로부터 10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당장 그를 데리러 가고 싶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말했다: "오지 마세요. 여기 지금 러시아군이 있습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그는 여전히 길에 누워있었다. 그러다 우리 신부님이 자원하셨다. "내가 사제복을 입고 그를 데리러 가는 건 어떻겠나. 그들이 성직자는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잖나."

결국, 그의 친척들은 그를 담요에 말아 차에 태운 후 차를 몰고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세르히의 아내는 그의 무덤을 파는 것을 도왔다.

전시에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전쟁 중에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된다. 우선 내 직원들이 장지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집으로 차를 몰고 가서 고인을 데려다가 관에 안치한다. 그리고 내가 그를 장지로 데려왔을 때쯤이면, 안치할 곳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관을 그 안에 내려놓고, 흙을 덮고, 떠난다. 식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한 시간 안에 그 사람을 매장해야 한다.

포탄이 날아다닐 때 사람을 묻는 것은... 처음에는 무섭다. 포탄이 떨어져 터질 때, 사람들은 그곳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포탄이 어디서 어디로 떨어지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올 지 안 올지 추측할 수 있다. 무덤을 파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린다. 포격 중에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음, 그냥 조용할 때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 낫다.

우린 모든 사람을 관에 묻으려고 노력했다. 이웃 마을인 미쿨리치에 있는 내 가게는 항상 열려 있었다. 만약 내가 거기 있을 수 없다면, 사람들이 직접 와서 관을 가져가곤 했다.

만약 그들이 관을 들 수 있다면, 그들은 십자가도 달았을 것이다. 가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나는 5킬로미터[약 3마일]의 여정을 아끼기 위해 관 몇 개를 차에 준비해 두었다. 십자가가 남아 있지 않았다면 누가 어디에 묻혔는지 기억했을 거고 나중에 돌아와서 십자가를 달았다.

십자가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집단 무덤 위에 두 사람 당 십자가 하나를 놓아야 했다. 평시에는 성, 이름, 성, 생년월일, 사망일 등 네 줄로 적는다. 우리는 한 사람에겐 두 줄을, 다른 사람에겐 두 줄을 더 사용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예를 들어, 부차에서 가져온 시신 같은 경우), 우리는 간단하게 "부차, (성), (이니셜)"이라고 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차에서 온 사람이 오른쪽에 묻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명판에 화살표를 표시했다. 클라브디에보라는 마을에서 온 한 남자는 매우 특이한 후원자가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명판에 적고 화살표로 표시했다. 그는 왼쪽에 있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임시 매장지에 그 표시를 만들었다. 그래야 나중에 누가 파헤쳐졌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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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살해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2022년 4월 13일.


러시아군이 장례식에 간섭하려고 한 적이 있었나.

애초에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덤을 파는 것에 대해 허가를 받으러 간 적이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들이 그냥 다녔다.

그런데 한 번은 두 모녀가 마이로츠키 마을에서 우리를 불렀다. 그들이 물었다. "와서 장례를 치루어 줄 수 있나요." 내가 반문했다. "저기 러시아 군인들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갈 수 있나요."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가서 그들이 나를 통과시켜 줄 수 있도록 근처 검문소에 준비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우리 차 전체에 "V"자를 붙였고 온갖 종류의 하얀 리본들을 붙였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고, 우리가 노인을 관에 안치하는 동안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감독하러 왔다.

그들은 우리를 묘지까지 호위했고, 우리는 앞서 가고 있었고, 장갑차가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가 무덤을 파는 동안 기관총을 든 군인 세 명이 우리를 올려다보게 하지 않고 뒤에 서서 "장지 거기 파려면 계속 파라." 그래서 우리는 구멍이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지 결국에 궁금해하며 구멍을 팠다.

러시아 점령 기간 동안 사망한 사람들은 장의사가 아닌 친인척에 의해 매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의 뜰과 정원에 무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체들을 지금 파내야 하나.

그렇다. 우리는 적절한 처리를 하기 위해 그 시체들을 발굴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곳으로 갈 수 없다면(어떤 마을들은 러시아 군대에 의해 완전히 단절되었다), 사람들은 시신을 직접 묻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시체들을 큰 비닐봉지에 담아서 묻었다.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직접 관을 만들기 위해 망치로 두들겼다. 몇몇 시체들은 비닐에 싸인 채 침대 커버에 묻혔다. 때때로, 캐비닛 널빤지가 시신 위에 놓이기도 했다.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은 나중에 무덤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판자들이 삽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이다.

관을 직접 만든 사람들은 종종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곳의 토양은 축축하고 무겁고, 관의 무게만 약 60kg나 나간다. 그리고 안에는 시신이 있다. 현장에 도착하면 직원 둘만으로는 그것을 들어올리기가 매우 어렵다. 덮개를 부수고 시체를 빼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물론 작은 막대 십자가를 무덤 위에 놓는다. 그들은 꽃을 심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사탕을 남기고,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남겨준다. 그들은 그것을 무덤처럼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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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스토멜 주민이 그의 집 뜰에 만들어 둔 무덤 옆을 지나가고 있다. 2022년 4월 2일.


키이우 지역이 해방된 후, 당신은 부차에서 시체를 모으고, 집단 무덤을 발굴하고, 희생자를 새로 매장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시작한 날을 기억하나.

처음에는 이 사태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통신이 두절된 탓에 우리는 보로디얀카와 부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모든 점령지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리라고 생각했다. 우리 마을에서만 20명까지 죽임을 당했는데, 나는 그것만 해도 매우 끔찍한 살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남자가 병원에 나타났고, 부차 곳곳에 있는 주소들의 목록을 마구 늘어놓았다. "시신들을 모을 겁니다. 장소를 알려드릴테니 적으세요." 나는 앉아서, 내 공책을 열고 불러주는 장소를 적었고, 그리고 나서 말했다. "좋아, 갑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잠깐만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는 주소 20곳을 더 불렀다. 매일, 우리는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올 수가 없었다. 처음 몇 주 동안 우리가 한 일은 고인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주는 것뿐이었다.

각 주소마다 1명에서 7명의 시체가 있었다. 주소가 주어지면 거기서 무엇을 찾을지 알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있는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어떤 아이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체가 널려 있는 부차의 야블론스코이 거리를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나.

내 머릿속을 흐르는 것은 끔찍함뿐이었다. 평시에는 그런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경찰들과 군인들이 차를 몰고 지나가고, 시신들이 거기 그냥 누워있다. 시신이 한 구가 아니었다 - 수백 구가 거기 있었다. 나는 그들을 옮기기 위해 백 번은 오갔다. 한번에 16명의 희생자를 나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신들은 차 안 1~2피트 뒤에서 우리와 함께 여행한다. 시취라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냄새이다. 죽은 동물이나 상한 음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이 시취를 맡아 보았다면, 쉽게 다른 냄새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하다.

평시의 우리는 보통 침대에서 숨을 거두는 노부인과 노인을 데리러 간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거리에서 시체를 모았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마당에서 찢어지고 부러진 시신을 파내야 했다. 시신들은 피투성이였고, 어떤 것들은 이미 부패해 있었다. 집단 무덤에서 시신 하나를 분리하면 팔이나 다리가 몸통과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단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볼 때... 트럭 서너 대 분량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시신들의 느낌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야. 안치소는 그렇게 많은 시신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신들을 묘지로 바로 매장해야 했다. 여기 100구, 저기 150구, 이런 식으로. 이것은 명백히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발굴한 시신들이 총 몇 구였는지 상상을 해 보라. [키이우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총 1,000구 이상의 시신들을 발굴해 수습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다. 각각 2개의 냉장고가 있는 6곳의 안치소, 그리고 각각의 냉장고는 약 100개의 몸체로 채워져 있다.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뜻이 된다.


희생자를 발굴하는 동안 고인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기도 하나.

그렇다. 때때로, 우리는 고인의 정확한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나랑 나이가 같기도 하고, 가끔은 나이가 좀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장애인들도 있었다. 나이든 할머니들의 경우 러시아군은 머리에 총을 쏘았다.

우리는 1993년과 1995년에 태어난 두 남자와 1996년에 태어난 한 여자를 찾아냈다. 모두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들은 BMW X5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집 바로 옆에서 총에 맞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의 시체를 차에서 내려서 안으로 들여와 옷을 입히고 뜰 뒤 숲에 직접 묻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새로 묻기 위해 파냈지만, 시기는 이미 4월 하순이었다.

부차에는 집단 무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기저귀를 찬 노파를 발굴했다. 궁금해졌다. '당신은 정말 터프가이군요. 전쟁에 나가서 할머니를 죽일 정도로요. 기저귀를 찬 이 할머니가 당신에게 무슨 위협을 가했습니까.'

성 앤드류 교회의 집단 무덤은 부차에서 최초로 발견된 집단 무덤들 중 하나다. 현재 이곳에서는 117구의 시체가 발굴되었다.

그 장소는 4월 1일부터 조금씩 파헤쳐졌고, 우리의 일은 조금씩 천천히 진행되었다. 규모를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작업이 시작되고 한참 후에야 우리는 그 무덤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길이가 약 50미터, 지름이 약 2미터인 그 구덩이는 평시에는 55명 이하만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각 관은 80cm 이상 차지하였다.

하지만 관이 없다면, 사람들을 훨씬 더 가깝게, 훨씬 더 간단하게 서로 겹쳐 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집단 무덤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서로 포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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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앤드류 교회의 집단 무덤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2년 4월 11일.


키이우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매장지나 표식이 없는 무덤들은 어떻게 찾을 수 있었나.

자신의 친척을 묻은 사람들은 교외가 해방된 후에 경찰에 신고하곤 했다. 폭탄 기술자들 또한 들어왔다. 기술자들은 지뢰를 찾고 때때로 작은 봉분과 작은 십자가로 구성된 무덤을 발견한다.

몇몇 매장지는 우연하게도 완전히 발견되었다. 경찰은 우리에게 "일부 부차 지역 주민들이 야블론스케 묘지 뒤편 숲의 땅바닥에서 팔이 튀어나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곳에 갔고 아니나 다를까, 얕은 무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땅을 파기 시작했고 한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 시체들을 이후에 수습했는데,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여권을 소지한 사람은 그중 한 명뿐이었다. 나는 그의 재킷을 들어 올리러 갔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열어보니 여권이 들어있었다. 그는 1991년생이었다.

러시아군이 만든 매장지를 찾은 적이 있나.

그런 곳을 본 적도 없고 그들이 시신들을 숨기려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집단 무덤이 계속 나올 것 같다. 지금은 일이 좀 줄었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아무도 숲으로 많이 가지 않는다. 그곳에는 지뢰가 있고, 불발탄이 수 톤이나 있고,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곳에서 매장지를 발견한다. 이제  우리는 어딘가에서 시체를 발견한 사람들로부터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지인이 일주일 전에 숲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은 민간인의 무덤을 발견했다. 총알의 사입구는 뺨에 있었고, 사출구는 뒤통수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우리는 숲에서 또 다른 시체를 파냈다. 하지만 나는 누가 그를 묻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러시아인이었을 수도 있고 현지인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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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의 한 무덤. 2022년 4월 6일.


당신의 마을이 점령당했을 때, 러시아 군인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있나.


우리는 그들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당신은 모든 곳에 플라즈마 TV가 있는 잘랏치[키이우 북서쪽 마을]에 아주 잘 살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복한 다음 이곳에 정착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보로디안카 외곽의 평범한 마을일 뿐이다.

그들의 유니폼은 너덜너덜하며 모두 매우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헬멧은 소련제처럼 보였다. 네미샤이브에 왔을 때, 그들은 "포라" 슈퍼마켓의 2층으로 가서 입을 옷 한 뭉치를 훔쳤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어부들의 옷이었다.

키이우의 교외에서 일어난 일은 전쟁이 아니라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르핀과 호스토멜에서 강력한 저항을 만난 후, 그들은 단순히 복수를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여기 사는 것이 저쪽에 사는 것보다 낫다는 부러움 같은 것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러시아군이 왜 민간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여자들과 아이들과 함께.

한 달 동안 시체를 파헤친 게 당신에게 끼친 영향이 있나.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질문이 항상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왜 그들은 죽어야만 했나. 왜." 그리고 분노도 있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증오도 있다.

그렇다. 죽은 사람들은 지금 바디백에 들어있지만, 그것들 중 상당수에는 결함이 있다. 머리가 여기서 빠져나오거나 피가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 모든 걸 보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이런 공포감이 당신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빈소를 찾고 있지만, 이 산더미 같은 시체들을 보면... 이것은 한 사람에게 정상적인 경험이 될 수 없다.

나는 우연히 옛 동창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사회자로 활동하며 행사를 준비한다. 그녀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난 괜찮아요."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저를 보고 말했다. "네가 웃고 있는 것이 보이지만 네 눈을 보니, 네가 절망해서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구나. 이제 지긋지긋하고 밑바닥에 처박혀 있을 때,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짓는 웃음 말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듯이, 아버지는 나에게 이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이 일은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니다.


https://meduza.io/en/feature/2022/05/12/we-dug-up-an-old-woman-in-a-di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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