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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용책 -7앱에서 작성

사월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30 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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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격통과 심장의 고동이 몸 전체를 때렸다. 헛구역질을 하며 가만히 엎드려 진땀을 뺐다. 그러나 이내 무릎과 팔뚝으로 몸을 지탱할 힘도 없어져 그대로 옆으로 굴러 자빠져 누웠다.


파란 하늘 아래 맑은 추수철의 공기가 머리카락부터 발 끝까지 쓰다듬으며 저 언덕으로 훌훌 날아갔다. 그 바람은 황금골의 밀들의 고개를 마구 흔든 뒤, 장난스럽게 회색 산맥 저 너머를 향해 점점 사라져갔다.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누워 있는 나의 머리춤에 앉아 저들끼리의 언어로 요란하게 재잘거렸다. 하늘에는 잠자리와 나비들이 부드러운 구름 사이로 평화롭게 날갯짓을 허며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사랑한 풍경, 내 고향 황금골의 모습이었다.


긴장이 풀리고 그 침침한 동굴에서 탈출한 것을 체감하니, 이번에는 격통 뒤로 미칠 듯한 웃음이 뿜어져 나왔다. 바닥을 구르면서 정신없이 굴렀다. 레이네스를 깔보는 비웃음이 아닌, 순수한 기쁨에서 터져 나오는 광소였다. 바닥을 구르고 땅을 치며 실수로 흙과 풀이 입에 들어가도, 그것들을 잘근잘근 씹으며 거품이 일까 걱정될 정도로 큰 소리로 웃었다. 곧 너무 웃은 탓인지 헛구역질이 목구멍을 넘어 웃음소리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시나 멈출 수 없었다. 나의 환희에 찬 광소는 새들이 한참을 지저귀다 작고 하얀 변을 남긴 뒤 날아오른 뒤에야 겨우 멈추었다.


이번에는 바닥에 엎드려 (지금 생각하면 꽤 역겹지만) 그 새똥이 뭍은 흙바닥에 행운의 신 마나르, 병자의 여신 메네, 그리고... 아무튼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도를 올렸던 신들과 이 세상 모든 신들의 이름을 칭송하며 찐한 입맞춤을 하였다. 공놀이를 하며 지나가던 꼬마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마른 세수로 얼굴의 흙과 눈물 자국을 비벼 없애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황금골 여관으로 나아갔다.


모두들 석 달 동안 사라진 나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까? 사라진 나를 찾으려 온 마을에 실종 수배령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다들 나를 걱정하면서 회색 산맥을 온통 뒤지고 다녔을지도 몰라.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장시간 마을을 떠나는 건 흔한 일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아무도 내 걱정을 안 한다는 건 좀 슬픈 일일텐데.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나는 조심스레 여관 문을 열고 살금살금 들어갔다. 에드워드를 놀래켜 줄 생각이었다.


여관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테이블을 일렬로 놓은 상태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자리엔 반가운 얼굴, 피브완이 보였다. 그의 회색과 흰색으로 센 머리카락에서 노인의 기운을 풍겼지만, 이상하리만치 얼굴만큼은 노인이 아닌 말끔하고 갸름한 중년의 것을 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려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벗, 우리의 이웃, 그리고 마을의 자랑이었던 한 인물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추모사를 읊는 그의 모습, 그리고 거대한 관과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니 진중한 분위기인 것 같아 손을 거두고 살금살금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도 내가 여관에 들어선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근처의 의자 하나를 집어 조심스레 내 곁으로 가져와 그 자리에 앉았다. 피브완은 비통한 표정과 과장된 몸짓, 그리고 일부러 웅장하게 꾸민 듯한 바리톤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그의 소임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마을 최고의 싸구려 에일 애호가, 그리고 마을 최고의 탐험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이 마을에 있었던가? 하는 의문에, 누군지 모르는 이를 추모하려 숙였던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젖혀 에드워드로 보이는 덩치를 슬쩍 엿보았다. 에드워드는 그 커다란 근육덩어리 몸에 걸맞지 않게 어깨를 심하게 들썩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른 청중들은 방앗간 카를렌 할머니, 대장장이 루크 아저씨, 아직까지 이름을 못 외운, 이제 막 이사 온 약재상 청년 등 내가 신세를 많이 졌던, 혹은 베푼 마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의문이 시작되었다. 잠깐만...

나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피브완의 추모사를 경청하였다.


"그의 오랜 친구로서, 그의 참혹하고 비극적인 죽음은 참으로 애통하며 온 마을 사람들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의 일생은 타인의 귀감이 아닐 수 없었으며, 마땅히 후대까지 존경 받고 칭송받아야 할 사내였습니다!"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가며, 뺨을 점점 일그러뜨리며 이제껏 지어보지 못한, 아니, 레이네스 앞에서 딱 한 번 지어본 해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저는 신부도, 수녀도 아닌 일개 음유시인이지만! 이렇게 두 팔 벌려 신들께 간절히 기도를 올립니다! 비록 그가 그의 신앙을 밝히진 않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신들께 간청드리옵니다. 생명과 죽음의 신 우샤여, 그의 영혼을 거두어 보살피시기를, 빛의 신 마즈다시여, 그의 영혼이 걸을 길을 비춰주시기를! 그리고 어둠의 신 마노스시여, 지친 그의 눈이 어둠 속에 평안을 찾을 수 있기를! 용맹과 지혜의 쌍둥이 신 에이르와 헤이르께서는 그를 용맹과 지식의 보고 한가운데에 놓으시기를!"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기웃거리며 관 위에 놓여진 초상화가 누구인지 보려 애썼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피브완이 고개를 숙였고, 곧 다른 모든 청중들도 고개를 숙인 덕분에 그 초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 잠시 고개를 숙여 그의 명복을, 그리고 행복을 빌어주도록 합시다. 손을 맞잡읍시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리고 잠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초상화에 그려져 있던 것은...


"나!?"


경악에 질린 비명에 여관의 모든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하나같이 퍼렇게 질린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 채 넝마꼴이 된 나를 바라보았다.

카운터의 피브완은 언제 비통하게 추모사를 읽고 있었냐는 듯 하얗고 가지런한 치열을 뽐내며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오랜만일세, 로빈!"


그 말을 뒤로 한참 지속된 침묵을 깬 건 에드워드가 크게 훌쩍거리는 소리였다.


**********


마을 사람들이 빠져나간 황금골 여관, 나는 눈이 퉁퉁 부은 에드워드에게 싸구려 에일을 받고 마셨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에일의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몸 속 깊이 퍼지니, 나는 잠시 소리내어 감격의 울음을 하곤 피브완에게 지금까지 겪은 모험담을 들려주었다.


용병들과의 계약으로 회색 산맥을 오른 일, 그리고 용을 맞닥뜨려 용병대는 전멸하고 나 홀로 살아남은 일, 어떻게든 조잘거려서 용의 환심을 샀던 일, 용의 이름을 지어준 일과 이야기를 들여준 일, 그리고 포탈 반지로 용에게서 탈출한 이야기까지. 자잘한 이야기는 빼먹었을 지도 모르지만, 일단 크고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석 달 동안 못 본 사이 대가리에 물이 찼군."


에드워드는 퉁퉁 부은 뚱한 표정으로 빈 잔을 닦으며 나를 흘겨보았다. 반면에 피브완은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미소로 내 이야기를 들으며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알겠는가, 로빈? 좋은 친구는 억만의 보물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말이야. 내 덕분에 자네의 목숨을 건졌으니, 내가 자네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말이나 못하면. 그나저나 피브완, 무르트부르크에 있던 거 아니었어요? 왜 여기로 온 거에요?"


피브완은 허허, 소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맥주잔을 입에 가져갔다.


"나의 절친한 친구 로빈이 석 달째 행방불명이라고 들었다네. 게다가 같이 갔던 용병들은 회색 산맥 아래서 걸레짝이 된 채로 발견됐고 말이야! 친구 된 도리로서, 어찌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있겠나? 소식이 들리자마자 포탈을 타고 이 곳 황금골로 왔지만, 제국군은 수사 기간이 끝나 자네를 사망 처리했다고 하지 뭔가! 결국 마을 사람들도 마음을 접고 성대한 장례식을 치뤄주려 할 때, 자네가 팍! 감동적인 등장을 한 게지."

"아아, 그렇군요. 그래서, 무르트부르크를 나온 진짜 이유는?"

"가면 무도회에서 장난으로 한 귀족의 말 가면을 진짜 말로 만들어 버렸다네."

"어련하시겠어요."


비웃음 섞인 코웃음을 픽 내뱉자, 갑자기 피브완의 말 중 하나 이상한 게 섞여있었다는 것이 생각나 에일잔을 거칠게 내려놓고 피브완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아니, 잠깐잠깐, 그런데, 뭐요? 제국군?"

"오, 아마 이 친구도 제 주인마냥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양이군."


피브완은 살짝 고개를 들려 에드워드를 향해 눈썹을 들썩거렸다.


"요즘 세상 소식 겸, 자네에게 닥친 위험에 대해서도 내 친히 알려 주겠네. 자네가 없어진 지 두 달이 되던 때쯤, 회색 산맥의 봉우리가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네. 아마 자네의 말대로라면 그 황금용의 짓이 분명하겠군. 아무튼 다른 동부 왕국을 잇는 통로 중 하나였던 산봉우리가 가로막히게 되자, 노드리케 제국의 여제는 스호트 왕국의 곡창지대인 이 곳 황금골을 노렸다네. 200년 전 무너진, 그리고 세 달 전 그 용이 태운 잔도를 고작 삼 주일만에 복구해서 이 곳 황금골로 건너온 다음, 하루도 안 되어 이 곳을 제국의 통치령 아래에 놓았다네. 고작 일 주일 전의 얘기지. 스호트의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제국에게 꼬리를 내렸어. 그래서 이 곳엔 지금 제국의 정예병들이 주둔하고 있다네."

"황충들이!? 그 메뚜기 같은 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진 않던가요?"

"제국의 여제는 항복하는 자들에겐 관대한 사람이라네. 오히려 스호트 왕국은 매우 이른 시기에 항복을 한 덕분에 자치권을 얻게 되었지.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이 곳은 제국의 손아귀에선 평화로운 셈이야."


피브완은 목이 말랐는지 헛기침을 하고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넘겼다.


"그리고, 이건 자네에게 중요한 얘기니 잘 듣게."

"말해보세요."


피브완의 얼굴은 진중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굳으며 내 얼굴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황금용은 이르면 내일, 이 황금골을 덮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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