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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사이의 쉼표가 음악을 만든다

앵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5.17 10:38:09
조회 59 추천 1 댓글 0
														




- - 터덜, 터덜.”


도서관 열람실의 문 닫히는 소리가 십 분 간격으로 울린다. 도서관에 있는 문 치고는 제법 기세 좋은 소리다. 손님이 북적이는 식당에 있어야 할 문이 여기 잘못 설치된 것 같기도 하다. 간간이 오고가는 도서관 이용객들은 그렇다 쳐도 열람실에 상주하는 직원들은 이 소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걸까. 딱히 책망하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열람실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저 원초적인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을 뿐이다.


- - 터덜, 터덜.


- - 터덜, 터덜.


책상 칸막이에 파묻혀 두어 시간 책을 읽고 있으니 어느새 열람실 문소리는 백색 소음의 하나가 되어 마치 처마에 앉은 먼지가 눈에 띄지 않듯이 내 의식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졌다. 터덜터덜 하는 문소리는 창문 밖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 건너편 책상에서 마우스를 딸깍이는 소리와 하나가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서관의 적당한 산만함을 즐기고 있었다. 편안한 무의식 속에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완벽하게 소음이 차단된 도서관이었다면 내가 이와 같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러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미 그런 도서관을 여러 번 갔었다. 코로나 이전 우리 동네 도서관은 이용객이 지켜야 할 규칙이 꽤나 엄격하게 정해진 곳이었다. 음식물 절대 반입금지, 휴대폰은 무음으로, 키보드 타자 소리 주의 등. 큰 글씨로 나열되어있는 열람실 안내문을 도서관 이용객들은 제법 철저하게 지켰다. 그 결과 열람실은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조심해야 할 정도의, 거의 무음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되었다. 그 완벽한 고요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이어폰을 귀에 틀어박고 열람실에 앉아서 적당히 산만한 노래를 듣고는 했다.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삶의 격언이 있다. 그것은 음표 사이의 쉼표가 음악을 만든다는 말이다. 과연 완벽하게 조용한도서관을 훌륭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악이 음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음이 쉴 공간이 필요하듯이 도서관에서도 소음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빈틈을 사랑해야 한다. 빈틈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리듬을 갖지 못한다. 음악에 쉼표가 있고 도서관에 소음이 있듯이 우리 삶에도 약간의 헐렁한 공간, 빈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리듬이 생긴다. - - 터덜, 터덜 하는 도서관 열람실의 문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래도록 세상의 빈틈에 대해 생각했다.


빈틈을 사랑하자는 말은 빈틈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각자의 음과 쉼표로 자유롭게 노래하기를. 빈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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