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xv

죽이거나 실패하거나

갑작스러운 충격이 인다. 경고도 없이 란이 풀려난다. 란은 바닥에 쓰러진 채 옆으로 몸을 굴린다. 고개를 돌리자 울부짖는 월드 이터 군단병이 서서히 무릎을 꿇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뒤에서 케시그의 주인 나마히가 한 손으로 그 머리를 움켜쥔 채다. 다른 한 손으로는 거의 광란에 가까운 망치질 같은 손짓이 오간다. 에들렐(Edlel, 각주 1로 쉴 틈 없이 목과 어깨를 찔러댄다.

멈춤은 없다. 1초에 두 번의 칼질이 쉴 틈 없이 유압 프레스처럼 놈에게 박힌다.

마침내, 그가 칼을 멈추고 물러선다. 화이트 스카 군단병의 하얀 흉갑과 바이저가 뒤로 튄 피로 흠뻑 젖은 채다. 짐승은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쓰러진다. 나마히가 란을 바라본다. 그는 어깨 너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식사실 너머의 방을 가리킨다.

“전부 확보했소, 경.”

란이 일어난다. 그는 제폰과 함께 왔던 길을 향해 손짓을 한다.

“저쪽도 모두 확보했소, 케시그의 주인.”

란은 대답하고서 바로 제폰에게 간다. 제폰과 힘을 겨루던 선 오브 호루스 군단병은 죽었고, 제폰은 시체 위에 몸을 구부리듯 엎드린 채다.

“아직 살아있나?”

“우리만큼이나 살아있소.”

란이 묻고, 제폰이 답한다. 란은 제폰의 손을 꽉 잡고 일으켜 세운다. 블러드 엔젤 군단병의 머리는 선혈로 얼룩졌고, 아름다운 얼굴도 피의 가면을 두른 채다. 하지만 그의 아스타르테스 신진대사는 이미 터진 혈관을 막고 피를 응고시키는 중이다. 란은 벨트 팩에 있는 마지막 남은 소독제를 뿌려 제폰의 눈에서 피를 씻어낸다. 끔찍한 상처지만 깊지는 않다. 이 이상 해 줄 무언가는 없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소.”

“그러지 않기로 했지.”

제폰이 란에게 대꾸한다.

“어쨌든 해치웠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소, 란. 죽이거나 실패하거나지.”

란은 고개를 끄덕인다. 피를 흘리며 식사실 바닥에 구겨져 있는, 제폰이 처치한 세 놈의 시신으로 란의 시선이 향한다.

맹수에 물린 듯, 목이 찢어져 있다.

각주 1 : 일전에 누락했던 것 같아 각주 표기. 본래는 몽골식의 단검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화이트 스카 군단의 제식 배틀 나이프라고 생각하면 될 듯.

이걸로 란/제폰 사이드 스토리 종료.